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와 88만원]그들은 왜 비관주의자, 한탕주의자가 되었나
- 홍세화, 우석훈 공개강연회 취재스케치



대한민국의 80%는 서로 닫혀 있고 개별적으로 살아가는 단자와 같다

"단자(單子)는 외부와 교섭하는 창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서로 작용하는 법이 없고 그 일체의 변화는 전혀 자발적, 독립적으로 자기 안에서 생긴다."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von Leibniz : 1646.7.1 ~ 1716.11.14)가 자신의 저서 《단자론() Monadologia》(1720)에서 밝힌 특징의 앞 부분이다. 이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서로 닫혀 있고 일체의 교류를 할 수 없다. 그냥 자신의 삶만을 살아갈 뿐이다. 여기서는 불필요하지만 뒷부분은 꽤 낙관적이다. 이들은 서로 만날 수는 없지만 모두 어떤 정도나 특징에 따라서 연결되어 있으며 신이 만들어낸 예정조화에 따라서 우주 전체가 무한한 다양성과 조화의 질서에 따라서 다스려지고 있다. 아마 라이프니츠가 2007년의 대한민국의 현장을 목도한다면 단자론의 뒷부분을 당장 폐기했을 것이다.
필자가 갑자기 '단자'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홍세화 씨와 우석훈 씨의 공개강연을 들으면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단자처럼 개별적인 인생에만 집착하는 모습이 마치 닫힌 단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람들, 특히 10~20대들은 서로 소통하지 못하면서 개별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홍세화 씨와 우석훈 씨를 더욱 아프게 하는 부분이다.
홍세화 씨는 강연 내내 얼굴표정이 굳어 있었고 내용 역시 비관적이었다. 스스로도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몇 번이고 언급했다. 그래서 홍세화 씨를 비관론자로 그렸다. 우석훈 씨는 상대적으로 젊고 명랑해서 그런지 '한탕주의'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한탕'에서는 우리가 피해야 할 한탕과 우리가 잡아야 할 한탕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탕이 곧 온다.


뜨거운 방청객과 싸늘한 강연의 부조화

12월 1일 오후 2시 서교동 작은책 사무실이 있는 태복빌딩 2층 강당에서 홍세화 씨와 우석훈 씨의 공개강좌가 열렸다. 강연의 주제는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유신세대, 386세대, 88만원 세대가 이야기하는 우리시대 진보의 교양"이었다. 인터넷서점 예스24와 진보를 표방하는 두 출판사 철수와영화, 레디앙 미디어가 주최를 맡았고, 월간 작은책이 협찬했다. 6~70석 상당의 강연장 좌석은 들어찼으며 고교생에서부터 88만원세대 당사자, 교사, 비정규직 파업노동자, 철학전공 대학원생, 2명의 아이를 둔 학부모,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계층이 뜨거운 관심을 보인 자리였다.
본 강연에서부터 뒤풀에까지의 진행은 월간 작은책의 안건모 발행인과 출판사 철수와영희의 박정훈 대표가 맡았고, 레디앙 출판사 이광호 대표가 본 강연의 진행을 맡았다.


<6~70석 규모의 강당에는 고등학생에서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88만원 세대와 진보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방청객들의 뜨거운 관심과는 달리 강사들은 싸늘했다. 홍세화 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강연 시간 내내 별로 웃지도 않았다. 우석훈 씨 역시 다르지 않았다. 머리를 긁적이면서 시종 답답한 심사를 감추지 않았다. 특히 우석훈 씨는 같은 세대인 386세대에 대해서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두 강연자들이 이런 분위기일 수밖에 없는 사실은 그들이 최근 출간한 책 안에 담겨 있다. 홍세화 씨는 안건모, 박중성, 이임하, 정태인, 하종강 씨와 공동으로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철수와영희)를 출판했고, 우석훈 씨는 『88만원 세대』(레디앙미디어)를 출간했다.


홍세화 씨는 왜 비관주의자가 되었나

홍세화 씨의 강연에서는 좌절과 절망의 깊이를 읽을 수 있었다. 세상에 펼쳐진 장면이 온통 전쟁이고 난장판이지만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더욱 답답한 심연을 만난다.
최근 출간된 저서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의 표제는 홍세화 씨의 강연에서 나왔다. 그는 20이 80을 지배하는 '역사적인 방식'이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 번째 방법은 80을 분열시킨다. 이주노동자/내국인노동자, 여성/남성, 숙련노동자/비숙련노동자, 정규직/비정규직, 이렇게 세부적으로 분열시키면 결코 단결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합지졸이 된 80을 지배하기란 어렵지 않다.
두 번째 방법은 80 스스로가 자기의 처지를 배반하게 만드는 것이다. 즉 80에 속하면서 20을 편들도록 의식화한다. 이는 학교교육이나 언론장악 등 현재 일반화된 체제의 틀로 가능하다.

단적인 사례로 홈에버, 뉴코아에서 파업투쟁을 벌였던 비정육직 계산원들의 취재 사례를 소개했다. 차마 지면에는 실을 수 없었다는 사연이다. 2002년 대선에 어느 당에 투표를 했는지 물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한나라당을 지지했다고 하였고, 나머지는 열린우리당이었다. 민노당을 투표한 사람은 단 1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홍세화 씨는 우리나라에서 80에 속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배반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그는 이를 '몸과 의식'으로 나눠서 설명했다. 즉, 몸이 건강하지 않다면 몸에서 신호를 보내 위험을 경고하지만 의식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자기 처지를 배반하더라도 의식을 끊임없이 고집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맹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사람들은 자신이 기르던 개나 닭이 우리에서 도망치면 이를 잡으려고 하지만, 자기 마음이 도망을 치면 절대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人有?犬放, 則知求之; 有放心, 而不知求)고 했다.
홍세화 씨는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보다 인간은 '합리화의 동물'이라는 것이다. 사람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은 세뇌된 의식을 내면화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식을 바꾸려는 설득에 대해 모순된 자기의식을 고집하며 이를 합리화시키는 것이 설득을 더 어렵게 한다. 이 지점에서 홍세화 씨는 80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단결하고 저항하기 위한 '의식화'보다, 이제까지 20에게 세뇌당했던 자기배반적 의식을 깨부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탈의식'이다. 의식보다 탈의식을 이루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부분이다.

<홍세화 씨는 강연 내내 상기돼 있어서 웃는 표정을 찍기가 어려웠다. 그는 80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기배반의 의식을 가지게 된 까닭은 학교교육이나 대중매체를 지배세력이 장악하여 세뇌를 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인간이 본래 자기 고집을 합리화시키려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홍세화 씨가 '탈의식'을 강조하는 이유다>

 

계층간의 횡적 연대와 세대 간의 종적 연대가 어려운 까닭

세대와 계층을 넘나들며 자연스러운 연대 의식의 환경 속에서 이민 생활을 했던 홍세화 씨의 입장에서는 우리 사회의 '무한경쟁'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특징이다. 그는 연대 의식의 실종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훼손하고 20대 80의 구조를 더욱 악화시키거나 고착화시킨다고 역설한다.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에서 그는 스페인과 프랑스의 사례를 들며 일상화된 '사회환원의식'을 소개하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 등 선망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자신들의 성취 안에는 사회가 기여한 몫이 상당하기 때문에 그 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스페인은 무상 의료를 제공하면서도 친절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돈을 받으면서도 불친절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한국의 엘리트층은 경쟁에 서 이겼다는 특권 의식과 이기기 위해 들인 엄청난 비용을 회수하려는 '본전 생각' 외에 '환원의식' 자체를 기대할 수 없는 환경이다.

이런 환경은 통계를 통해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한국조세연구원이 지난해 10월에 발표한  '조세ㆍ이전소득의 분포'라는 보고서에서는 2003∼2005년 가계수지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2003∼2005년중 전국가구의 사적이전소득이 연평균 20.5% 늘어나 같은 기간 연평균 5.8% 증가에 그친 총소득에 비해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사적이전이란 가족 구성원 한 사람의 소득이나 복지를 가족 내의 또 다른 구성원이 가진 자원에 의존하는 현상을 말한다. (연합뉴스 2006년 10월 3일자 "생활비 지원 등 사적이전소득 181만원" 기사참조) 한마디로 사회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가족 구성원에게 전가되는 상황이다. 이렇게 사회적 보장장치가 느슨해질 수록 사회환원의식은 약해지고, 가족구성원이 비용은 물론 과실까지 독식하는 현상이 가중되는 구조가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대학의 경쟁력도 마찬가지다. 홍세화 씨에 의하면 프랑스는 의과대학의 2학년 진학률이 10%이고, 국립대학생이 1,2학년을 2년 안에 마치는 비율이 25~30%, 3년 동안 2년 과정을 마치지 못하여 강제퇴학을 당하는 비율은 60%라고 한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구조다.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대학에 들어가서 몇 년 안에 수료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수능을 얼마나 잘 봐서 좋은 대학에 입학했느냐로 모든 것이 결정나는 사회다. 우리 사회의 엘리트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일년에 딱 두번, 대학 입시 때 한 번, 취직하려고 한 번 공부하는 것 이외에 전혀 공부를 하지 않으니까 무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홍세화 씨의 설명을 듣다 보면 한숨을 깊어지고,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졌다. 강의 말미쯤에는 방청객들의 얼굴이 홍세화 씨처럼 상기됐다.

우석훈 씨는 그 칼럼에서 언론사가 자사의 편집방향에 맞게 편취했지만 지엽적인 부분을 환기한 데에 불과하거나 오히려 20대를 파렴치한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석훈 씨는 강연에서 문제만 제시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답은 당사자들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 도달해야 하는 것이지 자신이 제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써놓았던 10개 가까운 답안지들을 모두 삭제했다고 한다. '짱돌과 바리케이트'역시 상징적인 구호에 불과하다고 고백했다. 이것이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은 책을 읽으면 금방 알 수 있다. 전반부에 배틀로얄에서 떨어져나간 95%가 모두 죽어 떨어지는 데 누가 짱돌과 바리케이트를 들 수 있을까? 오히려 문제의 심각성을 다방면으로 제시하며 인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석훈 스타일의 '수사'는 이전의 작품인 『FTA, 폭주를 멈춰라』에서도 나타난다. 그 책에서 우석훈 씨는 "가계 소득이 한 해 6천만원을 넘지 못하는 80%의 국민들은 이민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썼다.

<홍세화 씨가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방청객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홍세화 씨는 강연 내내 상기된 표정을 풀지 않았다> 

우석훈 씨는 왜 한탕주의자가 되었나

우석훈 씨가 최근작 『88만원 세대』에서 사용한 '짱돌과 바리케이트'가 항간의 유행어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수사적 표현이지 결론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언론은 그것을 결론으로 포장했다. 우석훈을 진지하게 소개한 최초의 언론사는 단연 <시사IN>이다. <시사IN> 3호는 "분노하는 88만원 세대, 유신세대와 386은 착취를 멈춰라"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며 무려 7꼭지 13면을 털어넣었다. 거기에는 우석훈 씨의 자서도 있었다.

필자가 더 관심을 두었던 것은 '수사'가 아니라 수사 안에 담겨져 있는 '한탕주의'였다. 우석훈 씨는 고3 예비수험생들에게 '수능파업'을 해보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른바 '집단해법'이라는 것인데, 작금의 상황은 매우 구조적인 모순에서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해법만 고집하는 것은 자멸의 길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참에 집단해법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은 학습이 되리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우석훈 씨가 제안하는 '집단해법'이라는 것은 상황과 계기가 성립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중간과정이 빠진 논증이다. 때문에 한 방청객은 짱돌을 드는 과정이 중요하지 않은가 하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우석훈 씨는 한탕이 일어나는 방식에 대해서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상황으로, 이대로 가면 '내전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지금은 20대끼리도 서로 증오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단결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한탕' 즉 '혁명'이 아니라, 더욱 무질서한 상황, 즉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 과정된 억측일 수도 있지만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가 나타나고 이에 열광하는 '전체주의 상황'을 맞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요컨대 우석훈 식 한탕주의는 집단해법이나 바리케이트 같은 빅뱅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닥치게 될 '한탕'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끌고 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렇다.
"한탕이 온다. 이에 대비하라"

 

<우석훈 씨는 강연을 하면서 여러 번 머리를 긁적였다. 이는 '쑥스러움'보다는 자신이 분석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게 아닌데, 이렇게 가면 안되는데'하는 안타까움으로 해석됐다> 

 
뜨거운 토론과 더욱 뜨거운 뒤풀이

1시간으로 예정된 강연이 끝나고 1시간 반 동안 방청객의 질의응답을 받았는데, 예정 시간에서 한참 더 늘어났다. 방청객들은 절실했고 관심은 뜨거웠다. 삼산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88만원 세대인 언니와 함께 이 책을 읽었는데, 언니는 자신이 88만원 세대라는 것에 대해서 도무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철없는 언니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해줘야 하나?" 하고 제법 어른스런 질문을 던지자 강연장에 웃음꽃이 피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는 아이들이 사교육 때문에 12시 반에 들어오고 교육문제가 뭐가 잘못된 것 같은데 자신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쉽게'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한 고교 교사는 우석훈 씨의 '짱돌과 바리케이트'에 대해서 과정이 생략돼 있다며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것이 가능한지 따져물었다. (방청객과의 자세한 문답내용은 딸림기사를 참조할 것)

<자신이 88만원이라는 사실을 도무지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철없는 언니'에게 뭐라고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당찬 고등학생의 물음에 강연장은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 열기는 뒤풀이로 이어졌다. 3~40명 정도가 강연이 끝나고도 돌아가지 않고 '뒤풀이장'으로 향했다. 진행자의 제안으로 한 사람씩 일어나서 자신이 이 자리까지 오게 된 데 대해서 소개를 했다. 홍세화 씨, 우석훈 씨가 자리를 함께 했으며,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 88만원 세대, 고등학생, 고등학교 교사, 비정규직 단식투쟁을 하다가 당일 퇴원한 청년,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우리 사회의 80에 해당하는 생활인들이 모두 모였다. 강연과 뒤풀이에서 깨닫고 느낀 이야기를 펼쳐 놓으며 즐겁게 떠들었는데, 한 학교 선생님이 전하는 자신의 학교 학생의 말을 전해들을 때는 모두 숙연해졌다.

“우리들은 한 번도 민주주의 아래 산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음은 뒤풀이에서 남긴 사람들의 말

대학 4학년 졸업반 최연 씨

군산에서 올라온 졸업 앞둔 대학 4학년생이다. 나의 인성, 자아를 의심하는 어떤 분으로부터 일독을 권유받았다. ‘이 책 읽고 정신차려라’는 충고와 함께. 해서 보게 됐고, 작은 책을 정기구독 하게 되었다. 넓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코스콤 비정규직 조합원 정인협 씨

단식투쟁 하다가 병원에서 10일간 치료와 복식을 하고 오늘 퇴원했다.

어떻게 하다가 인연이 돼서 좋은 말씀 듣게 돼서 반갑고 힘을 얻고 가게 됐다.

노조를 하게 된 계기로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뜨게 되었다.

나도 역시 노동투쟁할 때는 비정규직임을 부정하려 했지만, 본인이 비정규직임, 또는 잠재적 비정규직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식이 아쉽다.

 

<포스콤 비정규직 노동자 정인협 씨는 파업투쟁을 할 때 비로소 노동운동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사회를 보는 눈을 뜨게 되었다고 말했다. 홍세화 씨와 대화를 하고 있는 정인협 씨> 

 

홍세화 씨

잘 안 보이는데, 그래도 곳곳에 희망의 거처가 있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고 간다.

상식적이고 정의롭고 공평한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감기 들지 마시라.

 

우석훈 씨

겉똑똑이와 속똑똑이가 있다.

혼자서 자기가 똑똑하다 하는데,

진짜 똑똑한 사람들은 팀플로 한다.

(스타크래프트에서) 테란 플레이 하듯 현실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천 삼산고 주원진 학생

학교 생활 하면서 만나지 못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았다.

불분명한 것들이 정리돼서 즐거웠다.

이것은 학교에서, 학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이었다.

 

삼산고 국어교사

삼산고 독서모임 교사이다.

교사, 학생 공동토론 했는데,

자꾸 눈물이 나왔다.

어떤 학생이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들은 한 번도 민주주의 아래 산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슬펐다.

<강연회가 끝나고 못내 아쉬운 사람들이 뒤풀이 장소로 이동했다. 홍세화 씨는 곳곳에 희망의 거처가 있음을 확인하고 간다고 마무리 소견을 밝혔고, 우석훈 씨는 스타크래프트의 테란 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팀플레이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못내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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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2-04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에서 주최한 강연회 가셨군요!! 부럽부럽.

승주나무 2007-12-05 12:16   좋아요 0 | URL
요즘 읽은 책마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쏙쏙 들어오네요.. 부럽져~! 부럽져!! (퍼퍽!! 까불다 한대 맞음 ㅠㅠ)
 

 


관장님들, 도서관은 '독서실'이 아니거든요
제6회 느티나무도서관학교 정규강좌를 다녀와서

오승주 (dajak97)


 

 

 



  
도서관학교에 참가한 예비도서관장이나 운영자들은 대체로 도서관 건립을 앞두고 있거나 건립한 지 1년의 초년생들이어서 도서관의 공간구성이나 기본원칙에 대해서 목말라 했다
ⓒ 오승주
경기문화재단

 

지역도서관은 공동체공간이며 매뉴얼보다 지역적 개별성 고려

 

도서관장 : 도서관 운영을 해보니 신발을 신거나 벗는 문제, 책을 제자리에 꽂는 문제 등 반복되는 고민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지침을 담은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지요?

 

강사 : 매뉴얼을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보면 매뉴얼이 가장 위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꾸 남의 것을 모방하려는 습관이 있는데, 도서관은 지역문화이기 때문에 차별성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적의 도서관이 도서관 보급에 공헌한 바는 무척 크지만 너무나 많은 도서관이 획일적으로 늘어난 것은 좋지 않은 현상입니다.

 

도서관장 :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매뉴얼 말고, 최소 원칙을 담은 가이드라인이라도 만들어야 일선에서 혼란이 덜하지 않겠어요?

 

강사 : 좋은 지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 지역적 특색과 개별적 가치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

 

강의실의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참석자들은 전국에서 찾아온 예비도서관장들이었는데, 매우 사소한 부분부터 원론적인 점까지 많은 고민을 호소했다. 멀리 부산에서 온 예비관장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거처를 개조해 직접 도서관을 운영하겠다는 스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열기를 살펴보면 즐거움보다는 씁쓸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세미나실의 모든 구성원들은 온몸으로 우리나라 도서관 현실의 초라함을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관장이 직접 매뉴얼과 가이드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는 것은 현재 정착된 도서관 역시 매우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상황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느티나무도서관은 건립한 지 8년째 되어 축적된 자료도 충분하고 이미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를 지나 왔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리고 이번 행사가 '전국 규모'라는 점을 상기할 때 도서관이 매우 지역적인 특색을 갖춘 문화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부산에서 경기도까지 연수를 받으러 찾아오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기 그지 없는 것이다.

 

제6회 느티나무도서서관학교 정규강좌가 10월 24일~11월 24일까지 용인 수지에 있는 느티나무도서관에서 열렸다. 느티나무문화재단(www.neutinamu.org)에서 주최를 맡았으며, 경기문화재단( www.ggcf.or.kr)이 후원했다. 필자는 11월 21일 정규강좌로서는 마지막 날 강좌 현장을 찾았다.

 

도서관은 경제 원리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

 

지금도 '도서관' 하면 '독서실'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서울 시내 대부분의 도서관에는 종합자료실보다 '열람실'의 비중이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2006년 말 기준 서울 구립도서관 33개 중 독서실이 없는 도서관은 8개뿐이고, 그나마 이 중에서 5개는 어린이도서관이다.

 

대부분의 도서관은 자료실 좌석보다 독서실 좌석이 더 많다. 이런 현상이 가중될 경우 가장 우려되는 문제는 바로 '소통'이다. 독서실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이용자는 공무원 공부나 각종 시험 공부 등 목적이 분명하고 문화와는 거리가 먼 개인적인 이용자들이다. 이들이 도서관 문화에 참여하거나 의견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도서관계의 중론이다. 때문에 도서관계에서는 도서관에서 '열람실/독서실'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조사한 2006년 서울시 구립도서관의 운영 형태를 보면 지자체보다 시설관리공단이 운영 주체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공익성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이다. 수익을 내기 위해 커피전문점을 입점시키는가 하면 문화강좌, 주차장 등의 유료화도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구립도서관 중에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곳이 광진정보도서관이다. 광진도서관은 2000년에 건립된되어 세련된 공간디자인과 건축규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당시 건립비 200억원 중 자료구입비는 3억원 정도로 저조했는데 이후 해마다 자료구입 예산이 감소했다. 게다가 2005년부터는 운영주체가 광진구문화원에서 광진시설관리공단으로 바뀌면서 수익창출에 매달리기 시작했고 무료 공연이 열렸던 야외 공간을 테이크아웃 커피점에 임대를 주었고, 무료였던 주차장·사물함 이용료도 유료가 됐다.

 

자료구입비 역시 매년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2005년 1억1000만원에서 2006년 6300만원으로 절반이 줄었다. 독서실의 공간은 오히려 확대됐다. 건립 당시 한 개 동 4층에만 독서실이 있었는데, 주민들의 요구로 지금은 한 개 동의 2층~4층이 모두 독서실이 됐다. 이로써 광진정보도서관은 '독서실'과 '데이트코스'로 각광받게 되었지만, 도서관 고유의 가치에서는 완전히 멀어졌다. 당분간 도서관 문화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광진정보도서관을 '반면교사'로 삼아도 좋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도서관의 '개념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곳도 있다. 2006년 6월에 개관한 동대문구정보도서관은 실질적 주체가 운영자가 아닌 이용자, 즉 시민이란 점이 특색이다. 시민단체인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은 ‘성찰하는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개관한 이곳은 처음부터 독서실(일반 열람실)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 도서관을 암기가 아닌 사색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도서관 사업은 경제 원리와 사회적 책임과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느티나무도서관학교의 실무를 담당한 강영아 사서도 이와 같은 고민을 토로하였다.


좋은 취지를 가지고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좋은 자료를 축적하고 문화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을 확충하려고 하더라도 계속 돈이 들어가는 사업이기 때문에 수익성의 관점에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강 사서의 주장이다. 하지만 현실은 돈벌이가 우선시되기 때문에 기업체 자료실, 신문사 자료실의 순서로 중시되고 어린이도서관이 제일 뒤의 순서라고 한다.

 

※ 도서관 실태에 관한 참고기사(부분 인용함)


1. 경향신문, 2007년7월2일자 "[도서관을 살리자]‘소통’막는 독서실 도서관을 떠나라"

2. 경향신문, 2007년7월2일자 "서울 공공도서관 ‘공공성’이 없다…수익성만 추구"
3. 경향신문, 2007년7월2일자, "[도서관을 살리자]“사색·성찰의 공간…독서실이 없어요”"
4. 경향신문, 2007년5월21일자 "‘독서 서포터스’ 광진도서관 ‘친구들’"

 





  
11월 21일 강사로 나선 포스A.C의 이인범 건축사로부터 "도서관 공간 어떻게 꾸밀까"라는 주제를 가지고 강연을 듣고 있다
ⓒ 오승주
느티나무도서관학교

 

지역문화를 위한 경기문화재단의 역할
 

필자가 경기문화재단의 모니터링 비평가 활동을 하면서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경기문화재단에 대한 아쉬움이다. 대체로 사업 계획을 세우면서 경기문화재단이 어떤 역할을 할지는 딱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신청 자금의 50~60%선에서 지원액이 결정되고 자금지원 외에는 별로 받아본 경험이 없다는 반응이 한결 같았다.


필자 역시 이러한 불만에 동의한다. 경기문화재단이라면 경기도의 문화단체를 음으로 양으로 지원해주는 든든한 '비빌 언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자금지원창구'로 역할이 한정돼 있다. 게다가 모니터링 활동 역시 '감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모니터링은 경기문화재단을 대신해서 현장 단체들의 어려움을 듣고 이를 지원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설득한 이후에도 경계심을 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문화비평가로서 상당히 난감할 때가 많다.


필자가 현장 인터뷰를 가기 전에 받는 자료는 '교부신청서'라는 관련 서류이다. 지원을 의뢰한 단체의 신청서를 수렴하고 지원액을 결정하고 쌍방이 협의한 일종의 '합의서'라고 할 수 있는데, 첨부 자료로는 문화지원금 신청서와 사업계획서 등 각종 서류가 포함된다. 하지만 필자의 모니터링 활동이 경기문화재단의 지원활동에 얼마나 반영되는지는 회의적이다. 심지어 인터뷰 후에 제출하는 보고서와 한 장의 비평서를 확인하는지조차도 의심스럽다. 만약 모니터링 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모니터링과 재단의 소통이 원활하다면 현장에서 이와 같은 거부감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암행어사가 임금의 전권을 위임받고 백성들의 민원을 듣고 불합리한 것을 교정해 주었던 것처럼, 모니터링 비평가는 경기문화재단의 전권을 위임받고 현장의 아쉬운 소리를 '듣는' 데에 신경을 써야 하고, 경기문화재단은 모니터링 비평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느티나무도서관의 강영아 사서의 말과 같이 고압적이고 무관심한 면이 적지 않다. 마치 정부의 관료처럼 민원인 위에 군림하려는 인상을 여럿 느꼈다는 주장을 자주 듣는다.

그렇다면 경기문화재단이 재정지원 외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을 들으니 경기문화재단이 해야 할 일이 의외로 많았다. 재단의 지원을 받는 문화단체들은 대체로 영세하기 때문에 홍보와 일정 조율, 유관 기관과의 협조에 상당히 애를 먹고 있었다. 경기문화재단이 지위를 통해 유관기관과 협조하거나 영향력을 이용해 홍보를 대행해준다면 훨씬 부담이 덜할 것 같다는 주장이 일반적이었다.


강사 지원이나 프로그램에 대한 자문 역시 현장에서 절실한 문제였다. 경기문화재단이 협력하고 있는 많은 문화단체의 프로그램을 접수받는 상황이라면 효과적인 컨설팅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현장의 의문이다. 하지만 경기문화재단은 이러한 목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지원영역의 편차도 문제다. 강영아 사서에 의하면 경기문화재단은 공연이나 전시 중심의 문화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는 듯 보이며, 도서관이나 일상문화공간에 대한 실무자의 경험이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도서관을 전시/영화/공연 등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모니터링과 경기문화재단의 소통이다. 모니터링 요원이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을 몇 쪽짜리 보고서에 담기에는 무리가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재단측에 전달할 수 있는 창구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재단과 모니터링 요원 간의 대화 공간은 전무한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보고서만으로 경기문화재단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지원정책에 반영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도서관은 창의성, 아이디어, 콘텐츠가 아니라 '기본'에서 시작하는 것

 

강의가 끝나고 나서 몇 명의 참가자와 인터뷰를 나눴다. 지방에서 온 참가자가 많은지라 인터뷰하기가 쉽지 않았다. 참가자들에게 어떻게 알고 이 행사에 참아하게 되었는지, 무엇을 얻었는지, 아쉬운 것은 무엇인지, 현장 실무에서 어려운 것은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대체로 도서관 운영이나 건립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기 때문에 홍보보다는 스스로 갈구하여 찾아온 경우가 많았다. 어린이도서관 문화재단에서 건립위원회 일을 맡고 있는 조현정씨는 재단에서 추천해서 등록하게 되었다고 했다. 부산 어린이도서관 '맨발동무 도서관' 관장인 임숙자씨는 이런 프로그램이 주변에는 찾을 수가 없어서 홈페이지를 통해 알게 돼 이번 행사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가장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 점은 예상 외로 '기본'과 '원칙'이었다. 강좌 실무 담당자 강영아 사서 역시 기획 단계에서부터 원칙과 기본을 강조하였다고 말했는데 이런 취지가 확실히 각인된 듯했다.


참가자들이 말하는 기본 원칙이라는 것은 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일상적 가치에 대한 공감, 도서관의 문화적 정체성, 지역과 소통하는 공동체공간, 주민참여공간 등 하나하나 소중한 가치들이었다.


부산 맨발동무도서관 임숙자 관장은 이전에는 피부로 느끼지 못했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게 되었고, 이제까지 자신들이 노력해온 것들이 하나같이 공공성에 포함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쉬운 점으로는 '사례'를 꼽았다. 사례가 다소 미흡했다는 평이다. 조금 더 세분화해서 알려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았고 현재 12강으로 운영되는 강좌를 조금 더 확대하였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강영아 사서는 이번 강좌가 대학으로 따지면 모두 학점이 있는 정규강좌라고 말했다. 한 학기짜리 정규강좌를 1일에 소화하는 데서 참가자에겐 부담이 될 법하다.


다음은 강영아 사서 일문일답



 



  
느티나무도서관학교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강영아 사서(사진)는 도서관 사업은 지역공동체와 지역문화를 담당하는 고유한 공간이기 때문에 경제원리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 오승주
느티나무도서관

- 참가자들로부터 어린이도서관 운영에 대한 어려움과 사연을 들어 보았다고 하는데, 어떤 점이 문제인가?
"일반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2002년 기적의 도서관이 많은 화제를 낳으면서 도서관이 공공영역의 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자료접근이나 이용, 자율성, 비용부담 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책 읽고 문화 누리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는데, 이런 욕구를 해소하려는 노력은 그야말로 '띄엄띄엄'이다.

 

도서관 사업은 돈이 계속 들어가는 문제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문제의식이 확립되지 않으면 사업을 추진하고 진행해 나가기가 쉽지 않다. 현장의 어려움도 이와 같았다. 대학에서도 개설과목이 별로 없다. 돈벌이가 우선이므로 자꾸 뒤처진다. 도서관 역시 기업체 도서관, 신문사 자료실 순이고 어린이도서관은 맨 뒤쪽에 있다."

 

-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번 강좌에는 어떤 부분에 신경을 썼나?

"처음에 시작하시는 분들은 테크닉이나 콘텐츠 자체만 눈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 다음에는 그것을 하는 이유, 정체성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번 강좌는 처음부터 이런 가치들을 이해시키고 그 기반 위에 여러 가지 개별적 특성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밑작업에 신경을 많이 썼다. 2강 도서관의 사회적 역할 과 자리매김이나 3강 도서관의 자리매김 사회적 접점을 넓혀갈 것인가, 9강 함께 만들고 누리는 도서관 문화 같은 사회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담으면서 강좌가 너무 추상적이지 않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참가자들이 잘 이해해주어서 고맙다.


결국 역사와 철학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어디서부터 시작됐고 왜 시작됐는지를 알아야 방향성이 생긴다. 처음 도서관을 건립할 때는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다."


- 참가자들의 분포는 어떻게 되나?

"지역분포는 일산 지역의 분들이 다수이다. 그밖에 경기의 양평, 성남, 송탄이 있고 서울에서 오신 분도 있고 부산에서 올라오신 분도 있다. 올해는 준비(건립) 단계에 있는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작년에 건립을 해서 철학이나 정체성에 대해서 갈구하는 참여자들도 적지 않았다.


- 어린이도서관 서비스라면 어떤 부분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어린이도서관에 한정짓기보다는 누구나 차별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가 정말 '누구나'인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게 매우 중요한데, 겉도는 아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사서가 어린이에게 드러나지 않게 방법을 섬세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린이 중에서는 부모가 없는 아이들도 많기 때문에 섣불리 그런 사항을 물어보지 않는다. 어떨 때는 '쪽지'를 쥐어주고 정보를 얻기도 한다.


그리고 도서관을 운영하다 보면 이용자들을 대상화시킬 우려가 있는데, 가르치려 하거나 시키려 하거나 평가하려고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런 점들은 조심해야 한다.


- 느티나무도서관학교 같은 프로그램이 확대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도서관은 일상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지역차가 많다. 당연히 지역에 따라 요구수준이 다르다. 표준화가 되어야 할 필요성도 있지만 도서관은 섬세한 부분이기 때문에 정형화가 쉽지 않다. 아이들의 사회적 상황, 이용자 이해 필요성은 강의를 하고 있지만 실제 적용되는 것은 다르다. 때문에 사례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마다 장서수나 대출 권수가 다르다. 하지만 사례를 모으고 분류하다 보면 자기 지역에 적용해볼 수 있는 유형을 발견할 수 있다. 섬세한 서비스가 되려면 이를 통해 자신의 지역을 잘 알아야 하는데, 지역조사를 통해서 한계와 역할을 가늠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


- ‘한 도시 한 책 읽기’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5년이 넘었지만 시민에 대한 홍보 부족과 실무자의 이해 부족으로 헛바퀴만 돌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떤 대안을 생각할 수 있을까?
"청주의 경우를 예로 들겠다. 청주에서는 도서관이 시민들에게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아침 출퇴근마다 라디오에서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가지는 것이다. 생활에 쫓겨 책 읽을 시간이 없었던 직장인들에게 아침 저녁마다 라디오에서 책을 읽어주는 데 좋지 않겠는가. 이것이 대단히 인기를 얻었고 지금은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결국은 '이벤트'와 '지속성'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기획 단계에서 이런 것들을 잘 설계해야 한다."

 

- 이번 행사에서 경기문화재단이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재정 지원 외에 다른 부분에서 어떤 지원을 해주었으면 하는가?

"홍보가 가장 아쉽다.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부담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자문 역할을 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강사의 경우도 자체적으로 섭외하기 어려운 경우 도움을 요청하면 이를 지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경기문화재단의 강사 데이터 서비스와 넓은 네트워크를 이용해 공유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

 

명목상 민간단체임에도 불구하고 관에서 하는 것처럼 딱딱하게 대응한다. 컨설팅을 하더라도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강영아 사서뿐만 아니라 현장을 방문하다 보면 지원신청을 할 때 '구걸'하듯한 수치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는 응답을 듣는 경우가 많다. 외양상 경기문화재단이 지원하는 형세로 보이지만, 사실은 일선 현장에서 경기문화재단의 취지를 돕고 있는 것이고, 그들이 결국 경기문화재단을 빛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도우미들에게 왜 경기문화재단은 '도우미'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경기문화재단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11.30 15:48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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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1-30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도서관에 안간지가...몇년 된 것 같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가서 책들을 냠냠 먹어볼까나...
안 그래도 요즘 맛있는 책에 대한 갈증이 많은데.(웃음)

잘 읽고 갑니다. ^^

승주나무 2007-12-03 16:26   좋아요 0 | URL
저도 쉴 때는 '국립중앙도서관'하고 동네도서관 가서 재밌게 놀았는데, 요즘은 책 빌리러밖에 못 가요. 많이 좋아졌답니다. 노트북 들고 가면 인터넷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요. 주변에 찾아보시면 구립도서관 갈 만한 데 있을 겁니다.
 




[로컬365]학부모가 수능 감독관 폭행
입력: 2007년 11월 21일 18:02:20
 
대입 수능시험에서 시험 종료 후에 답안지에 답을 기입하는 학생을 제지했던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지난 15일 인천 강화군 모 중학교에서 1교시 영어영역시험이 끝난 후 수험생 ㄱ군이 “답을 모두 기입하지 못했으니 10초만 더 시간을 달라”며 제출을 미루자 ㅈ교사는 원칙에 따라 시험지를 걷어갔다. 수능이 끝난 후 아들에게 상황을 전해들은 ㄱ군의 아버지는 같은 날 저녁 학교로 찾아가 ㅈ교사에게 욕설을 하며 의자를 집어던질 듯 위협했다. 다음날에는 ㄱ군의 어머니가 교무실로 찾아가 “10초를 주지 않아 내 아들 인생을 망치느냐”며 교사의 얼굴을 한차례 때렸다. ㅈ교사는 ㄱ군의 부모를 폭행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인천|유성보기자〉



감독관으로서는 몹시 난처한 상황이었으리라.
수험생으로서는 10초를 허용해주지 않은 점에 대해서 몹시 못마땅하고,
인간적인 배신감마저 들었을 수도 있다.
이 10초라는 시간이,
자신의 앞으로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시험 하나로 모든 게 결정나는 '시험에 대한 과잉된 의미부여'가 우리나라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10초라는 시간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리적으로 사소한 시간일 수 있지만,
이것은 '룰'과 관련돼 있다.
룰의 관점에서 이를 해석하면
학생의 요청은 '10초를 달라'가 아니라
'룰을 어겨서라도 나의 요청을 들어달라'가 된다.
감독관으로서는 이 부분을 매우 진지하게 고민했으리라.

그리고 이 10초에 담겨 있는 의미는 또 있다.
동등한 입장에서 시험을 치르는 다른 학생의 10초를 본의 아니게 빼앗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옆에서 시험을 치던 학생들의 10초를 빼앗는 것은
룰을 위배하느 것 못지 않게 매우 중대하다.
물론 돈 많은 집의 자식들이 실시간으로 과외를 받고,
가난 한 집 자식들이 학원 한번 가지 못하고,
한자리에서 시험을 치르는 것 자체가 '동등한 입장'이라고는 볼 수 없겠지만,
형식논리의 관점에서라도 '동등'은 지켜야 할 소중한 원칙이다.

하지만 '인간성'이라는 덕목도 간과할 수 없다.
어떤 원칙을 적용하더라도 그것이 '비인간적'이라면 '사람 위의 법'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제 감독관의 입장으로 들어가 보자.
감독관이 수험생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는 없다.
만약 내가 감독관이라면 이렇게 이야기를 하겠다.
"나는 감독관으로서 그것을 허락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하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옆에서 동등한 조건으로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만이 허락해줄 수 있는 사항인 듯싶다. 당신에게 10초를 허용한다는 것은 이 교실에서 시험을 치는 수험생들에게 10초를 빼앗는다는 결과이므로 수험생들이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일 수 있다. 물론 그 상황에서 '다수결'이라는 제도를 도입할 만큼 시간이 허락할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시험이 종료되고 쉬는 시간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이에 대한 통제권이 감독관에게 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어려운 조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학생들이 이 학생의 10초를 허용한다면 이를 허락하면 되고, 허용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의 의지에 의해서 허락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감독관이 곤욕을 치르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여러분이 만약 감독관이었다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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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1-28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승주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물론 학생이나 부모 입장에서는 못마땅하겠지만, 정해진 룰을 지키는 것.
다른 모든 학생들도 알고 있기에 제 시간에 시험을 마쳤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 같군요.
시간 안에 문제를 풀고 답을 기입하지 못한 것은 본인 책임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10초의 중요함을 귀하게 배울 수 있는 순간을
부모라는 이름이 아이에게서 빼앗는군요. 그 '순간'의 이름은 경험.

승주나무 2007-11-29 00:25   좋아요 0 | URL
엘신 님..사람은 욕심의 동물이어서 조금씩 원칙을 허물면 결국 다 허물어지게 돼 있는데, 학생에게 어떻게 하면 '10초의 무게'를 잘 느끼게 할 수 있는가가 이번 사건이 주는 과제인 듯싶네요^^

웽스북스 2007-11-28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엔,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학생들에게 결정권이 있는 문제라고 보기도 좀 어려운 것 같고요- 이건 당연히 허용이 돼서는 안되는 문제로 보이네요. 이 룰이 깨지는 것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함께 그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10초씩 손해를 보게 되는 학생들을 넘어서, 그 10초의 룰을 지키기 위해, 한두문제를 더 풀지 못하고 룰을 지킨 전국에 있는 수많은 학생들이니까요. 경쟁,이라는 말을 쓰기가 좀 미안하긴 하지만- 어쨌든 전국 단위의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 만큼 모두가 지켜야 한다고 정해진 룰은 모두가 정확히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이상 까칠나라 운동본부 안양 지부장 웬디 ^^

승주나무 2007-11-29 00:32   좋아요 0 | URL
웬디양 님의 까칠한 의견 잘 들었습니다. 반론을 펼치기가 쉽지 않네요. 사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본다는 게 호구지책인 것만은 분명하지요. 원칙의 무게를 웬디양 님이 잘 설명해 주신 것 같습니다. 과연 10초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외에도 그 시간에 시험을 본 모든 수험생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니, 모든 수험생들의 의견을 낱낱이 물어야 하는데, 그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겠지요.
하지만 전국에 있는 모든 학생들이 그 '순간'에 참여하지는 않으며, 그 '현장'에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따질 수 없는 '특수성'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같은 공간에 있는 학생들에게 물어본다는 것은 그 학생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시켜주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수 있습니다. 교육은 어느 현장에서건 '교육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칙'이라는 것 역시 '교육'되지 못한다면 그 사람 본인에게서만은 폐기될 뿐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원칙'과 '교육'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제게 찾아왔다면, 이 사건이 '폭행'이라는 결론보다는 좀더 유의미한 결론으로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했을 것 같습니다. 말을 하기 쉽다지만, 징계는 피할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에휴~

마늘빵 2007-11-28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저 자리가 중학교 중간고사 중 한 과목 시험감독 자리였다면 아마 시간을 더 줬을 겁니다. 인정상. 하지만, 일년에 단 한번 보는 수능시험은 인정을 베풀만한 사회적 시선이 머물 곳이 못되죠. 조금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시험이니만큼 교사는 원칙대로 하는게 옳다고 봅니다. 얼마전 신문에서 본 사건인데, 시험 시간에 핸드폰이 울렸는데 부정행위자로 간주하고 내보지 않았던, 주의만 줬던 교사는 징계대상으로 올라갔다고 하더군요. 결론. 어떡하라고.

승주나무 2007-11-29 00:43   좋아요 0 | URL
시험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이 당시의 '상황'을 강화시켜 주기는 하겠지만, 저는 중간고사와 수능시험을 다르게 보지 않습니다. 웬디양 님에게는 '상황'으로 '논리'를 설득했지만, 아프 님에게는 '논리'로 '상황'을 설득하는 결과가 되어 버렸군요. 중간고사였다면 본글에 설명한 제안이 덜 부담스러웠을 테고, 징계라는 험악한 결론까지는 가지 않았겠죠. 하지만 저는 그와 같은 상황이 '결정적'인 것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합니다. 중요한 것은 '시험'과 '감독관', '수험생', '룰'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휴대폰 소지와 '10초 애걸'을 같은 선상에서 판단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만약 학생이 '10초'를 강요하며 감독관의 경고를 무시하고, 답안지 제출 권고를 거부했다면 휴대폰에 상응하는 징계감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건의 정황을 살펴보았을 때, 학부모가 감독관을 폭행했다는 '결과'는 학생이 감독관의 지시에 응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가능케 합니다.
결론. 아프 님이 새로운 변수들을 덧붙이려 하시니, 저는 변수들을 최소한으로 하려는 마음이 생긴 것이죠. ㅋㅋ 결국 감독관과 수험생, 그 공간에 있었던 '당사자'들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 외에는 모두 '사후'의 문제들이거나 주변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웬디양 님보다 더 까칠한 답변이 돼 버렸네용 ㅎㅎ

마늘빵 2007-11-29 17:44   좋아요 0 | URL
저는 원칙을 기본으로 합니다만, 현장에서 감독하는 입장으로서는 10초 정도는 재량껏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또, 풀고 있는 중의 10초와 다 풀고 기입하는 10초는 다르게 보고, 후자라면 저는 허용하자는 입장입니다. 다만 수능은 사회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만큼 그 무게감 때문에 원칙에 충실해야한다는거죠.
 



1. 싸움닭

오랫동안 나돌아 다녔다.
싸우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주저앉기도 했다.
몸은 바빴고, 머리도 쉬지 못했다.

상황이 달라졌다.
또 다른 싸움 상대를 찾아서 나는 싸움을 건다.
싸우지 않고서는,
싸워서 달라고 하지 않고서는,
이 놀부 같은 세상은 좀처럼
자기 것을 내줄 것 같지 않다.

2. 미치고 취하고..

흔들리는 내가 좋다.
흔들리면서 균형을 맞춰간다.
만취한 나는 나를 못 알아보지만,
사람들은 알아보겠지.
귓가에 들리는 환청
"미쳐라, 취해라!!"
"뭔가에 천착하고 있지 않다면 내가 아니다.
나는 미쳤거나 취했다. 미쳐야 미친다. 취해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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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7-11-26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강박적인 미침과 몰아의 미침이 구분될 거 같아요.

승주나무 2007-11-26 17:30   좋아요 0 | URL
"강박적인 미침과 몰아의 미침"이라.. 대단한 배꼽입니다.
아직 덜 미친 것만은 분명한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7-11-26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색의 니트...바뀐 이미지 왠지 좋은데요.^^
늘 그렇게 열정을 가슴안에 달고 사는 분들을 보면 부럽습니다. 그리고 질투가 나죠.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의욕만 있으면 뭐든지 잘할 것 같은데 말이죠.(웃음)
자, 오늘은 따뜻하고 달콤한 커피 한 잔 마시며 시작해보세요,승주님.
이번 한 주도 늘 좋은 일만 일어나시길~

승주나무 2007-11-26 17:36   좋아요 0 | URL
네..감사해요..
너무 강성이미지라 조금 바꿔보려고요.. 시사저널 사태도 이제 추억이 됐으니..
실은 더 강성으로 가기 위해 위장하는 거죠^^
오프에서 많은 알라디너를 봤는데, 엘신 님도 함 뵈면 좋을 것 같아요.. 왜 얼굴을 안 보여주는 거죠?..ㅎㅎ
님 말씀대로 커피와 녹차 마시면서 찬찬히 정리하고 있습니다. 날씨 추워지는데, 목 주변에 따뜻하게 해주시구요~~

stella.K 2007-11-26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너에게 준 그 범선 그림이 생각났어. 그거 네 서재에 없어진지가 언젠데 말야. 후후. 미쳐야 미친다는 말이 생각나네.^^

승주나무 2007-11-26 17:37   좋아요 0 | URL
그거 얼마 전까지 다른 블로그에 달고 다니다가 바꿨어요..
아직도 내 이미지가 '파란색'인 것은 그 그림의 영향이 큰 듯..
항상 감사하게 생각해요 ^^

2007-11-26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문방송학과에 다닌다는 최00라는 분이 매스미디어의 의제설정과 그에 관한 사람들의 의식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나답게 '말의 홍수'로 대처했지만, 어떻게 해서 나를 알고 그런 질문을 했는지 궁금하고 재밌다. 하기야.. 그렇게 나댔으니~~



1. 최근에 가장 중요한 문제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그리고 승주나무 님의 그러한 생각에 언론이 영향을 미쳤는지요?
3. 승주나무 님께서 생각하시는 그 문제에 대한 중요도와
언론이 보도하는 중요성의 정도는 같습니까?



1.이명박 비리와 삼성 불법승계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 중에서도 삼성 문제가 우리 사회의 근본 시스템과 관련이 있으므로 더 중요하다 하겠지요. 이명박은 이에 비하면 1/100도 안 되지요. 정치인은 누가 되든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 언론이 제 생각에 적극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뒷북이지요. 책이나 여러 경로를 통해서 문제의 중요도를 스스로 생각하고, 언론을 통해서는 이를 확인하는 정도이죠. 언론은 너무 느리고 수동적인 데다가 각종 조작이 행간에 난무하는 누더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 판매부수 기준으로 '언론'이라고 하기 어려운 '시사인'이나 '경향신문'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3. 2에서 많이 대답한 것 같은데 좀만 덧붙입니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의제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을 '핵심의제'와 '주변의제'로 나누어 보는데, 핵심의제에서는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습니다. 삼성 문제를 '떡값'을 누가 받았는지 등과 같은 주변적인 문제만 파고드니까 의제 환기가 제대로 안 되는 거죠. 제가 보는 중요도는 예컨대 삼성의 경우 이건희 회장과 삼성 시스템을 분리하고, 이재용에게 부여된 지위를 '이건희 씨 아들'이라는 이유로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났듯이 이건희 씨나 이재용 씨도 삼성에서 당연히 쫓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환타지 같은 이야기겠죠. 이 문제는 언론이 다루기에는 다소 위험한 주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언론의 본분은 위험한 일을 보도하고, 사회는 기자들에게 어느 정도 완충벽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송의 남용 등으로 취재활동을 제한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향이나 한겨레처럼 광고주에 영향을 많이 받거나 프레시안처럼 법적 소송에 휘말리거나 시사인처럼 사장에 의해서 기사가 도려지거나 '취재제한조치' 등에 의해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제가 생각하는 중요도는 '이상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핵심의제 부분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몰랐던 삼성 기흥공장 직원들의 백혈병 사례나 이에 대한 구제를 외면하는 사측의 행태 등을 보도하여 의제를 환기하는 것은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일입니다. 포털에 비해서 종이신문은 다양한 의제와 편집 의도 등을 볼 수 있으니까 좀 낫습니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기능은 '주변 의제 기능'으로 제한해서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현실에서는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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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1-24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도 많이 바쁘시죠?
날씨가 부쩍 추워졌는데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

승주나무 2007-11-25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넹.. 감사합니다. 요즘은 언론 관련이 아니라 생업 때매 많이 바쁘답니다.
엘신 님도 건강하시고, 오프에서 한 번 뵈요^^

비로그인 2007-11-25 15:15   좋아요 0 | URL
부끄럽게 어떻게 오프에서 봐요! 퍽퍽 ( >_>)

2007-11-25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25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25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25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25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25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