선방일기
지허 스님 지음 / 여시아문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속세에서 먹물 깨나 먹었던 지허 스님의 선방일기는 단순하면서도 정갈하고 진실하면서도 치열한 수행의 기록이다. 아상으로 단식수행을 하던 스님과의 이야기를 보면 자신의 먹물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도 그의 수행일기 전체에 흐르는 느낌은 단촐하면서도 잡다한 사변을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스님이 그려내는 절간의 이야기들이 깊은 사연과 애절한 마음을 자아내면서도 마치 한 걸을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그려내는 것처럼, 그것이 슬픔과 연민을 넘어서 지향하는 바가 분명해지는 것이다. 그 길에 놓인 승려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을 찍어내게 하기도 하지만 모두 아름답게 변하고 만다.

   심지어 스님이 그려내는 선객의 고독조차도 아름답다. 이백의 '월하독작'은 너무 가슴을 울린다.

  "꽃이 만발한 숲 속에 한동이 술이로다. 그러나 친구가 없어 홀로 마실 수밖에,

잔을 들어 돋아오르는 달을 맞이하고 그림자를 대하니 세 사람이 되었구나.

달은 본디 술을 못하고 그림자는 부질없이 나를 따라 움직일 뿐이로구나"

고독과 대면하는 수 밖에 없다. 그 고독과 대면하여 이겨내는 방법은 화두로 타파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도 고독을 회피하고 두려워한다. 그 고독의 뿌리에 우리가 세상의 구멍 속으로 빠지고 마는 삶의 뿌리가 있다. 인연되어 선방에서 공부를 치열하게 하면서도 깨달음의 길에 놓인 고독이라는 길을 결코 회피하지 않는 스님의 모습에 진정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병든 스님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눈물이 절로 났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대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절에 들어왔지만 기연이 닿지 않아 일을 마치지 못하면서도 낯빛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꾸는 스님의 마음씀과 삶의 애절함이 뼛속으로 파고드는 겨울추위같았다.

  이 길을 가는 것에는 나이의 많고 적음, 많이 알고 적게 알고의 지식의 유무, 속세에서의 지위 등 온갖 겉치레가 다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이 길엔 세상 모든 것을 베어내는 날카로운 지혜와 의지의 칼만이 필요할 뿐이다. 어느 곳에도 마음 묶이지 않고 꿋꿋하고 바른 길을 걸어가려는 지허스님의 구도의 이야기는 내 느슨한 마음에 조그만 촛불을 하나 켜기에 충분했다.

  갖은 해석과 말을 줄이고 나아가 행동도 줄이고 오로지 진리의 길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기 위하여 생활의 다른 에너지들은 모두 아끼는 그의 마음 속에는 오직 진리를 향한 마음만이 흔들림없이 서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체의 우상을 버리고 인간으로서 가야할 조화되는 길로 향한 느리지만 빈틈없고 착실한 발걸음에 담긴 삶의 무게에 가벼웠던 나의 오늘이 돌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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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12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오늘 하루도 평정심 잃지 않는 하루 되소서..
이책은 담아가겠습니다.

달팽이 2007-06-12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이미지가 바뀌었군요.
님 말씀대로 사는 하루가 되기를...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