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모의 회원으로서 어제 있던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번팅이나 정모인줄 알았는데, 공식 행사였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시뻘건 책(기자가 된다는 것)의 주인공들을 대거 만나뵐 수 있었습니다.
행복한 밤이었고, 우리는 그 행복이 무슨 행복인지 알았습니다.
자학적이고 엽기적이고 비상식적인 행복이라는 사실을.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 23명 (지은이) | 호미, 268쪽, 2007년

부제 : 제가 너무 안일했습니다.


제가 어제부터 이름을 '안일이'로 바꾸게 된 경위는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속으로 잠깐 화두로만 쓰려고 내놓은 말인데, 그 자리에서 기자님들에 의해서 아예 '안일'이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습니다.  참 기자라는 분들은 날카로운 펜이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낭중지추라고 했나요. 그러니 시사저널이라는 주머니가 가만 있지 않았겠지요.

제가 안일했던 것은 또 있습니다. 기자들과 술을 그렇게 논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술은 대충 요령으로 넘기고 넘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겁없이 버팅기다가 결국 가방을 놓고 왔습니다. 마침 가방은 무적전설 님이 챙겨두시겠다고 했지만, 공교롭게도 '다시 만나자'라는 말 앞에 '최대한 빨리'라는 수식어가 붙고 말았습니다.

그것밖에 없었냐구요? 아닙니다. 또 있습니다. 술도 취하지 않았는데 순동이 누나를 붙잡고 생떼를 부렸습니다. 감히 기자님 앞에서 '언론과 언론社의 정체성'에 대해서 따져물었습니다. 순동이 누나는 달관의 미소로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비단 순동이 누나의 진정성이 아니라 진품 시사저널의 진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은주 누나(제 마눌님 이름이기도 한)에게는 '도대체 우리나라에 '언론 상식'이라는 글자가 있기는 한 거냐?'고 강하게 저항했습니다. 은주 누나에게서는 '토닥토닥'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것도 모자라 잘 알지도 못하는 CSR이니 SRI 같은 말들을 짓거렸습니다. 실명을 거론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분이기도 하며, "우리 나라 10년 안에 위험하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고마운 충고를 해주셨던 그 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깡패'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농업에서 시작된 '지속가능'이라는 화두가 글로벌 기업으로 확대되는 추세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깡패 분은 아직도 우매한 대중을 공포 정치로 어찌 해보려는 철학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기업철학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콱콱 막혀 옵니다. 은주 누나의 말 없는 '토닥토닥'에 대해서 깊은 공감을 표합니다.

사실 제가 뻘건 책(기자로 산다는 것)의 주인공들을 만나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안일'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대항하려 합니다. '안일에도 격조가 있다' 그러니까 제가 덜 안일했기 때문에 이렇게 기자 님들을 만나게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마지막 인사를 권해주셨던 분에게 매우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 인삿말 덕분에 한 다섯 시간을 술독에 빠지고, 그리고 이렇게 김수영의 '낙타과음(駱駝過飮)'과 같은 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뻘건 책을 들고 가방을 찾으러 가야겠습니다. 좀더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가방을 찾는 척하면서 쳐들어가렵니다. 제가 고리타분하게 문자를 남발한 것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은남이 누나였던가요. 명숙이 누님이었던가요.

歲漢然後知松柏之後凋
(세한연후송백지후조 : 찬 겨울이 지나고 나서야 소나무 측백나무가 오래도록 푸르르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논어>

위와 같은 '문자'를 날려댄 것에 대해서 사과를 드리고 싶군요. 감히 고수를 몰라 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보다 훨씬 덜 안일했던 '굴원' 할아버지의 글을 남깁니다. 시사저널 기자님들하고 어찌 이리 딱 들어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굴원은 바위를 쳐들고 멱라수에 자빠졌지만, 돌을 쳐들고 자빠져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회사(懷沙)

양기 넘치는 화사한 초여름이라.
초목이 무성하구나!

상심한 심정을 깊이 슬퍼하며,
물을 따라 남쪽 땅으로 쫓겨왔네.
눈앞이 망망한 산수를 바라보니
지극히 고요하고 말이 없구나!
원통함은 가슴에 맺혀
풀어볼 길이 없이 영원히 막혔네.
비통한 마음 달래고 어루만지며
고개 숙여 스스로 억누르려 하네.

모난 것을 깎아 둥글게 만들려 하지만
변하지 않는 법도는 바꿀 수 없네.
본래 갈 길을 바꾸는 것을
군자는 추잡하게 여긴다.
멱줄 따라 바르게 긋는 것은
옛날 법도와 다름이 없다.
마음이 곧고 성품이 중후한 것을
현명한 사람은 존중한다.
솜씨 좋은 장인이 깎고 다듬지 않으면
누가 그 굽고 곧음을 알겠는가!
검은색 무늬를 어두운 곳에 두면
눈뜬 봉사는 무늬 없다 하고,
이루(離屢)*는 눈을 가늘게 뜨고도 볼 수 있는데
맹인은 그의 눈이 밝지 않다고 여긴다.


흰 것은 검다고 하고
위를 거꾸로 아래라고 한다.
봉황은 새장 속에 갇혀 있고
닭과 꿩은 하늘을 날아 다닌다.
옥과 돌을 뒤섞어
하나로 헤아리니,
저들은 더러운 마음뿐이라
나의 좋은 점을 알 수가 없지!

짐은 무겁고 실은 것 많건만
수렁에 빠져 건널 수 없구나.
아름다운 옥이 있지만
곤궁하여 보여 줄 수가 없네.
마을의 개들이 떼지어 짖는 것은
개들에게 이상하게 보이기 때문이지.
준걸을 비방하고 호걸을 의심하는 것은
본래 못난 사람들의 태도이지.

재능과 덕성이 가슴 속에 흐르건만
나의 남다른 재능을 아무도 몰라주네.
재능과 덕망이 쌓였어도
내가 가진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네.
인의를 더 닦고
삼가고 돈후하여 넉넉해졌건만,
순임금 같은 분을 만날 수 없으니
누가 나의 참모습을 알아주랴!

예로부터 [어진 신하와 군주는 때를] 같이하지 못하니
어찌 그 까닭을 알리오?
탕임금과 우임금은 아득히 먼 분이라
막막하여 사모할 수도 없네.
한을 참고 분노를 삭이고
마음을 억눌러 내 자신을 스스로 힘써 본다.
슬픔을 만났으나 절개를 꺾지 않으리니
내 뜻이 뒷날의 본보기가 되기 바라네.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머물려 하니
날이 어둑어둑해져서 어둠이 깔리네.
근심을 삼키고 슬픔을 달래면서
오직 내 죽음을 바라본다.


* 이루(離屢) : 전설 속에 나오는 인물로 유달리 눈이 밝아 100보 밖의 가을 터럭까지 분명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맹자에 나오는 그 이루가 맞다.

 

ps : 거기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대한민국이 황우석 사건으로 시끄러웠을 때, 그리고 pd수첩이 생사의 기로에 빠졌을 때 아무도 pd수첩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사저널은 사태를 꼼꼼히 관찰하고 '충분히 타당한 비판이다'는 평가를 내주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후에 pd수첩 관계자들이 이 일을 두고두고 고맙게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후에 '시사저널 사태'가 생겼습니다. 이를 보도한 pd수첩의 방영분은 여러분이 보신 것과 같습니다.

알라딘 피에스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844228

작년 초에 했던 설문조사 이야기를 기자들에게 했습니다. 그때는 '시사저널' 자체를 몰랐군요. 부끄럽습니다. 결국 한겨레21을 보기로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정말 후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시사저널을 알았다면, 혹은 시사저널이 많은 표를 받았다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요. 아마 투표를 하신 분들까지도 저는 원망하였을 겁니다. 워낙 속이 좁은 놈이다보니까요. 
깜짝 놀랄 만한 대답을 들었습니다.
서명숙 누님(편집장)은 "한겨레21도 훌륭한 시사잡지이다"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서 한겨레21의 공격은 너무 괘씸하다고 제가 불평했습니다. 그랬더니 은남이 누난지 은주 누난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당연한 거다. 영업하는 사람들은 이 기회를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거다. 하지만 한겨레21이라는 언론의 정신은 분명히 있다. 이것이 같지 않다"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어요.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언론은 스스로 '모순된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언론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인간적이기 때문이죠. 보도부장은 삼성을 까는 기사를 잃지 않으려 윗선과 다투고, 광고부장은 광고를 잃지 않으려고 또 윗선과 다투는 광경이 벌어지는 언론사의 '일상적인 장면들'을 저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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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2007-03-18 0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수영의 낙타과음! 비유가 참 멋져요.^^
촘스키,
"모든 형태의 권력은 그 자체가 사악하다!!!"

승주나무 2007-03-18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맑음 님//안녕하세요. 독서에서 나온 비유라고나 할까요 ㅋㅋ
과음과 장문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좋은 글인 것 같아요. (낙타과음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