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우렁은 연체동물
백합조개 잡아먹을 때
껍질에 빨판으로 달라붙어 가만히 있다
마치 꼭 껴안고 있는 듯 보일 테지만
나중엔 백합조개의 볼록한 이마쯤에
드릴로 뚫어놓은 듯 정확한 원형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 보게 된다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몸짓에
집요한 추궁,
뜨거운 궁구가 있었던 것
갯우렁의 먹이사냥에는
가차없는 집중력이 숨어 있다
너를 향한 내 이 물컹한 그리움에도
어디엔가 숨겨진 송곳,
숨겨진 드릴이 있을 거다
내 속에 너무 깊이 꺼내볼 수 없는 그대여
내 슬픔의 빨판, 어딘가에
이 앙다문 견고함이 숨어 있음을 기억하라.
몇 년 전이던가
몰운대의 자갈마당에서
구멍뚫린 조개껍데기를 줍고서
한참을 쳐다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 칼로 자른 듯한 정확한 이 구멍은 무엇일까? 하고서..
삶의 진정성이 시에 있다면
그는 날카로운,
손을 스치기만 해도 핏방울 떨어지게 날카로운
시의 칼날을 가지고 있다.
혜경님의 덤으로 보내주신 선물에서
나는 새로운 사람 한 명을 만났다.
포장 박스에서 뚜벅 걸어나와
강렬한 인상으로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