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하루가 전쟁통처럼 흘러간다. 내게 그렇게 지루하고 고독한 날들이 있었던가 할 정도로 정신 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보내고, 또 만나며 아쉬운 마지막 달을 보내고 있다. 시간이 가는지 안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새 에드먼튼에도 봄이 왔다. 아직 입김이 나올 정도로 쌀쌀하긴 하지만, 그래도 겨울에 비교하면 뷰리풀! 이란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제법 따뜻하다. 

내게 일어난 새로운 일들을 어떻게 기록으로 남길까. 요즘의 고민거리다. 그대로 서술하면 오글거릴 정도로 과장될까봐 걱정되고, 그렇다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볼 때까지 기다린다면 너무 많은 것이 묻혀버릴까 걱정이다. 실은 모든 사건들이 머릿 속에서 정리가 될 무렵까지 기다려보자는 쪽이었는데, 최근들어서는 반짝거리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 빛이 바래면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최근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얼마 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자살시도를 할 정도로 감정적이지만 선천적으로는 밝은 친구다. 원래 이친구는 스킨헤드였는데, 자기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감옥에 가 있는 아빠가 되기 싫어서 갱단에서 은퇴했다고 한다. (은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 친구가 그 갱단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이와는 2주에 한번씩 주말에 시간을 함께 보내고, 한달에 500달러씩 지원을 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의 엄마와는 결혼을 하지는 않았다. 에드먼튼에서 알아주는 기타리스트지만 밴드가 해체된 이후로는 공연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내가 떠나기 전 한 번은 공연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친구의 아빠는 친구가 어렸을 때 집을 나갔는데, 몇 년 전 다시 돌아왔다. 그의 와이프와 함께. 그의 와이프는 생물학적으로는 남자지만, 모두가 '그녀'라고 하고 그녀의 이름은 엘리다. 그들의 집 베이스먼트에는 드럼과 앰프, 갖가지 종류의 기타와 훌륭한 스피커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수백개가 넘는 영화 DVD가 구비되어 있다. 친구의 아빠와는 별 다른 이야길 하지 않았지만, 엘리는 마치 잔소리쟁이 할머니같이 다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안티소셜같이 보이긴 했지만 무척 다정했다. 

난 그 친구의 인생이 좋은건지, 그 친구가 좋은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무서워보이는 갱스터 백인 남자그룹이 내가 그의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정해지는 것도 평생 못해볼 경험이었고, 함께 헤비락 뮤직을 들으면서 내가 그 동안 이런 음악을 얼마나 그리워했었는지 깨달았고, 몽롱한 레드라이트의 불빛 아래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친구와 그를 바라보는 내 모습이 꿈처럼 느껴졌고, 나와 전혀 관계없을 줄만 알았던 나이든 게이피플의 일상사가 신기했다. 매일같이 파티만 하며 사는 젊은 게이피플이 늙으면 이렇게 될까, 이들을 젊었던 시절은 어땠을까..

그런데 이걸 어떻게 기록해 두나? 시간이 지나면 농익을 줄 알았던 추억들은 차츰 희미해져서 이젠 찾을래야 찾기도 힘들어졌고, 그렇다고 설익은 이야기들을 그대로 줄줄 늘어놓자니 나만 특별한 사람인양 특권의식에 가득 차 떠들어대는 것만 같다. 속으로야 내가 특별한 애라고 생각하더라도 그게 밖으로 드러나면 그만큼 꼴사나운게 없다. 그냥 담담한 어조로, 디테일과 솔직함을 잊지 않으면서도, 반짝거리는 글을 쓰고 싶다. 경험이 쌓일 수록, 욕심도 커지니 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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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1-04-04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내 나는 이렇게 살아요, 나처럼 살아볼래요, 류의 페이퍼를 썼던 저로선 부끄러워져요. 전 특별하지 않으니까 특별한체 했던 것 같아요.

뽀님이 얘기한 삶, 일상으로 펼쳐지는 이질적인 삶. 참 꿈만 같아요.

이 글은 반짝거려요!

Forgettable. 2011-04-04 10:03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히히

예전엔 거의 하루에 하나씩 강박적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렸었는데, 요즘은 쓰다가도 자꾸 말아버리게 되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싶어서 더 힘들어지고. 그래서 오랜만에 글을 쓴다고 해도 뭐 딱히 괜찮은 것 같지도 않고. ㅋㅋ

아마 예전엔 삶이 지루하니까 글에서 돌파구를 찾았고, 지금은 꿈꾸는 것처럼 살고 있으니까 글이 안써지는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요.

무해한모리군 2011-04-04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가 마음에 들어요.
건강하면 다 괜찮아요.
포게터블은 반짝반짝이는 잘난 사람이예요 ㅎㅎㅎ

Forgettable. 2011-04-04 10:07   좋아요 0 | URL
아. 저 여기 온지 1년만에 아파요. ㅠㅠ 감기가 제대로 들었어요. 근데 너무 놀아대다가 아픈거라서 ㅋㅋ 어디 아프다고 징징거리지도 못하겠음 ㅋㅋㅋㅋ

오랜만에 페이퍼 올린 보람 있게 보고 싶은 분들이 댓글 달아줘서 기분이 좋아요. :)

무해한모리군 2011-04-04 12:32   좋아요 0 | URL
아프군요 이런.
어제 많이 먹고 힘내서 더 열심히 놀아요!!

저도 포게터블 소식을 들으니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힘이 나요.
요즘 저도 무척 바빴답니다.

Forgettable. 2011-04-06 14:22   좋아요 0 | URL
저도 아픈데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 놀고 있어요. 계속 놀아요 진짜 ㅠㅠㅠㅠㅠㅠ
한국가면 못놀 것 같아서 더 열심히 열심히 ㅋㅋㅋ

노는게 남는거죠. 휘모리님도 열심히 놀고 계세요 저 갈 때까지!
결혼하신 이후론 몸 사리고 계실 것 같다능ㅋㅋ

2011-04-04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04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11-04-04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데요, 솔직 담백하고. :) 한국 들어오시기 전에 아픈 거 다 나으시길!

Forgettable. 2011-04-06 14: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이래저래 많이 노력해봐야겠어요.
아, 그저 스쳐지나가는 감기니까 곧 낫지 않을까 싶어요. 한국에선 감기 달고 살았는걸요. ㅎㅎ

pjy 2011-04-04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소한 일상이 참 버라이어티 한게 우리 일상이죠~
놀아서 아프고 싶은데요ㅋ 쓸데없이 민감해서 황사에 눈깔 뒤집혔어요 ㅠ.ㅠ

Forgettable. 2011-04-06 14:25   좋아요 0 | URL
아 황사 ㅠㅠ 전 오만데 안아픈데가 없었는데 여기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공기때문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이 도시가 체질적으로 저랑 맞는건지?ㅋㅋㅋ

버라이어티한 일상이 자주 찾아오는게 아닌만큼 즐기고 있습니다 ㅋㅋ

Joule 2011-04-04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덧없어서 손에 잡히지 않아서 아름다워요. 내 손에는 독이 묻어 있어서 내 손이 닿는 순간 그것은 바스락 소리를 내며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아가버릴 테니까. 이번 이야기는 묘하게도 인디언 써머 같은 느낌이 들어요.

Forgettable. 2011-04-06 14:28   좋아요 0 | URL
한국에도 인디안 써머가 있나요?
전 여기서 인디안 써머의 참 의미를 처음 알았어요.

제 글이 인디안 써머 같다니 마음이 다 훈훈합니다. :) 잡을 수 없는 것이더라도, 잡으려고 계속 발버둥치면 그 일부라도 마음에 새길 수 있겠죠. 인디안 써머였던 작년 가을의 열흘간이 생각나네요.

2011-04-05 0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06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07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08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4-06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님~ 이제 곧 돌아오는군요~~~~~ 반겨줄테니 광주로 와요!
송정리 떡갈비에 산사춘을 마셔야지요~~~ㅋㅋ

Forgettable. 2011-04-06 14:39   좋아요 0 | URL
아 떡갈비에 산사춘! 안그래도 친구가 광주에 있어서 한 번 가고싶단 생각은 했는데. ^^
캐나다에 있다보니 뭐 버스로 3~4시간 거리는 우습게 됐어요. ㅋㅋㅋ

버벌 2011-04-07 23:23   좋아요 0 | URL
아 저기. 눈팅하다가 반가워서. 제가 광주살아서요. 송정리라니.. 송정리라니.. 아는 단어에 급 흥분을 했어요. 뽀님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남기는 댓글이 뽀님 글이 아니어서 죄송합니다. ㅠㅠ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아 광주다 광주.

Forgettable. 2011-04-08 12:54   좋아요 0 | URL
버벌님. 죄송할 것 까지야요. ㅎㅎㅎ 전 모든 댓글 다 환영인걸요. ^^
광주사시는군요. 예전에 일 때문에 한 번 출장갔었는데, 순오기님이 송정리에서 떡갈비 사주셨었거든요. 흐흐흐흐 아으 먹고 싶다!!!

순오기 2011-04-19 20:33   좋아요 0 | URL
아~ 그럼 뽀님 광주에 오면 버벌님까지 같이 만나면 되겠네요.^^
버벌님은 어디에 사는지 모르지만, 광주야 한동네 같으니까요.

에디 2011-04-07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제가 뽀님의 캐내디언 라이프를 훔쳐보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 오시는군요 ㅠㅠ

Forgettable. 2011-04-08 12:56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놀만 하니 가야해서 아쉬워 죽겠어요. ㅋㅋ
이런 저런 재밌는 얘기 많이 남겨놨어야 했는데 결국은... 고민만 하다가 술먹고 다 까먹고-_-;
 

그간 [Somersault], [Zombieland], [Almost Famous], [Stardust]를 봤다. 그러고보면 짧은 시간 동안 참 다양한 장르를 넘어들었는데, 어울리는 친구들이 다 각각의 취향을 갖고 있어서 그렇다. 영화 이야기는 딱히 할 게 없다. 요즘은 그냥 주는대로 모두 흡입할 정도로 백지인 상태라, 별 생각도 없었고, 몇 개의 기억에 남는 장면들 빼곤 남은 게 별로 없다. 받아들이고 나서 그걸 모태로 다시 새롭게 생각을 해야 하는데, 어쩜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의 굴레에서]를 필사하기 시작했는데, 이 책이 좀 재미있다 보니까 필사는 둘째로 치고 얼른 읽고 싶어서 요즘은 그냥 읽고 있다. 원서를 보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밤에 잠이 안와서 읽다보면 금새 잠이 오니까 읽는 건데, 어째 이 책은 잠도 안오고 빠져서, 단어 찾아 볼 새도 없이 읽고 있다. 아주 좋아하는 책을 공부에 이용하는 건 어쩌면 안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친구가 내게 그나마 나같은 사람도 세상에 있어야 세상이 좀 더 따뜻하다고 했었던 적이 있었다. 잘 모르겠다. 쉽게 사랑에 빠지고, 쉽게 헤어나오고, 다신 전 애인과 맺었던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걸 90% 확신하면서도 또 사랑에 빠지고, 이번엔 다를 거라고 확신하고, 그리고 또 상처받고, 문을 닫고, 또 문을 열고, 쓸데없는 반복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굴레에 체념한 체 몸을 맡긴다. 

데이라이트 세이빙이 끝난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다시 시작됐다. 이번에도 역시 적응 못하고, 살면서 1시간의 간극을 가장 크게 느끼는 주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6주 남았다. 캐나다에서의 생활.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서 이제 시작인 것들도 있어서 무척 혼란스럽다. 게다가 정작 한국에서의 시작은 아직 개념조차 안잡힌 상태. 길을 찾아 이 곳에 왔고, 1년이 지나면 나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었는데, 남은 건 앞으로도 평생 찾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 뿐이다. 친구의 말마따나 그저 빛을 향해 걸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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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4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6주 남으셨군요 ㄷㄷ 전 개강하니 몸이 바쁘고 시험 망치고 나니 정신도 바쁘네요; 객관적으로는 미래가 더 암담하고 우울해지긴 했는데, 마음은 그래도 더 밝아진 것 같아요. 설마 이런게 바로 고난 속에서 작은 희망에 기뻐하는 겸허한 마음가짐이라든지 하는 건 아니길 바라는데;; 여튼 블로그는 옮기려고 했는데 이것 저것 생각할게 많아서 일단은 잠궈두기만 하려구요.

아무튼 책을 필사하신다니 멋지네요. 저도 영어 필기체 연습할 겸 잠깐 썼는데 끝이 없더라구요; 또 한글로 된 책도 제대로 소화해보려고 써 봤는데 이건 지루하더란... 그래서 결국엔 타협할 겸 주요 문장이나 요약 정리만 가볍게 같이 쓰면서 읽곤 해요. 근데 그마저도 요새 과제가 많아서 못 하고 있네요. 시험 공부도 다시 시작해야 할 거고...

인생의 길을 늘 찾고 싶었는데, 이젠 정말 그런 나만의 길이라는게 존재하긴 하는건지 모르겠어요. 누구 말마따나 절대 존재하지 않거나, 어디에나 존재하거나 할 듯 싶은데 으으; 차라리 이 모든게 한바탕 꿈이었고, 앞으로도 꿈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마음이라도 가뿐할텐데.

어쨌든 캐나다의 기후의 변화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은 환절기라 감기에 걸려 고생했네요. 생각해보니 거긴 늘 추우려나; 아무튼 몸 조심하세요.

Forgettable. 2011-03-21 14:42   좋아요 0 | URL
참 시간 잘가죠??

안그래도 블로그 다 없어져버려서 놀랐어요. 그렇다고 네이버 블로그에 새로운 소식이 올라오는 것도 아니고.. 블로그가 어느 정도 시간이 된 만큼 옮기기도 정신없을 것 같아요.

책 필사는 잠정적 중단 ㅋㅋㅋㅋㅋ 요즘 진짜 뭐 하는지 아무것도 안하고 돈은 안모이고;; 운동도 안해서 몸은 몸대로 상해가고. 요상한 나날들이에요. 그렇다고 한국 가고 싶지도 않고. 여기 한 3개월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ㅠㅠㅠㅠ 아휴.. 아쉬운 마음만 더 커져가요.

학교 공부랑 시험이랑 병행하기 힘드시겠어요. 이 모든게 꿈이고, 앞으로도 꿈일거라 생각하고 이왕 재밌는거 찾아다니며 지내시는게... 사진도 많이 찍고 ^^

여기도 이제 슬슬 따뜻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봤자 영하지만 ㅋㅋㅋㅋㅋㅋ 감기한번 안걸려서 참 이상요상해요.

모모쨩 2011-03-15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캐나다 모레담아오는거 잊지마시고요~
캐나다 자석도 잊지마시고요~
아이 미스 유~~~~

Forgettable. 2011-03-21 14:43   좋아요 0 | URL
모래랑 자석은 다 뭐랍니까 ㅋㅋㅋㅋㅋ
나 가기 싫어 죽겠어요. 힝힝 ㅠㅠ
하지만 얼른 보고싶어요!! ㅋㅋ

pjy 2011-03-17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이 두둥하는 배경음악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지평선에서 서부영화버젼삘로 나타나는 폼이 생각나는건 왜일까요^^?
지진나서 구차하게 보따리짐가지고 일본에서 귀국하는게 아니라서 그런지..왠지~ 폼나게 돌아올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Forgettable. 2011-03-21 14:44   좋아요 0 | URL
지진나서 귀국하는게 왜 구차한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저 역시 뭐 폼나게 돌아갈 것 같진 않네요. ㅎㅎ
뭐 이뤄놓은 것도 없고, 그냥저냥 알바하고 놀다가 들어가는거라 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정말 후회없이 놀긴 했어요!!
 

오로라를 보러 옐로나이프에 다녀왔다. 짐을 풀고 다운타운으로 나서자마자 추운 거리를 전통의상을 입고 활보하는 원주민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에드먼튼에서 봐왔던 원주민들은 대부분이 홈리스처럼 보여서 경계의 대상이었는데 옐로나이프에 사는 원주민들은 그 도시의 생명자체 같았다. 도시 곳곳은 원주민들이 그린 아름다운 벽화와 감각적인 건물로 가득 차 있어서 흐리고 추운 날씨가 주는 찬 느낌 보단 활동적이고 따뜻한 느낌의 도시였다. 

    

애초에 여행이란 어디에 가든, 가서 무엇을 하든, 누구와 함께 가든, 이런 것들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 상관없이 그저 떠나면 좋은게 여행이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을 수만 있다면야 돈이 얼마가 들든,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시간에 쫓겨, 돈에 쫓겨 여행을 하고 그것을 자랑 삼아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면 저것은 허세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어떤 걸 보고 어떤 걸 느꼈다란 감상 보다 1주일 동안 이만큼 많은 곳을 다녀왔다, 1달 동안 돈을 이정도밖에 쓰지 않았다, 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난 나도 모르게 선을 긋고 만다. 여행은 내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일부분인데, 그 여행을 통해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면 다른 부분에서도 부딪칠 것이 뻔하다는 선입견에서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낭비하는 여행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을 낭비하는 여행을 추구하는 것은 맞다. 새로운 도시에 가면 일부러라도 길을 잃어보는 것이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인데, 옐로나이프의 올드 타운에서도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길도 없는 언덕에 올라가버리고 말았다. 별로 높아보이지도 않은 언덕인줄 알았건만, 막상 올라보니 눈 덮인 커다란 호수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리 저리 사진을 찍고 장난을 치다가 탁, 하고 누웠을 때 내게 다가온 하늘을 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나 가까운 하늘은 충격이고, 기쁨이고, 슬픔이고,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오만가지 감정의 소용돌이에 놀라 벌떡 일어나버리고 말았다. 손을 뻗으면 잡힐 것만 같았고, 까딱하면 뚝 떨어질 것 같기도 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누우니 그제야 행복해서 웃음이 막 난다. 아, 이거구나. 싶었다. 이게 뭔지도 모르면서. 

똑딱이 카메라로 야경사진을 찍는 것도 무리인데, 삼각대도 없이 오로라를 카메라에 담는 것은 당연히 무리였다. 이틀밤 내내 밤은 흐렸고, 눈이 간간히 내리기도 했으며 게다가 풀문이었다. 월요일이 노는 날이라 이 주말로 계획을 짠 것이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날씨며 달이며 우릴 도와주지 않아서 큰 기대를 하진 않았었다. 흐릿하게나마 보기만 하면 다행이라 생각했었는데, 첫 번째날, 영하 25도 가량의 기온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려서 결국 작지만 선명한 빛의 흐름을 볼 수 있었다. 

자연의 오케스트라다, 눈물이 난다, 등등 여러가지 말들이 많았지만, 막상 난 조금 담담했다. 아무 빛도 없이 깜깜한 밤 하늘에서 울렁거리던 초록색 빛이, 뭐랄까.. 참 예쁘다 싶긴 했지만 대단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고개를 하늘과 수평이 되게 들어야 볼 수 있는 북두칠성이 더 신기했고(눈을 45도 정도 들어서 보는 평소의 북두칠성과 90도 제껴서 보는 북두칠성은 뭔가 달라 보였다), 가로등보다도 더 밝게 빛나는 보름달이 더 화려했다. 그래도 그나마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두번째 날. 하루 종일 날이 맑아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밤이 되자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쪽 동네에서는 내 눈보다 일기예보가 더 정확하다.  

하지만. 눈이 내리기 전 한 10분 가량 아주아주 커다랗고 밝은 오로라가 한 차례 지나갔었고, 운 좋게 그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던 우리는 조용한 동네에서 소리를 지르며 뜀박질을 해댔다. 평생 오로라가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고 살았었고, 전 날에 하도 하늘을 뚫어지게 쳐다보느라고 환각까지 생겨 저것이 오로라인가 하기도 했었는데, 실제로 오로라는 그 무엇에 비교되지 않을 만큼, 대단하고 확연했다.  

진짜. 진실.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사람을 눈으로 쫓으며, 그 사람의 그림자를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진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목도하면 그 수많은 닮은 사람들은 다 허구며 허상이 되어버린다.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만이 진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고, 누구와도 닮지 않은 나만의 사람. 오로라가 그랬다. 그 자체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진짜였다. 10분만에 그 흔적조차 사라져버려서 의심할 뻔도 했지만, 의심할 여지도 없이 난 그 오로라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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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1-02-22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일빠다! ^^ 뽀님~

오로라를 봤구나, 멋지다. 여행관도, 뽀가 바라보는 진심도 모두!
그곳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에요.

Forgettable. 2011-02-22 15:16   좋아요 0 | URL
지금 누구 서잰 줄 알고 등수놀이를 예서 하는겁니까? 버릇없이... 쯧쯧..

ㅋㅋㅋㅋㅋ

아치 안녕? 보고싶어요.

Arch 2011-02-22 15:19   좋아요 0 | URL
어머! 실시간 댓글이다. 버릇없이에서 상심했다가 보고 싶다에서 개운한 표정이 되었어요. 아, 나는 어쩔 수가 없어요

Forgettable. 2011-02-22 15:23   좋아요 0 | URL
사랑을 갈구하는 아치. ㅋㅋㅋ

전 어째 여기서 감기도 한 번 안걸리네요. 날이 이렇게 추운데도;; ㅋㅋㅋ
하지만 건조하고 추워서 피부는 늙고 있어요. ㅠㅠ
그리고 버는 돈은 족족 모두 여행에 부어넣고 있어서... 한국가서 어쩌나 싶네요. 흑흑

그럼에도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회사는 적응할만 하죠?

Arch 2011-02-22 15:58   좋아요 0 | URL
다행히다... 아프면 속상하잖아요.

그래도 뽀는 잘 해내리라 믿어요. 시간을 낭비하는 여행을 하면 되는 거고. 보습에 집중하고 어쩌구 하는 뻔한 얘기는 하지 않을게요. 관리를 안 해서 내 피부가 요모냥인건 아니니까.

적응할만 하겠어요. 그냥저냥, '그저 가을 날씨가 참 좋군요'하는거죠

Forgettable. 2011-02-24 12:10   좋아요 0 | URL
전 뭐.. 저 아픈거나 남 아픈거에 별로 신경 안쓰는 타입이라. ㅋㅋㅋㅋ

잘 하겠죠. 잘 하고 있는진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한 번 그렇게 믿으려고 노력중이에요. 노력이랑은 참 거리가 먼 사람이긴 하지만 ㅋㅋㅋㅋㅋ

슬슬 여름 되면 볼 수 있겠네요!

무해한모리군 2011-02-22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비현실적이게 파란 색깔이네요.
저런 하늘을 가진 곳으라면 오렌지색이랑 노란색을 반반씩 칠한 집에 살고 싶어요.

Forgettable. 2011-02-24 12:11   좋아요 0 | URL
이게 카메라가 파란색을 잘 잡았느냐, 하면 그건 아니에요. 아 정말로 저렇게 파랗더라구요. 눈도 많이 오고 흐린 동네인데 운이 좋았죠. ^^

Ljh 2011-02-23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영화나 다큐에서만 볼수있는 줄알았는데...부럽구만

Forgettable. 2011-02-24 12:12   좋아요 0 | URL
여름이 2달뿐이래.. ㅎㄷㄷ 멋있더라 진짜.

turnleft 2011-02-23 0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부러워라. 나도 오로라 직접 보고 싶어요!!

Forgettable. 2011-02-24 12:13   좋아요 0 | URL
제 카메라가 후져서 잘 못잡아낸게 아쉬울 따름이지요. ㅋㅋㅋㅋ
필카는 솔직히 가져가긴 했는데 온도가 낮아서 밧데리 방전될까봐 켜지도 못했어요.

오로라 보러 한번 다녀오세요. 얼마 안걸리잖아요 거기서!

Mephistopheles 2011-02-23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진짜 부럽네여.....그대는 천상천하유아독존...

Forgettable. 2011-02-24 12:14   좋아요 0 | URL
하하 어쩐지 이 말 들으니 칭찬같아 기분이 좋네요.
사진 좀 더 잘 찍혔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쉬울뿐..

가시장미 2011-02-23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환상... 그 자체군요.^^
믿어지지 않는 풍경입니다!!

Forgettable. 2011-02-24 12:15   좋아요 0 | URL
그쵸? 저도 정말 놀랐어요.
멋있는 사진들 많이 보고 간 터라 약간 기대했었는데 정말이지 기대 이상!!
눈으로 보지 않으면 정말 몰라요 이 느낌 ㅠㅠ

기웃 2011-02-24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빌 브라이슨이 오로라를 보기 위해 노르웨이를 갔듯, 북구 유럽의 오로라만 생각했었지 캐나다는 생각도 못했네요. 경이롭다는 단어는 오직 자연만이 붙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 오로라의 사진은 그 경이로움을 온전히 담을 수 없기 때문인지 뭔가 '으스스'하군요.

Forgettable. 2011-02-27 15:27   좋아요 0 | URL
전 오히려 알래스카만 생각하고 있어서 얼마 전에 [북극의 연인들]을 보고 놀랐었어요. 왠 핀란드? 요랫음.

약간 무섭죠?
실제로 보면 더 무서워요. 압도적이라고 해야 할까.
저 빛이 스물스물 움직이면서 사라져버리는데, 정말 나의 존재감이 그렇게 초라하게 느껴졌던 적도 없었던 것 같네요.

이 곳에서 하도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서 이제 왠만한 하늘은 하늘같지도 않네요. ^^

2011-03-0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진 정말 예쁘네요.
집에 내려가서 어머니랑 사진기 들고 산을 올랐는데 왠지 삭막한 풍경만 찍게 되더라구요;
아니 사진보다는 그곳의 운동기구들에 집착하여
굳은 몸을 풀며 시원함을 느끼는 스스로를 돌아보자니 이제 이대로 늙어가는건가 싶네요 ㅜㅡ

Forgettable. 2011-03-04 13:29   좋아요 0 | URL
코님께 사진 칭찬을 들으니 기쁘군요!!!

굳은 몸을 풀며 시원함을 느낀다니... 아니 혹시 스트레칭 중독?? ㅋㅋㅋㅋ 운동도 근데 정말 은근히 중독성 있더라구요. 저한테 늙어간단 말을 하시다니!! 흥! 아직 어리잖아요 게다가 대학생ㅋㅋㅋㅋㅋㅋㅋㅋ

한번도 카메라에 대한 욕심을 부려본 적이 없는데(????!!!) 오로라 찍을 땐 좀 더 좋은 카메라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피비 2011-03-03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여행하다 만난 애들중에 특히 유럽배낭여행자들은 돈자랑하는애들이 너무 많았어요. 돈 많다는 자랑이 아니라 얼마나 적게 썼나 하는 그런 자랑. 무슨 군대갔다온 사람 경험담 듣기 싫은것처럼 걔네 막 진짜 찌질하게 돈 깎고 갈 곳 못 가고 돈 생각만 하며 밥 시키고 이런거 보니까 진절머리가 났다는.


+저도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보는게 가장 좋아요. 출발비디오여행도 그래서 넘넘 싫어하는 코너중 하나였는데 요새 영화관에 안가다보니 가장 즐겨보는 코너가 되어버림 ㅠㅠㅠ거기 방송작가들 말빨이 너무 장난이 아니라 ㅋㅋㅋ
블랙스완 며칠전 봤는데 아...ㅠ_ㅠ 리뷰쓰기귀찮아서 여즉 냅두고 있음;

Forgettable. 2011-03-04 13:33   좋아요 0 | URL
인도여행때는 그런 사람 못만났어요??? 전 비행기표값까지 80만원 썼다는 사람 만나서 친구랑 뒤에서 진짜 욕했거든요. 도대체 얼마나 깎은거냐며;;;;;; 정말 여행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너무 돈에 집착하게 되는건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더라구요.

출발비디오여행 영화 안볼 땐 정말 최고의 프로그램이죠. 신기한 TV 서프라이즈 끝나면 그거 보곤 했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 블랙스완 보셨어요? 괜찮죠? 마지막엔 정말 소름이 좍좍좍- 전 그거 리뷰 못쓰겠더라구요. 영화 자체만으로도 할 말이 없어져서.

그나저나 대만에서 9시간 경유하며 기다리게 되어버렸는데... 그 동안 파인애플 과자 다먹어버릴지도 모른다능 ㅋㅋㅋㅋㅋ
 

*
나이 들면 운동 열심히 해도 살 안빠진단 말을 절감하면서 운동하는 요즘이다. 살 빼는 건 그냥 포기 했고. 술담배커피로 망가지는 건강을 조금이라도 챙기자는 의미에서 운동하는데, 살도 안빠지는데 운동하는 낙은 TV를 보는 것이다. 스펀지밥도 보고, 발리우드의 유치뽕짝 영화도 보고, 하지만 대부분은 BBC 뉴스를 본다. BBC 월드 뉴스를 보면서 가장 절감하는 것은 세계의 이슈가 되는 뉴스들을 우리 나라에선 크게 보도가 되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한국 뉴스를 보지도 않고, 관심도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포털 사이트의 화두가 되는 소식들은 별 쓸데없는 것들이라는 거.  

아마 월드 뉴스의 성격상 또 특별한 것이긴 하겠지만, 이걸 하루에 30분씩 보다 보면 참 내가 작은 나라에서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데, 한국에 돌아가면 눈 감고 귀 닫고 또 아등바등 거리면서 먹고 살 일에만 전념하겠지. 생각하니까 참 답답해지는거다. 호주 홍수난 거랑 스리랑카 홍수난 거 비교도 못해볼 테고, "I am so proud of being Egyption guy now." 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시위대의 인터뷰도 못볼테고, 아마존이 얼마나 망가져가고 있는지도 상상도 못해볼 것이다. 뉴스를 보면 볼 수록,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아지는데 나의 미래는 결국 '그보다 더 미래'를 위해 한정되겠지 생각하면 참 무섭다. 난 이제 그런 나이인가 싶고.  

** 

 

 

 

 

 

[블랙 스완]을 봤다. 이 곳에서 영화관 몇 번 가보진 않았지만, 평일에 줄 서서 표 사 본적은 처음이었다. 감독의 전작인 [레퀴엠]을 본 적이 있었는데 [레퀴엠]은 뭐랄까 외향적인 영화였다고 해야 하나. 영화의 주인공들이 얼마나 힘들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하여 영화를 찍은게 보였다. 관객을 위한 영화. 레퀴엠이 죽은 당사자를 위한 음악이 아니라 장례식에 모인 사람을 위한 음악인 것처럼 철저하게 영화 밖의 관객들을 위한 영화였다. 

그에 비해 [블랙 스완]은 관객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철저하게 니나(나탈리 포트만)를 위한 영화였고,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자신을 잊고 그녀의 인생에 몰입하게 되어 버린다. [레퀴엠]과는 그런 점에서 반대지점에 있다. 관객은 니나를 동정조차 할 수 없다. 그녀는 그녀 자체일 뿐.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수 없다. 하찮은 관객일 뿐이니까. 영화를 본 지 꽤 됐고, 영화가 너무 좋아서 다시 봤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해 아무 것도 말 할 수가 없다.  

그나저나 난 아무 정보도 없이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내가 영화를 보다가 가장 충격 받았던 부분을 네이버 영화 정보에 버젓이 첫줄로 써둔 것을 보고 정말 더 놀랐다. 정보의 폭력성을 절감. 이 영화 보려면 줄거리 아주 조금이라도 안 읽고 가는 걸 추천함.

***
운동 열심히 하고 마칠 때 쯤에 엔딩 무렵의 나탈리 포트만처럼 신음소리를 낼 때가 있는데, 몸과 마음의 긴장감이 모두 풀어지는 기분을 새삼 공감하며 느끼는 중. 

****
한량처럼 매일 같이 술먹고 노는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원서를 다시 좀 읽어 보려고 여러가지 E북이 들어있는 앱을 다운받았다. 그런데 조그만 걸로 보려니 읽히지도 않고 문장에 대한 감도 안와서, 공부할 겸 죽죽 쓰고 있다. 회사 후배가 보내준 나무연필을 깎아서 휘모리님이 주신 노트에 열심히 쓰며 읽고 있는 책은 쥘 베른의 [The mysterious Island]. 이왕이면 영미권 작가의 작품을 읽고 싶었는데, 고르다 보니 또 프랑스 작가다. 마르케스 외에 완독한 영어책은 쥐스킨트의 [향수]였었는데. 영미권 작가랑은 어째 인연이 안닿는 것인지.

노트북 붙잡고 있으면 한시간이고 열시간이고 시간이 잘도 가는데, 펜 잡으면 잠이 솔솔 와서 요즘 참 일찍 잔다. 

*****
이미지 관리 하는건지 평소 생활이랑은 확연히 다른 건전해 보이는 근황 페이퍼 탄생. 실제로는 좀 미쳤고, 타락했고, 나태하며, 정신줄 놓은, 그렇지만 음란하지는 못해서 좀 그랬으면... 하는 삶을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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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1-02-09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만년만에 보그를 봤는데, 나탈리 포트만 인터뷰. 나 요즘 나탈리 포트만 좀 많이 애정하고 있음.
간만에 영화관 나들이나 해봐야겠다. ^^ 몰랐는데, 나탈리 포트만이 어릴적부터 발레를 무지 열심히 하고, 이 영화 찍을 즈음에는 하루에 여덟시간씩 했다고 하는데? ㅎㄷㄷ

근데, 난 '블랙스완'이라고 하니, 나심 탈레브밖에 생각 안나서 ㅡㅜ 한 때는 국내 발레공연 다 쫓아다니는 발레매니아였는데 우찌

Forgettable. 2011-02-09 17:12   좋아요 0 | URL
아우 정말 짱이에요. 나탈리 포트만 정말 최고.. 이 영화에서 막 토하고 그러는 장면 나오거든요. 친구가 그러는데 어떤 네티즌들은 발레리나에 대한 편견 생기게 한다고 욕했다던데, 전 정말 그랬을 것 같아요. 발레리나 전체가 다 그러진 않겠지만 나탈리 포트만은 정말 영화 찍을 때 거식증 걸렸을 것 같다능.. 그만큼 혼연일체. 오죽하면 발레선생이랑 연애하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발레매니아셨다면 정말 이 영화 반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 진짜 최고 ㅠㅠ 소름 좍좍 돋아요.

나탈리 포트만 애정하신다니.. 이 동영상 소개를 해드려야겠군요.
아우 난 이거 볼 때마다 넘 웃겨서 ㅋㅋㅋㅋ
http://www.youtube.com/watch?v=9eX45Ce_MW8

여기서 브랜든 프레이저도 넘 웃기고ㅋㅋㅋㅋ

하이드 2011-02-09 17:16   좋아요 0 | URL
동영상 안 봐도 뭔지 알 것 같애. SNL에 나온거 아님? 방송본이랑 uncensored랑 다 있는데, 후자일껄로 짐작 ㅋㅋ

Forgettable. 2011-02-09 17:20   좋아요 0 | URL
아 이미 아시는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잘 모르겠고 전 친구가 보여줘서 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린 college humor 라는 싸이트 애용하거든요. ㅋㅋㅋㅋㅋ 골든 글로브 상 받을 때 웃는거 편집한거 ㅋㅋㅋ

또 보면서 웃고 있다능 ㅋㅋㅋㅋㅋ

하이드 2011-02-09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사실 내가 얘기한건 이거였지 http://www.youtube.com/watch?v=KpMPFGBtE7Q ^^;
골든 글로브 상 받는것 웃기네 ㅎㅎ

Forgettable. 2011-02-11 10:3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ㅋㅋ 짱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완소완소 ㅋㅋㅋ

순오기 2011-02-09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님, 소식 반가워요~~~~ 음란하지는 않지만 잘 살고 있군요.^^
블랙 스완 보고 싶네요~

Forgettable. 2011-02-11 10:33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괜찮아요. 짱이에요. 소름 좍좍 돋았어요 진짜 ㅠㅠㅠㅠ
우울한 날들도 있지만 나름 잘 날려버리고 잘 지내고 있어요. 오죽하면 한국 가기 싫을 정도? ㅋㅋ

Mephistopheles 2011-02-10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탈리 포트만...전 자꾸 학벌 좋은데 아주아주 발연기로 영화나 드라마를 제대로 말아드시는 국내 모 배우와 자꾸 비교되버린다죠.(H대와 S대 비교하는 것도 사실 우습긴 하지만서도)

Forgettable. 2011-02-11 10:36   좋아요 0 | URL
아하......... 그러게요. 그녀가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는 거의 안봐서 잘 모르지만 그래도 요즘은 연기 좀 늘었다는 소문도? 하하하 나탈리 포트만이랑 비교될 순 없겠지만요. 암튼 메피님도 블랙스완 꼭 보세요!

Kitty 2011-02-10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랙스완 아직 한국에서 개봉 안했죠? 저도 나탈리 포트만 늠 좋아요 ㅋㅋ
애쉬튼 커처랑 찍은 로코도 개봉하던데 것도 봐야겠다능!

Forgettable. 2011-02-11 10:39   좋아요 0 | URL
왜케 한국은 개봉 늦게 하는지. 여긴 진작에 개봉하고 이제 다 내린 것 같은데요.
근데 사람들이 줄서서 볼 정도인데 큰 영화관에는 거의 개봉 안하고 작은 영화관에서만 했어요. 이상하더라고요. 애쉬튼 커처와 찍은 로코라니! 아 찾아봐야겠어요 ㅋㅋㅋ

Mephistopheles 2011-02-11 22:47   좋아요 0 | URL
그게...흔히 장사가 되는 영화들만 개봉관들을 독점하기 때문에 그런거라지요.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대중적이지 않다면....국내 거대 멀티 플렉스에 걸릴 일은 아마 없을 꺼에요.

Forgettable. 2011-02-13 10:34   좋아요 0 | URL
외국에서 보는 한국은 너무 과열되어 있고 이 과열되어 보이는 것도 자본에 놀아나고 있는 것 처럼 보여서 씁쓸해요. 영화도 그렇지만 발렌타인 데이 같은 것도 ㅎㅎㅎ 전 발렌타인데이인줄도 모르고 있었네요. 한국이었다면 벌써부터 상점에서 마구 팔아대서 진작에 알았을텐데.

블랙스완은 나름 화제가 된 영화니 많은 곳에서 상영하지 않을까 싶어요.

라로 2011-02-10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시는 군요!!
블랙 스완은 저도 기필코 보려고 기대하고 있어요~~~.
그러고보면 고민만 할게 아니라 행봉으로 옮겨야 하는데 왜 그게 안되는지,,,그저 좌절스러운 나날들이에요, 전.^^;;

Forgettable. 2011-02-11 10:42   좋아요 0 | URL
아 미래에 대한 고민이요?? 하긴 나비님 나이가 되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긴 해요.
그렇다면 지금은 그냥 좀 하고 싶은거 하면서 미래 걱정은 나중으로 미뤄도 될까요?? ㅋㅋㅋ
좋은 직장도 갖고 계시고 남편분도 사랑스럽고 믿음직스럽고, 아이들도 예쁜데 좌절스러운 나날들이라니. 흑 ㅠ
전 그나마 요즘 공부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어요. 역시 고민보단 작은거부터라도 실천을!!! (이래놓고 손 놓은지 또 며칠 됐다죠. 오늘 운동도 째고 ㅋㅋ)

2011-02-10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1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1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1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1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3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따뜻한 사랑 이야기가 넘치는 어느 분의 서재에 비해서, 나의 서재는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다. 사랑이야기를 보는 것이나 쓰는 것이나 기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로맨틱한 영화를 왜 보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은 '애초에 사랑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지만, 기분이 좋아서 비난도 감수할 수 있겠다며 솔직해지는 날은 '내 인생의 로맨스만으로도 벅찬데 굳이 남의 연애 이야기를 볼 이유....'까지만 해도 이미 야유로 말을 끝낼 수가 없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솔로가 되면 외국에 나가게 되고, 외국에 나가면 매번 바로 또 연애를 시작하게 되어서 친구들에게 외국에 연애하러 나가냐는 빈정거림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소소한 연애사건들이야 몇 가지 있었지만 불발에 그치고 말았고, 그래서 생애 최장의 솔로 기간들을 보내고 있다. 참..... 심심하다. 

   
 

 따뜻한 물결이 그녀에게 밀려들었다. 그녀는 그의 양쪽 어깨에 손을 얹고, 검고 빛나는 두 눈을 깊이 들여다 보았다. 자신만만한 그 눈 속에 무엇이 있는지, 그녀는 알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하워즈 엔드] p.251

오랜만에 [하워즈엔드]를 다시 펴들었다. 책을 차마 쫙 펴고 보지도 못할 만큼 아껴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만큼은 책 귀퉁이 이곳저곳을 접어두었다. 나의 무의식을 마술처럼 언어로 풀어놓는 포스터의 능력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는 것은 하루이틀이 아니건만 영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헨리에 대한 마거릿의 사랑이 눈에 들어온다. 마거릿 또래의 자녀들이 있는 헨리, 짧지만 강렬하고 다정한 우정을 나누었던 윌콕스 부인의 남편, 세번째의 만남 후에 바로 청혼을 해버리는 남자.(그 당시의 관행으로 볼 때 이는 별로 놀랄 만한 일은 아닌듯 싶지만) 무엇보다도 마거릿이 평생을 걸쳐 쌓아온 교양과 신념의 반대지점의 선두주자인 사람. 하지만 그마저도,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더 사랑스럽게 보이는 남자.  

헨리를 보는 마거릿의 시선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한 사람을 생각나게 한다. 그 사람과 함께 걷는 낯선 거리는 두렵지 않았고, 사람을 죽일 듯한 강렬한 햇살 아래서도 설레기만 했었고, 캠핑장에서 옆에서 자던 친구 몰래 하던 키스, 손바닥만한 애벌레를 밟았을 때 경악하며 가까이 가려고조차 하지 않았을 때 서운해하던 모습, 나의 시도 때도 없던 우울함을 무심함으로 받아주던 사람, 길바닥에 함께 누워 바라보던 수많은 별들, 페리를 타고 가서 배보다도 큰 고래를 함께 보며 함께 환호했던 기억, 머리를 잘라주었었고, 입술을 왜 자꾸 쉬지 않고 움직이냐며 놀리곤 했었고, 내게 별명을 10개도 넘게 지어주었었고, 화를 낼 땐 웃는 모습이 제일 예쁘니까 웃어달라고 했었다. 그 사람이 없었어도 그럭저럭 괜찮았을 추억은 그 사람 덕분에 반짝반짝 빛이 난다.

1개월, 1년,, 시간이 지날 수록 좋은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어지고, 관계를 지속하기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과거는 자꾸만 미화되고 미래는 자꾸만 불투명해진다. 그 사람은 결혼을 했고, 내게 하던 다정한 말들을 똑같이 그의 아내에게 한다. 나와 함께 했던 추억들은 그렇게 흘려보내고 새로운 사람과 더 예쁜 추억을 만들겠지. 헨리가 윌콕스 부인을 과거에 묻어두고 마거릿과 새로운 사랑에 빠진 것처럼. 나도 앞으로 그럴테고. 또 그래 왔고. 그렇지만 이젠 새로운 거 하기 싫다. 설레거나 두근거리고, 아프고, 잠설치고, 이런거 말고 그냥 눈만 바라봐도 알 수 있는 오래되고 낙낙한 사랑이 그립다. 똑같은 일상에서도 이번엔 또 어떤 새로운 일주일에 펼쳐질까 매번 기대에 부풀어 있던 날들이 얼마 전인데, 오늘 밤만큼은 나 혼자 과거에 파묻혀 뒤쳐져 갈 길을 잃고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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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11-02-03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가까이만 있었어도 내가 소개팅 시켜줬을텐데!!
심심하면 시애틀 놀러와요~

Forgettable. 2011-02-03 13:57   좋아요 0 | URL
아.. 그냥 밴쿠버에 있을걸 하고 이만큼 후회됐던 적이 없네요. ㅋㅋㅋㅋ
밴쿠버랑 시애틀은 진짜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깝다던데요........

다들 명절 보내느라 바빠서 타지생활하는 우리만 있군요. ㅎㅎ

pb 2011-02-06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의 시도 때도 없던 우울함을 무심함으로 받아주던 사람←아...이거 정말.
그나저나 외국에 연애하러 갈 정도냐는 비아냥을 받을 정도로
능력자이셨군요!!! 대박임

Forgettable. 2011-02-08 14:50   좋아요 0 | URL
피비님도 공감????? 아우 전 이제 누가 나랑 연애해주나 싶네요. ㅋㅋㅋ
외국 나와도 소득이 없어서 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웃는게 웃는게 아님 ㅠㅠㅠㅠㅠㅠ)

능력자고 뭐고 다 옛날 일이지요..(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