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표절 시비가 한창이다.
'표절'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고민해서 애써 이룩한 성과물을 허락 없이 베낀다는 의미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적 의미'도 덧붙여지는 추세다.
서울대 논술문제에 표절시비를 건 사교육 강사의 경우는 사교육 전례를 비춰보았을 때 '한 건'에 대한 관점이 강하다. 서울대가 조목조목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이미 '이의 제기자'들의 관심사는 아니다. 이를테면 이들은 이익실현을 한 셈이다. 표절 등의 사회문제가 대세가 될 때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관련한 여진들이 신문지상에서 매일같이 쏟아진다. 쏟아진 여진만큼 사람들의 판단력도 마비됨을 보게 되는 것은 매우 일상적인 일이다.

호사카 유지라는 세종대 교수는 경향신문에 흥미 있는 칼럼을 기고했다.

[한국에 살아보니] 일본의 억지를 이기는 법


이 중에서 "한국측은 그런 일본의 행동에 항상 화를 내는 것으로 오히려 감정을 지배당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잘못된 과거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나쁘지만, 한국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한 주요 쟁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이라도 갖고 있다면 냉정하게 이 문제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일본도 한국에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라는 조언은 귀에 매우 익숙하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판단력이 급격히 흐려지는 병통을 앓고 있다.
그것은 순전히 언론의 '박리다매'이거나 호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표절 사태를 심층적이고 명쾌하게 건드린 논의들이 언론에 보이지 않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아니면 전적으로 나의 게으름 탓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을 배반한 과학원로들은 어떤 마음에서 표절을 '감행'했을까? 이들이 왜 표절했는지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음이 안타깝다.
매우 오랫동안 학문에 정진하신 분들의 고견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불경스럽기도 하거니와 나의 내공으로 가기에는 역부족일 수도 있지만, 항간에 논의되는 '표절 문화'라는 추상적이기 그지없는 허무한 관점보다는 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맹자는 사람의 병통 중 가장 큰 것이 '항상 누군가의 스승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최소한 원로들이 사회의 대세에 편승해 돈을 벌고자 표절에 동참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학계에 경종을 울리고 자성을 촉구하고자 한 진심에 대해서는 뭐라 하지 않겠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학자는 대중에게 혹은 동료 학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자성을 촉구해야 하는가. 당연히 그것은 자신의 학문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을 '편집'으로 보여주고자 한다면 시류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나는 이 대목에서 학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상실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논술강사는 논술강사로서 자성을 촉구하고, 작가는 작가로서,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들이 결여하고 있는 것은 또 있다. '자성'을 촉구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자성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본인에게는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의지를 가지고 누군가의 자성을 촉구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가 아닐까. 학문적 타성은 여기서 파생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 분들이 데카르트처럼 하룻밤이라도 엄밀히 성찰하고 반성하기를 시도하였다면 이들이 노출한 것들을 대부분 포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이들이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기 위해서 표절을 했다는 비판은 너무나 관대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본질적으로 정체성에 대한 성찰이 결여되어 있고, 때문에 일관된 행동이 나타나지 않은 자멸현상이라고 보고 싶다. 내가 학계를 도매금으로 비판할 입장에는 절대로 있지 못하겠지만, 학문을 사랑하는 젊은이의 입장에서 우리의 학문이 자멸해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애통하다.

진실 배반한 과학원로들…외국책 베껴 파문
입력: 2007년 03월 02일 18:15:49
 
‘황우석 논문조작’ 사태를 계기로 연구자의 표절 등 부정행위를 방지하자는 취지로 출간된 책이 외국책을 그대로 베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과학계 원로들이 과학자의 부정행위에 경종을 울리자며 쓴 ‘탐욕의 과학자들’(왼쪽). 1982년 미국에서 출간된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의 일부를 그대로 도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무단도용한 저자들이 한국천문학회장을 역임한 경희대 민영기 명예교수,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건국대 박택규 명예교수 등 과학계 원로들이어서 더욱 충격적이다.

2일 출판계에 따르면 올해 1월 출간된 ‘탐욕의 과학자들’(일진사 펴냄)은 전체 25%에 해당하는 84쪽을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Betrayers of the Truth)’에서 무단도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책은 갈릴레오·뉴턴·다윈 등 고대 과학자에서부터 최근 과학자들까지 표절 등 부정행위 사례를 엮어 출간됐다. 머리말에는 ‘연구 진실성과 투명성을 촉진하는 데 기여하고자 출판했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이 책은 1982년 뉴욕 타임스 과학담당 기자인 윌리엄 브로드 등이 저술한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의 일부를 그대로 도용했다.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은 국내에서 한차례 번역소개됐지만 별 주목을 끌지 못했다가 지난달말 미래M&B에서 재출간됐다.

‘프롤레마이우스의 관측 오류’를 담은 부분의 경우 ‘탐욕의 과학자들’과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이 내용이나 표현, 글의 진행이 거의 유사하다. 갈릴레오, 뉴턴, 돌턴, 다윈, 멘델 등의 부정행위를 설명하는 총 19쪽에 달하는 내용은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을 그대로 베낀 수준이다. 로버트 훅의 부정행위 사례를 담은 부분 역시 29~30쪽에 걸쳐 그대로 베꼈다. 심지어 민영기 교수가 필자로 돼 있는 ‘펄서 발견에 얽힌 사제 간의 공적 논란’은 15쪽에 걸쳐 주어·서술어·수식어의 흐름이 모두 유사하다.

당사자도 ‘무단도용’에 대해서 시인했다. 민영기 교수는 “다른 공동저자가 원서를 주면서 저작권이 이미 소멸돼 편저로 내자고 했다”며 “책이 출간된 이후 표지에 저자로 돼 있어서 출판사측에 잘못됐다고 항의했다”고 해명했다. 박택규 교수는 “편저라 하더라도 출처 표시를 하지 않은 점은 잘못”이라며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을 판권 없이 편집출판하는 관행에 대해서 잘못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인 일진사의 대응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일진사는 출간된 이후 ‘편저’라는 사실을 필자들로부터 들었으나 곧장 책을 회수하지 않았다. ‘편저’라고만 쓰인 띠지를 만들어 판매를 강행했다.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을 출판한 미래M&B측은 “책의 일부를 발췌한 것도 아니고 무더기로 베꼈으며 역사연표까지 모두 표절했다”면서 “출처를 표시하든가 번역자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진우·임지선·이고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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