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레베카 솔닛의 이 책은 여기 저기서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주말의 추리/스릴러 읽기로 <폭스가의 살인>을 다 읽은 후 꽉꽉 채워져 더이상 입추의 여지가 없는, 그래서 한숨만 푹푹 나는 책장 앞으로 다가가, 이번엔 한 권이 아니라 여러권을 쑥쑥 뽑아들었다. 한 권만 읽지 말고 여러 권을 병행해서 읽자, 날도 더운데. 그런 생뚱맞은 생각 때문이었고, 그 중에 가장 제일 먼저 뽑아든 책이, 이 책이다.

 

좋은 책일 것 같은데, 뭐랄까... 좀 어두운 내용일까봐 두려워서 계속 보지 못했다. 얼핏 본 내용이... 이제야 펼쳐들 마음이 생겼다. 정여울이나 정희진이 호평을 한 추천사가 보인다. 사실 이런 추천사에 마음이 혹하지는 않는다. 다만 쓴 내용이 다른 책에 비해 좀더 마음에 와닿기는 한다. '제가 읽은 가장 구체적인 잠언이에요. 허공에 뜬 구절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글은 노동하는 여성만이 쓸 수 있어요... (정희진)' 이런 평은 아무 책에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더운 여름, 읽겠다고 뽑아든 내가 잘 한 선택을 한 거구나 괜히 흐뭇해했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야기란, 말하는 행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이다. 이야기는 나침반이고 건축이다. 우리는 이야기로 길을 찾고, 성전과 감옥을 지어 올린다. 이야기 없이 지내는 건 북극의 툰드라나 얼음뿐인 바다처럼 사방으로 펼쳐진 세상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는 당신이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혹은 그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가늠해 보는 것이다. (p13)

 

첫 장, 첫 문단이다. '살구' 라는 제목 아래 '이야기'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기대된다. 나도 이 글들을 읽고 읽음의 행위를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리고는, 책장을 정리하지 않고는 절.대.로. 책을 구입하지 않겠다 결심했던 것은, 갖은 핑계로 한 켠에 밀어 버리고 - 날이 덥다, 피곤하다, 아직 꽂을 데가 보이네? 뭐 이런 염치없는 변명들이 마음에서 버섯처럼 쑥쑥 솟아올랐다 - 최소한의 책을 구매했다. 최소한의 ... 정말 읽고 싶은 책들 속에서 지금 당장 봐야겠다는 것들.

 

 

 

 

 

 

 

 

 

 

 

 

 

 

 

 

딱 5권만. 5권만... 더 이상 고를까봐 얼른 인터넷 창을 닫고 결제를 해버린다. 이제 15일 이후 한번 더 사는 거야. 그 때까지는 제발 정리 좀 하자...

 

요 네스뵈의 책은... 제목이 누가 볼까 두려운 책이지만 (바..퀴..벌..레...), 그래도 요 네스뵈의 책은 나오는 즉시 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마력이 있는 작품들이다. 끙.

 

비턴의 <험담꾼의 죽음>은... 2권이 더 나왔으나.. 꾸욱 참고 일단 첫 권만 사는 걸로. 하나 읽어 보고 다음 거 사야 하는 거지. 다 사놓고 별루면 우짤 거야. 라고 나의 불타는 구매욕구를 확 눌러 버렸다.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 존재의 의미>는 말할 필요도 없고 프리모 레비의 <고통에 반대하며>도 마찬가지다. 나오면 봐줘야 하는 책들이 있는 거다. 이들이 쓰는 책들은 내게, 그러하다. 그리고 하나 더 붙여, 중국출장을 가야 하는 입장에서 <이만큼 가까운 중국>을 골랐다. 아마 청소년들도 읽을 만큼 사진도 크고 글도 쉽고 그런 책인 것 같지만, 중국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싶은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몰라서 우선 이것부터. 좀더 정리가 되면 중국사를 제대로 읽고 싶다. 중국의 역사는 여러가지 일화와 사자성어까지 더불어서 매우 흥미진진한 서사니까.

 

한 주만 더 참으면 일주일 휴가다. 버티기 일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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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08-08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은 노동하는 여자만이 쓸 수 있어요...정희진이 저런 말 썼군요. 노동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뭘 뜻하는 걸까요?

저는 꾹꾹 참고 있어요. 집에 안 읽은 책이 너무 많아서... 일주일 지나면 저의 애들은 개학이에요~

비연 2016-08-08 13:32   좋아요 1 | URL
저도 읽고 있는 중이라, 정희진이 무슨 의도로 썼는 지는 읽어봐야 알 듯... 다만, 저런 평을 받는 글은 어떤 글일까 궁금해지더라구요. .... 애들이 개학이라면.. 기억의집님의 해방날(?)이 다가오는 거군요!^^
 

이 책을 원서로 읽겠다 생각한 건, 그냥 충동적인 것이었다. 처음 나온 게 몇 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 - 심지어 사지마비 환자인 남자와 그를 돌보는 여자와의 사랑 이야기라니 - 라는 생각에 진부하다 여기고 쳐다 보지도 않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최근에 영화가 나온 걸 알게 되었고, 우습게도 포스터가 마음에 들어서 - 왜냐고 묻지 말라. 그냥 여주인공의 빨간 드레스가 눈에 들어왔다.. - 다시 쳐다보게 되었다는 거고, 이 정도면 영어로 읽어도 되겠다 싶어서 원서를 집어든 것 뿐이었다. 그러니까 요는, 그닥 기대하지 않고 보기 시작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서두가 길었다. 나는 항상 이게 문제다..ㅜ

 

이 책, 다 읽고 나니 권하고 싶어진다. 대단한 이야기가 담긴 건 아니다. 하지만 그냥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가족의 이야기이고, 꿈을 빼앗긴 사람의 이야기이고, 이제 꿈을 찾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이고, 그렇게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영어가 쉽다. 영어로 읽었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라 (요즘 이게 무슨 자랑거리겠는가..ㅜ) 정말 쉬워서 이 느낌을 제대로 받으려면 영어가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는, 주인공인 Louisa가 마음에 든다. 그 감정의 선이 자연스럽고 어디에서나 당당하게 자신일 수 있는 성격이 좋고,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면이 좋다. 그녀의 말과 행동을 따라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마음이 밝아지는 걸 느꼈다. 남자 주인공인 Will이 정말 그녀를 보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겠다고 감정이입이 될 만큼.

 

결말을 다 알고 이 내용을 쭈욱 따라가는 건,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Louisa가 열심으로 하는 이 일들이 결국 Will의 결심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리라는 걸 알기에 애처롭기도 하고 혹시 하는 말같지도 않은 공상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Will의 선택이었고... 아... 마지막 스위스에서의 회동은... 눈물이 나서 손바닥으로 연신 닦아가며 보아야만 했다.

 

He gave me a small smile, almost an apology.

'Clark,' he said, quietly. 'Can you call my parents in?' (p473)

 

그의 마지막 말. 이 부분에서는 흐느끼기까지 한다, 비연. 안락사라는 것.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결정한다는 것. 살아있는 자신을, 어느 시간대에 끊어낸다는 것.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Will처럼.. 이건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며, 앞으로는 더 나빠질 것이며, 그렇게 살기에는 "Louisa의 사랑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Will. 나는 이 "I'm sorry. It's not enough." 라고 말하던 Will의 마음이 이해되어졌다.

 

'It's not enough for me. This - my world - even with you in it. And believe me, Clark, my whole life has changed for the better since you came. But it's not enough for me. It's not the life I want.' (p425)

 

신파적인 스토리였다면, 어쩌면, 여자가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그래서 남자가 그 사랑을 받아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게 되었으며, 결국 마지막은 모르겠지만, 남자는 결심을 되돌리고 둘이 빛나는 미래를 꿈꾸었어요... 가 되었겠으나, 이 소설은 냉정하다. 현실적으로 남자에게 있어 사랑이 그의 마음을 되돌릴 만한 것이냐, 그것은 삶과는 별개의 것일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인상적인 지도 모르겠다.

 

So this is it. You are scored on my heart, Clark. You were from the first day you walked in, with your ridiculous clothes and your bad jokes and your complete inability to ever hide a single thing you felt. You changed my life so much more than this money will ever change yours.

Don't think of me too often. I don't want to think of you getting all maudlin.

Just live well.

Just live.

Love,

Will. (p480)

 

Will이 Louisa에게 남긴 마지막 메세지이다. 마지막 말들, 마음이 저릿해지는 글귀들이다. Just live. Just live.... Will 같이 용감한 사람이 된다는 건, 멋진 일이기도 하지만 슬픈 일이기도 하다는 걸 문득 느끼게 된다.

 

이 책 이후에도 책이 나온 것 같지만, 난 후속편은 읽지 않겠다. 여기까지. 이 마지막 글귀를 마음에 담아 두고 이 책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떠나고 난 다음의 빈자리를 '설명'하는 건 때때로, 아니 자주 충분치도 않고 감동적이지도 않다. 예전 <러브스토리>라는 영화의 후속편을 보고 나서 느꼈던 그 실망감이 다시 되살아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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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루이즈 페니의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이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고, 나왔다 하면 만사 제치고 장바구니에 던져 넣는다. 보관함에 넣을 틈이 없다. 그리고 보고 싶은 걸 꾹꾹 참고 있다가 일요일 오후, 모든 걸 다 옆으로 밀고 커피 한잔 따뜻하게 끓여와 에어컨 빵빵하니 튼 후 책장을 넘긴다. 아 그 느낌. 충만하면서도 자유롭고, 설레는 그 느낌. 그걸 바랬었다. 책을 한장 한장 소중히 읽으면서 역시.. 라는 생각과 함께 아 이런 시리즈는 영원히 계속되면 안되나 라는 부질없는 생각까지 한다. 지금까지 10편이 나왔다고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6권이 번역되어 나왔으니, 이제 4번의 기회만이 남은 것인가. 벌써부터 아쉽아쉽...

 

이번 얘기에서는 가마슈 경감이 아내인 렌 마리와 함께 결혼기념일을 기념하여 마누아르 벨샤스 라는 곳에 휴양을 하러 간 데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피니 가족이라는 대가족이 옆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 둘째아들이 쓰리파인즈의 피터 모로였다는 놀라운 사실과 맞닥들이고. 거기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어쩔 수 없이 관여하게된 가마슈 경감의 모습이 그려진다.

 

여전히 부부의 사이는, 책으로 읽어도 시샘이 날 만큼 아름답다. 서로 배려하고 서로에 대해 잘 알면서도 간섭하지 않고 그렇게 조용하고 안온한 사랑이 넘치는 부부이다. 다니엘과 아니라는 아들 딸을 두었고 자식들과 가끔씩 충돌이 있기는 하지만, 늘 잘 해결해나가는 가족의 중심축이기도 하고. 이번 얘기에서는 아르망 가마슈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어쩌면 숨기고 싶은 아버지의 이야기, 하지만 가마슈는 '어른'이었고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정말 멋진 사람이다.

 

"난 자유로웠소. 밀턴 말이 맞다오. 마음은 마음이 곧 자기 자리지. 난 포로였던 적이 없고. 그때도, 지금도."

"여기에 오셔서 셈하신 건 뭡니까? 새는 아니고, 돈을 세신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 (중략)...

"내가 매일 저녁, 메일 아침 셈하는 게 뭔지 물으셨지. 수용소에서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이 꺾이고 죽어 가는 동안 매일 세던 거라오. 내가 뭘 셈하는지 아시겠소?"

가마슈는 혹시라도 몸을 움직였다가 그가 겁을 먹고 답을 해 주지 않은 채 달아나 버릴까 봐 가만히 서 있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걸 알았다. 이 남자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난 내가 받은 축복을 셈한다오." (p490-491)

 

아. 이 내용이 마음에 참 많이 와닿았다. 이 책을 쭈욱 읽어보면 이 얘기를 한 피니 노인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 지 알 것이고 그래야 이 말이 얼마나 큰 의미인 지 알 수 있다. 문득 나도 나의 축복을 셈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족하지 못하고 늘 불평과 짜증으로 일관하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해보면 좋겠다 싶었고...

 

***

 

혹시.. 싶어서 공식 홈페이지를 뒤지니, 12권이다. 제일 최근 것이 2016년 8월 발간 예정. 심지어 Gamache 경감 시리즈에 대한 별도 홈페이지도 있다. (http://gamacheseries.com/) 아니 근데 피니스아프리카에 여러분. 왜 순서를 안 지켜주십니까...흑. <살인하는 돌>이 4번째 작품인데, 5번째 6번째 책이 먼저 나왔잖아요... 어쩐지 올리비에가 멀쩡하더라니. 순서를 지켜주세요, pls.

 

 

1. Still Life (2005)

 

 

 

 

 

 

 

 

 

 

 

 

 

 

2. A Fatal Grace/Dead Cold (same book, different title) (2007)

 

 

 

 

 

 

 

 

 

 

 

 

 

 

3. The Cruelest Month (2008)

 

 

 

 

 

 

 

 

 

 

 

 

 

 

4. A Rule Against Murder/The Murder Stone (same book, different title) (2009)

 

 

 

 

 

 

 

 

 

 

 

 

 

 

 

5. The Brutal Telling (2009)

 

 

 

 

 

 

 

 

 

 

 

 

 

 

6. Bury Your Dead (2010)

 

 

 

 

 

 

 

 

 

 

 

 

 

 

 

7. The Hangman (2010)                       

 

 

 

 

 

 

 

 

 

 

 

 

 

 

8. A Trick of the Light (2011)

 

 

 

 

 

 

 

 

 

 

 

 

 

 

9. The Beautiful Mystery(2012)

 

 

 

 

 

 

 

 

 

 

 

 

 

 

10. How the Light Gets In (2013)

 

 

 

 

 

 

 

 

 

 

 

 

 

 

11. The Long Way Home (2014)

 

 

 

 

 

 

 

 

 

 

 

 

 

 

 

12. The Nature of the Beast (2015)

 

 

 

 

 

 

 

 

 

 

 

 

 

 

 

13. A Great Reckoning (2016): 8월 발간 예정

 

***

 

우히히. 아직도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내친 김에 그냥 원서로 한번 볼까.. 라는 마음이 설핏 들었지만.. 지금 읽는 거나 얼른 읽으세요.. 라며 자중.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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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절찬리에 읽고 있는 것은 위의 세 가지. 

세 개 다 재미있다, 지금까지는! 특히 <Me before you>.. 쉽고 꽤 흥미진진이다.

 

 

 

 

 

 

 

 

 

 

 

 

 

 

 

 

 

꺼내놓고 다시 책장에 꽂기는 뭐하게 애매한 장수만 읽어서 일단 뒹굴러 다니는 위의 세 가지.

 

......

 

그 외에 침대 머리맡에 놓인 십여 권의 책들...

아. 이걸 읽는다고 해야 하나. 그냥 넣어야 하나. 계속 결정 못하는.. 결정장애.

 

이번 주는 책장을 정리할 계획이다. 도저히 이젠 집어넣을 데가 없어서 정리도 좀 하고 중고서점에 내놓을 책들도 다량 방출할 계획이다, 과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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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아 나왔고... 정말 번개같은 속도로 난 주문을 했고. 그런데 <마스터 키튼> 이전 18권(완전판으로)은 몇 번을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리마스터 앞에서 아. 다시 읽어야지 하며 자동반사적으로 책장에서 18권 모두를 낑낑거리면 내리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 하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이번이 5번째인가 6번째인가. 이 완전판을 사기 전에 보고 완전 감명 받아서 전 권을 한꺼번에 주문한 후... 시간 날 때마다 보았었다. 봐도봐도 새록새록한 만화라니. 이런 걸 우리는 '고전' 혹은 '명작'이라고 한다. 굳이 꼭 텍스트로 된 책들에만 그런 명칭을 붙이고 싶은 분들은... 그렇게 하시고. 난 만화에도 붙이련다. '명작'은 '명작'인 거니까. 1990년대후반부터 수년 간 쓰여진 이 만화에는 그런 명칭을 붙여도 아깝지 않다 이거다.

 

 

다이치 키튼. 고고학자이자, 예전 SAS 특수교관이었고 지금은 보험조사원이라는 명목으로 약간의 탐정 비스므레한 일을 하던 아저씨. 대학 때 결혼한 똑똑하고 아름다운 부인과의 사이에 부인을 꼭 닮은 딸 유리코가 있다. 이혼했다는 게 에러이긴 하지만... 어수룩해보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어낼 줄 알고, 둔해보이지만 민첩하고, 무엇보다 고고학에 대한 그 순수한 열정. 사실 이 부분이 나를 감동시키는 캐릭터이다.

 

다이치 키튼의 아버지와 딸 유리코. 이 만화는, 여러가지 인간군상을 보여주면서도 이렇게 한 템포씩 쉬어가며 사는 것에 대한 고즈넉함과 유머를 안겨주는 맛이 있다. 아주 자연스럽게. 이렇게 인생을 허비하는 것도 .. 멋진 일 아니냐?.. 이 대목에서 왠지 가슴에 청량함이.. 스윽 지나간다.

 

아는 것도 많은 키튼. 동생이 저주를 해서 형을 죽였다고 믿고 엇나가지만 키튼은 옛날 이야기를 해주며 그 형도 천국에서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이야기 해준다.  눈물이 핑.... 으흑.

 

키튼이 존경하는 유리 스코트 교수.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 인간이 배우고 싶다는 마음만 있으면 어떤 곳 어떤 때라도 배울 수 있다고. 그 손녀의 입을 통해 다시 한번... 얼마나 훌륭한 말인지. 장소 찾고 자리 찾고 환경 찾고 하기 전에... 내게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는 지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 아닐지. 그리고 그게 있다고 확인되면... 다 무슨 상관이냐. 그냥 하면 되는 것이지.

 

마지막. 키튼이 드디어 자신의 꿈이자 유리 교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루마니아의 어느 마을에서 홀로 발굴을 시작하게 되고. 긴긴 여정 끝에 돌아 돌아 왔지만 그것이 낭비가 아니었음을... 지금의 나는 이제까지의 나를 합한 것에 알파를 더한 것임을 얘기할 때... 가슴이 더욱 찡해온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지막 페이지. 아마 예전에도 한번 올렸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하나의 남자몫을 하게 된 이온이 키튼에게 점심 먹으라고 부르니.. 키튼이 "배고픈 걸!!" 하면서 짓는 저 웃음. 만화이지만, 그 웃음에는, 긴 길을 걸어온 후 마침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할 수 있게 된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넉넉함이 배여 나온다고 느끼는 건 나 뿐 인지. 난 힘들 때 가끔 이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본다. 이상하게 힘이 난다. 이 웃음을 보면. 왠지 나한테 할 수 있다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곧 마스터 키튼 리마스터가 도착할 것이고. 나는 정말 소중히 읽을 것이다. 20년이 지난 키튼의 모습. 유리코의 모습. 친구 찰리, 이온의 모습이 궁금하다. 아마 아버지는 돌아가셨을까. 발굴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니엘은 여전히 그 사업을 하고 있을까. 모두의 인생이 궁금하지만 기대를 갖고 꾸욱 참으며 기다리고 있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인생을 느끼는 것 같은 이 감정. 아 이런 만화를 만드는 스토리텔러와 만화가는.... 어떤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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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07-17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이 만화 좋죠. 저는 언니가 이 만화를 좋아해서 이 작품을 알게 되었는데 읽고 이 작가의 작품을 다 찾아 읽게 만들더라구요. 멋진 작품이라 아들애에게 읽어보라 했는데, 옛날 만화책이라 책냄새하고 약간 누래지니 꺼려하더라구요. 신간 으로 다시 나왔군요~

비연 2016-07-17 10:59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완전판으로 아주 질좋게 나와 있습니다^^ 아드님도 아마 신간으로 보면 이 작품의 매력을 알게 될 듯.. 정말 좋은 만화죠?^^

감성적인.. 2017-02-02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스터키튼 걸작, 명작이죠. 제가 접한 최고의 작품중 하나입니다. ^-^

비연 2017-02-08 08:29   좋아요 0 | URL
정말 두고두고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