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정리를 하다가 2달러짜리 동전 2개를 발견했다. 단위가 큰데 동전이다 보니까 아무 주머니에 넣어 놓고는 잊기 마련인데, 그래서 득템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그냥 자려고 했는데 페이퍼 하나 쓰고 자야겠다며 노트북을 배에 올림.
같이 일하는 애들이 모두 베지테리언이거나 고기를 많이 먹지 않는 친구들이어서 나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을 읽으며 동물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하면서도 고기를 포기할 수 없었던 내 자신에게 환멸감을 느끼곤 했었는데, 요즘은 자연스레 많이 먹지 않으니 그 아이러니가 덜해져서 괜시리 뿌듯하다.
일단 가게에서 함께 일하는 애들 분위기도 그렇고, 베지테리언 푸드를 많이 팔아서 먹다보니, 이게 또 맛도 있고 괜찮다. 게다가 직접 요리를 해 먹다 보니 고기를 손으로 직접 만졌을 때의 느낌이 충격적이기도 하고 약간 힘들기도 해서 잘 안사게 된 영향도 있다. 예전에는 나 하나 안먹는다고, 란 생각이었는데 정말 많이 먹지 않다보니까 그동안 내가 고기 소비량에 일조했다는 게 은근히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고기를 완전히 안먹는 것도 아니고, 고기를 먹는 사람이 틀렸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예전에 잘 모르는 사람들과 여행을 갔었는데, 일행이 샌드위치를 싸와서 별 생각없이 하나를 집어들었는데, 그게 햄 샌드위치였다. 그랬더니 그분이 정말이지 놀랍다는 듯이 '육식이시네요!!!!!!!' 라고 하는거다. 난 순간 육식동물이 된 것만 같은 죄책감에 사로잡혔는데, 기분이 더 나빴던 것은 그 분이 그렇다고 해서 무슨 신념 때문에 채식을 하는 분도 아니었다. 자신이 채식을 한다고 해서 고기를 먹는 사람을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보는 건 일종의 폭력으로 다가왔다.
예전에 여행할 때 만났던 베지테리언 독일인 부부는 왜 베지테리언이냐는 나의 질문에 자신들이 먹는 동물이 생전에 행복한 삶을 살지 않았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 땐 아무것도 모를 때여서 별 신기한 사람이 다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이라고 뭘 더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소신있게 대답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그들의 자세가 새삼 감탄스럽다. 이 문제는 사회적으로 옳고 그른 문제라기 보다는 개인의 신념에 가까운 문제가 아닐까. 동물의 사육 방식에 분명 문제가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개인의 식성에까지 옳고 그름의 기준을 부여하는 건 아까 말한 바와 같이 폭력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게 여기니까 가능한 거지, 한국에 돌아갔을 때 맛있는 삼겹살에 소주 한잔의 위로라던가, 돈까스며 훈제치킨, 곱창과 같은 안주의 유혹을 어떻게 뿌리칠 수 있을까. 아마 못할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