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를 보러 옐로나이프에 다녀왔다. 짐을 풀고 다운타운으로 나서자마자 추운 거리를 전통의상을 입고 활보하는 원주민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에드먼튼에서 봐왔던 원주민들은 대부분이 홈리스처럼 보여서 경계의 대상이었는데 옐로나이프에 사는 원주민들은 그 도시의 생명자체 같았다. 도시 곳곳은 원주민들이 그린 아름다운 벽화와 감각적인 건물로 가득 차 있어서 흐리고 추운 날씨가 주는 찬 느낌 보단 활동적이고 따뜻한 느낌의 도시였다.
애초에 여행이란 어디에 가든, 가서 무엇을 하든, 누구와 함께 가든, 이런 것들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 상관없이 그저 떠나면 좋은게 여행이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을 수만 있다면야 돈이 얼마가 들든,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시간에 쫓겨, 돈에 쫓겨 여행을 하고 그것을 자랑 삼아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면 저것은 허세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어떤 걸 보고 어떤 걸 느꼈다란 감상 보다 1주일 동안 이만큼 많은 곳을 다녀왔다, 1달 동안 돈을 이정도밖에 쓰지 않았다, 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난 나도 모르게 선을 긋고 만다. 여행은 내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일부분인데, 그 여행을 통해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면 다른 부분에서도 부딪칠 것이 뻔하다는 선입견에서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낭비하는 여행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을 낭비하는 여행을 추구하는 것은 맞다. 새로운 도시에 가면 일부러라도 길을 잃어보는 것이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인데, 옐로나이프의 올드 타운에서도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길도 없는 언덕에 올라가버리고 말았다. 별로 높아보이지도 않은 언덕인줄 알았건만, 막상 올라보니 눈 덮인 커다란 호수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리 저리 사진을 찍고 장난을 치다가 탁, 하고 누웠을 때 내게 다가온 하늘을 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나 가까운 하늘은 충격이고, 기쁨이고, 슬픔이고,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오만가지 감정의 소용돌이에 놀라 벌떡 일어나버리고 말았다. 손을 뻗으면 잡힐 것만 같았고, 까딱하면 뚝 떨어질 것 같기도 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누우니 그제야 행복해서 웃음이 막 난다. 아, 이거구나. 싶었다. 이게 뭔지도 모르면서.
똑딱이 카메라로 야경사진을 찍는 것도 무리인데, 삼각대도 없이 오로라를 카메라에 담는 것은 당연히 무리였다. 이틀밤 내내 밤은 흐렸고, 눈이 간간히 내리기도 했으며 게다가 풀문이었다. 월요일이 노는 날이라 이 주말로 계획을 짠 것이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날씨며 달이며 우릴 도와주지 않아서 큰 기대를 하진 않았었다. 흐릿하게나마 보기만 하면 다행이라 생각했었는데, 첫 번째날, 영하 25도 가량의 기온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려서 결국 작지만 선명한 빛의 흐름을 볼 수 있었다.
자연의 오케스트라다, 눈물이 난다, 등등 여러가지 말들이 많았지만, 막상 난 조금 담담했다. 아무 빛도 없이 깜깜한 밤 하늘에서 울렁거리던 초록색 빛이, 뭐랄까.. 참 예쁘다 싶긴 했지만 대단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고개를 하늘과 수평이 되게 들어야 볼 수 있는 북두칠성이 더 신기했고(눈을 45도 정도 들어서 보는 평소의 북두칠성과 90도 제껴서 보는 북두칠성은 뭔가 달라 보였다), 가로등보다도 더 밝게 빛나는 보름달이 더 화려했다. 그래도 그나마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두번째 날. 하루 종일 날이 맑아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밤이 되자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쪽 동네에서는 내 눈보다 일기예보가 더 정확하다.
하지만. 눈이 내리기 전 한 10분 가량 아주아주 커다랗고 밝은 오로라가 한 차례 지나갔었고, 운 좋게 그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던 우리는 조용한 동네에서 소리를 지르며 뜀박질을 해댔다. 평생 오로라가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고 살았었고, 전 날에 하도 하늘을 뚫어지게 쳐다보느라고 환각까지 생겨 저것이 오로라인가 하기도 했었는데, 실제로 오로라는 그 무엇에 비교되지 않을 만큼, 대단하고 확연했다.
진짜. 진실.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사람을 눈으로 쫓으며, 그 사람의 그림자를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진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목도하면 그 수많은 닮은 사람들은 다 허구며 허상이 되어버린다.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만이 진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고, 누구와도 닮지 않은 나만의 사람. 오로라가 그랬다. 그 자체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진짜였다. 10분만에 그 흔적조차 사라져버려서 의심할 뻔도 했지만, 의심할 여지도 없이 난 그 오로라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