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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연인들
훌리오 메뎀 감독, 나즈와 님리 외 출연 / 에이스필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I'll stay here as long as i need to.
I am waiting for the coincidence of my life, the biggest one.
해가 연못을 따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평행으로 지는 북극선에서 아나는 평생의 단 한사람을 기다린다. 바람에 흔들리는 문 소리에 가슴 철렁하며 뒤 돌아보기도 하고, 그 사람의 소식을 가지고 나는지도 모를 항공우편기를 쳐다보며 설레기도 하고,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먹기도 하고, 멀리서 들려오는 우체부의 자동차소리에 벌떡 일어나 마구 달려가 나한테 온게 있냐고 묻기도 하면서. 오늘 무슨 일이 있을거라는 직감만을 믿으며 온 힘을 다해 기다린다.
난 감정 낭비를 하고 싶지 않다. 감정에 휘둘리며 이런 저런 일들을 그르치는게 싫다. 그 시간에 일을 더 열심히 한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공부를 한다거나 하며 조금 더 발전적으로 살고 싶다고 요즘 들어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4년이나 함께 살던 남자와, 직장을 버리고 해가 지지 않는 곳으로 훌쩍 떠나 그 곳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오직 기다리기만 하는 아나의 모습을 보며, 비행기 운전 도중 그녀가 있는 지점에서 낙하산을 타고 훌쩍 뛰어내린 오토의 모습을 보며, 나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할거라 짐작하는 동시에 또한 그런 삶은 어떨까 동경해 본다.
'It's good for life to have many circles.'고 오토는 말한다. 원. 순환. 자기의 이름 오토(Otto)나 아나(Ana)를 뒤에서부터 발음해도 똑같다. (감독의 이름도 마찬가지로 메뎀(medem)이다.) 수많은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여러개의 원을 만들고 우리는 그 안을 그저 둥글게 둥글게 걸으며 겹쳐지는 우연에 매번 새롭다는 듯이 감동하고, 슬퍼하고, 미워하고, 사랑한다. 하지만 오토의 원은 오직 하나다. 아나.
나의 원 중심에 한 사람만이 있다면, 그리고 그의 원 중심에도 나 하나만 있다면 오토와 아나가 그랬던 것처럼 삶은 조금 더 살기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감정의 질량이 같아서 똑같이 힘들고, 똑같이 괴롭더라도 중간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사람이 평생 한 사람만 있다면 어떨까. 요즘 들어 결혼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난 이 사람이 아니면 결혼을 할 수가 없겠다. 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이미 놓쳤기 때문에 아마 안하게 되지 않을까. 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친구들은 내가 본래 외로움을 많이 타고 감정적이기 때문에 누군가 안정적으로 곁에 있어줘야 할 것 같아 보인다고 조언한다. 오토에게 아나가, 아나에게 오토가 있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 누군가가 있다면. 나의 삶은 달라질까.
하지만 둘만의 세상에도 둘만 있는게 아니기에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안되더라.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일도 있고, 자살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세상이 둘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우연을 만들어낸다면, 반대로 둘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역시 수많은 우연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어떤 건 행운이라 부르고, 또 어떤 건 불운이라 부르면서 언젠가 내게 올 천재일우의 운명이 '또' 올거라 믿고 기다리면서 사는 도리밖에. 아나가 지지 않고 돌고 도는 해를 바라보며 오토를 기다렸던 것처럼.
그러면 언젠가는 내 두 눈에 그를 담을 날이 있겠지.
* 참고로 남자 주인공은 떼시스의 호러 영화광. 훈훈. 여자 주인공은 같은 감독의 [루시아]와 [오픈 유어 아이즈]의 여주. 노래도 잘해서 밴드도 결성했는데 Najwajean이란다.
(그녀가 노래하는 동영상은 http://www.youtube.com/watch?v=RLOR0uJyfNE&feature=rel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