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0%에 들기 위해 질주하는 사람들을 보라.

그것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유일한 철학이다.

 

1명은 UN사무총장이 되었고, 1명은 외교통상부장관이 되었고, 1명은 며칠 전 국무총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 협상을 주도한 1명은 의미심장한 '박수'를 받았다.

김현종과 김종훈 (등), 그 이름을 기억하라.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보라.

협상을 주도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당사자'가 아니다.

다만 '그 일'을 맡은 '관료'에 불과하다.

삼성공화국 산하 관료공화국의 1개 관료에 불과하다.

 

 


 

악의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들이 가장 짜릿한 기쁨은 '타결선언'이 아니었다.

"결렬될 수도 있다!"는 언론의 보도와
"국익만을 판단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흘러나오면서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한낱 촌극으로 밝혀졌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우 유의미한 발언이었다.
다름아니라 협상을 담당하는 자들에게 '통로'를 열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결렬될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흘러나왔을 때
나는 너무 웃겨서 콧물이 삐져나올 지경이었다.
결렬되고 나면 10%들이 가져가는 게 그만큼 줄어드는데,
그런 일은 우리나라가 망해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망해도 10%는 남는다.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철학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10%의 망령만 들어서 있다.

 

내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이 미국과 같은 ‘깡패 자본주의’ 나라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4만달러로 세계 제일의 부자 나라인데도, 총가구의 20~30%가 빈곤선 아래에서 살며, 대도시에는 대규모의 빈민굴이 있어 낮에도 다닐 수가 없고, 마약과 살인과 매춘이 판을 치며, 약값과 병원비가 너무 비싸 돈 없는 환자는 죽을 수밖에 없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미국을 선진국의 모범으로 삼아 선진국이 되자고 주장한다면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다.

[한·미FTA에 부쳐] 피해산업 지원 약속 속임수에 불과하다

 

우리가 '철학이 없는 병'에 걸린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철학의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이다.

 

"다리가 무거워질 때까지 그저 걷기만 하면 됩니다. 다리가 무거워지면 누우세요. 그러면 약기운이 돌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잔을 소크라테스에게 내밀었습니다. ......

소크라테스가 누우니까 그 사람은 소크라테스의 다리와 발을 살펴보더군요. 그리고 한참 있다가 발을 세게 누르면서 감각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소크라테스가 "없다"고 하니까, 그 다음엔 다리를 눌러 보고는 우리에게 말하기를, "독이 심장에까지 미치면 마지막입니다"라고 하더군요.

- 플라톤, '파이돈' 중에서

 

 

이것은 소크라테스의 최후가 아니다.

 

"아! 참소를 일삼는 신하 백비가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는데, 왕은 도리어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나는 그의 아버지를 제후의 우두머리로 만들었고, 그가 임금이 되기 전 공자들끼리 태자의 자리를 놓고 다툴 때 죽음을 무릅쓰고 선왕에게 간해 그를 후계자로 정하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는 태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왕위에 오르고 나서 나에게 오나라를 나누어 주려고 하였을 때도 나는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는 간사한 신하의 말만 듣고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그리고는 가신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왕의 관을 짤 목재로 쓰도록 하라. 아울러 내 눈을 빼내 오나라 동문에 매달아 월나라 군수들이 쳐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하라."

그리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오나라 왕은 이 말을 듣고 몹시 화가 나서 오자서의 시체를 가져다가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넣어 강물에 내던져 버렸다.

- 사마천, 사기열전의 '오자서 열전' 중에서

 

이것은 오자서나 자신의 왕에게 퍼부은 저주가 아니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징후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왕따나 원조교제 같은 것을 수입했다.

 

소년범죄 갈수록 어려진다
방황하는 대학새내기들…대학 부적응 ‘폐인족’ 많다

학교안에서 여중생 집단 성폭행…2달간 상습

 

 

나는 군에서 병력관리를 했다. 하루에 한번씩 전부대 병력의 이동을 하위부대로부터 보고받고, 각종 명령서를 수집하여 상위부대인 육군본부로 보고하였다. 엑셀 프로그램을 이용했는데, 각 부대의 수식을 입력하고 이를 종합하여 웹에 그것을 옮기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그런데 이등병때 어리버리하게도 수식이 종합된 엑셀 파일을 날려버린 거다.

나는 하는 수없이 온갖 수식이 들어있었으나 이제는 껍데기밖에 남아 있지 않은 파일을 일일이 끼워맞추었다. 병력이 하나씩 바뀔 때마다 일일이 변경하고, 합계 또한 조작해서 보고하였다.

하지만 그 날 응급입원이 생기고, 한 부대에서 잘못된 보고를 올리고 각종 이동이 있을 때마다 나는 죽을 맛이었다. 말년휴가 복귀한 고참과 밤을 새며 프로그램을 다시 짜고 나서야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었다.

 

과거 개방에 성공한 이유는 수출과 내수가 서로 연동되는 ‘선택적’ 개방을 했기 때문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이번 FTA 추진 과정에서는 수출과 내수의 산업내적 연관성을 판단한 적이 없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조기 가입으로 무분별한 개방에 노출된 결과는 1997년 IMF 사태로 나타났다.

[한·미FTA]盧대통령 담화 일부이점 부각 ‘장미빛 청사진’만

 

 


이번 FTA는 수식 없는 엑셀 파일이다. 항목이 커지면 커질수록 대책없는 지경에 이르는 아주 무서운, 그러나 현실이다. 협상에 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카드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상대가 어느 패를 주든지 간에 그것에 대응하는 카드를 펼쳐야 게임을 이끌 수 있다. 예컨대 자동차 관세는 현지생산하는 기업이 대부분이므로 실익이 없고, 섬유관세 또한 기업정보를 낱낱이 제공해야 하므로 그림의 떡이다. 9월부터 2월까지 반영되는 계절관세 또한 비닐하우스 감귤이 많은 제주도에는 거의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모두 하소연이 되었다.

 

현상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는 문제가 한참 진행된 것이다. 위암이나 간암이 고통으로 연결된다면 이미 3기 이상이다. 주가가 한참 올랐을 때는 이미 이익 실현이 진행되므로 투자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많은사건들 중에서도 뚜렷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사건은 다음과 같다.

 

1. 교내 여중생 성폭행 사건 등 청소년 범죄 불감증

2. 시사저널 편집권 사태로 촉발된 언론 매너리즘과 그 분쟁

3. FTA 타결을 전후한 뚜렷한 손익계산서

 

'교육-언론-정치-경제' 등 사회의 중심 영역에서 펼쳐지는 '병리적 현상'은 각개전투로는 도저히 풀어낼 길이 없지만 이것들은 전혀 다른 문제처럼 보여지고 있다. 우리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통합'에 지지부진할 경우 전혀 다른 종류의 '통합'을 맞을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대해 비판적 전문가들은 “한·미 FTA는 ‘자유무역’ 협상이 아니라 미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강요무역’이며, 국내 세제, 검역, 약값 등을 미국식으로 다 바꿔야 하는 경제통합”이라고 비판했다.

[FTA, 우리 삶이 바뀐다]“쌀 빼고 다 내주는 전대미문의 농업학살”

 

 

 

"약한 성품은 악덕이 미덕에 반대되는 것보다 더 미덕에 반대된다." <라 로슈푸코>

 

약한 것은 악한 것보다 더 큰 악을 부추긴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이 때의 '약함'은 물리적인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를 약하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저마다 저항할 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연권을 포기하고 스스로에게 굴욕을 강요할 때 '약함'이 생긴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보려 한다.

"나는 무능한가?"

내가 만약 무능하지 않다면, 무능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여야 한다.

일상은 수많은 전쟁이다. 그것은 주로 자신과 관련된 일이 많다. 나는 한번도 남을 위해 투쟁해본 일이 없다. 투쟁하는 모든 사람들은 '남을 위해' 투쟁하는 법이 없다.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투쟁하는 것이다.

나는 강경주의자도 왼쪽으로 굳어진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싸워야 할 때가 언제인지는 알 것 같다.

나는 과거에 '나를 책임지고 있던 사람'을 계승해

현재에는 나 스스로를 책임지고,

미래의 누군가를 책임지고 있다.

 

자기 일상을 박차고 나오지 않더라도 투쟁을 하는 것은

약간의 상상력만 있으면 가능하다.

이제까지는 나 스스로를 위해 투쟁했다면

그 전선을 조금만 넓혀 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에게 손을 거넨다.

나와 공동전선을 만들어가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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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중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뻥슛'도 아니고,

'기쁨 두 배 축협'도 아니고, '이천수의 몽니'도 아니다.

바로 '숙제 또는 과제'이다.

숙제와 과제는 축구팀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을 수 있다.

경기 후 매번 쏟아지는 언사이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서 축구를 보지만,

축구가 언론에 얼마나 왜곡되고 있는지 알게 된다.

때문에 직접 축구장에 가고 싶고, TV중계는 보기도 싫어질 때가 많다.

 

예전에는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과제' 때문에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축구팀은 '언제나 과제를 제출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선생님에게 매를 맞아도 한참을 맞았을 아이였다.

대한민국을 공무원공화국이라고 하는데,

축구만큼 공무원 냄새가 나는 곳이 또 있을까?

 

축협은 철밥통, 공무원의 상징이며,

어제 우루과이전에서의 한국축구는 전형적인 '공무원 축구'를 보여주었다.

누구도 모험을 해보려고 하지 않고, 공간을 만들려는 욕구를 가진 선수들이 없었다.

멀뚱히 공만 쳐다 보다가 번번이 공을 빼앗기고 기회를 내주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2:0이라는 스코어는 참으로 관대한 점수가 아닌가 생각한다.

 

축구가 끝나면 또 하나의 말잔치가 펼쳐진다.

먹이를 따라다니는 파리떼 근성을 가진 것이 언론의 생리이지만,

저마다 축구에 대한 전문가를 자청하는 언론이

축구경기에 대해서 하는 논평들은 왜 그렇게 하나같이 똑같을까?

나는 축구 열혈팬도 아니고,

축구발전을 위해서 입장료를 지불한 적도 없다.

하지만 가끔 한국축구를 위해 '시간을 지불'하기는 한다.

축구보다 더욱 현란한 수사의 개인기가 싫어서라도

한번 축구장을 방문해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이천수 선수가 골을 넣지 못한 것은 잘된 일이라 생각한다.

넣었으면 또 팀과 싸우려고 했을 테니..

 

[위기의 K리그]上. 연봉 공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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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25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당하신 말씀들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

마태우스 2007-03-26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님 말씀에 동의해요 질 때마다 같은 진단을 내놓고, 그 진단이란 것도 십년 전과 똑같은 걸 보면 참.... 제가 축구 팬이 아닌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승주나무 2007-03-26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셔고양2 님//반갑습니다. 축구를 '지당'하게 해줄 순 없을까요. 티비팬이지만, 관심을 끊을까 고려중입니다.
마태 님//정말 오랜만입니다. 뭐 재밌는 거 없나요. 간만에 축구 보고 맘 상했어요 ㅠㅠ

맑음 2007-03-26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밖에 있다가 후반전이라도 보려고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친구집에서 후라이드 치킨에 맥주를 곁들여 봤는데, 여자 4명이 보면서 나온 말들... 1. 어, 우린 이제 보려는데 박지성이랑 이영표가 교체된다. 2. 상황 스코어 2 : 0으로 지고 있다. 또 인터넷 댓글에 온통 난리나겠군. 3. 우리 나라 사람은 축구 자체를 즐기는 게 아니라, 승부욕에 집착한다. 4. 좌영표 우지성 사이에 앉은 저 귀여운 아핸 누구냐? 5. 우리 중에 한 명이 자기 남친(축구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일하던 중인, ㅋ~)에게 전화해 백지훈의 실명을 알아내는 통화에 집중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난 훌리건을 본 반응, 뭔데 뭔데 벌써 경기 끝난거야?

오늘도 일간지에 동메달 딴 김연아 기사는 콧구멍만하게, 금메달 딴 박태환 기사는 얼굴만하게 나왔던데. 뭐 기자는 기사를 써야하고. 짜릿한 역전승의 풀 스토리가 실수해서 넘어진 사진 한 장보다 분량이 많은 건 어쩔 수 없고. 진 팀에게 다음엔 잘 해란 말 외엔 달리 해줄 말도 없지 않나란 생각. 전 이번 축구에서 우루과이 선수들이 안 보이던데요. 전부 특수 코팅된 벽이야, 공이 다 튕겨져 나와요. 골문 안으로 들어갔던 공마저 뻥뻥~ 도로 나와버려요.

antitheme 2007-03-26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과제도 답도 다 알고 있으면서 정반대로 행정을 해나간다는 점이겠죠. 저도 작은 아이 때문에 축구를 봤는데 결과는 아쉬워도 전반에는 축구처럼 하더군요. 후반은 영~~
차라리 K-리그나 열심히 보는게 건강에 좋을 듯 합니다.

승주나무 2007-03-26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맑음 님//정말 특수 코팅된 벽이었던 것 같아요. 갠적으로 기현이는 한 골 넣어줬음 했는데.. 지성과 영표 형아가 일찌감치 교체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웠어요. 산소탱크와 열정의 본을 보여주었으면 좋았겠는데..
antitheme 님//저는 후반부터 봤어요.ㅠㅠ 전반에 정말 그랬단 말이에요. 나중에 녹화라도 봐야겠군요. 케이리그 사수해야쥐^^;
 

시사모의 회원으로서 어제 있던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번팅이나 정모인줄 알았는데, 공식 행사였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시뻘건 책(기자가 된다는 것)의 주인공들을 대거 만나뵐 수 있었습니다.
행복한 밤이었고, 우리는 그 행복이 무슨 행복인지 알았습니다.
자학적이고 엽기적이고 비상식적인 행복이라는 사실을.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 23명 (지은이) | 호미, 268쪽, 2007년

부제 : 제가 너무 안일했습니다.


제가 어제부터 이름을 '안일이'로 바꾸게 된 경위는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속으로 잠깐 화두로만 쓰려고 내놓은 말인데, 그 자리에서 기자님들에 의해서 아예 '안일'이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습니다.  참 기자라는 분들은 날카로운 펜이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낭중지추라고 했나요. 그러니 시사저널이라는 주머니가 가만 있지 않았겠지요.

제가 안일했던 것은 또 있습니다. 기자들과 술을 그렇게 논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술은 대충 요령으로 넘기고 넘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겁없이 버팅기다가 결국 가방을 놓고 왔습니다. 마침 가방은 무적전설 님이 챙겨두시겠다고 했지만, 공교롭게도 '다시 만나자'라는 말 앞에 '최대한 빨리'라는 수식어가 붙고 말았습니다.

그것밖에 없었냐구요? 아닙니다. 또 있습니다. 술도 취하지 않았는데 순동이 누나를 붙잡고 생떼를 부렸습니다. 감히 기자님 앞에서 '언론과 언론社의 정체성'에 대해서 따져물었습니다. 순동이 누나는 달관의 미소로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비단 순동이 누나의 진정성이 아니라 진품 시사저널의 진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은주 누나(제 마눌님 이름이기도 한)에게는 '도대체 우리나라에 '언론 상식'이라는 글자가 있기는 한 거냐?'고 강하게 저항했습니다. 은주 누나에게서는 '토닥토닥'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것도 모자라 잘 알지도 못하는 CSR이니 SRI 같은 말들을 짓거렸습니다. 실명을 거론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분이기도 하며, "우리 나라 10년 안에 위험하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고마운 충고를 해주셨던 그 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깡패'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농업에서 시작된 '지속가능'이라는 화두가 글로벌 기업으로 확대되는 추세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깡패 분은 아직도 우매한 대중을 공포 정치로 어찌 해보려는 철학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기업철학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콱콱 막혀 옵니다. 은주 누나의 말 없는 '토닥토닥'에 대해서 깊은 공감을 표합니다.

사실 제가 뻘건 책(기자로 산다는 것)의 주인공들을 만나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안일'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대항하려 합니다. '안일에도 격조가 있다' 그러니까 제가 덜 안일했기 때문에 이렇게 기자 님들을 만나게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마지막 인사를 권해주셨던 분에게 매우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 인삿말 덕분에 한 다섯 시간을 술독에 빠지고, 그리고 이렇게 김수영의 '낙타과음(駱駝過飮)'과 같은 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뻘건 책을 들고 가방을 찾으러 가야겠습니다. 좀더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가방을 찾는 척하면서 쳐들어가렵니다. 제가 고리타분하게 문자를 남발한 것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은남이 누나였던가요. 명숙이 누님이었던가요.

歲漢然後知松柏之後凋
(세한연후송백지후조 : 찬 겨울이 지나고 나서야 소나무 측백나무가 오래도록 푸르르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논어>

위와 같은 '문자'를 날려댄 것에 대해서 사과를 드리고 싶군요. 감히 고수를 몰라 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보다 훨씬 덜 안일했던 '굴원' 할아버지의 글을 남깁니다. 시사저널 기자님들하고 어찌 이리 딱 들어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굴원은 바위를 쳐들고 멱라수에 자빠졌지만, 돌을 쳐들고 자빠져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회사(懷沙)

양기 넘치는 화사한 초여름이라.
초목이 무성하구나!

상심한 심정을 깊이 슬퍼하며,
물을 따라 남쪽 땅으로 쫓겨왔네.
눈앞이 망망한 산수를 바라보니
지극히 고요하고 말이 없구나!
원통함은 가슴에 맺혀
풀어볼 길이 없이 영원히 막혔네.
비통한 마음 달래고 어루만지며
고개 숙여 스스로 억누르려 하네.

모난 것을 깎아 둥글게 만들려 하지만
변하지 않는 법도는 바꿀 수 없네.
본래 갈 길을 바꾸는 것을
군자는 추잡하게 여긴다.
멱줄 따라 바르게 긋는 것은
옛날 법도와 다름이 없다.
마음이 곧고 성품이 중후한 것을
현명한 사람은 존중한다.
솜씨 좋은 장인이 깎고 다듬지 않으면
누가 그 굽고 곧음을 알겠는가!
검은색 무늬를 어두운 곳에 두면
눈뜬 봉사는 무늬 없다 하고,
이루(離屢)*는 눈을 가늘게 뜨고도 볼 수 있는데
맹인은 그의 눈이 밝지 않다고 여긴다.


흰 것은 검다고 하고
위를 거꾸로 아래라고 한다.
봉황은 새장 속에 갇혀 있고
닭과 꿩은 하늘을 날아 다닌다.
옥과 돌을 뒤섞어
하나로 헤아리니,
저들은 더러운 마음뿐이라
나의 좋은 점을 알 수가 없지!

짐은 무겁고 실은 것 많건만
수렁에 빠져 건널 수 없구나.
아름다운 옥이 있지만
곤궁하여 보여 줄 수가 없네.
마을의 개들이 떼지어 짖는 것은
개들에게 이상하게 보이기 때문이지.
준걸을 비방하고 호걸을 의심하는 것은
본래 못난 사람들의 태도이지.

재능과 덕성이 가슴 속에 흐르건만
나의 남다른 재능을 아무도 몰라주네.
재능과 덕망이 쌓였어도
내가 가진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네.
인의를 더 닦고
삼가고 돈후하여 넉넉해졌건만,
순임금 같은 분을 만날 수 없으니
누가 나의 참모습을 알아주랴!

예로부터 [어진 신하와 군주는 때를] 같이하지 못하니
어찌 그 까닭을 알리오?
탕임금과 우임금은 아득히 먼 분이라
막막하여 사모할 수도 없네.
한을 참고 분노를 삭이고
마음을 억눌러 내 자신을 스스로 힘써 본다.
슬픔을 만났으나 절개를 꺾지 않으리니
내 뜻이 뒷날의 본보기가 되기 바라네.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머물려 하니
날이 어둑어둑해져서 어둠이 깔리네.
근심을 삼키고 슬픔을 달래면서
오직 내 죽음을 바라본다.


* 이루(離屢) : 전설 속에 나오는 인물로 유달리 눈이 밝아 100보 밖의 가을 터럭까지 분명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맹자에 나오는 그 이루가 맞다.

 

ps : 거기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대한민국이 황우석 사건으로 시끄러웠을 때, 그리고 pd수첩이 생사의 기로에 빠졌을 때 아무도 pd수첩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사저널은 사태를 꼼꼼히 관찰하고 '충분히 타당한 비판이다'는 평가를 내주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후에 pd수첩 관계자들이 이 일을 두고두고 고맙게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후에 '시사저널 사태'가 생겼습니다. 이를 보도한 pd수첩의 방영분은 여러분이 보신 것과 같습니다.

알라딘 피에스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844228

작년 초에 했던 설문조사 이야기를 기자들에게 했습니다. 그때는 '시사저널' 자체를 몰랐군요. 부끄럽습니다. 결국 한겨레21을 보기로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정말 후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시사저널을 알았다면, 혹은 시사저널이 많은 표를 받았다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요. 아마 투표를 하신 분들까지도 저는 원망하였을 겁니다. 워낙 속이 좁은 놈이다보니까요. 
깜짝 놀랄 만한 대답을 들었습니다.
서명숙 누님(편집장)은 "한겨레21도 훌륭한 시사잡지이다"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서 한겨레21의 공격은 너무 괘씸하다고 제가 불평했습니다. 그랬더니 은남이 누난지 은주 누난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당연한 거다. 영업하는 사람들은 이 기회를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거다. 하지만 한겨레21이라는 언론의 정신은 분명히 있다. 이것이 같지 않다"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어요.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언론은 스스로 '모순된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언론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인간적이기 때문이죠. 보도부장은 삼성을 까는 기사를 잃지 않으려 윗선과 다투고, 광고부장은 광고를 잃지 않으려고 또 윗선과 다투는 광경이 벌어지는 언론사의 '일상적인 장면들'을 저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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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2007-03-18 0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수영의 낙타과음! 비유가 참 멋져요.^^
촘스키,
"모든 형태의 권력은 그 자체가 사악하다!!!"

승주나무 2007-03-18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맑음 님//안녕하세요. 독서에서 나온 비유라고나 할까요 ㅋㅋ
과음과 장문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좋은 글인 것 같아요. (낙타과음이요)
 

 우리나라의 표절 시비가 한창이다.
'표절'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고민해서 애써 이룩한 성과물을 허락 없이 베낀다는 의미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적 의미'도 덧붙여지는 추세다.
서울대 논술문제에 표절시비를 건 사교육 강사의 경우는 사교육 전례를 비춰보았을 때 '한 건'에 대한 관점이 강하다. 서울대가 조목조목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이미 '이의 제기자'들의 관심사는 아니다. 이를테면 이들은 이익실현을 한 셈이다. 표절 등의 사회문제가 대세가 될 때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관련한 여진들이 신문지상에서 매일같이 쏟아진다. 쏟아진 여진만큼 사람들의 판단력도 마비됨을 보게 되는 것은 매우 일상적인 일이다.

호사카 유지라는 세종대 교수는 경향신문에 흥미 있는 칼럼을 기고했다.

[한국에 살아보니] 일본의 억지를 이기는 법


이 중에서 "한국측은 그런 일본의 행동에 항상 화를 내는 것으로 오히려 감정을 지배당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잘못된 과거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나쁘지만, 한국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한 주요 쟁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이라도 갖고 있다면 냉정하게 이 문제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일본도 한국에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라는 조언은 귀에 매우 익숙하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판단력이 급격히 흐려지는 병통을 앓고 있다.
그것은 순전히 언론의 '박리다매'이거나 호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표절 사태를 심층적이고 명쾌하게 건드린 논의들이 언론에 보이지 않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아니면 전적으로 나의 게으름 탓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을 배반한 과학원로들은 어떤 마음에서 표절을 '감행'했을까? 이들이 왜 표절했는지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음이 안타깝다.
매우 오랫동안 학문에 정진하신 분들의 고견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불경스럽기도 하거니와 나의 내공으로 가기에는 역부족일 수도 있지만, 항간에 논의되는 '표절 문화'라는 추상적이기 그지없는 허무한 관점보다는 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맹자는 사람의 병통 중 가장 큰 것이 '항상 누군가의 스승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최소한 원로들이 사회의 대세에 편승해 돈을 벌고자 표절에 동참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학계에 경종을 울리고 자성을 촉구하고자 한 진심에 대해서는 뭐라 하지 않겠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학자는 대중에게 혹은 동료 학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자성을 촉구해야 하는가. 당연히 그것은 자신의 학문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을 '편집'으로 보여주고자 한다면 시류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나는 이 대목에서 학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상실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논술강사는 논술강사로서 자성을 촉구하고, 작가는 작가로서,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들이 결여하고 있는 것은 또 있다. '자성'을 촉구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자성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본인에게는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의지를 가지고 누군가의 자성을 촉구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가 아닐까. 학문적 타성은 여기서 파생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 분들이 데카르트처럼 하룻밤이라도 엄밀히 성찰하고 반성하기를 시도하였다면 이들이 노출한 것들을 대부분 포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이들이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기 위해서 표절을 했다는 비판은 너무나 관대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본질적으로 정체성에 대한 성찰이 결여되어 있고, 때문에 일관된 행동이 나타나지 않은 자멸현상이라고 보고 싶다. 내가 학계를 도매금으로 비판할 입장에는 절대로 있지 못하겠지만, 학문을 사랑하는 젊은이의 입장에서 우리의 학문이 자멸해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애통하다.

진실 배반한 과학원로들…외국책 베껴 파문
입력: 2007년 03월 02일 18:15:49
 
‘황우석 논문조작’ 사태를 계기로 연구자의 표절 등 부정행위를 방지하자는 취지로 출간된 책이 외국책을 그대로 베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과학계 원로들이 과학자의 부정행위에 경종을 울리자며 쓴 ‘탐욕의 과학자들’(왼쪽). 1982년 미국에서 출간된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의 일부를 그대로 도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무단도용한 저자들이 한국천문학회장을 역임한 경희대 민영기 명예교수,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건국대 박택규 명예교수 등 과학계 원로들이어서 더욱 충격적이다.

2일 출판계에 따르면 올해 1월 출간된 ‘탐욕의 과학자들’(일진사 펴냄)은 전체 25%에 해당하는 84쪽을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Betrayers of the Truth)’에서 무단도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책은 갈릴레오·뉴턴·다윈 등 고대 과학자에서부터 최근 과학자들까지 표절 등 부정행위 사례를 엮어 출간됐다. 머리말에는 ‘연구 진실성과 투명성을 촉진하는 데 기여하고자 출판했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이 책은 1982년 뉴욕 타임스 과학담당 기자인 윌리엄 브로드 등이 저술한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의 일부를 그대로 도용했다.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은 국내에서 한차례 번역소개됐지만 별 주목을 끌지 못했다가 지난달말 미래M&B에서 재출간됐다.

‘프롤레마이우스의 관측 오류’를 담은 부분의 경우 ‘탐욕의 과학자들’과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이 내용이나 표현, 글의 진행이 거의 유사하다. 갈릴레오, 뉴턴, 돌턴, 다윈, 멘델 등의 부정행위를 설명하는 총 19쪽에 달하는 내용은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을 그대로 베낀 수준이다. 로버트 훅의 부정행위 사례를 담은 부분 역시 29~30쪽에 걸쳐 그대로 베꼈다. 심지어 민영기 교수가 필자로 돼 있는 ‘펄서 발견에 얽힌 사제 간의 공적 논란’은 15쪽에 걸쳐 주어·서술어·수식어의 흐름이 모두 유사하다.

당사자도 ‘무단도용’에 대해서 시인했다. 민영기 교수는 “다른 공동저자가 원서를 주면서 저작권이 이미 소멸돼 편저로 내자고 했다”며 “책이 출간된 이후 표지에 저자로 돼 있어서 출판사측에 잘못됐다고 항의했다”고 해명했다. 박택규 교수는 “편저라 하더라도 출처 표시를 하지 않은 점은 잘못”이라며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을 판권 없이 편집출판하는 관행에 대해서 잘못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인 일진사의 대응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일진사는 출간된 이후 ‘편저’라는 사실을 필자들로부터 들었으나 곧장 책을 회수하지 않았다. ‘편저’라고만 쓰인 띠지를 만들어 판매를 강행했다.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을 출판한 미래M&B측은 “책의 일부를 발췌한 것도 아니고 무더기로 베꼈으며 역사연표까지 모두 표절했다”면서 “출처를 표시하든가 번역자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진우·임지선·이고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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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 관련된 책과 영화를 좀 보고 있습니다.
한학수 씨의 '여러분...', 그리고 '기자로 산다는 것'은 방금 제 방에 떨어졌네요.
'굿나잇 앤 굿럭'이라는 영화와 함께 부침개를 만들어먹을 생각입니다.

아프 님이 시사모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왔군요.
거기에 남긴 글입니다. 돈이 좀 넉넉하면 저도 진품 시사저널 예약  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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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주간지를 구독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한겨레21은 대중성 때문에 표를 얻었지만,

시사저널이라는 잡지를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시사저널의 보도정신에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시사저널 사태는 세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나 여러 선진국에서도 언론과 시장의 격차는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언론사가 다른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 안쓰럽습니다.

만약 우리 같은 독자들이 충실하게

결과물들을 사보고,

결과물의 결과에 대해서 활발하게 감시하고,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엄정한 감시의 혜안을 보였더라면,

언론은 시장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사회이기 때문에 거대자본이 여론과 언론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달라진 환경에 불과합니다.

사실 거대자본은 우매한 군중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측면이 더 많습니다.

거대자본의 행태에 대해서 지속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언론의 몸부림에 신호를 보내는 문화가 형성되었다면,

거대자본이 언론을 무시하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미국에서처럼 자신들을 가혹하게 감시하는 시민단체를 피감기업이 먹여살리는 것이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가 되기에 우리사회는 과제가 많으며,

그 과도기에 누군가는 쓰라리게 아파해야 하고, 할애하고 희생해야 하는 자리가

바로 여러분들의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생업의 무게 때문에 직접 손을 건네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라도 응원을 보내며, 이 응원이 전달될 수 있도록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대한민국 언론의 역사가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아주 오랜 훗날 아들과 딸들이 이 이야기를 접하며

가슴뛰게 만드는 역사가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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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23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d수첩 vod로 보고 시사저널 사태가 굉장히 큰 문제란 걸 알았어요. 이제 정치권력보다 경제권력이 더 무섭다는 걸..저도 시사저널 기자노조에 힘을 보태주고 싶어요.

승주나무 2007-02-23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라 님//저도 피디수첩 보고 그 심각성을 깨달았어요.
이러다가 삼성이 크다가 폭삭 내려앉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하기야 난세니까, 삼성이 가라앉을 일은 없겠지만, 우리와 같은 경제문화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은 생각하기 힘들겠죠..

마늘빵 2007-02-2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사저널 같은 매체는 절대로, 죽어선 안되죠. 저도 방금 <기자로 산다는 것> 다 읽었습니다. ^^ 아 이 열정이 부럽습니다. 한때 잠시나마 기자를 1지망 직업으로 생각했던이로서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간거 같아요.

2007-02-25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