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간 집에서 읽은 책이다. 텐도 아라타. <영원의 아이들>을 지은 작가. 그의 책을 읽고 가슴 밑바닥에 어두움이 쭈욱 깔리는 느낌이 한동안 가서 이 작가의 글은 가급적 읽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그것은 내가 좀 상태가 안 좋았기 때문이었던 영향도 컸다... 덕분에 이 두꺼운 하드커버의 책은 늘 읽고는 싶으나 심정적으로 거부되는 책으로 분류되어 책장 한 켠에 엎드려져 있어야 했고.

최근에 좀 나아져서 이젠 그 어두움을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펼쳐 들었던 것. 그리고 어제 새벽 두시까지 버티면서 다 읽어내리고 나서는 다시금 후회했다. 읽지 말걸. 마음에 꺼먼 그림자가 자리하게 되었다. 잠자는 내내 자는 둥 마는 둥한 느낌이 지속되었고.

시즈토. 일명 애도하는 사람. 전국 각지의 죽은 사람들을 찾아가 그 곳에서 그들을 '애도한다'. 그가 어떻게 죽었던 살인을 당했던 가다가 교통사고로 차에 치여 죽던 친구에게 맞아 죽던 아내에게 찔려 죽던 상관없이 그는 '그(녀)가 누구에게 사랑을 받았는지, 누구를 사랑했는지, 누구에게 감사를 받는 지'만을 듣고 그에 대해 애도한다. 얼핏 보면 정신나간 순례자 같은 그.

그리고 그의 엄마 준코. 밝고 명랑하고 긍정적이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매우 좋은 아줌마. 암에 걸려 죽기 일보 직전이다. 아들인 시즈토는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못 본 지 오래이고 딸인 미시오는 남친의 아이를 가져 출산을 앞두고 있고 남편은 2차대전에서 형을 잃은 충격으로 대인관계에 서툴다. 깨끗하고 우아하게 죽어가고 싶다는 그녀의 바램과 이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 속에서 나타나는 '삶'이라는 것의 형태들. 암에 죽어가는 엄마와 아이가 몸에서 생성되는 딸은 비슷한 증상에 시달린다. 구토하고 잘 먹지 못하고 몸이 불편하다.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는 것이라.

그리고 유키요. 남편을 죽이고 복역 후 출소해 우연히 만난 시즈토로 인해 자신의 상처를 내리고 순례의 길에 동참하기로 결심하는 여자.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해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고 그래서 남편을 만나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에 행복해했는데, 결국 남편을 죽인다. 계속 오른쪽 어깨 위에 남편의 혼령(혹은 자신의 정체성)을 달고 다니면서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살고 죽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깨달아가게 된다.

죽음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워진 책이라 힘들었다.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다 해도 산 자에게 죽음은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 가급적 멀리 두고 싶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내 인생으로 그 그림자를 끌어들이는 기분이 강렬했던 책이다. 다만, 그것이 어두움으로만 끝나는 것도 희망으로만 끝나는 것도 아닌, 뭔가 계속 지탱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텐도 아라타의 번역작품 중에 <가족사냥>을 보지 않았구나. 일단 보관함에 넣어두기는 하지만, 어쨌든 또 한동안은 이 사람의 글은 보지 않으련다. 다만, 살고 죽는 것에 대해 좀 곱씹어 생각해보련다. 그리고 기억한다는 것, 기억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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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1-12-12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원의 아이들>은 정말...몇 해전에 아동학대 관련 프로를 만들면서 `지금, 이곳`에도 수없이 존재하는 지라프, 모울 그리고 유키를 만났죠. 가엽고 불쌍한 아이들...대한민국도 아동학대에 관해선 일본에 할 말 없는 나라.

비연 2011-12-12 15:36   좋아요 0 | URL
아...정말... 그 책 보고 슬프고 가슴 아리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비연 2011-12-12 15:44   좋아요 0 | URL
그리고 그런 아동학대가 우리나라에서 파렴치하게 계속 자행되고 있다는 데에 정말 분노스러워요...;;;;

마녀고양이 2011-12-12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원의 아이 정말 잘 읽고서,
애도하는 사람과 가족 사냥 줄줄히 사놓았다죠.. 그런데
영원의 아이 깊이에 압도되어 도무지 책 펴들 생각이 안 드는거예요. 그건
미미여사(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도 마찬가지라서.... ㅠㅠㅠㅠㅠ

비연 2011-12-12 21:57   좋아요 0 | URL
저랑 비슷한 심정이신듯 ㅠ 깊이와 어둠에 압도되어 질식할 것 같은 느낌. 미미여사의 <모방범> 읽고 나서 <낙원>을 한동안 들지 못했던 기억이.
 


올해가 다 가는구나..12월, 이라고 쓰다가 다시금 깨닫는다. 하루하루가 별로 차이가 없는 인생을 살다보니 날짜 헤아리는 것도 잊었던 모양이다. 요즘은 피곤한 탓으로, 책을 부여잡고 전깃불 환하게 켜놓은 채 넋놓고 자다가 새벽에 깨기 일쑤다. 그렇게 일어나 불을 끄고 남은 잠을 자고 일어나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얘기를 하다가 또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고 책을 부여잡고 자고... 심심하기 짝이 없는 성실 비연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근데 왜 피곤하지?

암튼, 오늘은 알라딘의 바다에서 새로 나온 책들에 문득 관심을 가져본다. 어찌나 많은 책들이 쏟아지는 지 소화하기도 힘들지만, 난 새로 나온 책들 무심히 보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초등학생을 위한 세계 거장들의 그림책 4권. 파블로 네루다, 주제 사라마구, 훌리오 코르타사르 등의 거장들이 초등학생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 이건 조카를 위해 살 것이지만 기실은 내가 보고 싶기도 해서 산다. 그들이 아이들을 위해 그린 그림들은 어떨까 궁금해서.






나는 뭐든지 쉽게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곤 한다. 특히나 수학을 지루하지 않게 가르친다는, 현직 수학교수인 저자가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이니 깊이 있으면서도 알기 쉽게 접근하는 방법을 알 수 있으리라. 뭐든 어렵게 가르쳐야지만 존경을 받을 것이라는 현학적 허세는 버리자. 내가 아는 것을 가장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에야 겨우 그 내용이 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는 법이니까. 

 

 

 

 

흣. 일해야 겠다..ㅜ 째린다...알라딘 책 볼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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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회사. 우습게도 저녁 7시에 회의란다. 나는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났고 그래서 점심 먹기에는 버거워서 그냥 출근하다가 근처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로 배를 채웠다. 그리고 일...1시쯤인가부터였다. 별로 내키지도 않고 별로 맘에도 안드는 장표를 억지로 만들고 나니...이 시간. 뭐라도 먹어야지 하는데...팀장님이 큰소리로 말씀하신다. 시간도 그런데 빅맥셋트나 먹지?

그래서 난 오늘 맥도널드 햄버거로 점심 저녁 배를 채운다. 일년에 한두번 먹을까 말까한 햄버거를 하루에 다 먹어치우는 맛이라니. 좀 괴로와지려고 한다. (참고로 난 밥 이외에는 잘 안 먹는..ㅜ)

이제 허기진 배를 햄버거와 콜라와 감자칩으로 건조하게 때우고 아마 회의를 시작하게 되겠지. 일방적인 지시로 4시간여를 버텨야하겠지. 신경질이 끓어올라 힘들어지겠지.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여기로 들어온 지 3개월이 넘어가는데.. 처음에는 정말 긍정적인 기분이었으나 이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회사 생활이라는 게 그렇지... 맞아. 잊고 있었던 거야...

자료를 일단 넘기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프레시안에 실린 글을 발견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11202151621&section=04&t1=n


루스 렌들의 <활자잔혹극>. 제목이 묘하게 맘에 안 들어서 외면하고 있던 책인데, 이 글을 읽고 바로 보관함에 푱~ 집어넣었다. 기실 오늘 아침 출근하기 전에 열권 정도의 책을 바리바리 장바구니에 넣어 주문한 바 있는 나는...염치도 없이 또 책을 사고 싶다 생각한다.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인상적인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와 비견할 만한 작품이라고 하니 당연 읽고 싶어졌다. (개인적으로 카포티의 이 책은 소름이 끼쳤었다).




알라딘에 들어와보니 이런 책도 눈에 띈다.


와튼스쿨의 최고 인기강의라는. 뭐 인기강의라는 건 그닥 중요하지 않지만, 내용에 관심이 간다.

다이아몬드 교수에 따르면, 진정한 협상이란 ‘상대의 감정이 어떤지 헤아리고 기분을 맞춰가면서 호의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뒤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표준이나 프레이밍을 활용하는 것, 가치가 다른 대상을 교환하는 것 등은 이것이 제대로 행해졌을 때 효과를 발휘하는 하위 전략들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요즘은 조직에서 리더십이란 뭔가 설득은 어떻게 하는가 협상은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서 다시금 관심이 커지고 있다. 아무래도 회사 생활을 오랜만에(!) 재개해서 그런 듯 싶다. 아무리 노력해도 지나치지 않은 분야가 그런 내용들이라는 생각이 들고. 내가 몇 년 전에 비해서 얼마나 나아졌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사실, 많이 좋아졌다 고 생각했었느데, 상황에 맞닥뜨려지니 또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속상한 와중인지라.

이제 회의다. 맥도널드 빅맥을 입에 쑤셔넣었더니 입이 다 까칠하다. 집에서는 맛난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을텐데 난 여기서 햄버거를 먹어야 하는 게 아쉽고 조금은 슬프다. 암튼 회의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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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1-12-03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의 중 딴 짓...ㅎㅎ;;;;
 


연말이 되면, 뭔가 자꾸 마음에서 날 잡아당기는 말들이 있다.

이렇게 사는 거 맞아? 이게 네가 원하는 거야? 웃는 게 웃는 거 맞아? ....

바람도 스산해지고 온도도 내려가고 그래서 온 몸을 두꺼운 털로 돌돌 말고 다녀서 그런걸까. 암튼 겨울이 되면, 그러니까 겨울의 첫 자락에서 꼭 드는 생각들이다. 끝 자락도 아니고 첫 자락.

오늘도 그렇네. 이 일 저 일 생각하니, 내가 어디서 어떻게 했어야 이 인생 말고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게 되았고, 막연히 주저주저 하는 마음이 생긴다. 한 번 사는 인생, 돌이킬 수도 없고 리바이벌도 안되고 그러니 지금 주어진 것이 최고라 생각하고 잘 살아보자..라고 으샤으샤 하는 마음으로 잘 지내고 있었는데, 이넘의 계절이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았어도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면 내가 정말 신나서 임할 수 있는 인생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하고. 이미지상으로는 늘 자신감 넘쳐 보이지만 마음은 늘 망설임이고 후회이고 희미함이다.


 

 

 

 

 

 

 

그러던 와중에 만두님 책이 두 권 나왔다. 하나는 추리 리뷰이고 하나는 에세이. 모르는 사이, 만두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계셨던 모양이다. 작년 이맘때, 특히 마음에 바람이 몰아쳤던 스산함은 만두님의 급작스러운 부재 떄문이었고.... 책들을 보니 그 즈음의 스산함이 다시 느껴진다.

사는 게 참 뭔지. 괜히 마음이 잦아드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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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1-12-02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습니다.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군요^^

비연 2011-12-02 09:0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저도 오늘 내일 주문하려고 해요..
시간 참 빠르죠. 그래도 그 즈음의 아픔이 아직은 남아 있네요..
 


 

 

 

 

 

 

 

검은숲 출판사에서 드디어 쟝르문학 시리즈를 낸다. 앨러리퀸 시리즈.  

해문에서도 했었고 시공사에서도 했었으나 제대로 끝을 못 맺은....읽은 게 몇 권 보이지만 (앨러리 퀸 좋아라 한다) 다 살 생각으로 보관함에 골인 중이다.

쟝르문학 시리즈라는 제목을 보면 물만두님 생각이 난다. 물만두님...쟝르문학 시리즈 나올 때마다 좋아라 하시고 끝까지 가기를 바라셨고 연대별로 나오기를 늘 이야기하셨었는데. 문득, 날이 스산해서인지, 물만두님 생각이 많이 난다. 곧 1주기인가. 물만두님의 책도 곧 나오길. 쟝르문학들과 함께 소중히 두고 싶다.

(회의 땜에 이쯤에서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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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11-11-29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엘러리 퀸이 다시 나온다고 하면 만두님이 참 좋아하실 텐데...라고 생각했어요. ^^

비연 2011-11-29 12:08   좋아요 0 | URL
그쵸..우리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