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덕순이 말했다.
—이토가 온다는 얘기냐?
—그렇다. 하얼빈으로 온다.
—온다고?
항구 앞 루스키섬의 등대 불빛이 어둠을 휘저었다.
불빛은 술집 안까지 들어왔다.
불빛이 스칠 때 우덕순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경, 러시아 재무장관 블라디미르 코콥초프와 회동하기 위해 하얼빈 역에 방문한 이토 히로부미가 저격 당해 쓰러졌다.
가슴 근처 세 군데에 총상을 입은 이토 통감은 즉시 타고 왔던 열차 안으로 옮겨졌으나 곧 사망하고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은 대한제국 신민으로, 이름은 안응칠이며 나이는 31세
러시아 헌병대는 이번 사건에 개입되기를 피하고자 안응칠을 일본 경찰에 즉각 인도 해버리고 일본 측은 안응칠 외에도 우덕순이라는 공범이 있었다는 걸 알아 낸다.
일본 측 조사에 의하면 안응칠과 우덕순은 항일 운동을 계속하며 기회를 노리다 이토의 만주 시찰 소식을 입수한 후 즉흥적으로 범행을 모의 했다고 발표했다.
[둘은 사진관 의자에 앉았다. 사진사가 카메라 뒤에서 러시아 말로 뭐라고 소리치더니 셔터를 눌렀다. 새 옷을 입은 두 사람의 몸 매무새와 이발을 한 이목구비가 사진에 찍혔다. 안중근은 사진 값으로 이 루블을 냈다. 러시아인 사진사가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이며 닷새 후에 와서 사진을 찾아가라고 말했다. 닷새 후에 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안중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응칠은 감옥에서 그가 따르는 천주교회 신부 니콜라 빌렘에게 하얼빈 거사는 안응칠이라는 인간이 지닌 힘으로 겨우 성공했다고 할 만큼 우연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과연 안응칠이 믿었던 천주는 그에게 살인이라는 중죄를 허용한 것일까. 아니면 몸소 교회의 울타리를 빠져나가 범행을 저지른 안응칠을 버린 것일까.
[너는 가기로 작정을 하고 나를 찾아왔구나. 나는 나의 사람 됨을 알고 있다. 너의 영혼을 나는 가엾게 여긴다. 안중근이 일어서서 물러가려 할 때 빌렘은 돌아 앉아서, 겟세마네의 예수를 향해 기도 드리고 있었다.
빌렘은 겟세마네의 예수 앞에 꿇어앉았다. 빌렘은 조선에 부임한 이래 이 작은 반도 안에서 벌어진 죽음과 죽임을 생각했다. 교회 밖은 하느님의 나라가 아닌지를 빌렘은 하느님께 물었다. 하느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안중근이 이토를 죽였으므로 이토의 사람들은 또 안중근을 죽일 테지만, 안중근이 사형을 당하기 전까지 아직은 며칠이 남아 있을 것이었다. 빌렘은 안중근의 생명이 살아 있는 그 며칠을 생각했다.]
신부 빌렘은 조선의 운명을 위해 스스로 죄를 등에 진 인간을 품고자 기도를 했을까?
1910년 2월 14일 서른 두 살 안응칠, 안중근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쇠가 이 세상에 길을 내고 있습니다. 길이 열리면 이 세계는 그길 위로 계속해서 움직입니다. 한번 길을 내면, 길이 또 길을 만들어내서 누구도 길을 거역하지 못합니다. 힘이 길을 만들고 길은 힘을 만드는 것입니다.'
-1910년 2월 24일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