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글을 업으로 삼고 있지는 않지만,
내가 글을 자꾸 써나가는 이유는
"규정할 수 없는 다이나믹한 그림들을 보수적인 지면에 문어체로 담는 것"이라는
묘한 부조화가 주는 쾌감이라고나 할까?
일단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정리해본다.

1. 사진과 수다로 떠들어본 알라딘 정모후기- 호모 알라디누스(알라딘)
2. 영와 외적인 것으로 이루어진 영화들 - 디워, 화려한..(비평고원과 +알파)
3. [讀者적인 기자스케치 "신변잡담"] 3. 김은남 편 - "은남이가 울었다"(시사서포터스, 시사모 등)
4. 경기문화재단 문화교육부문 모니터링 비평기(경기문화재단 홈피)


일단 가장 쓰고 싶은 글은 1인데 수위가 고민된다.
4는 유일하게 돈이 되는 글이니만큼 제일 재미없다.
일주일째 뻐기다가 무선데 끌려가듯 쓰게 될 글.. 혹시 오늘도 땡땡이칠지 모른다

이제 시~작!!
당신이 가장 읽고 싶은 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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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05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잘 들어가셨습니까? 지금 일어나신거에요? 저도. -_-a

책속에 책 2007-08-05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들어가셨죠?
1번글 기대하고 있을게요^^

비연 2007-08-05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번요! ㅋㅋㅋ
 

믿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서평을 쓰기 시작한 것은 군대생활하면서이다.

다행히 좋은 환경에 배속되었고, 좋은 커뮤니티를 만났던 게 나에게 '독서'에 대해서 새롭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었다.

서평과 리뷰를 다르게 보는 것이 다소 억측일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최소한 나에게는 그 두 개념이 조금씩 다르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서평은 '책에 대한 감상을 객관화하여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공론화하는 글'이라고 한다면 '리뷰(review)'는 책을 포함해서 영화, 예술, 사회문제 등 생활의 광범위한 '만남'을 사회, 문화적으로 대상화하여 공론화한 형식'이라고 정리했다. 때문에 이전의 여러 활동을 '리뷰 1기'로 지정한 것이다.

 

리뷰 1기의 특징은 주로 '자기학습'의 관점을 보인다. 그러니까 책에 나타난 내용을 내적으로 의미화하는 데에 공을 들이는 반면, 그것을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데에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다만 '내적 의미화'라는 것 자체가 공개된 활동이므로 '공유'라는 차원에서는 어느 정도 '사회화'가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을 '사회화'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좀 나쁘게 말하자면, 그때의 리뷰는 대체로 '원작에 대한 다이제스트'의 기능을 한다. 때문에 본문에 충실하고, 일상과의 접목을 많이 시도했다. 아래와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과학혁명의 구조] 어떻게 세상이 바뀌는가

[엔트로피] 엔트로피 카지노, 당신의 지갑을 확인하라

[이기적 유전자] 생존을 위한 혈투

[인간 등정의 발자취] 현대를 의미 있게 하는 것들에 대한 겸손한 기억

[플루타르크 영웅전 전집 1] 동서열전후기-1

[부분과 전체] 학자의 인품

                                      <리뷰 1기의 졸작들>

 

그 이후에도 수적으로는 다양한 리뷰를 만들었으나, 과도기적인 리뷰이거나 '사회적 확장'을 위한 준비단계라고 볼 수 있다.

리뷰 1기라는 말 속에는 몇 가지 전제가 담겨 있다. 인간의 불완전성이라든지, '변화' 같은 개념이 그것이다. 나의 리뷰는 완성을 갈구하지만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다만 '근사하게' 펼쳐질 뿐이다. 그리고 리뷰 1기와 리뷰 2기를 구분하는 유일한 척도는 '변화'뿐이다. 단지 변화에 대한 의지가 '리뷰 2기'를 선언하게끔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명백한 변화'를 염두에 두는 것이다. 리뷰 2기에 대한 시도는 있었다. 얼마 전에 무리하게 '사회화'를 추진한 '대학'에 대한 리뷰가 그것이다.

 

[동양사상3-총기난사사건과 관련하여]<대학>모든 學은 大學이라야 한다

 

 

나는 리뷰가 2개의 항으로 이루어진 방정식이라고 생각한다. 좌변은 '내적 성찰'이면 우변은 '공유'이다. 이것의 비율에 따라서 리뷰의 성격이 좌우되는 것이지만, 좌변과 우변은 불변의 위치를 차지한다. 아무리 사회적 확장과 공론을 이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적 성찰에 기인하지 않을 수 없으며, 내적 성찰 역시 사회적 성찰로 확대된다는 측면에서 이 두 변은 불변이다. 이 두 변은 서로 영향을 준다.

 

내가 왜 지금 시점에 리뷰 2기를 선언하느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리뷰 1기와 리뷰 2기의 차이를 확인했다면 오래 전에 2기를 선언해서 쓰기 시작하면 될 일인데, 왜 2기를 주저했을까? 사회적 교감 내지 숙려라고 하면 답변이 될까? 군 전역자이자 사회부적응자이던 재작년 봄부터 신문 하나를 지정해 꼼꼼하게 스크랩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끈기를 믿는다. 불가피한 누락을 몇 건 제외하고는 2년 동안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신문을 스크랩했고, 현재까지 12,500건 가량의 B/D를 구축했다.

 

 

문제의 신문스크랩 블로그 ==> 신문여행

 

물론 신문을 읽는다고 사회에 대해서 눈을 뜬다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지만, 인간의 모든 산물이 반복과 축적에 의한 결과라고 나는 믿는다. 신문을 학습하면서 사회변화의 일정한 패턴을 익혔고, 이제까지 나의 리뷰에 넣지 않았던 사회적 언급들을 펼쳐보이려 한다.

 

그러면 리뷰 3기와 리뷰 4기 같은 것들도 있을까? 나는 일단 '있다'고 대답하고 싶지만, 그것은 '비율의 문제'일 뿐이다. 리뷰 2기 이후의 모양새에 대해서 예상은 해볼 수 있다. 멀리는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의 '리뷰'가 '모델'이 될 수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역을 다방면의 사회문제에 반추해서 나름대로의 결론을 만들어낸다. 가라타니 고진과 같은 철학자도 이와 같다. 도킨스를 먼저 언급한 것은 그의 '유머' 때문이다.

가깝게는 김수영이나, 고원과 알라딘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로쟈'도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얼핏 보면 '도움글'로 읽히기도 하지만, 사실 가슴 속에 있는 큰 물음표를 향하여 돌진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다만 '의도적'으로 많은 흔적을 남기는 이유는 '연대' 때문이다. 이 싸움은 전선을 얼마나 확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2기에서는 무엇이 변하나? 미안하지만 변하는 것은 별로 없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리뷰가 서평을 포함하듯, 2기가 1기를 포함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모든 책에 대해서 리뷰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고, 사회적 확장이 굳이 필요치 않은 책에 대해서 꼭 사회화를 시도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유연함도 아마도 2기의 특징일 것이다. 2기의 관건은 상황판단과 황금률이다.

"악마는 비율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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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theme 2007-05-14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연함도 아마도 2기의 특징일 것이다. 2기의 관건은 상황판단과 황금률이다.

기대하겠습니다.

마늘빵 2007-05-15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요새 뜸하십니다. :)

승주나무 2007-05-15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ntitheme 님//저도 기대가 됩니다 ㅋㅋ
아프 님//회사를 안 다니니까 더 바쁘네요. 그보다 아프 님을 만나기에 앞서 할 일이 많군요. 논문은 잘 마무리되고 있나요^^;
 

이 이야기는 '시사저널 사태'를 모티브로 재구성된 동화입니다. 여기에 묘사된 상징과 인물, 알레고리 등을 맞춰보면서 살펴보면 더욱 재밌습니다.

 

 

[창작동화]함부로 짖는 개

 

<경고>

이 동화에서 묘사된 사건들, 인물들, 그리고 단체들은 허구입니다. 어떤 실재 인물과의 유사성은, 현존인물이든 망자이든 전적으로 우연적인 것입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심상이는 땅 매는 것이 싫었다. 땅을 매는 것만 가지고는 돈을 벌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 번도 아버지의 일을 도우러 밭에 나가지 않았다. 시험과 공부를 핑계로 집에 틀어박히기 일쑤였다. 땅을 팔고 서울로 올라가서 장사를 하면 지금보다 몇 배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며 아버지를 설득할 때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른 건 다 팔아도 좋다. 하지만 ‘땅’은 우리의 근본이니 그것만은 팔 수 없다.”

심상이는 어쩔 수 없었다. 심상이가 이런 마음을 먹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회장’ 때문이었다. 동네에서 제일 잘 나가는 부동산업자인 이회장이 ‘이사장’이 아닌 이유는 시골길에 어울리지 않은 최고급 외제차와 검은 안경과 검은 양복의 사나이들이 그를 호위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회장도 심상이 아버지 앞에서는 몹시 비굴하게 구는 것을 심상이는 많이 봤다.

“아이고 선생님! 그러지 말고 제게 넘기시지요. 이제 나이도 드시고 노후준비도 하셔야 하는데, 그 점은 제가 책임을 지겄습니다.”

그럴 때마다 심상이의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이회장은 하다못해 심상이에게까지 와서 하소연을 한다.

“심상아, 똑똑하고 착한 심상아. 네 아버지 설득 좀 해 보렴. 별로 값어치도 없는 땅에 집착하시는 게 너무 안타깝지 않으냐. 농사를 짓겠다면 윗마을에 이보다 다섯 배나 큰 땅을 드릴 수도 있어. 나는 네 아버지가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구나.”

그렇게 별볼 일 없는 땅이라면서 이회장은 왜 이 땅에 집착하는 것일까? 심상이는 이 점이 궁금했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아버지의 땅은 별 볼일 없는 ‘밭떼기’일 뿐이었다.

심상이가 못마땅한 것은 ‘밭떼기’뿐이 아니었다. 심상이의 말에 의하면 ‘함부로 짖어대는 못된 개새끼’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심상이는 직필이에게 은근히 경쟁심을 품고 있었다. 아닌 밤중에 짖어대는 데도 아버지는 야단 한번 치는 법이 없었다.

한번은 하룻 밤에 열 번이나 짖어대는 바람에 심상이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아버지는 혹시 직필이가 아파서 그러는지 밤새 직필이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직필이는 ‘저 개새끼를 언젠가 쏴 죽여버려야지’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다. 아버지는 큰 병을 얻어 밭일은커녕 당신 스스로 어제오늘 하는 몸이 되었다.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직감한 아버지는 심상이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심상아,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이 터전을 너는 반드시 팔고 말 테지만, 다시 한번 부탁하마. 땅은 팔지 말거라. 그리고 직필이는 정직한 개다. 혹시라도 직필이를 해코지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만약 땅을 팔려거든 직필이를 내쫓지 말고, 직필이가 있을 때 팔도록 해라.”

심상이는 아버지의 죽음이 슬펐지만, 아버지가 남긴 유언은 못마땅했다. 도대체 그따위 개새끼, 이제는 죽을 나이가 다 된 늙은 개와 별볼 일 없는 ‘밭떼기’가 무슨 상관 있다고 아버지는 끝까지 그놈의 늙은 개를 두둔하는 걸까. 심상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직필이는 부지런히 짖는 개다. 벌써 사람 나이로 따지면 90세가 넘었는데 요즘도 밤에 짖는 소리가 우렁차다. 특히 최근에는 짖는 회수가 부쩍 잦아졌다. 심상이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직필이를 어쩌지 못했지만, 저놈에 ‘함부로 짖는 버릇’ 때문에 미칠 노릇이었다. 특히 요 며칠 밤새도록 짖어대는 바람에 이웃 사람들에게도 거센 항의를 받았다.

“아니 요즘 세상에 진돛개가 다 뭐야! 이놈의 개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자겠잖아요. 제가 잘 안 짖는 귀여운 말티즈 한 마리 드릴 테니, 그 놈의 개 어디 처분해줄 수는 없겠소?”

이웃의 잦은 항의에 시달리자 심상이는 머리 끝까지 부아가 치밀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이회장의 딴지였다.

“땅을 파시겠다고? 역시 아버지와 달리 영리한 친구로구만. 근데 저 놈의 ‘함부로 짖는 개’가 있으면 좀 곤란할 것 같어. 내가 그 땅의 주인이 되어도 그 놈은 끝까지 나를 괴롭힐 것 같단 말이야. 저 개를 처분하면 땅값은 내가 웃돈을 더 쳐줌세.”

아닌 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은 이회장에게 땅을 죄다 팔아 지금은 나름대로 여유롭게 살고 있는 터였다. 농사를 짓지도 않으니 땅에 더 이상 미련이 없었던 그는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심상이는 결국 ‘함부로 짖는 개’를 쫓아버리기로 결심했다. 이웃에게 공기총을 빌려다가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며칠이 지난 밤에 여느 때처럼 직필이가 힘차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심상이는 직필이를 겨누었다.

“탕!!”

직필이의 짖음이 멎었다. 적막이 고요했다.

“탕! 탕!”

어디선가 ‘깨깽’하는 비명소리가 들린다. 괴로운 비명 소리다. 그 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직필이가 드디어 사라진 것이다. 심상이는 뛸 듯이 기뻤다. 이제는 그놈의 개도, 그놈의 땅도 다 처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날 바로 계약서를 들고 이회장을 찾았지만, 이회장의 반응은 전과는 딴판이었다.

“지금 개발단지 투자 건으로 자금이 부족해서 자네 땅을 살 수가 없구먼. 한두 달 정도 있다가 살 테니, 조금만 기다리게.”

심상이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돈을 가진 사람이 주인이지 뭐 하고 생각하면 집으로 되돌아왔다.

직필이가 없는 동네는 매우 고요했다. 사람들은 편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었고, ‘함부로 짖는 개’를 더 이상 안 봐도 된다는 기쁨은 오직 심상이의 것만은 아니었다.

 

직필이는 왼쪽 다리를 맞아 절뚝발이 되었다. 걸을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이 마을은 이제 죽어도 보기 싫다. 처절한 배신감을 느끼며 직필이는 걷고 또 걸었다. 다행히 이웃 마을에서 아는 친구를 만났다.

“거기 분위기가 몹시 흉흉하다며. 자네 소식은 들었네. 그런데 ‘그놈’의 아비가 죽었을 때, 자네는 왜 떠나지 않았나?”

직필이가 대답했다.

“개는 자신을 아껴주는 주인에게 고기를 바치는 법일세. 녀석의 아버지는 녀석과는 달리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분이었어. 그분은 언제나 내 귀에 대고 이런 말씀을 하셨지. ‘심상이는 네가 꼭 지켜줘야 한단다. 나는 너보다 오래는 못 살 것 같거든. 네가 꼭 지켜줘야 한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어.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녀석의 발길질이 더 심해졌지만, 나는 떠나지 않았어. 그래서 지금 꼴이 이렇게 되었지만. 이제는 지켜주려고 해도 지켜줄 수가 없게 된 셈이지.”

“그래, 나이가 들었으면 이제는 짖지 않아도 되었지 않나? 그렇게 악착같이 짖어댄 이유가 무엇인가. 정말 ‘함부로 짖은’ 건가?”

동료 개가 물었다.

“나는 단연코 한번도 함부로 짖어본 적이 없네. 내가 하룻밤에 열 번을 짖었다면 그것은 반드시 열 번 짖어야 할 상황이라 그런 거네. 나는 보았네, 그 사람들이 ‘번쩍이는 딱딱한 것’을 땅에서 파가는 것을.”

 

한 달이 지났을까. 이회장은 땅을 사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심상이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심상이는 하는 수 없이 반값을 불렀다. 하지만 그것도 허사였다. 땅값에 대해서 이회장과 심상이의 공방이 한 달간 계속되었다. 심상이는 결국 아버지가 물려주신 ‘밭떼기’를 10분의 1이라는 ‘개값’에 팔고 말았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심상이는 이제야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이 생각났다. 땅을 팔더라도 직필이가 있는 상태에서 팔라고 하신 말씀. 정확한 이유는 몰랐지만, 아버지만은 무언가를 알고 계셨을 거라 생각했다. 심상이는 그 이유가 참으로 궁금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그의 생각보다 일찍 알게 되었다.

한때는 심상이의 땅이었던 심회장의 땅과 그 부지 일대가 ‘매장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즉 유적지가 되었다는 말이다. 유적지가 되면 국가에서 관리를 하기 때문에 개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곳은 백제의 중요한 유적지로 여러 개의 금불상과 백제 시대의 토기가 차례로 발견되었다. 가끔 왕관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곳은 역사적으로 매우 소중한 유적지가 되었기 때문에 문화재청장이 직접 그곳을 찾았다. 청장은 그 땅의 주인인 이회장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함과 동시에 상패를 수여하였다. 이회장은 매우 겸손한 어조로 말했다.

“일개 땅이 무엇인가요. 나라가 하는 일이 더 중요하지요. 덕분에 땅값은 좀 떨어졌지만, 그보다 나라를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하니 땅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문화재청장은 다시금 크게 인사를 하였다.

한참 시간이 더 지나고서야 심상이는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있었다. 심상이의 아버지는 농부인데, ‘그 땅의 의미’를 몰랐을 리가 없다. 게다가 심상이의 마음도 꿰뚫고 있었다. 이회장이 끈질기게 땅을 사겠다고 하는속셈 쯤은 눈 감고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땅값을 비싸게 받는 것이 무슨 소용이랴. 심상이의 아버지는 심상이가 ‘그 땅’을 소중하게 보존해주기를 그토록 바랐지만, 죽는 순간 심상이가 그 땅을 팔아버리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때문에 ‘직필이’를 내쫓기 전에 땅을 팔라고 조언했던 것이다.

도굴업자인 이회장은 그 동네의 땅이란 땅은 모두 접수하여 그곳의 유물들을 대거 ‘접수’했다. 땅을 사기 전에도 그곳 땅의 유물들을 틈틈이 파내었지만 단 한 곳, 심상이네 땅은 ‘직필이’라는 몹쓸 개 때문에 건들지도 못해 못내 답답해하고 있었다. 결국 심상이가 이회장의 ‘앓던 이, 아니 앓던 개’를 쫓아보내 주었고,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마음껏 도굴한 끝에 그 땅마저도 헐값으로 사들일 수 있었다.

이회장은 그 일대의 땅을 ‘공헌’한 공로로 승승장구하게 되어 삼선(三選)의 국회의원이 되었고, 심상이는 서울 어딘가에서 서럽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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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세상과 파업한지도 16일째가 되어갑니다.

지난달 말 충전도 하고 영양보충도 할겸 고향 제주도로 내려가

전복이며 해삼이며 푸짐하게 먹은데다가

FTA라는 엄청난 사건이 이후 온갖 좌절감과 모멸감, 트라우마에 방황하며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내 '살덩어리'는 주택담보대출이자처럼 띠룩띠룩 쌓아만 갔고,

그 때문인지 어떤 일을 해도 속도가 안 나고 일도 잡히지 않는 무력감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하루이틀 싸우고 끝날 것도 아니기 때문에 기초체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준비물은 아령 2개와 줄넘기, mp3기능의 휴대폰, 이어폰입니다.

여기서 잠깐상식. 파워워킹은 '속보'와 '아령 휘두르기'를 동시에 하는 고칼로리의 운동으로
일반적인 '걷기'에 비해 2배 정도의 칼로리가 소비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걷기'는 '뛰기'에 비해서 운동량이 적기 때문에 같은 시간대라면
'뛰기'에 가까운 액션을 보여야 합니다. 속도를 붙여서 '속보'를 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입니다.
'뛰기'는 무릎에 무리가 가며, 나이가 들수록 위험하므로
나는 '속보'를 선호합니다.

그리고 '아침'에 운동하는 게 좋으냐 '저녁'에 운동하는 게 좋느냐
찬반 양론이 다양한데요,
얼마 전에 병원 갔다가 전문의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해 주더군요.
"사실 아침이냐 저녁이냐 자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생활 패턴과 관계가 있는데,
아무래도 저녁 시간을 정해놓으면 '변수'가 많겠죠.
대신 '아침'은 일찍 일어나기만 한다면 방해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잘 지켜지겠죠."
음.. 그럴듯합니다.

'바보 뚱땡이'가 되어 버린 나는 운동하는 동안 벌을 받았습니다.
대학 경문이 40분 정도인데,
서문(10분)도 끝나기 전에 헐떡헐떡 지쳐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러다가 파업이고 뭐고 제 풀에 지칠까봐 걱정이 됩니다.
그래도 약속한 1시간을 채우고 샤워를 하니까 상쾌합니다.
몸에서 '띠룩띠룩'거리는 소리가 좀 줄어든 느낌입니다.

'파워워킹'이라는 운동은 몇 가지 점에서 매우 매력적입니다.
첫째로 '고독'을 살짝 가르쳐줍니다.
휑한 운동장에 홀로 거닐다 보면 '혼자'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누군가 이 운동을 '의미없이 걷기만 한느 운동'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나는 실존이라는 내 방으로 간만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즐거웠습니다.
둘째로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게 해줍니다. 거의 명상의 효과입니다.
예전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미룬 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조금만 할애해 운동을 하다 보면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정리가 되고, 운동한 시간만큼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몸이 나에게 하는 하소연'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언젠가는 열흘 전에 먹었던 삼겹살이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소화가 되지 않고 몸 안에 눌러앉은 찌꺼기는
운동을 통해서만 '처리'가 됩니다.
나는 '호리병 사탕빼먹기 이론'으로 이것을 설명합니다.
호리병에 든 사탕을 먹으려고 뒤집으면
사탕이 몇 개 안 나옵니다.
하지만 호리병을 흔들면 병 안에 담긴 사탕이 하나둘 떨어집니다.
사람 몸을 호리병이라고 한다면,
몸에 담긴 사탕들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몸을 흔들어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영원히 사탕을 떨어뜨릴 수 없습니다.

원래는 운동하면서 들었던 경전구절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려고 했는데
운동에 대해서 너무 많이 이야기를 한 것 같네요.
암튼 운동해서 만수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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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4-13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쭈욱 열시미 하시와요!!!

antitheme 2007-04-13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하세요.

승주나무 2007-04-1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 님//오랜만에 뵙네요. 열쉬미 하겠습니다.
antitheme 님두요. 처제 내외가 수원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잘하면 님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누구나 그런 생각을 갖게 되려니와,
나와 어머니는 각별한 관계이다.
이렇게 써놓으니 참 바보 같은 말이다.
붕어빵이라는 말은 주로 '생김새'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하지만 사실 '붕어빵'은 '내면'에 더욱 강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다만 차이는 '외면의 붕어빵'에 비해 '내면의 붕어빵'은 한참 뒤에 깨닫는다는 거.
사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내면의 붕어빵인 어머니의 내면이 나에게 그대로 들어온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머니를 존경해 왔지만, 버리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때는 어리고 철이 없어서 정말 버리고 싶은 것들이
지금에 와서 상당부분 재평가되었다.
만약 그때 억지로라도 떼버렸다면,
나를 존재하게 만들었던 정체성의 상당부분도 소실되었을 것이다.
가끔 활동하는 커뮤니티의 글들을 살펴보던 중 '어머니'에 대한 유독 진한 흔적을 발견한 김에,
따로 '어머니 특집'을 모았다.





제목 : 어머니가 우셨다
(2005년 5월 26일, 전역하고 제주도 내려가서 일주일만에 무작정 상경하고 나서의 얼마간의 소회를 담았다.


오늘 아침 수업받는데 어머니께 걸려온 전화.

'밥통하고 이것저것 행(해서) 보내크매(보내니까) 겅(그렇게) 알라.'

그리고 밥은 잘 먹고 다니냐는 말끝에 어머니는 수화기를 막으시고는 우시는 듯했다.

다시 수화기를 드신 어머니

격앙되고 울음 섞인 목소리는 아들에게는 충격이다. 물론 난 아주 태연히 달래드렸지만

'군에 보낼 때도 울지 않았는데, 서울 보내고 나니 걱정되고 밥도 손에 안잡히고, 아프다.'

아프다는 말에 아들은 눈앞이 캄캄했다.

서울이 그렇게 무서운 곳인가. 군대보다 무서운 곳이 서울이냔 말인가.

어머니의 마지막 한마디가 없었다면 난 아마 당장 제주도로 도망치고 말았겠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니까 잘 참아내라.'

우리들은 강하게 자라고, 살아왔지만, 서로가 서로의 커다란 약점이다.

고등학교 때 썼던 어머니란 시를 보고 어머니는 몇일을 우셨다고 했고(우리 어머니는 그리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니다) 이모는 너무 좋아 한 장 써달라고 하시고는 가져가셨다.

쓰고 나서 너무 상투적이고 유치한 모습에 나조차도 놀라고 부끄러웠던 시였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아마 우리 같은 학문이나 문학, 글줄이나 읽는다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놓치는 부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언어와 생각으로 표현을 해서, 그들의 가슴을 직접적으로 두드렸지만,지금은 너무 작품성과 깊이의 함정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물론 '피일시 차일시', 그때그때 다르겠지만, 중간세계에 있다고 자처하는 나는 좀더 명확히 문학의 모습을 살펴보게 된다.

서울이 어머니에게는 비정하게 비쳐졌을 수도 있다.

유아기, 그러니까 내가 생사를 넘나들던 때 어머니는 나를 업고 일주일에 서너번

제주도와 서울대병원을 왔다갔다 하셨으니까 그때 어머니에게 비친 서울의 모습이

'울음'의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그때와 지금의 서울이 얼마나 바뀐지는 모르겠으나,

'군대보다 무서운 서울'이라는 어머니의 독특한 이미지는 그냥 아들의 가슴으로 들어온다.

아니면 전번에 이야기했던 세끼의 압박이

날마다 어머니의 밥상을 괴롭혔을 수도 있다.

밥먹을 때마다 숟가락에 비치는 배고픈 아들,

국에 비치는 차비없어서 걸어가는 아들,

밥상을 닦으며 보이는 옷가지, 이부자리 제대로 차리지 못한 아들,

이때 아들은 차라리 고문이다. 어머니가 낳은 고문이다.

서울에, 타향에 자식을 보낸 어머니가 한둘이랴마는

오늘 맛있게 먹은 김밥 두 줄이 어머니의 살인 것 같아 속이 쓰리다.

나는 지금의 이 생활이 소설을 쓰는 듯한 기분이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 하는 환경에 처할 기회가 나에게는 얼마나 자주 찾아올까

인물을 만들고, 사건을 정하고, 대화를 진행시키고, 도입을 고민하고, 휴지를 끼워넣고

나는 내 소설 속의 주인공이자 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그냥 문학적으로 나의 현생활을 정리하고 싶다.

아니면 이론가를 불러와서 완공중인 '야생 온실론'에 대해서 들어볼 수도 있다.

'가족'은 '야생 온실론'의 모체이다. 야생은 우리가 대면한 세계이고, 온실은 우리를 감싸는 테두리이다. 야생과 온실은 묘한 균형관계를 이루며 현실을 채워간다.

'온실 안의 화초' 징크스 때문일까. 세상에 직접적으로 대면한 적이 없는

스무 살 어린 청년이기 때문에 일부러 야생을, 야생적인 것을 찾아다니는 나의 편벽이

야생 온실을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주 야생적인 것도, 아주 온실적인 것도 모두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야생과 온실이 서로 뜯어먹지 못해 다투는 것이 건강하고 현실적인 그림인 것 같다.

가난은 삶을 변형시킨다.

그러나 난 가난하지 않다.

가난의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혹은 알기 때문에 나는 가난하지 않다.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지금의 내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부유했는지 확연해질 것 같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가 부러워서 미칠 정도로 최고로 행복한 시절 위에 서 있다.

어머니의 눈물을 밟고 서 있다.


<그 외의 어머니와 관련된 나의 이야기들>(클릭하면 됨)

엄마, 미안한데 이번에 나 못 내려가 (2007-02-16 01:56)

울 엄니가 보내주신 토마토 중에 (2006-04-0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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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28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승주나무님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다음 글을 보면, 제가 불효자이긴 한가 봅니다. -_-

승주나무 2007-02-2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불효자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름대로 사정이 있으니까 안타까운 거지요^^;

2007-03-13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14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