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휴머니즘과 사형제도..



최진실 자살 땐 '최진실 법', 강호순 땐 '강호순 법'?


냉무(내용없음) 정치, 기분파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언론이 너무 앞서간다"고 점잔을 떨던 정치인들이 언론보다 더 앞서가고 있다. 강호순의 연쇄살인이 사회 이슈가 되자 뜬금없이 사형제도를 부활시키자며 보수 정치인들이 정치판을 달구고 있다. 사형제도 부활은 유영철 때도 있었다.
사형수들은 사회적으로 시끄러운 살인사건이 있을 때마다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 '사형'이라는 최고형은 잔존하지만 사형이 실제로 실시되지 않아 공식적으로 사형폐지국으로 인정된 대한민국에서 사형수는 언제라도 다른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빠져 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는 '혹리열전'이라는 유명한 편명이 있다. 그야말로 가혹한 정치인들의 열전인데, 죄다 당대인 한나라 시절의 인물들이다. 노자는 "법 조항이 많아질수록 도둑이 늘어난다"고 했는데, 법 조항을 강화해서 범죄율을 낮춘 사례는 없다. 순간적으로 범죄율을 떨어뜨릴 수는 있겠지만 결국 범죄는 다시 빈번해진다. 사마천은 혹리열전의 맨 마지막 대목에서 당시 사형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던 수많은 살인 사례를 언급하며 "이러한 일들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라며 혀를 내둘렀다.
사형제도를 강화하는 나라는 대체로 정치인들이 자신의 무능함으로 사형제도로 회피하려는 수작이 많다. 


사형제 부활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영화 "그린 마일"


▲ 존 커피는 어린이 둘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그가 사형판결을 받은 이유는 살인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존 커피라는 사형수의 경우처럼 사형판결을 받는 사람들 중 무고하게 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무고하게 사형을 당한다고 한다. 어떤 정치적인 논의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작년 여름 100만명의 촛불이 거리로 나온 것은 정부가 '생명'을 너무 경시했기 때문이다.
최근 '용산 사태'에서도 자살테러범이니 떼쟁이들이니 하는 저주를 퍼부으며 망자를 모욕하는 정치인, 언론인이 적지 않았다. 사람이 죽으면 만사 접어두고 조의의 시간을 가졌던 옛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사형제를 논하기 전에 먼저 '생명'의 무거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린마일>에서는 사형의 순간들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그린마일'은 1935년 대공황기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의 삭막한 콜드 마운틴 교도소에서 사형수들이 전기 의자가 놓여 있는 사형 집행장까지 가는 녹색 복도를 말한다. 간수들이 하는 일은  '그린마일'을 사형수들이 전기 의자로 갈 때까지 그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영화는 사형수들이 사형판결을 받기까지의 행위를 그리고 있지 않다. 모든 컷은 사형수들의 마지막 삶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형수(에두아드 델라크로익스, 또는 '델')는 사형장으로 가기 전에 동료에게 키우던 애완동물을 맡긴다. 그들은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 반성하며 사형 집행일 동안 성실하게 시간을 채운다.

사형집행 과정도 세심하게 배려한다. 전기의자에 앉히기 전에 죄수의 머리에 물 묻은 솜을 얹히는 데 그것은 죽기 전에 고통을 최소화시켜 주기 위해서다. 신참으로 들어온 못된 간수가 자신을 골탕먹인 사형수 델에게 복수하기 위해 솜에 물을 묻히지 않고 전기의자를 작동시켰을 때 델은 처참한 고통 속에서 오랫동안 죽을 수도 없었다. 소화기를 들고 물을 끄려 하자 연륜 있는 간수는 이를 막는다. 델의 고통을 끊어주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형제 존폐를 떠나서 이 영화는 사형수들이 맞는 마지막 삶의 시간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져 있다. 사형제를 논하는 사람들은 단 한 번도 사형수들의 모습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컴퓨터에 마우스를 클릭하듯 사형제도를 논한다. 사형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사형을 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현재 사형수로 복역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상과 교육효과, 그들의 범죄이력 등을 면밀히 살펴서 설득력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담긴 중요한 정책들을 책상에서 처리하다 못해 하늘로부터 품부받은 인간의 생명조차도 책상머리에서 결정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사형제 부활을 들고 나온 것이 청와대의 이메일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용산참사를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으로 물타기하라는 지시를 경찰서로 내려보내면서 당에는 아무 지침을 내리지 않았을까. 혹시 사형제 부활이 용산참사에 대한 물타기가 아닐까 하는 의혹이 강하게 드는 대목이다. 휴머니즘도 없고 인간생명에 대한 예의도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사형제 부활을 들고 나온 이유가 정말 그들이 말하는 대로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서라면 사형과 범죄율에 대한 연관관계를 깊이 있게 연구해 보고 나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제발 기분파 정치는 그만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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