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디딜 틈 없었던 재판정 열기, 판사만 '나홀로 판결'

법원에 뒤늦게 도착했는데 재판정에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붐볐다. 다른 공판때와는 달리 주요 방송사와 언론사 취재진이 장사진을 이뤘다.

오늘도 회사에 '반차'를 냈다. 언소주 재판의 중요한 고비가 있을 때마다 회사 일을 제쳐 두고 달려왔던 일들이 내심 미안해 어제는 밤샘근무를 했다. 회사의 정해진 휴일은 많아야 열흘을 넘지 않는데 20일 가까이 '휴가'를 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재판에 피고로 참석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재판에서 받은 금전적, 정신적 피해에 아랑곳없이 재판의 판결 결과는 허무했다. 카페개설자 회원에게는 징역 10월(집유2년), 구글에 광고를 올렸다는 혐의를 받은 한 회원은 6개월(집유2년) 등 중죄를 선고받았다. 뿐만 아니라 나머지 회원들에게도 300만원에서 100만원의 판결을 내렸다.

양형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재판부가 판시한 각론의 내용이다. 재판부는 대체로 검찰과 조중동의 기소 내용을 그대로 인정했으며, 피해 기업의 측면에서 사안을 판단해 '친기업적 판결'을 함으로써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정부의 재판부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

양형보다 더 무서운 건 재판부가 채운 족쇄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은 광고중단 요구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위력이란 유무형과 관계없는 폭력으로 피해 기업들은 많은 항의 전화를 받아 영업에 지장을 받거나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위력을 행사해 업무방해를 한 것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시민들이 분노하게 된 원인보다는 분노의 결과 자체만 상세하게 비춰줌으로써 현 정부의 한계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아예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한 곳도 있었다.

곰모와 공동정범에 관한 부분에서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명확한 형태로 모의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피고인들이 카페를 개설한 목적과 카페 회원들이 가입한 동기가 분명하고 광고주 불매운동의 성격과 경위, 형태, 과정, 그리고 피고인의 역할과 지배력, 장악력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암묵적 결합에 의한 공모가 이루어졌다고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암묵적'이라는 표현을 언급하면서까지 시민들에게 죄의 척도를 들이대는 모습이 참 서글퍼 보였다.

위법성 조각 사유에 대해서도 정당성의 흠결을 지적하며 판단하지 않았다. 즉 헌법과 소비자기본법에서 정한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활동의 자유에 매개하는 제한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자유가 보장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다만 법익을 거론하며 침해법익(보장된 활동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자의 권리)과 보호법익(보장된 활동으로 행동하는 자의 권리)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말해 '침해법익(조중동, 조중동 광고주)'의 손을 들어줬다.

조중동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었다. 논조변경을 요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개별 독자의 역사적인 판단에 맡길 일이지 이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한마디로 조중동에 속고 있는 독자에게도 '당신 속았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됐다.

무식한 백성이니까 한 번은 봐준다는 오만한 재판부

언소주 회원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그 이유로는 ‘전과’가 없었고 광고불매 행위가 위법한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언론운동을 하는 소비자들이 잘 몰라서 한 행위에 대해서는 ‘한 번’은 봐준다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2008년 5울 초순 촛불집회가 한창이었고 광고중단운동이 국민일반의 상당한 참여로 이루어졌으며 언소주 회원들도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했기 때문에 이러한 사정을 참작했다고 단서를 달았다.

판사의 이 같은 판시는 사법의 한계와 이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을 동시에 시사한다. 모든 사람들이 행위를 한 것에 대해서는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언론운동이 광범위한 국민적 지지를 받는다면 죄를 물을 수 없지만, 언소주는 규모가 조그만 시민단체이기 때문에 죄를 물을 수 있다는 모순이 생긴다.

재판부의 결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명박 정부의 재판부이기 때문에 그 한계성을 명백히 가지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광우병 쇠고기의 문제를 제기한 PD수첩을 도저히 기소할 수 없다며 사표를 낸 임수빈 검사, 아니 임수빈 변호사와 10월 촛불집회 주도 혐의로 기소된 안진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의 신청을 받아들여 “집시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며 이들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21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위헌적 조항”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하고 나서 현 정부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법복을 벗기로 했다는 박재영 판사를 보면 ‘상식’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논리’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예로부터 법조문에 빠져서 판단을 그르친 사람을 일컬어 ‘도필리’라고 하는데 정권의 논리에 충실한 재판부를 보면서 도필리라는 말이 생각났다. 어쨌거나 이림 부장판사가 내린 판결은 뒤이을 항소심의 기준점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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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후 2009-02-19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어이가 없더군요. 무식한 것들이 잘 모르고 한 짓이라 봐준다니-_- 법원 스스로가 얼마나 죽은 지식과 더러운 권력에 갇혀 있는지 깨닫지 않는 한 이런 황당한 판결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수 밖에 없겠죠.

승주나무 2009-02-21 01:44   좋아요 0 | URL
건조기후 님 말씀처럼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합니다. 법원에 가서 호소할 수 없다면 우리들은 손발을 둘 곳이 없는 신세죠 ㅠㅠ

Mephistopheles 2009-02-19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지금까지 조중동의 허위보도와 중상모략에 대한 죄과는 누가 단죄한단 말일까나..아주 갈때까지 가는 사법부 되시겠습니다.

승주나무 2009-02-21 01:45   좋아요 0 | URL
사법부는 그걸 절대 단죄 못하고 시민언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늘빵 2009-02-19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사법부에는 기대를 안 건지 오래됐어요.

승주나무 2009-02-21 01:45   좋아요 0 | URL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귀찮게 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