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산 책들 중에 양장본이 몹시 눈에 띕니다. 물론 가격이 싼 보급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출판계에 때 아닌 럭셔리 바람이 분 걸까요? 양장본을 내는 것은 출판사의 눈물겨운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1. 1만8천원이냐? 1만6천원이냐?

출판 쪽에 근무를 하고 있어서 출판사와 접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책 출간 작업을 하고 있는 출판사 편집자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번역물인데 가격 결정을 몹시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300쪽 가까이 되는 단행본이라면 15,000원이나 16,000원 정도가 적정선인데 18,000원을 고집하는 겁니다. 그러면 독자들이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어서 판매에 도움이 안 된다고 설득했지만, 편집자는 16,000원으로는 도무지 수지를 맞출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최종 판매가는 16,000원이 되었지만, 뒷맛이 씁쓸한 경험이었습니다.


#2. 분권 보급판으로 갈 것이나 단권 양장본으로 갈 것이냐?

소설 형식의 문답으로 되어 있고 세계 513명의 지성들이 출연하는 철학책 출간을 앞둔 사장님과 제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소피의 세계>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제목이나 구성 등을 잘 풀어냈는데, 가격에서 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책은 550여 쪽에 가까운데 2권으로 나눠서 갈 것인지 1권 양장본으로 갈 것인지 고민이 깊었습니다.
저희는 두 권 보급판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지만
결국 1권 양장본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1권을 사고 감명 깊은 사람이 2권을 구매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출판사는 없었던 셈이죠.
책 읽는 사람이 아무리 씨가 말랐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그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적적인 일이지만 책을 사서 구매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서 문제이지 책이 좋으면 예상보다 더 잘 팔릴 때가 있습니다.
출판사는 이렇게 책을 구매해서 읽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더 지우는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양장본의 비밀이 그것입니다. 책도 시장에서 팔리는 소비재이지만 가격을 올렸다고 해서 판매가 엄청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몇 권이라도 사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책 값이 지금의 두 배로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죠. 사실상 출판사들은 그들과 공존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중형 서점들이 픽픽 쓰러지고 나서 다음 차례는 중견 출판사들이 문을 닫는 일이 될 것입니다.
지금 징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가 무척 아끼는 출판사(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책을 출간했던)가 자금난에 시달린다는 소문이 들려옵니다.

출판사는 다음 시대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출판사에서는 '출판투쟁'을 벌였습니다.
아직도 헌책방에 가면 그 때의 생생했던 투쟁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투쟁이 사실상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 그것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출판사가 문을 닫는다는 것은 미래로 들어가는 문이 하나씩 닫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미래의 문'들이 양장본이라는 마지막 문고리를 잡으며 바둥거리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너지는 듯합니다.
이명박은 우리들이 책을 읽지 않기를 바라고, 출판사들이 문을 하나라도 다 닫기를 바랄 것입니다.

오늘 자본론 1-2권에서 무척 충격적이고 생생한 구절을 발견했는데, 마치 우리 나라의 기득권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이 섬뜩했습니다. 인용합니다.

그날그날의 노동에 의하여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을 하도록 자극을 주는 것은 오직 그들의 욕망뿐이다. 그 욕망을 완화시키는 것은 현명하지만 만족시켜 버리는 것은 어리석다. 노동하는 사람을 근면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적당한 임금이다. 너무 낮은 임금은 그의 성격에 따라서는 그를 낙심시키든가 절망적이 되게 하며, 너무 많은 임금은 불손하고 나태하게 한다.... 이상에서 말한 것으로부터 나오는 결론은, 노예가 허용되지 않는 자유로운 나라에서 가장 확실한 부는 다수의 근면한 빈민에 있다. 그들은 육해군을 위한 무진장한 공급원천이라는 것 외에도 그들이 없이는 어떤 향락도 있을 수 없을 것이며, 어떤 나라의 생산물도 가치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사회("물론 非노동자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행복하고 국민을 비참한 상태에서도 만족하게 하려면, 대다수를 무지하고 가난한 상태에 묶어둘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지식은 우리의 욕망을 확대시키고 다양화시키기 때문이며, 사람이 적게 바라면 바랄수록 그의 욕망은 보다 쉽게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맨더빌(Bernard de Mandeville), <꿀벌들의 우화> 제5판, 런던, 1728년. 마르크스 <자본론> 1-2권(비봉출판사)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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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09-03-04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정말 숫자 들여다보고 있으면 머리아파지는 요즘입니다!

승주나무 2009-03-04 15:23   좋아요 0 | URL
글쵸.. 영업하시는 분들에게는 봄이 정말 멀게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미르비 2009-03-05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사회도,지식도,계급도 양극화 되어간다는데 이딴 구절도 그걸 재확인하는 슬픈현실...그리고 그게 현실에 주는 타격은...아- 뭐하나 맘에 드는 게 없는 세상입죠.

승주나무 2009-03-06 11:46   좋아요 0 | URL
맘에 드는 게 하나 없죠..
애초 기대는 버리고 맘에 드는 것을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9-03-05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아프네요.

승주나무 2009-03-06 11:45   좋아요 0 | URL
네..양장본을 볼 때마다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서.. 책의 고급스러운 품질을 음미할 수도 없어요ㅠㅠ

비로그인 2009-03-06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사람들은, 똑똑한데 독서율이 떨어져서..
인간성은 좀 들된것같습니다.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책을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볼수있는 계기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같은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종교에서 믿음을 찾기보단,
자신교, 즉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질수있고 되돌아볼수있는 곳이
책교 라고 생각합니다.

승주나무 2009-03-06 16:03   좋아요 0 | URL
네.. 책을 읽는 이유를 분명히 말씀해주신 것 같아요.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잘 살기 위해서도 아니고 단지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면 독서의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좋은 것 하나 배웠습니다. 자전가타요 님 감사합니다^^

승주나무 2009-03-06 16:03   좋아요 0 | URL
네.. 책을 읽는 이유를 분명히 말씀해주신 것 같아요.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잘 살기 위해서도 아니고 단지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면 독서의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좋은 것 하나 배웠습니다. 자전가타요 님 감사합니다^^
 

 


▲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의 회원들이 만든 걸게그림. 왼쪽에는 허수아비 검사가, 오른쪽에는 '진실변호사'가 마주 서 있고 판사는 두 눈을 가린 채 저울추를 쥐고 있다. 이 날은 저울추보다 가린 두 눈이 더 눈에 띄었다.


재판이 끝나고 남겨진 사람들

재판이 끝났다. 사법부에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재판부의 판결문은 검찰의 공소사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판결문을 판시하는 판사의 입에서 조중동이 애용하는 '광고주 협박'이라는 말만 나오지 않았을 뿐 내용은 조중동의 사설을 방불케 했다. 실제로 판사는 조중동의 논조를 바꾸려는 행위는 개별 독자의 자유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의 판결까지 뱉어냈다.
사법부는 50년 만에 소비자에 대해서 유죄를 선고했다. 앞으로 언론소비자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모든 권리 신장 행위는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됐다.


▲ 언소주에서 '법률도우미' 역할을 자청하고 광고불매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왔다는 이유로 벌금 300만원형을 선고받은 법원 공무원 김대열 회원. 1심의 형이 확정되면 그는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이 근무하는 법원이 권력의 자동판매기 역할을 또다시 반복했다는 사실이 괴롭다고 말했다.    


재판이 끝난 직후 피고로 재판에 참석한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http://cafe.daum.net/stopcjd, 언소주) 김대열 회원(벌금 300만원형)은 "국민여러분 죄송합니다. 조중동이 이겼고 소비자가 졌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앞으로 두 가지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모든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감히 말을 꺼내는 자가 없게 된 민주주의의 후퇴가 우려되며, 자신이 일하는 법원이 정의와 인권의 보루가 아니라 권력의 시녀이자 자동판매기였던 굴욕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됨으로써 국민의 사법불신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을 개탄했다.

소주의 김성균 대표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대비해 여러 가지 성명서를 준비했지만 오늘 나온 판결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성명서로는 판결의 결과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상식 밖의 판결이 나왔다는 것이다. 김 대표에 의하면 국회의원, 교수, 일반시민 등 3천여명이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으며, 언소주 카페를 통해서 이림 판사의 정당한 판결을 바라는 3천여 개의 댓글들을 너무나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2월 19일은 재판부가 언론운동에 사망선고를 내린 날임과 동시에 사법부가 권력의 힘에 굴복해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한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 삭발단식하기 전 서초동 법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언소주 김성균 대표. 사법부는 권력의 시녀가 됨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으며, 언소주는 가지고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이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중동 광고불매 재판에 대한 현직 언론인들의 반응

조중동과 국가권력에 대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으면서도 시민언론의 중요성을 깨달아 언소주를 돕고 있는 민주시민언론연합과 언론노동조합의 대표들도 재판 현장에 참석해 지지발언을 했다.

민주시민언론연합 김유진 사무처장은 "유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시대가 유죄를 선고한 것"이라고 이번 재판을 평가했다. 그는 "이명박과 조중동의 시대, 즉 야만의 시대에 언소주 회원들에게 무죄를 준다는 것은 곧 이명박, 조중동 시대의 종말을 말하는 것이므로 법원은 반드시 유죄를 선택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적중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이명박-조중동 정부의 탄압은 계속될 것이지만 오늘의 재판을 밑거름으로 삼아 시대를 극복하는 활로를 모색해야 하며 민언련도 이를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은 "법원 앞에서 또 다시 상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문을 열었다. 상식에 근거하는 판결이라야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데 재판부는 상식을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가 겉으로는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해놓고서 이렇게 말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이중적 태도일 따름이라고도 말했다. 자신은 언론인으로서 오늘의 재판이 올바른 언론, 제대로 된 언론을 만들라는 시민들의 채찍질이라고 생각하며 언론인들도 이를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원을 밝히지 않고 자신을 '현직 외신'이라고 소개한 한 네티즌은 이라크 전쟁 취재 당시 동료 기자가 머리에 실탄을 맞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귀국했지만 이내 다시 전장으로 돌아갔던 일을 말하며 특히 '시민언론'은 초심이 흐려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시민언론이 살아야 그 나라의 국민들이 살게 되기 때문"이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또 다른 언론인은 시민운동의 불을 당긴 이상 '정세와 국면' 그리고 적확한 '대중전략'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해달라는 주문을 전달했다. 그에 따르면 조중동과 보수단체, 기업의 일반적인 CEO들은 혈족처럼 유착돼 있기 때문에 그 끈을 끊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이번 판결에 대한 현직 언론인들의 반응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흩어진 말들을 모으며 확실히 알게 된 사실은 기성의 논리는 조중동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조중동이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결국 패러다임의 문제다. 언론시민들에게 잠재적으로 각인된 구시대의 잔재를 걷어내고 언론이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다면 조중동이 설 자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은 언론시민들이 정권의 재판부로부터 탄압을 받은 오늘의 사건에 대해서, 언론인으로서 국민이 내리는 채찍으로 받아들이며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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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디딜 틈 없었던 재판정 열기, 판사만 '나홀로 판결'

법원에 뒤늦게 도착했는데 재판정에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붐볐다. 다른 공판때와는 달리 주요 방송사와 언론사 취재진이 장사진을 이뤘다.

오늘도 회사에 '반차'를 냈다. 언소주 재판의 중요한 고비가 있을 때마다 회사 일을 제쳐 두고 달려왔던 일들이 내심 미안해 어제는 밤샘근무를 했다. 회사의 정해진 휴일은 많아야 열흘을 넘지 않는데 20일 가까이 '휴가'를 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재판에 피고로 참석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재판에서 받은 금전적, 정신적 피해에 아랑곳없이 재판의 판결 결과는 허무했다. 카페개설자 회원에게는 징역 10월(집유2년), 구글에 광고를 올렸다는 혐의를 받은 한 회원은 6개월(집유2년) 등 중죄를 선고받았다. 뿐만 아니라 나머지 회원들에게도 300만원에서 100만원의 판결을 내렸다.

양형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재판부가 판시한 각론의 내용이다. 재판부는 대체로 검찰과 조중동의 기소 내용을 그대로 인정했으며, 피해 기업의 측면에서 사안을 판단해 '친기업적 판결'을 함으로써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정부의 재판부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

양형보다 더 무서운 건 재판부가 채운 족쇄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은 광고중단 요구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위력이란 유무형과 관계없는 폭력으로 피해 기업들은 많은 항의 전화를 받아 영업에 지장을 받거나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위력을 행사해 업무방해를 한 것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시민들이 분노하게 된 원인보다는 분노의 결과 자체만 상세하게 비춰줌으로써 현 정부의 한계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아예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한 곳도 있었다.

곰모와 공동정범에 관한 부분에서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명확한 형태로 모의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피고인들이 카페를 개설한 목적과 카페 회원들이 가입한 동기가 분명하고 광고주 불매운동의 성격과 경위, 형태, 과정, 그리고 피고인의 역할과 지배력, 장악력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암묵적 결합에 의한 공모가 이루어졌다고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암묵적'이라는 표현을 언급하면서까지 시민들에게 죄의 척도를 들이대는 모습이 참 서글퍼 보였다.

위법성 조각 사유에 대해서도 정당성의 흠결을 지적하며 판단하지 않았다. 즉 헌법과 소비자기본법에서 정한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활동의 자유에 매개하는 제한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자유가 보장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다만 법익을 거론하며 침해법익(보장된 활동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자의 권리)과 보호법익(보장된 활동으로 행동하는 자의 권리)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말해 '침해법익(조중동, 조중동 광고주)'의 손을 들어줬다.

조중동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었다. 논조변경을 요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개별 독자의 역사적인 판단에 맡길 일이지 이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한마디로 조중동에 속고 있는 독자에게도 '당신 속았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됐다.

무식한 백성이니까 한 번은 봐준다는 오만한 재판부

언소주 회원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그 이유로는 ‘전과’가 없었고 광고불매 행위가 위법한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언론운동을 하는 소비자들이 잘 몰라서 한 행위에 대해서는 ‘한 번’은 봐준다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2008년 5울 초순 촛불집회가 한창이었고 광고중단운동이 국민일반의 상당한 참여로 이루어졌으며 언소주 회원들도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했기 때문에 이러한 사정을 참작했다고 단서를 달았다.

판사의 이 같은 판시는 사법의 한계와 이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을 동시에 시사한다. 모든 사람들이 행위를 한 것에 대해서는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언론운동이 광범위한 국민적 지지를 받는다면 죄를 물을 수 없지만, 언소주는 규모가 조그만 시민단체이기 때문에 죄를 물을 수 있다는 모순이 생긴다.

재판부의 결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명박 정부의 재판부이기 때문에 그 한계성을 명백히 가지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광우병 쇠고기의 문제를 제기한 PD수첩을 도저히 기소할 수 없다며 사표를 낸 임수빈 검사, 아니 임수빈 변호사와 10월 촛불집회 주도 혐의로 기소된 안진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의 신청을 받아들여 “집시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며 이들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21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위헌적 조항”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하고 나서 현 정부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법복을 벗기로 했다는 박재영 판사를 보면 ‘상식’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논리’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예로부터 법조문에 빠져서 판단을 그르친 사람을 일컬어 ‘도필리’라고 하는데 정권의 논리에 충실한 재판부를 보면서 도필리라는 말이 생각났다. 어쨌거나 이림 부장판사가 내린 판결은 뒤이을 항소심의 기준점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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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후 2009-02-19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어이가 없더군요. 무식한 것들이 잘 모르고 한 짓이라 봐준다니-_- 법원 스스로가 얼마나 죽은 지식과 더러운 권력에 갇혀 있는지 깨닫지 않는 한 이런 황당한 판결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수 밖에 없겠죠.

승주나무 2009-02-21 01:44   좋아요 0 | URL
건조기후 님 말씀처럼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합니다. 법원에 가서 호소할 수 없다면 우리들은 손발을 둘 곳이 없는 신세죠 ㅠㅠ

Mephistopheles 2009-02-19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지금까지 조중동의 허위보도와 중상모략에 대한 죄과는 누가 단죄한단 말일까나..아주 갈때까지 가는 사법부 되시겠습니다.

승주나무 2009-02-21 01:45   좋아요 0 | URL
사법부는 그걸 절대 단죄 못하고 시민언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늘빵 2009-02-19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사법부에는 기대를 안 건지 오래됐어요.

승주나무 2009-02-21 01:45   좋아요 0 | URL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귀찮게 해야 합니다 ^^
 

 2월 19일은 언론소비자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날입니다. 
최근 조중동 지면광고 불매운동에 대한 1심 판결이 2월 19일, 내일 모레로 다가왔습니다.  
그 동안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언소주,http://cafe.daum.net/stopcjd)이라는 단체에서 시민들과 함께 언론운동을 한 7개월의 소회를 담담히 담았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기사원문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면 알 수 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69468&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9&NEW_GB=#1

 

내가 죄인? '조중동 반대' 초심이 흔들렸다
'조중동 광고불매 운동' 재판에 참여하며 느낀 소회...
2월 19일 1심 선고 예정 
 
 
   
▲ '조중동 광고중단운동' 누리꾼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 대한 광고중단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인터넷카페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의 이정기(가운데) 씨, 아이디 천태산인(오른쪽 두번째 모자이크), 시지프스(오른쪽) 씨가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면서 카페 회원들의 격려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진성철
조중동불매운동

지난 7개월은 발가벗겨져 거리로 내몰린 심정이었다. 고단하고도 힘겨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평소 한국의 언론현실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촛불정국이 한참 달아오르고 조중동에 대해 지면광고 불매를 하자는 움직임이 일었을 때도 이 문제를 절박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다. 하지만 끝내 2명이 구속 수감되고 22명이 기소돼 재판이 진행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그냥 넘길 수 없어 '다시' 이 싸움에 나섰다.

'다시'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2006년 <시사저널> 사태로 인해 거리로 내몰린 기자들의 용기와 결단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시사모)에서 열혈 회원으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 때문에 회사와도 마찰

 

조중동 지면광고 불매 운동 재판에 참여하면서 집에 있을 시간이 없어 아내와 많이 다투기도 하고, 이 일 저 일 챙기다 보니 회사와도 마찰이 잦아졌다. 공개경고도 받았다. 하지만 17차례 공판에 매주 불려나가기 위해 회사에 휴가를 내거나 학교 결석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왜곡된 언론현실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여 실천한 사람들은 저마다 적잖은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

조중동 광고불매 운동 재판에 참여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상식'과 '진실'은 방관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가볍고 짊어지는 사람에게는 너무 무겁다. 사람들이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을 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공분이 생겨서가 아니다. 광고 목록을 올리고 조중동 광고주에게 전화해 조중동에 광고를 게재하는 것이 윤리적인 경제활동인지 다시 판단해 달라고 요청하는 행위의 법리적 검토를 함께 진행했다.

언론에 대한 소비자운동은 헌법 제21조(표현의 자유), 제124조(소비자권리)와 소비자기본법 제4조(소비자의 기본적 권리), 제53조(소비자상담기구의 설치·운영)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합법적인 운동이다.

 

   
언론소비자주권 국민 캠페인 사이트
ⓒ 장윤선
출국금지

하지만 검찰은 업무방해 등의 혐의를 두고 24명을 기소했고 법원마저도 2명의 구속영장을 승인해주는 등 언론운동이 국가기관으로부터 '불법'이라는 딱지를 받게 됐다. 사법적인 판단을 받게 되자 함께 운동을 하던 시민들이 혼란에 빠졌다.
일단 광고목록 게재 행위가 원천적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에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을 계속할지 다른 방법을 쓸지에 대한 내부 논쟁이 극심했다. 이 과정에서 전 대표가 사퇴하고 비상운영위원회 체제가 약 3개월가량 지속되기도 했다. 좌절감을 느낀 누리꾼과 시민들의 카페 탈퇴 행렬이 줄을 이었다.

이 과정에서 함께 촛불을 들던 시민들도 광고불매운동을 다른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아래 언소주) 회원들이 너무 전투적이어서 부담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과 관련해서 검찰의 압수수색과 출국금지, 구속조치 등 험악한 법률 용어가 나오자 우리가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 위축되기도 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도 바로 그 점이다. 우리가 옳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수백 번도 더 생각하지만, 몸은 구치소에 갇혀 있고 재판에 매주 끌려다니며 판사와 검사에게 갖은 고초를 겪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혹시 내가 무슨 죄를 진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이 의심이 옆의 사람들을 불신하게 만들고 초심을 자꾸 흐려 놓았다.

 

옳은 행동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언소주 카페 내에서도 광고불매에 대해서 회의를 품는 분도 없지 않았지만, 난 조중동의 일련의 행위들을 보면서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실제 6월 중순 <동아일보>는 다음커뮤니케이션에 광고목록 삭제를 공식 요청했으며, 6월 23일에는 <조선일보>가 다음커뮤니케이션에 아예 카페를 폐쇄시켜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다. 그만큼 많이 아팠다는 뜻이다.

재판 과정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확인된다. <조선일보> 직원이 혹시라도 법정에서 실수를 할까봐 미리 신문사항을 이메일로 검찰에게 전달했고 검찰의 질문지와 <조선일보> 증인의 답변지가 일치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판사에게 이 일이 발각돼 검찰과 <조선일보>는 법정에서 창피를 당했다. (오마이뉴스, 2008.10.30 , <조선> 증인, 법정 '말맞추기' 덜미, 기소 검사와 '예상 질문지'까지 교환)

이 내용은 MBC 뉴스데스크에까지 보도됐다. 검찰은 이 건에 대해서 별도의 논평을 내기도 했다. (MBC 뉴스데스크, 2008-11-01, '고전하는 검찰')

조중동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지난해 11월 18일 검찰에서 증인신청을 한 모 관광회사의 직원과 언소주 회원 사이에 사소한 말다툼이 벌어졌는데 조중동은 이 내용을 주요하게 보도했다. 검찰도 이에 호응해 해당 회원을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협박과 폭력을 가했다는 회원은 의족을 차 발이 불편한 50대 노인이었고 당한 사람은 180cm가 넘는 건장한 체구의 젊은 청년이었다. 결국 법원은 검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조중동과 검찰의 이와 같은 과민반응은 오히려 언론소비자운동이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에게 재확인시켜주었다.

 

2월 19일 1심 선고... 그들을 생각하면 숙연한 마음까지 든다

 

 

 

   
'언론 소비자 주권 국민캠페인'은 지난해 9월 6일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촛불아 힘내자' 행사에서 조중동 장례식 퍼포먼스를 벌였다.
ⓒ 박상규
촛불집회

지난해 8월 30일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라는 공식 명칭으로 시민단체 창립총회를 열기 위해 전 회원에 대한 투표(총 참여자 3727명, 찬성 3685명(98.9%), 반대 42명(1.1%))에 이어 총회준비위원회가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나는 정책개발팀 실무를 도우며 사업계획서 작업에 참여했다. 언론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는 생각은 네거티브와 포지티브 전략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신을 회원들에게 전달했고 공감대를 얻었다.

언소주가 광고불매운동이라는 네거티브 캠페인만 한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언소주는 포지티브 영역에서도 적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전교조 선생님들과 정론매체 주간지(시사IN, 위클리경향, 한겨레21)와 협약을 맺어 학교에 정론매체 보내주기 운동을 통해 약 60개 학교에 좋은 정론매체를 읽히고 있다. 그리고 정론매체(주로 한겨레와 경향신문 일간지) 배가운동을 하는 '진알시(진실을 알리는 시민)' 등 자발적으로 언론운동을 펼치고 있는 시민단체와 긴밀한 연대를 도모하고 있다.

몇 차례 만나는 과정에서 언론운동에 뜻있는 많은 분들이 힘을 보태 주었다. 특히 영국과 호주에 사는 교민과 외국인까지 언소주의 일을 돕겠다며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가칭 '영문 번역팀'을 꾸릴 수 있었고 세계 유수의 언론사에 우리의 상황과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을 통해 우리의 뜻을 전달한 언론사는 아래와 같다.

'BBC NEWS Channel, BBC WORLD NEWS (텔레비전), ITN (ITV & 채널4뉴스), SKY (채널5 뉴스), BBC Radio 4, "Today" (시사전문 아침뉴스쇼), BBC Radio 5live (뉴스 & 스포츠전문 라디오채널), LBC 97.3 (런던 뉴스전문 라디오채널), 로이터, AP, AFP, 알자지라, 알자지라 Listening Post (국제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유로뉴스 (유럽연합), 프랑스24, 프레스TV (이란), Deutsche Welle (독일), CNN, The Daily Telegraph, The Times, Financial Times, The Guardian, The Observer, The Independent, Daily Mail, Daily Express, 6EN, The Sun, Daily Mirror, Daily Star (Daily Express 계열), Evening Standard, London Lite (Evening Standard 계열), Metro 런던 (Daily Mail, Evening Standard 계열), The London Paper (The Sun & The Times 계열), The Spectator(영국잡지), The Week, Prospect, Prospect, Private Eye, New Statesman, The Liberal, Morning Star, Press Gazette, TIME, NEWSWEEK, le monde, le monde diplomatique.'

2월 19일 1심 선고가 기다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있다. 최근 법학교수 73인이 언소주 지지 성명서를 낸 데 이어 국회의원, 시민단체를 비롯한 수많은 단체가 지지의 목소리를 내주고 있다. 예컨대 고려대 박경신 교수의 경우 언소주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서 UN에 보고서를 제출한 상태다. 뿐만 아니라 조중동이 검찰의 탄압을 지원하기 위해 2차 불매운동과 관련해 외국의 재판 사례를 보도한 것이 악의적인 왜곡이라며 정정보도 요청에 이은 소송 절차를 밟고 있다. <오마이뉴스, 2009.02.13, 박경신 "언론소비자 재판 잘못되면 자본주의 근간 무너진다">

이렇게 눈에 띄는 도움부터 눈에 안 보이는 도움에 이르기까지 언론소비자들의 실천은 힘겹게 이어지고 있다. 자신들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보태주면서도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시민들을 볼 때마다 숙연한 마음마저 든다.

언소주가 창립총회를 열고 나서 지금까지 직을 맡은 회원들은 최소 1주일에 1회씩 만나 평균 5~6시간 이상의 회의를 했고 일주일 중 많은 시간을 언론운동에 매진했다. 이렇게 강행군을 하고 있는 이유를 며칠 동안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언소주가 검찰의 탄압 등으로 무척 힘든 상태에 있을 때 회원 한 분이 했던 말 한마디가 끝내 잊히지 않는다. 이 말만큼 한국 언론운동의 절박성을 표현해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언론운동이 여기서 좌초하면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이런 흐름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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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2-18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하셨어요...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멀리서 힘을 보냅니다.

2009-02-18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8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8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2-1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촛불의 최대 성과는 조중동이 찌라시임을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라고 하더군요.
너무 고생이 많으셨지요? 큰 지지와 성원을 보냅니다.

Arch 2009-02-18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 승주나무님.. 힘내세요. 혹여나 미약한 제 도움이나마 필요하다면 주저없이 나서겠습니다.

글샘 2009-02-18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심 선고 결과야... 당연히 유죄라고 나겠지요. 80년대에 그랬듯이 말입니다. 썩어빠진 법원에 뭘 기대하겠습니까...
수고가 많으신 님들에게 멀리서 응원을 보냅니다.
 

부제 : 휴머니즘과 사형제도..



최진실 자살 땐 '최진실 법', 강호순 땐 '강호순 법'?


냉무(내용없음) 정치, 기분파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언론이 너무 앞서간다"고 점잔을 떨던 정치인들이 언론보다 더 앞서가고 있다. 강호순의 연쇄살인이 사회 이슈가 되자 뜬금없이 사형제도를 부활시키자며 보수 정치인들이 정치판을 달구고 있다. 사형제도 부활은 유영철 때도 있었다.
사형수들은 사회적으로 시끄러운 살인사건이 있을 때마다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 '사형'이라는 최고형은 잔존하지만 사형이 실제로 실시되지 않아 공식적으로 사형폐지국으로 인정된 대한민국에서 사형수는 언제라도 다른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빠져 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는 '혹리열전'이라는 유명한 편명이 있다. 그야말로 가혹한 정치인들의 열전인데, 죄다 당대인 한나라 시절의 인물들이다. 노자는 "법 조항이 많아질수록 도둑이 늘어난다"고 했는데, 법 조항을 강화해서 범죄율을 낮춘 사례는 없다. 순간적으로 범죄율을 떨어뜨릴 수는 있겠지만 결국 범죄는 다시 빈번해진다. 사마천은 혹리열전의 맨 마지막 대목에서 당시 사형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던 수많은 살인 사례를 언급하며 "이러한 일들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라며 혀를 내둘렀다.
사형제도를 강화하는 나라는 대체로 정치인들이 자신의 무능함으로 사형제도로 회피하려는 수작이 많다. 


사형제 부활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영화 "그린 마일"


▲ 존 커피는 어린이 둘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그가 사형판결을 받은 이유는 살인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존 커피라는 사형수의 경우처럼 사형판결을 받는 사람들 중 무고하게 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무고하게 사형을 당한다고 한다. 어떤 정치적인 논의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작년 여름 100만명의 촛불이 거리로 나온 것은 정부가 '생명'을 너무 경시했기 때문이다.
최근 '용산 사태'에서도 자살테러범이니 떼쟁이들이니 하는 저주를 퍼부으며 망자를 모욕하는 정치인, 언론인이 적지 않았다. 사람이 죽으면 만사 접어두고 조의의 시간을 가졌던 옛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사형제를 논하기 전에 먼저 '생명'의 무거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린마일>에서는 사형의 순간들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그린마일'은 1935년 대공황기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의 삭막한 콜드 마운틴 교도소에서 사형수들이 전기 의자가 놓여 있는 사형 집행장까지 가는 녹색 복도를 말한다. 간수들이 하는 일은  '그린마일'을 사형수들이 전기 의자로 갈 때까지 그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영화는 사형수들이 사형판결을 받기까지의 행위를 그리고 있지 않다. 모든 컷은 사형수들의 마지막 삶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형수(에두아드 델라크로익스, 또는 '델')는 사형장으로 가기 전에 동료에게 키우던 애완동물을 맡긴다. 그들은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 반성하며 사형 집행일 동안 성실하게 시간을 채운다.

사형집행 과정도 세심하게 배려한다. 전기의자에 앉히기 전에 죄수의 머리에 물 묻은 솜을 얹히는 데 그것은 죽기 전에 고통을 최소화시켜 주기 위해서다. 신참으로 들어온 못된 간수가 자신을 골탕먹인 사형수 델에게 복수하기 위해 솜에 물을 묻히지 않고 전기의자를 작동시켰을 때 델은 처참한 고통 속에서 오랫동안 죽을 수도 없었다. 소화기를 들고 물을 끄려 하자 연륜 있는 간수는 이를 막는다. 델의 고통을 끊어주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형제 존폐를 떠나서 이 영화는 사형수들이 맞는 마지막 삶의 시간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져 있다. 사형제를 논하는 사람들은 단 한 번도 사형수들의 모습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컴퓨터에 마우스를 클릭하듯 사형제도를 논한다. 사형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사형을 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현재 사형수로 복역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상과 교육효과, 그들의 범죄이력 등을 면밀히 살펴서 설득력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담긴 중요한 정책들을 책상에서 처리하다 못해 하늘로부터 품부받은 인간의 생명조차도 책상머리에서 결정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사형제 부활을 들고 나온 것이 청와대의 이메일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용산참사를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으로 물타기하라는 지시를 경찰서로 내려보내면서 당에는 아무 지침을 내리지 않았을까. 혹시 사형제 부활이 용산참사에 대한 물타기가 아닐까 하는 의혹이 강하게 드는 대목이다. 휴머니즘도 없고 인간생명에 대한 예의도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사형제 부활을 들고 나온 이유가 정말 그들이 말하는 대로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서라면 사형과 범죄율에 대한 연관관계를 깊이 있게 연구해 보고 나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제발 기분파 정치는 그만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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