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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을 하는 여러 명 중에 더 정이 가는 사람이 있듯이 도서관 이용자 중에도 유난히 정이 가는 사람이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강사, 수강생과는 대체적으로 잘 지내지만 개인 공부하러 오는 취업 준비생과 친해지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만나면 고개 숙이며 인사하는 직원과 이용자의 보편적인 관계에 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와 K는 다르다. 대학을 졸업한지 1-2년이 지났지만 고등학생 또는 대학 신입생 같은 풋풋함으로 나를 만나면 큰 소리로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이 신선하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B와 경찰시험을 준비하는 K는 초, 중,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단짝친구로 대학때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났다. 밥도 같이 먹고, 화장실도 같이가며 운동도 함께 하는 둘은 마치 고등학교때 짝꿍처럼 늘 깔깔거리며 소리내어 웃는다. 조용한 도서관이 시끌 시끌하다. 가끔, 오후 네시면 직원들과 간식 타임을 하는데 둘을 데려와서 함께 먹는다. 햇살이 따가운 오후 2시쯤 졸릴때면 슬쩍 불러내어 인근 카페에서 라떼를 마시며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B와 K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조언을 해주고, 나는 조급해 하지 말고 공부를 즐기라고 당부 한다. "관장님 봄이 되니 초록이 보고 싶어요. 도서관에 식물 놓아 주세요" 하는 말에 당장 2층 로비에 나무를 들여 놓았다. 사시사철 푸른 조화 한 그루를 놓으니 싱그럽다. 시험에 합격하면 떡 돌리라고 하니 '당연하죠' 하는 말에 미소 짓는다. 때로는 딸처럼, 동생처럼 대하며 힘을 실어준다. 올해는 꼭 합격해서 맛있는 떡 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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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안타까운 이용자도 있다.
지적 장애가 있고 심하게 말을 더듬는 스물 셋의 L은 도서관 디지털자료실에 컴퓨터 하러 온다. 잘 씻지 않아 몸 냄새가 심하고, 다른 이용자의 ID를 이용해 하루종일 컴퓨터를 한다. 다행히 요즘은 장애인 복지회관에 나가 오후 5시 이후에 온다. 자료실에 근무하는 직원이 '머리 감고 샤워하고 와라, 다른 사람 ID쓰지 말라' 해도 집에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거나 비누가 없다고, ID는 모르는 일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안쓰러운 마음에 직원이 비누도 주고, 가끔은 머리를 감겨 주기도 했지만 늘 제자리걸음이다.
해드셋을 사용하고나면 냄새가 심해 이 친구를 위한 전용 해드셋도 준비해 두었다. 얼마 전, 심하게 냄새를 풍기며 온 L에게 직원은 씻고 오라고, 안 그러면 컴퓨터 못한다고 강한 어조로 이야기 했다. L은 그 길로 교육청으로 쫒아가 도서관 직원이 불친절하게 대했다며 신고하러 왔다고 했단다. 내가 L을 불러다 놓고 어르고 달랬지만 소용이 없다. 결국 교육청 계장님에게 전화해서 L이 오면 혼내주라고 했다. 그후로 L은 교육청에 가지 않는다.
오늘, L은 장애인협회에 가서 도서관 직원이 불친절하다고 해고 시킬 방법은 없냐고 물었단다. 직원이 비누와 샴푸를 제공하고, 개인 이어폰까지 주며 친절하게 대해준것은 잊고, 냄새 난다고 씻고 오라고 말한것만 서운해하는 L의 태도가 안타깝다. 교육청과 장애인협회에 가라고 부축인 사람도 아쉽다. 아이 몸에서 냄새가 나고 씻지 않는걸 방치하는 부모도 참.....
민원인 상대하기 힘들어하는 직원도 안쓰럽다. L이 오면 내가 상대한다고 했지만, 지금까지의 전적으로 볼때 내 말도 무시할듯. L은 저 하고 싶은대로 한다. 옆에 다른 이용자기 있어도 자기 말을 들어줄때까지 책상을 손으로 '통통통통' 계속 치며, '저....저....저....저' 하는 L이 오늘은 참 밉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 컴퓨터 한대 놓아주고 싶네. (그럴 여유가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L을 어찌해야 좋을까? 직원들은 남과 다름이 안쓰러워 웬만하면 원하는 걸 들어주려고 노력하지만, 열번 친절하다 한번 불친절하면 서운함을 강하게 표출하는 그의 사고가 참 실망스럽다. 도서관에서 무작정 다 받아주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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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내일 진행할 도서관 운영위원회 일이 마무리 되었다. 위원들 앞에서 소개할 주요업무계획 PPT를 만들고, 인사말을 작성했다. 대학원에서 매주 PPT 만들던 노하우는 아직 녹슬지 않았다. 결재만 하기 보다는 일을 할때 나는 엔돌핀이 생긴다. 리더보다는 참모 스타일인가?
가끔 도서관에서 여유가 있을때 1시간 정도는 책을 읽는다. <하루 10분 독서의 힘>은 내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이다. 언제 이런 책이 있었지? 저자 임원화는 간호사 출신으로 현재 책꿈 디자이너로 활동한다. 10분 몰입독서를 강조하는데 10분 독서가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책꿈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신선하다. 강의 들어보고 싶네. 마치 자기개발 강사인듯(?)도 하다.
나도 새롭게 시작할 때.
책 읽기 가장 좋은 곳은 침상, 말 안장, 화장실이다.
책을 읽고자 하는 뜻이 진실하다면 장소는 문제될 게 없다.
- 구양수 (중국 송나라의 정치가, 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