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고도 오묘하지요. 이다지도 인연이 딱 들어맞다니! 누가 그런 기회를 만들었을까요? 그대가 나보다 먼저 태어나지 않고, 내가 그대보다 늦게 태어나지 않아 한세상을 살게 되었지요. 또 그대가 얼굴에 칼자국 내는 흉노족이 아니요. 내가 이마에 문신하는 남만 사람이 아니라 한날에 같이 태어났지요. 그대가 남쪽에 살지 않고 내가 북쪽에 살지 않아 한마을에 같이 살고, 그대가 무인이 아니고 내가 농사꾼이 아니라 함께 선비가 되었지요. 이야말로 크나큰 인연이요 크나큰 만남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말을 구차하게 해야 하거나, 억지로 상대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해야 한다면, 차라리 천 년전 옛 사람을 친구로 삼든가 일백 세대 뒤에 태어날 사람과 마음이 통하기를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경보에게)

 

박규수의 상고도회문의례

벗들이 상봉하면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마음에 드는 일이 없을까  안달한다. 안부와 요즘 관심사를 묻고 나서 공부하다 새로 얻은 것이 있는지 알아본다. 그러고 나면 그저 묵묵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옛사람은 차를 마시고 나서 논어를 풀이했다. "는 격으로 경전의 가르침을 따져보려 하지만 이전에 배운 공부가 보잘것없어 더 따지고 입증할 거리가 없다. 과거 답안지에 쓸 문장을 꺼내보지만 지루하고 허망하여 기분을 잡칠까 걱정이다. 결국에는 다 그만두고 다시 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음악을 듣고 기생을 희롱한 이야기, 나들이하고 놀이하는 즐거움에 대화가 이른다. 그러나 이따위는 옛사람이 취하지도 않았고, 내 성격에 맞지도 않는다. 이 밖에 향을 사르고 차를 품평하는 취미나 서화와 골동품을 감상하는 고상한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을 기울이기에는 천박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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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3-02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퍼갑니다. 다시 한 번 우정을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네요. 행복한 3월이 되시기를......

달팽이 2007-03-02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님에 비하면 저는 그저 아주 간단하게 올리는 것이지요.
앞으로는 님의 태도를 좀 배워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