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시사저널 사태'를 모티브로 재구성된 동화입니다. 여기에 묘사된 상징과 인물, 알레고리 등을 맞춰보면서 살펴보면 더욱 재밌습니다.
[창작동화]함부로 짖는 개
<경고>
이 동화에서 묘사된 사건들, 인물들, 그리고 단체들은 허구입니다. 어떤 실재 인물과의 유사성은, 현존인물이든 망자이든 전적으로 우연적인 것입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심상이는 땅 매는 것이 싫었다. 땅을 매는 것만 가지고는 돈을 벌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 번도 아버지의 일을 도우러 밭에 나가지 않았다. 시험과 공부를 핑계로 집에 틀어박히기 일쑤였다. 땅을 팔고 서울로 올라가서 장사를 하면 지금보다 몇 배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며 아버지를 설득할 때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른 건 다 팔아도 좋다. 하지만 ‘땅’은 우리의 근본이니 그것만은 팔 수 없다.”
심상이는 어쩔 수 없었다. 심상이가 이런 마음을 먹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회장’ 때문이었다. 동네에서 제일 잘 나가는 부동산업자인 이회장이 ‘이사장’이 아닌 이유는 시골길에 어울리지 않은 최고급 외제차와 검은 안경과 검은 양복의 사나이들이 그를 호위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회장도 심상이 아버지 앞에서는 몹시 비굴하게 구는 것을 심상이는 많이 봤다.
“아이고 선생님! 그러지 말고 제게 넘기시지요. 이제 나이도 드시고 노후준비도 하셔야 하는데, 그 점은 제가 책임을 지겄습니다.”
그럴 때마다 심상이의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이회장은 하다못해 심상이에게까지 와서 하소연을 한다.
“심상아, 똑똑하고 착한 심상아. 네 아버지 설득 좀 해 보렴. 별로 값어치도 없는 땅에 집착하시는 게 너무 안타깝지 않으냐. 농사를 짓겠다면 윗마을에 이보다 다섯 배나 큰 땅을 드릴 수도 있어. 나는 네 아버지가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구나.”
그렇게 별볼 일 없는 땅이라면서 이회장은 왜 이 땅에 집착하는 것일까? 심상이는 이 점이 궁금했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아버지의 땅은 별 볼일 없는 ‘밭떼기’일 뿐이었다.
심상이가 못마땅한 것은 ‘밭떼기’뿐이 아니었다. 심상이의 말에 의하면 ‘함부로 짖어대는 못된 개새끼’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심상이는 직필이에게 은근히 경쟁심을 품고 있었다. 아닌 밤중에 짖어대는 데도 아버지는 야단 한번 치는 법이 없었다.
한번은 하룻 밤에 열 번이나 짖어대는 바람에 심상이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아버지는 혹시 직필이가 아파서 그러는지 밤새 직필이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직필이는 ‘저 개새끼를 언젠가 쏴 죽여버려야지’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다. 아버지는 큰 병을 얻어 밭일은커녕 당신 스스로 어제오늘 하는 몸이 되었다.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직감한 아버지는 심상이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심상아,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이 터전을 너는 반드시 팔고 말 테지만, 다시 한번 부탁하마. 땅은 팔지 말거라. 그리고 직필이는 정직한 개다. 혹시라도 직필이를 해코지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만약 땅을 팔려거든 직필이를 내쫓지 말고, 직필이가 있을 때 팔도록 해라.”
심상이는 아버지의 죽음이 슬펐지만, 아버지가 남긴 유언은 못마땅했다. 도대체 그따위 개새끼, 이제는 죽을 나이가 다 된 늙은 개와 별볼 일 없는 ‘밭떼기’가 무슨 상관 있다고 아버지는 끝까지 그놈의 늙은 개를 두둔하는 걸까. 심상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직필이는 부지런히 짖는 개다. 벌써 사람 나이로 따지면 90세가 넘었는데 요즘도 밤에 짖는 소리가 우렁차다. 특히 최근에는 짖는 회수가 부쩍 잦아졌다. 심상이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직필이를 어쩌지 못했지만, 저놈에 ‘함부로 짖는 버릇’ 때문에 미칠 노릇이었다. 특히 요 며칠 밤새도록 짖어대는 바람에 이웃 사람들에게도 거센 항의를 받았다.
“아니 요즘 세상에 진돛개가 다 뭐야! 이놈의 개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자겠잖아요. 제가 잘 안 짖는 귀여운 말티즈 한 마리 드릴 테니, 그 놈의 개 어디 처분해줄 수는 없겠소?”
이웃의 잦은 항의에 시달리자 심상이는 머리 끝까지 부아가 치밀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이회장의 딴지였다.
“땅을 파시겠다고? 역시 아버지와 달리 영리한 친구로구만. 근데 저 놈의 ‘함부로 짖는 개’가 있으면 좀 곤란할 것 같어. 내가 그 땅의 주인이 되어도 그 놈은 끝까지 나를 괴롭힐 것 같단 말이야. 저 개를 처분하면 땅값은 내가 웃돈을 더 쳐줌세.”
아닌 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은 이회장에게 땅을 죄다 팔아 지금은 나름대로 여유롭게 살고 있는 터였다. 농사를 짓지도 않으니 땅에 더 이상 미련이 없었던 그는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심상이는 결국 ‘함부로 짖는 개’를 쫓아버리기로 결심했다. 이웃에게 공기총을 빌려다가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며칠이 지난 밤에 여느 때처럼 직필이가 힘차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심상이는 직필이를 겨누었다.
“탕!!”
직필이의 짖음이 멎었다. 적막이 고요했다.
“탕! 탕!”
어디선가 ‘깨깽’하는 비명소리가 들린다. 괴로운 비명 소리다. 그 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직필이가 드디어 사라진 것이다. 심상이는 뛸 듯이 기뻤다. 이제는 그놈의 개도, 그놈의 땅도 다 처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날 바로 계약서를 들고 이회장을 찾았지만, 이회장의 반응은 전과는 딴판이었다.
“지금 개발단지 투자 건으로 자금이 부족해서 자네 땅을 살 수가 없구먼. 한두 달 정도 있다가 살 테니, 조금만 기다리게.”
심상이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돈을 가진 사람이 주인이지 뭐 하고 생각하면 집으로 되돌아왔다.
직필이가 없는 동네는 매우 고요했다. 사람들은 편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었고, ‘함부로 짖는 개’를 더 이상 안 봐도 된다는 기쁨은 오직 심상이의 것만은 아니었다.
직필이는 왼쪽 다리를 맞아 절뚝발이 되었다. 걸을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이 마을은 이제 죽어도 보기 싫다. 처절한 배신감을 느끼며 직필이는 걷고 또 걸었다. 다행히 이웃 마을에서 아는 친구를 만났다.
“거기 분위기가 몹시 흉흉하다며. 자네 소식은 들었네. 그런데 ‘그놈’의 아비가 죽었을 때, 자네는 왜 떠나지 않았나?”
직필이가 대답했다.
“개는 자신을 아껴주는 주인에게 고기를 바치는 법일세. 녀석의 아버지는 녀석과는 달리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분이었어. 그분은 언제나 내 귀에 대고 이런 말씀을 하셨지. ‘심상이는 네가 꼭 지켜줘야 한단다. 나는 너보다 오래는 못 살 것 같거든. 네가 꼭 지켜줘야 한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어.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녀석의 발길질이 더 심해졌지만, 나는 떠나지 않았어. 그래서 지금 꼴이 이렇게 되었지만. 이제는 지켜주려고 해도 지켜줄 수가 없게 된 셈이지.”
“그래, 나이가 들었으면 이제는 짖지 않아도 되었지 않나? 그렇게 악착같이 짖어댄 이유가 무엇인가. 정말 ‘함부로 짖은’ 건가?”
동료 개가 물었다.
“나는 단연코 한번도 함부로 짖어본 적이 없네. 내가 하룻밤에 열 번을 짖었다면 그것은 반드시 열 번 짖어야 할 상황이라 그런 거네. 나는 보았네, 그 사람들이 ‘번쩍이는 딱딱한 것’을 땅에서 파가는 것을.”
한 달이 지났을까. 이회장은 땅을 사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심상이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심상이는 하는 수 없이 반값을 불렀다. 하지만 그것도 허사였다. 땅값에 대해서 이회장과 심상이의 공방이 한 달간 계속되었다. 심상이는 결국 아버지가 물려주신 ‘밭떼기’를 10분의 1이라는 ‘개값’에 팔고 말았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심상이는 이제야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이 생각났다. 땅을 팔더라도 직필이가 있는 상태에서 팔라고 하신 말씀. 정확한 이유는 몰랐지만, 아버지만은 무언가를 알고 계셨을 거라 생각했다. 심상이는 그 이유가 참으로 궁금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그의 생각보다 일찍 알게 되었다.
한때는 심상이의 땅이었던 심회장의 땅과 그 부지 일대가 ‘매장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즉 유적지가 되었다는 말이다. 유적지가 되면 국가에서 관리를 하기 때문에 개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곳은 백제의 중요한 유적지로 여러 개의 금불상과 백제 시대의 토기가 차례로 발견되었다. 가끔 왕관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곳은 역사적으로 매우 소중한 유적지가 되었기 때문에 문화재청장이 직접 그곳을 찾았다. 청장은 그 땅의 주인인 이회장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함과 동시에 상패를 수여하였다. 이회장은 매우 겸손한 어조로 말했다.
“일개 땅이 무엇인가요. 나라가 하는 일이 더 중요하지요. 덕분에 땅값은 좀 떨어졌지만, 그보다 나라를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하니 땅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문화재청장은 다시금 크게 인사를 하였다.
한참 시간이 더 지나고서야 심상이는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있었다. 심상이의 아버지는 농부인데, ‘그 땅의 의미’를 몰랐을 리가 없다. 게다가 심상이의 마음도 꿰뚫고 있었다. 이회장이 끈질기게 땅을 사겠다고 하는속셈 쯤은 눈 감고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땅값을 비싸게 받는 것이 무슨 소용이랴. 심상이의 아버지는 심상이가 ‘그 땅’을 소중하게 보존해주기를 그토록 바랐지만, 죽는 순간 심상이가 그 땅을 팔아버리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때문에 ‘직필이’를 내쫓기 전에 땅을 팔라고 조언했던 것이다.
도굴업자인 이회장은 그 동네의 땅이란 땅은 모두 접수하여 그곳의 유물들을 대거 ‘접수’했다. 땅을 사기 전에도 그곳 땅의 유물들을 틈틈이 파내었지만 단 한 곳, 심상이네 땅은 ‘직필이’라는 몹쓸 개 때문에 건들지도 못해 못내 답답해하고 있었다. 결국 심상이가 이회장의 ‘앓던 이, 아니 앓던 개’를 쫓아보내 주었고,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마음껏 도굴한 끝에 그 땅마저도 헐값으로 사들일 수 있었다.
이회장은 그 일대의 땅을 ‘공헌’한 공로로 승승장구하게 되어 삼선(三選)의 국회의원이 되었고, 심상이는 서울 어딘가에서 서럽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