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런 생각을 갖게 되려니와,
나와 어머니는 각별한 관계이다.
이렇게 써놓으니 참 바보 같은 말이다.
붕어빵이라는 말은 주로 '생김새'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하지만 사실 '붕어빵'은 '내면'에 더욱 강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다만 차이는 '외면의 붕어빵'에 비해 '내면의 붕어빵'은 한참 뒤에 깨닫는다는 거.
사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내면의 붕어빵인 어머니의 내면이 나에게 그대로 들어온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머니를 존경해 왔지만, 버리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때는 어리고 철이 없어서 정말 버리고 싶은 것들이
지금에 와서 상당부분 재평가되었다.
만약 그때 억지로라도 떼버렸다면,
나를 존재하게 만들었던 정체성의 상당부분도 소실되었을 것이다.
가끔 활동하는 커뮤니티의 글들을 살펴보던 중 '어머니'에 대한 유독 진한 흔적을 발견한 김에,
따로 '어머니 특집'을 모았다.





제목 : 어머니가 우셨다
(2005년 5월 26일, 전역하고 제주도 내려가서 일주일만에 무작정 상경하고 나서의 얼마간의 소회를 담았다.


오늘 아침 수업받는데 어머니께 걸려온 전화.

'밥통하고 이것저것 행(해서) 보내크매(보내니까) 겅(그렇게) 알라.'

그리고 밥은 잘 먹고 다니냐는 말끝에 어머니는 수화기를 막으시고는 우시는 듯했다.

다시 수화기를 드신 어머니

격앙되고 울음 섞인 목소리는 아들에게는 충격이다. 물론 난 아주 태연히 달래드렸지만

'군에 보낼 때도 울지 않았는데, 서울 보내고 나니 걱정되고 밥도 손에 안잡히고, 아프다.'

아프다는 말에 아들은 눈앞이 캄캄했다.

서울이 그렇게 무서운 곳인가. 군대보다 무서운 곳이 서울이냔 말인가.

어머니의 마지막 한마디가 없었다면 난 아마 당장 제주도로 도망치고 말았겠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니까 잘 참아내라.'

우리들은 강하게 자라고, 살아왔지만, 서로가 서로의 커다란 약점이다.

고등학교 때 썼던 어머니란 시를 보고 어머니는 몇일을 우셨다고 했고(우리 어머니는 그리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니다) 이모는 너무 좋아 한 장 써달라고 하시고는 가져가셨다.

쓰고 나서 너무 상투적이고 유치한 모습에 나조차도 놀라고 부끄러웠던 시였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아마 우리 같은 학문이나 문학, 글줄이나 읽는다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놓치는 부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언어와 생각으로 표현을 해서, 그들의 가슴을 직접적으로 두드렸지만,지금은 너무 작품성과 깊이의 함정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물론 '피일시 차일시', 그때그때 다르겠지만, 중간세계에 있다고 자처하는 나는 좀더 명확히 문학의 모습을 살펴보게 된다.

서울이 어머니에게는 비정하게 비쳐졌을 수도 있다.

유아기, 그러니까 내가 생사를 넘나들던 때 어머니는 나를 업고 일주일에 서너번

제주도와 서울대병원을 왔다갔다 하셨으니까 그때 어머니에게 비친 서울의 모습이

'울음'의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그때와 지금의 서울이 얼마나 바뀐지는 모르겠으나,

'군대보다 무서운 서울'이라는 어머니의 독특한 이미지는 그냥 아들의 가슴으로 들어온다.

아니면 전번에 이야기했던 세끼의 압박이

날마다 어머니의 밥상을 괴롭혔을 수도 있다.

밥먹을 때마다 숟가락에 비치는 배고픈 아들,

국에 비치는 차비없어서 걸어가는 아들,

밥상을 닦으며 보이는 옷가지, 이부자리 제대로 차리지 못한 아들,

이때 아들은 차라리 고문이다. 어머니가 낳은 고문이다.

서울에, 타향에 자식을 보낸 어머니가 한둘이랴마는

오늘 맛있게 먹은 김밥 두 줄이 어머니의 살인 것 같아 속이 쓰리다.

나는 지금의 이 생활이 소설을 쓰는 듯한 기분이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 하는 환경에 처할 기회가 나에게는 얼마나 자주 찾아올까

인물을 만들고, 사건을 정하고, 대화를 진행시키고, 도입을 고민하고, 휴지를 끼워넣고

나는 내 소설 속의 주인공이자 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그냥 문학적으로 나의 현생활을 정리하고 싶다.

아니면 이론가를 불러와서 완공중인 '야생 온실론'에 대해서 들어볼 수도 있다.

'가족'은 '야생 온실론'의 모체이다. 야생은 우리가 대면한 세계이고, 온실은 우리를 감싸는 테두리이다. 야생과 온실은 묘한 균형관계를 이루며 현실을 채워간다.

'온실 안의 화초' 징크스 때문일까. 세상에 직접적으로 대면한 적이 없는

스무 살 어린 청년이기 때문에 일부러 야생을, 야생적인 것을 찾아다니는 나의 편벽이

야생 온실을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주 야생적인 것도, 아주 온실적인 것도 모두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야생과 온실이 서로 뜯어먹지 못해 다투는 것이 건강하고 현실적인 그림인 것 같다.

가난은 삶을 변형시킨다.

그러나 난 가난하지 않다.

가난의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혹은 알기 때문에 나는 가난하지 않다.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지금의 내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부유했는지 확연해질 것 같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가 부러워서 미칠 정도로 최고로 행복한 시절 위에 서 있다.

어머니의 눈물을 밟고 서 있다.


<그 외의 어머니와 관련된 나의 이야기들>(클릭하면 됨)

엄마, 미안한데 이번에 나 못 내려가 (2007-02-16 01:56)

울 엄니가 보내주신 토마토 중에 (2006-04-0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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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28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승주나무님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다음 글을 보면, 제가 불효자이긴 한가 봅니다. -_-

승주나무 2007-02-2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불효자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름대로 사정이 있으니까 안타까운 거지요^^;

2007-03-13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14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