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오렌지족, X세대 마케팅이 활황이던 94년 우리는 끔찍한 존속살해 사건을 접하게 된다. 부유한 집안 출신의 유학생 박한생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잔인하게 난도질하고 불태워 버렸던 사건이다. 거액의 유산을 노리고 완전범죄를 꿈꾼 오렌지족의 패륜은 연일 선정적으로 보도되었다.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존엄과 가족에 대한 애정, 신뢰가 깡그리 실종된 극단의 예에 모두들 광분하고 비난의 일성들을 토해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자신을 낳아준 자의 피를 흘리게 하는 그 극악무도한 범죄는 오늘날에도 심심찮게 언론의 기삿거리가 되어준다. 우리는 자문하게 된다. 이것이 인간인가. 대체 인간의 추락을 막아주는 방파제인 마지노선이 있기나 한걸까. 그럼에도 삶과 생명에 경외를 바칠 수 있을까. 아니 더 나아가 이런 인간을 창조했다는 신의 방관과 침묵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결국 신은 없는 것인가. 모든 고결한 가치는 하나의 허상과 이상과 기대에 불과한 것인가. 

여기 한 아버지가 있다. 그는 모든 악덕의 총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탐욕스럽고 인색하며 냉정하고 야비하다. 아들의 여자를 탐할 만큼 호색한이기까지 하다. 그는 두 번 결혼했고 처들의 막대한 지참금을 챙기는 대신 그녀들에서 얻은 세 아들은 방기한다. 그 아들들은 방탕하지만 신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미챠, 신과 불멸에 강한 회의를 제기하는 관념론자 이반, 논리 이전에 삶 그자체와 신에 대한 애정을 간직한 알료샤로 자라난다. 마침내 이 재앙같은 아버지는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미처 받지 못한 유산 문제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그루셴카라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연적 관계를 형성했던 장남 미챠가 유력한 용의자선에 서게 되고 결국 유죄 선고를 받게 된다. 

 

인간 그 모순적 존재에 대한 심오한 고찰 

인간이란 너무 넓어, 라는 둘째 아들 이반의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그 존재를 깊이 뚫고 마침내 그 심원에 닿은 깨달음이다. 악마와 신이 싸우는 전쟁터이며 양극단이 서로 만나는 곳, 그곳은 별다르고 대단한 곳이 아니다. 바로 한 치 인간의 마음이다. 극히 선할 수도 동시에 극단적으로 졸렬하고 야비할 수도 있는 게 인간이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이 모순의 공간을 품고 삶의 전장에 나서는 일은 그래서 태생적 비애를 업고 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가능할 수 있는 모든 대립쌍들을 뒤섞을 수 있고 또 한꺼번에 두 개의 심연을, 우리들 위의 심연, 즉 드높은 이상들의 심연과 우리 아래의 심연, 즉 가장 저열하고 악취 나는 타락의 심연을 관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3권 P.401 

이 악이 육화된 악마와 이반의 대면 장면은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나는 항상 악을 원하면서도 항상 선을 창조해 내는 힘의 일부분이다.'라는 얘기와 맞물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삶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각종 종교도 결국 근원적인 악의 지지를 받게 되는 것이다. 모조리 선, 모조리 사랑, 이해, 배려가 점령한 세상은 그 어떤 규율도 성장도 뉘우침도 도약도 없을 것이라는 슬픈 진실의 응시는 적나라하면서도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악의 자리를 감내해야 함을 보여준다. <달과 6펜스>의 서머싯 몸은 심지어 작가 도스토예프스키가 독창적으로 가장 위대한 작가의 자리를 점하게 된 것도 결국 그의 악덕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일정부분 수긍이 간다. 우리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고 고개를 주억거리고 때로는 온몸에 돋는 소름을 경험해야 하는 대목은 언제나 그가 지독하게 천착하고 드는 인간  내면의 그 사악한 부분이다. 우리 안에 살고 있는 벌레, 움츠리고 있는 괴물을 불러 내기 때문이다. 그를 이은 수많은 후세의 작가들도 결국은 이 지점에 사로잡혀 헤매고 있다. 평범한 사람의 내면에서 갑자기 그로테스크하고 야비한 것이 출몰하는 대목에서 예술들은 끊임없이 배회한다. 아름다운 것을 지향하는 것은 결국 악덕의 찌꺼기를 긁어 모아 전시하는 것과 결별할 수 없다.  이반은 아름다움이 소돔에 도사리고 있다고 말한다. 

아버지를 죽인 아들의 이 선정적인 사건에 모두가 은근하게 기뻐하고 있다는 작중 리자의 말은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한다. 관념적 사랑은 언제나 오케이지만 실천적 사랑에서는 머뭇거리는 평범한 우리들이 어쩌면 가장 악덕을 교묘하게 위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직시하는 자리에서 <카라마조프가의형제들>은 더 높은 지점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대체 신은, 불멸은 있는가! 

결국 작가가 가장 던지고 싶었던, 천착하고 싶었던 문제는 이것이었다. 그리고 오늘날도 내일도 우리들이 스러지는 그 지점에서도 결국 맞딱뜨릴 수 밖에 없는 그 근원적이고 답이 없는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매일 이런 질문들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지난한 고통들과 마주칠 때마다 이 문제를 거머쥘 수밖에 없다. 둘째 아들 이반과 막내 견습 수도사 알료샤의 대화들은 이 문제들을 심도있게 파고든다. 이반은 신도 없고 불멸도 없는 자리에서는 윤리도 사랑도 다 붕괴되고 인간들에게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말한다. 필멸의 존재는 숭고한 도덕률에 얽매이지 않는다. 지척의 만지기 싫은 빈민들에게 자선을 베풀지 않아도 된다. 그저 모든 것을 미친듯이 오만하게 하다 장렬하게 최후를 맞으면 그만이다,라는 것이 무신론의 귀결로 그려진다.  작가는 고도의 책략을 가미한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기실 독실한 러시아정교인이었다. 즉 그는 유신론자였다. 방탕하고 도박에 취해 있던 그의 삶과는 얼핏 어울리지 않는 대목이다. 신의 문제를 탐구하고 회의하다 결국은 그 신에게 귀의하는 결론은 상류계급 출신이었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비슷한 귀결이다. 신과 불멸의 문제에 천착하나 결국 그 신에게 다시 돌아가는 도식이 러시아적 색채를 가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그러나 신과 불멸을 어떤 인간세계의 각종 규범들과 윤리와 연결하여 고찰하는 대목은 상당히 인상깊다. 우리는 은연중 신이 있기를 바라며 신을 필요로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그것을 간파하는 예리한 작가의 시선이 놀랍다. 사실 너희들은 다 있기를 원하잖아! 라고 비웃는 것만 같다.  

 

낳아줌으로써 부모의 역할은 완수되는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는 의외의 지침이 숨어 있다. 바로 어린 자녀들을 양육하는 부모들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한 면밀한 고민 끝에 나온 조언이다. 아버지는 재앙일 수도 있다는 말, 누구나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한다는 말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린 자녀들에게 가정이라는 은밀한 울타리에 기대어 무한하고 내밀한 권력을 휘두르고 때로는 학대하는 많은 부모들을 알고 있다. '무에서 사랑을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들이여, 자신의 아이들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라는 인용어구들은 자식을 낳음으로써 부모로 존중받고 대우받을 자동의 권리를 부여받는 것이 아님을 얘기한다. 아이들은 무기력하고 무력한 존재들이다. 세 아들을 무참히 방기하고 하인의 손에서 자라게 내버려 두고 그들의 재산을 갈취한 카라마조프가의 아버지의 비참한 최후는 하나의 알레고리다. 정도의 차이를 감안하고서라도 우리는 부모의 의무와 연약한 아이들을 지키고 보호해 주어야 할 기본적인 책무를 잊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모두의 양심의 현현 같은 존재인 막내 알료샤가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교조적인 연설을 하는 장면은 빈약한 결말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작가가 일관되게 애정어린 눈길을 보낸 아이들에 대한 존중에 한번 더 강렬하게 방점을 찍어준 것으로 이해해도 괜찮을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아이들을 사랑했다. 아이들의 고통이 방치되는 것을 보고 무신론을 주장한 이반의 모습은 그것과 상통한다.  

 

지극히 윤리적인...

이 소설은 존속살해를 다루고 있지만 지극히 윤리적이기도 하다. 악덕이 반드시 행동 차원에서만 징벌될 것인가, 하는 그 예민한 윤리의식은 마침내 사유와 욕망의 것으로까지 확장된다. 나쁜 생각, 즉 저 사람을 죽여 버리고 싶다는 그 욕망마저도 때로는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유죄이자 존속 살해범일런지도 모른다. 인간은 약하고 비열한 존재다. 하지만 그렇기에 또 더없이 고결한 존재로의 도약이 가능하기도 하다. 내 안의 악마를 응시하는 행위는 그래서 소중하다.  

영원한 재판관은 그대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그대에게 물을 것이기 때문이다.(2권 p.90)

P.S. 방대한 분량, 대사를 통한 사건 전개, 때로는 너무 인위적이고 전형적인 인물들로 인해 1권을 종반부까지 읽어도 2권을 흔쾌히 잡기 힘든 책이다.--;; 서머싯 몸이 왜 그렇게 도스토예프스키를 주는 것 없이 미운 놈이라고 욕을 해댔는지 조금 수긍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만 참으면 안구가 씻겨 나가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흐릿한 안경알을 닦고 갑자기 세상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라고까지 과장할 수도 있다. 어느 지점에서 고민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 다 나온다. 세상사가 답답하고 사람들에 환멸이 들 때 천천히 읽어나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다만 더운 열대야의 밤에는 완전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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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8-24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드디어 읽으셨군요. 짝짝짝~~~~~ ^^
정말 힘들게 읽고 엄청난 감동이 밀려오지만 요렇게 리뷰를 잘 쓰는 건 아무나 못해요.
지금은 예전에 경험한 감동의 물결만 남아 있을 뿐...

blanca 2010-08-24 20:56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이 독서토론회에서 읽으셨다고 꼭 읽어 보라고 했던 댓글 덕택입니다. 사실 지루하다는 평이 많아서 망설였었는데 결국은 읽고 지나가야 할 것 같은 강박 때문에. 예....감동이 어느 순간 정말 쓰나미처럼 밀려오더라구요^^

비로그인 2010-08-24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열린책들에서 나온 붉은색 표지(이건 예전 버전이라던가..하는)의 책을 갖고 있습니다. 다시 책을 좀 찾아 손에 들으니, 한참 열심히 읽던 기억도 나고 하네요 ^^

목소리들. 그 목소리들이 다양하게 울리는.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공평한 시선을 갖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파편으로 이뤄진 것 같지만 하나로 거대하게 묶여 깊은 뿌리가 있음을 가늠케 하는 것이 계속 찾아 읽게 하는 그 무엇은 아닐까 하고요..

blanca 2010-08-24 20:58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정말 놀라운 책이었어요. 말씀대로 인간을 총체적으로 해부한 것 같은. 나라는 존재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예전에 문학샘이 줄치며 읽었다고 몸을 부르르 떠는 시늉을 해서 다 같이 엎어져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 선생님의 마음을 조금 알것도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0-08-24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대단한 리뷰예여, 블랑카님...
나두 읽어야 하는데.

인간 관계의 원초에는 부모 자식 관계가 있죠. 결국 부모 자식 관계에서 인간의 극단적인 면을 볼 수 있는거 같아요.

blanca 2010-08-24 21:00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맞아요. 근데 참 더운데 읽기는 힘들기는 하더라구요--;; 제가 안읽고 꽂혀 있는 책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ㅋㅋ 참고 읽었는데 역시 왜 사람들이 그렇게 카라마조프 운운하는지 알것도 같았어요. 당분간 책 안읽고 눈좀 쉬려구요. 오늘은 우산 없어서 아이랑 비맞다 집에 와서 이쁜 핑크색 우산도 질렀답니다. 단순해지려고 해요^^

꿈꾸는섬 2010-08-24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참 리뷰 잘 쓰세요.^^
교양수업때 이 책 읽고 분석하고 시험봤던 기억이 있긴 한데....블랑카님 리뷰 정말 좋네요.^^

blanca 2010-08-24 21:01   좋아요 0 | URL
우아! 그런 수업이 있었어요? 되게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요. 대학교때 읽으셨다니 대단하세요. 저는 그때 제대로 책도 안읽고 다녔던 것 같은데. 시험이라. 등장인물들 이름 써내라고 하면 참으로 난감해질 것 같아요^^;;

꿈꾸는섬 2010-08-25 00:13   좋아요 0 | URL
ㅎㅎ백지 주시고 아는 거 모조리 쓰라던데요.ㅎㅎ
그땐 참 빼곡하게 썼던 것 같은데 지금은 하나도 생각이 안나요.ㅠㅠ
알리딘 서재에도 그렇게 빼곡하게 쓰면 좋을텐데 그게 안되요.ㅠㅠ

2010-08-24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4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4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7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pjy 2010-08-25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윤리적이라는게 이상향으로 생각이 듭니다^^;
윤리적이어서 인간적이라고 하겠지만,실제론 참 비윤리적이어서 너무너무 인간적이라는 생각하니 말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입맛에 맞게 선택할 수 없고, 자식이 원하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립니다..
이 책을 저는 과연 읽을수 있을까요^^?

blanca 2010-08-25 18:22   좋아요 0 | URL
pjy님 저도 요새 인간이 참 사악하다는 걸 느껴요...체념을 배우고 기대를 낮추는 게 나이듦의 과정인 것도 같아 참 쓸쓸하기도 하구요. 이 책. 솔직히 아주 재미있지는 않아요--;; 그래서 강추라는 말은 차마. 그래도 그 이상의 소득이 분명 있으니 시간이 좀 많이 나고 여유가 되실 때 시작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층간소음으로 분란이 많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위아랫집 다 비슷한 또래들을 키우는데 멋쩍은지 서로들 도망질이다(사실 내가 항상 도망간다). 이유는 층간소음때문이다. 정말 들어서는 안될 소리들을 너무나 많이 듣게 된다. 아랫집에서도 인터폰을 한 번 받았고 윗집에도 인터폰을 한 번 했다. 아랫집은 또 그 아랫집에서 난리라고 한다. 우리 아파트는 아침 저녁으로 조회방송을 한다. 내용은 같다. 조용히 하라는. 층간소음으로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 서로 배려해서 살기 좋은 아파트로 만들자, 모 그런. 그런데 오늘은 윗집이 정말 국지전을 치르는 강도의 층간소음을 종일토록 가열차게 내는 것이었다. 둔감한 편인 내가 이렇게 사람이 층간소음으로 병원으로 갈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 밖에 내다보니 사다리차의 사다리가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이는 것이 이사가는 정황이었다. 올레! 드뎌 해방되는 구나 싶었는데 웬걸. 이사가는 소음이라면 오후 세네 시 경이면 그쳐야 할 소리가 밤 아홉 시까지 주구창장인 것이다.  

온갖 의혹이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이사가는 것이 아닌 이사오는 것인가. 아니면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절정의 층간소음을 만들어 내는 묘기를 부리는 것인가. 참다가 쓰윽 한번 올라가 볼까도 고민하다 그럼 너무 괴기스러울 것 같아서 관두고 경비실에 인터폰을 했다. 이사간건 맞단다, 이사오는지는 모르겠다고. 

두려움이 엄습한다. 더한 강호가 출현한 듯한. 그럼 나는 떠날테다. 결혼당시부터 오 년이 경과한 지금 다 무지막지한 소음 방출 묘기를 부리는 윗집들을 꾸준히 감내하며 보낸 인고의 시간들이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밖에. 윗집을 이고 아랫집을 밟으며 사는 게 정말 삶이라는 건지. 회의가 든다. 누군가가 몇 시에 잠자리에 들고 부부싸움을 며칠에 한 번씩 하는지까지 챙겨듣게 되는 이 의도하지 않은 엿보기가 견디기 힘들다. 

모옴이 거품을 물고 욕해 댄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있다. 힘들다. 인내가 필요한 독서다. 고등학교 때 우리가(우린 여고생들이 아니라 사내들과 흡사했다) 열심히 변태라고 놀려댄 문학샘이 줄쳐가며 읽은 소설이라고 극찬한 이 소설을 언제가는 맞닦뜨리리라고 결심한 터에 접하게 된 책. 다 읽고 감동에 머리가 멍해졌으면 좋겠는데. 심장이 잠시 멈춘 듯했으면 좋겠는데. (안나 카레니나! 정말 그랬다.) 안 넘어간다. 흑흑. 2권부터가 진짜라고 하니 1권 말미에 왔으니 조금만 더 힘내려고 한다. 정말 기똥차게 재미있고 감동 팍팍인 고전은 없는 것인지.  

아이가 자꾸 방문을 닫고 혼자 논다고 눙쳐서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을 거라고 짐작은 했었는데 역시나 아빠가 담배끊는다고 한갑씩 원샷하는 목캔디 한 갑을 다 먹고 있었다. 암담했다. 냉장고에는 몇 모금씩만 먹고 넣어둔 맥주 캔 잔뜩. 흔적을 항상 이곳저곳 흘리고 다니는 아빠 덕택이다. 잔소리 하려고 벼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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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8-18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층간소음, 정말 두렵죠. 저흰 아래층에 수험생이 있어서 쥐죽은 듯 살아야하는데 아이들이 그럴 수 있나요? 아래에서 올라오면 정말 무서워요. 이사가고 싶다니까요.ㅜㅜ

blanca 2010-08-19 14:16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정말 힘드시겠어요. 저도 인터폰 한 번 받았는데 아이들은 한다고 해도 참 통제가 안되잖아요. 알면서도 윗집에서 밤 열시에 우다다다 소리 나면 저도 참 힘들더라구요. 요새는 그냥 아랫집 할머니 만나면 한 소리 하실까봐 아이 데리고 딴데 가는 척 ㅋㅋㅋ 한다니가요. 괜히 찔려서. 저흰 강화마루라 뭐 하나 떨어뜨리면 완전 천둥이 친다고 하더라구요.--;;

프레이야 2010-08-19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로 다투는 사람들 봤지만 전 한번도 이런 경험이 없어서 행운인가요? ^^
잔소리 벼르고 계신 블랑카님^^
아이가 목캔디 한 통을 다 먹고 괜찮은지요? ㅠ

blanca 2010-08-19 14:1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정말 부럽습니다. 목캔디요. 아무렇지도 않고 아침부터 또 사탕을 요구합니다. 중독됐나봐요--;;

비로그인 2010-08-19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카라마조프는 잡힐듯 말듯, 보일듯 말듯. 새벽 세시 억지로 선배들하고 술마시는 기분같기도 하고.. 첨에는 꼭 그러했는데 언제 다시 보니. 둥근 탁자에서 서너명 모여 불밝히며 좀 편히 술마시며 얘기하는 기분도 들고 하더라고요.

그나저나 층간소음. 저의 생활패턴이라면 민원으로 당장 쫒겨날듯 하네요. ^^

blanca 2010-08-19 14:18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ㅋㅋㅋ 정말 예리한 표현이에요. 아파트에서 음악 듣는것 참 힘들죠. 전 단독으로 이사가고 싶어요. 어쩌다 컴으로 음악듣다 문열려 있었다는 것 깨닫고 혼자 괜히 막 떨고 그래요--;;

마녀고양이 2010-08-19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랫집에서 의자다리에 붙이는 스티커 가지고 부탁한게 한번.
제가 윗집에 쫒아간게 한번.
서로서로 그렇죠. ^^ 아랫집의 아이들이 뛰어다닐 나이가 되자, 울 집으로 한번도 안 옵니다. 동병상련이랄까. ㅋ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읽으시는군요? 나두 읽어야하는뎅~

blanca 2010-08-19 14:19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ㅋㅋ 위아래로 가해자도 되보고 피해자도 되보고 하니 참 ㅋㅋㅋ 서로 괜히 좀 그렇고. 카라마조프는 정말 좋은 책임은 분명한데 재미는--;; 숙제하듯 읽고 있어요.

stella.K 2010-08-19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우리 윗집이 오랜만에 친척들이 왔다고 대놓고 참아 달라는데 어이가 없더만요.
그래놓고 새벽1,2시까지 난리를 뽀개는데, 나 같으면 안 된다고 했을텐데
울엄마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그걸 꾸역꾸역 참아내는데 그런 페이소스가 없죠. 흐~
저도 기똥차게 재밌는 고전 좀 나와 줬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10년 전에 죄와 벌 읽고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군요.
저 책은 사 놓고 몇년째 못 읽고 있어요.ㅜ

blanca 2010-08-19 14:20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ㅋㅋ 요새는 미리 선수치더라구요. 좀 시끄러울테니 참아달라고. 카라마조프는 음 저도 사실 1권 조금 읽다 꽂아두려고 하다 참고 또 참아 종반부에 가니 속도가 좀 나더라구요. 그래도 3권의 두께보니 참 한숨나옵니다.

穀雨(곡우) 2010-08-19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때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읽겠노라고 턱 사들고 어찌 이리 지리하게 나아가는지 그래서 아직도 읽는 중...^^
층간소음은 정말 소름돋을 만큼 힘들어요. 아이들이 어리다보니 콩콩 뛰는 그 소리가 밑에 집에 고스란히
전달될까 노이로제 걸릴정도라는....다행히도 윗집은 조용한데, 아랫집 눈치보고 사는 건...쩝
늘 뛰지마라를 달고 산다는....ㅠ.ㅠ 그나마 다른 집을 타고 넘는 소리는 잘 안들려요.
하지만 욕실에서 문 닫고 있으면 어디선가 들리는 노랫소리는 그렇더군요. 우와, 노래 디따 못한다...ㅋㅋㅋ

blanca 2010-08-19 22:14   좋아요 0 | URL
곡우님도 그러셨군요. 그래도 2권부터는 좀 진도가 나가네요. 저도 두 돌도 안됐을 때부터 조금만 뛰려고 하면 네가 뛰면 아랫집 할머니 머리가 아프다고 하도 주입시켜 놔서 ㅋㅋㅋ 누구는 아예 항의 오기 전에 아랫집에 인사갔다고 하더라구요. 애 데리고 인사시키고 너때문에 힘드신 분들이라고.^^;;

굿바이 2010-08-19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처음 신혼살림을 차렸던 빌라의 2층에.....일명 깍두기 머리를 하고 온몸에 동물원을 차리신 분이 살았습니다.
새벽에 들려오는 집단적인 소음을 다 참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했습니다.
아~ 다행이다. 내가 위층에 살았더라면, 나는 숨소리도 못냈겠구나. 까치발로 살았겠구나.... 엉엉

미치도록 재미있고, 파도처럼 감동이 밀려오는 고전은 저도 찾고 있습니다^^ 찾으면 바로 신고하겠습니다 :D

blanca 2010-08-19 22:15   좋아요 0 | URL
하하하...저도 그럼 절대 항의 못할 것 같아요. 그런데 또 그런 분들이 의외로 순박한 분들도 있더라구요. 고전이란....저는 레마르크의 개선문이랑 몸의 달과 6펜스는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은데 대체로 다 상당히 지루하더라구요 ^^;;

따라쟁이 2010-08-20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는 움베르트 에코가 그래요. 그 분 책은 일권도 아니고 백페이지만 넘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좋다고 하던데, 백페이지가 이렇게 쉽지 않군요 ㅠㅠ

blanca 2010-08-21 15:03   좋아요 0 | URL
따라쟁이님, 그래서 저는 접근조차 안합니다.^^;; 사실 처음이 힘든 책은 대체로 다 읽어도 아주 흡족하진 않더라구요...

yamoo 2010-09-02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면 좀 더 강력한 무기가 생기잖아요..우아함이라는..ㅎ 젊은 처자가 절~대 가질 수 없는 아우라..ㅎㅎ
물론 젊음이 좋긴 하지만..그래도 앞으로 그렇게 우울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1인 입니다요^^

거미여인의 키스..네요..읽지는 않고 갖고만 있는 책입니다~ㅎㅎ

blanca 2010-09-02 14:47   좋아요 0 | URL
yamoo님 지르셨나요? 거미여인의 키스 당장 읽어 보셔요! 이건 정말 천재가 쓴 것임에 분명하다고 감탄하는 중이에요. 우아함, 가능할 지 모르겠습니다.^^;;
 

핸드폰이 맛이 가고 있다. 스마트폰 대열에 합류하여 조선 사절단처럼 신문물을 배우라는 어느 인터넷 까페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트위터에 팔로잉하는 게 어떤 건지 문자를 손끝으로 톡톡 쳐서 보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나도 함 느껴보고 싶었다. 괜히 초연한듯 했지만 사실 스마트폰 유저들이 무척 부러웠다. 

그런데 공급자가 소비자가 우위에 있는 그 생경한 느낌이라니. 내일 아이폰4출시 온라인 예약이 오전 여섯 시에 개시된다는데 서버가 다운될지도 모르고 정각에 접속해도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를 들으니 참,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머리 산발하고 눈곱 띠며 컴퓨터 자판에 손가락 올리고 아이폰4를 경건한 맘으로 영접해야 된다는 건지. 참 그 분 대단하시기도 하다. 말란다,라고 말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끊임없이 욕망을 자극하는 사회다. 사진기도 하이브리드라고 가벼운 디카와  DSLR 중간 단계가 나왔다는데 기백만 원이다. 허한 마음은 자꾸만 물욕으로 변질된다. 며칠을 고심한 끝에 나에게는 사치이며 낭비라는 결론이 나왔다. 결국 나는 찍어서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이 큰 건데 출사 나갈 여유도 없을 뿐더러 대체 누구한테 보여 주고 칭찬받는 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가 불분명해서. 

핸드폰은 어차피 죽어가고 있으니 스마트폰 정도는 괜찮다고 자위하지만 오늘 간 빵집 중년의 미인 아주머니 귀에 달랑거리던 그 검은 꽃 귀걸이가 또 가지고 싶다. 가지고 싶은 것들이 늘어간다는 것은 나의 자존감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과 통하는 얘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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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7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8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매지 2010-08-1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핸드폰이 맛이 가서 내일 바꾸려구요.
대세에 따르지 않고 그냥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폴더폰 사려구요.
스마트폰이 스마트해도 내가 더 스마트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려구요 ㅎ

blanca 2010-08-18 11:49   좋아요 0 | URL
이매지님, 그러니까 저는 귀가 정말 얇답니다. 저도 저랑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팔락팔락. 전혀 주관이 없답니다.--;; 요새 폴더폰 정말 이쁘게 나오더라구요.

... 2010-08-18 14:40   좋아요 0 | URL
이매지님, 조, 존경합니다. "내가 더 스마트하다" 절대 명언이예요.. ==> 진정x진심 충격적인 한마디. 그럼요, 이매지님이 비교할 수 없이 더 스마트하시죠!!!


다락방 2010-08-18 14:42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이 반하셨다는 댓글이 뭘까 싶었는데 이 댓글이었군요! ㅎㅎ

그럼요. 스마트폰 보다도 이매지님이 더 스마트하죠.
그러나 다락방보다는 스마트폰이 더 스마트해요. ㅠㅠ

... 2010-08-18 14:52   좋아요 0 | URL
아니, 아니, 아니죠. 다락방님보다 더 스마트하게 글 잘 쓰는 스마트폰은 없을 걸요?

꿈꾸는섬 2010-08-17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끊임없이 욕망을 자극하는 사회다

대체 누구한테 보여 주고 칭찬받는 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가 불분명해서

블랑카님의 감성이 참 좋아요.^^

근데 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읽고 너무 실망했어요.ㅜㅜ

blanca 2010-08-18 11:51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그래도 김영하 만남 당첨되시면 가실거죠?^^ 저는 하여튼 요새 가지고 싶은 것들이 넘 많아져서...큰일입니다.

꿈꾸는섬 2010-08-18 23:59   좋아요 0 | URL
ㅎㅎ당연히 가야죠. 무슨 생각으로 요딴 책을 내놓았나 궁금해요.

마녀고양이 2010-08-18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저라면 아직 스마트 폰 하지 않을거 같은데요... ^^
한달에 5만원이 기본비인 것도 비싸고, 오류도 엄청 많고.
거기다 스마트 폰은 해킹 위험에서도 자유롭지 못 하고.
하지만.........

새로운 문물을 누군가 접해서, 수많은 오류가 고쳐지고, 또한 저한테 가르켜주시는 이점도 있으니
바꾸시는 것도 좋을지도~ ㅋㄷㅋㄷ

blanca 2010-08-18 11:52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안그래도 제 남동생이 최소 한 달에 육만원을 내는 거라고 그러더라구요.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아깝긴 해요. 아이폰4 마루타 되는 건가요? ㅋㅋㅋ 사실 이래도 잘 몰라요. 맘만 그렇게 먹고 있어요. 누가 가지고 다니니까 폼나 보이니 나도 함 써 보자, 이런 아주 유치한 심리랍니다.^^;;

비로그인 2010-08-18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마음이 허할 때 한 쇼핑 치고 성공한 쇼핑이 거의 없습니다.마음과 물질은 이상한 상관관계를 지녔죠.

전 별셋 회사의 휴대폰에 미친듯이 질려서(여섯 달 안에 세 번 고장, 이쯤되니 지치더이다) 홧김에 아이폰으로 바꿨더랬습니다. 그 전에도 아이폰이 있으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 기기 하나로 제 인생이 확 달라지진 않았어요. 뭔가 획기적인 기분전환을, 계속계속, 일평생 찾는 마음입니다.

blanca 2010-08-18 21:55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결심하고 주드님의 아이폰 관련 페이퍼를 정독하고 더 가지고 싶었는데요^^;; 기분전환은 헛된 꿈인가봐요. 오늘 예약도 안하고 해서 제가 올해에 가질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맞아요. 이거 하면 뭔가 달라질거야, 하고 가 보면 또 거기에요. 그런게 참...그나마 여행은 기대이상이 가능한 것 같아요.

穀雨(곡우) 2010-08-18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지름신이 살짝 오신건 아닌지...ㅋㅋ
얼리어답터랑은 거리가 멀지만 늘 변두리에서 얼쩡거리는 저로써는 아이폰, 하이브리드카메라.
쥐락펴락의 시간을 오고 간답니다. 쥬드님처럼 홧김에 확...불싸버리고 싶지만 그게 또 한 웅큼만큼의
쾌락을 위해, 그리고 곧 몰려 올 후회때문에 그러고 있네요. 사고 나면 금세 시들해질텐데 말이죠..
그래도 지를 땐 과감히 쿨하게 질러 줘야 하는데....^^
조만간 블랑카님 손에 들린 아이폰을 구경하겠다는 생각이 얼픈....^.~

blanca 2010-08-18 21:57   좋아요 0 | URL
곡우님도 그러세요? 저는 맨날 스스로 물욕이 크게 없다고 자위하다가(명품백 같은) 엉뚱한 데에서 더 큰 지름신이 와버려요. 그러니 물욕이 없다는 건 완전 착각에 허식이지요. 사진 찍고 커뮤니케이션하고 이런 건 좀더 고차원적이라고 포장해서. 그래도 역시나 조금 더 좋은 사진, 확 다른 생활을 해보고는 싶어요. 아이폰은 사고 싶다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더라구요^^;;

stella.K 2010-08-19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우리 윗집이 오랜만에 친척들이 왔다고 대놓고 참아 달라는데 어이가 없더만요.
그래놓고 새벽1,2시까지 난리를 뽀개는데, 나 같으면 안 된다고 했을텐데
울엄마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그걸 꾸역꾸역 참아내는데 그런 페이소스가 없죠. 흐~
저도 기똥차게 재밌는 고전 좀 나와 줬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10년 전에 죄와 벌 읽고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군요.
저 책은 사 놓고 몇년째 못 읽고 있어요.ㅜ

따라쟁이 2010-08-20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마트폰 유저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트위터에는 팔로잉 못하고 있구요. 전화받고 전화걸고 문자 받고 문자 보내고 이러고 있어요. 그러니까 기계가 스마트한게 문제가 아니고 유저가 얼마나 스마트 하냐의 문제인것 같아요.

blanca 2010-08-21 15:04   좋아요 0 | URL
저도 아마 그리 되지 않을까 싶어요....트위터가 또 나름대로 번거로운 일들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그래도 함 해보고 싶긴 해요. 대체 무언가 싶어서요^//^
 
달 샤베트
백희나 글.그림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10년 8월
구판절판


구름빵을 먹고 두둥실 떠올라 회사에 지각한 아빠에게 구름빵을 가져다 줬던 형제 얘기로 다가왔던 백희나 작가가 더운 열대야를 식힐 달 샤베트를 가지고 귀환했답니다.

더운 밤이면 아파트의 주민들은 문을 더욱더 꽁꽁 여닫고 에어콘을 돌려댑니다. 홀로 뮤직 비디오를 시청하고 있는 말이 왠지 고독해 보이네요. 백희나 작가의 섬세한 눈은 현대 주거구조가 더욱더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있는 부분까지 가 닿습니다. 아이들이 아직 이해하기는 어려운 대목이지만 어른들까지 그녀의 책을 좋아할 수 밖에 없게 되는 대목이기도 해요.

달까지 더워 뚝뚝 땀을 흘리던 그 열대야의 밤, 재치만점의 반장 할머니가 그 물을 받아 얼려 달 샤베트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먹이고 있네요. 주민들은 다들 모여 달 샤베트를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라도 나누는 모양입니다. 다들 갑자기 시원해졌어요.

그런데 어쩌죠! 토끼들이 사는 달이 녹아 내리니 토끼들은 살 곳이 없어져 방황하며 반장 할머니에게까지 오게 됩니다. 옥토끼 설화 기억하시죠! 저 황당해 하는 토끼들의 표정좀 보세요. 절로 웃음이 터집니다. 반장 할머니 커피 대접 중이시네요.

센스쟁이 반장 할머니가 당연히 해결책을 내놓았네요. 샤베트를 만들고 남은 달 물을 꺼내 달꽃을 만드니 하늘에서 갑자기 달이 피어나네요. 점점점 커져서 마침내 토끼들의 보금자리가 완성되었어요. 생각만 해도 너무 예쁜 얘기 아닌가요? 달샤베트를 먹고 시원하게 잠든 아파트 주민들과 토끼들의 보금자리까지 만들어 주시는 반장 할머니의 사연. 오늘은 이웃집 사람들과 시원한 샤베트라도 나누어 먹고 하늘의 달을 보며 옥토끼가 아직도 절구를 찧고 있나 확인해 보시는 것도 괜찮은 피서 방법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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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름빵' 백희나 작가가 6년만에 내놓은 두번째 창작책 '달 샤베트'
    from 도서출판 예문당 - 함께 만드는 책 놀이터 *^^* 2010-08-19 09:32 
    책 주로 어디서 구입하시나요? 전 이전에는 인터넷 서점을 애용했는데, 요즘은 시내 서점을 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오랫만에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다가 그림책 한권이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구름빵' 백희나 작가의 신간 '달 샤베트'였습니다. 일단 주문부터 했습니다. 구름빵.. 도 먹는 이야기였는데, 달 샤베트라.. 또 먹는 이야기 같은데, 무슨 내용일지 무척 궁금했어요. 이 책은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날 캄캄한 밤에 있었던 이야기에요. 너무..
 
 
꿈꾸는섬 2010-08-17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재밌겠어요.^^

blanca 2010-08-18 11:52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백희나 작가 참 부럽더라구요. 이번 책도 정말 사랑스러워요. 현수와 현준이도 정말 좋아할 것 같아요.

순오기 2010-08-18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블랑카님의 포토리뷰닷~
백희나의 신작이 나온 것도 몰랐네요. 감사~ ^^

blanca 2010-08-18 11:53   좋아요 0 | URL
넘 좋아서 남겨 봤어요. 사진이 생각보다 참 안나오더라구요. 순오기님 강추랍니다.~

프레이야 2010-08-18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샤베트, 그림이 굉장히 멋지네요.
더위에, 샤베트라는 이름만 들어도 입안이 시원한 느낌이에요.
아이들 어릴 땐 그림책을 참 많이 봤는데
문득, 그림책을 잊고 있었단 생각이 들어요.
조카들 주지도 않고 아직 갖고 있는 많은 그림책들이 제손을 가끔 기다리겠는데요.^^

blanca 2010-08-18 11:53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그 말씀 하시니까 샤베트 먹고 싶어져요. 아이스케키. 아, 제가 이 책은 더 열심히 보구 있어요. 아이 반응은 아직 어려서 그런가 그닥 시원찮더라구요.^^;;

stella.K 2010-08-18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블랑카님도 포토리뷰를 쓰기 시작했군요.
전 핸드폰으로 가끔 찍어보는데 잘 찍지도 못하고 복잡한게 많아
지레 포기하고 있답니다.ㅜ
책이 참 럭셔리해요.^^

blanca 2010-08-18 21:59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저도 포토리뷰는 공력도 그렇고 능력도 부족해요. 기냥 함 써봤어요 ㅋㅋ 책이 넘 이뻐서 아깝더라구요. 쓰고 보니 적립금 행사도 걸려 있고 해서^^;;역시나 사진이 잘 안나오더라구요.--;;

穀雨(곡우) 2010-08-18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구름빵....둘째 녀석에게 필이 꽂혀 밤이면 밤마다 읽어 줬다는 그 구름빵의 저자네요.
이 책도 재미나겠습니다. 둘째에게 선물해야겠다...^^ 고맙습니다. 블랑카님^^ 리뷰추천...꽝~~!

blanca 2010-08-18 22:00   좋아요 0 | URL
곡우님, 구름빵 정말 넘 사랑스럽잖아요. 이 작가 책 쭈욱 기다리다가 신간 나왔다는 소식에 바로 주문했어요. 역시나 기대이상이었어요. 아이가 좋아할 거예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때 나의 엄마와 아빠가 해운대에서 입맞춤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설사 그랬다손 치더라도 각자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했더라면, 그래서 각기 다른 아이들을 낳았더라면.
수많은 시간을 뚫고 왜 하필 지금 여기에서 내가 이 사람을 만나 이 아이를 낳고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자판을 두들기고 있나. 

이런 생각들에 스치울 때면 존재가 무거워지는 것도 같고 한없이 가벼워지는 것도 같다. 그러나 대부분 나는 이런 것들은
잊고 치워두고 비본질적이고 치사하고 졸렬한 것들에 집착하고 매달려 하루하루를 소진하고 있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더 들어갈 수록 우리는 더욱더 근시가 된다. 마침내 정말 코앞의 것들밖에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존재의 지평선 너머로 슬쩍 밀려가 버리고 만다. 영겁의 시간들 속에 그렇게 우리 존재는 역사 속 의미있는 한 줄도 되지 못한 채 그저 그렇게 흔적도 없이 스러져 간다. 

모든 것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는 없다. 모든 것의 본질로 포박해 들어갈 수는 없다. 관념적이고 그럴듯한 것들로 삶전체를 채울 수도 없다. 싸고 먹고 마시고 소진하고 낳고 그러다 보면 의도하지 않은 마침표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시간에 당도한다.  

두 번은 없다.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중략> 

너는 존재한다.-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저는 사라진다-그러므로 아름답다.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중

 

 

시를 즐겨 읽지도 않고, 더군다나 시집을 사모으지도 않는다. 어느 날 정혜윤의 <런던을 속삭여 줄게>에서 이름도 어려운 쉼보르스카의 <박물관>이라는 인용된 시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박물관의 사물들에 대한 그녀의 명쾌하고 예리한 서사 부여가 가슴 끝을 찌르는 듯이 박혀 왔다. 

왕관이 머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어요.
손은 장갑에게 굴복하고 말았어요.
오른쪽 구두는 발과 싸워 승리했어요.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이라니. 박물관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유물들이 인간의 삶을 뛰어넘는 그곳에서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그 모습에 대한 코믹한 시구들은 시인이 범속한 우리들과는 다른 겹눈을 가진 듯한 느낌마저 가지게 한다. 우리가 말하고 싶지만 언어로 미처 형상화해내지 못하는 것들, 찰나를 스치고 지나가 금방 잊혀져 가는, 그러나 본질적인 깨달음들을 이 폴란드의 여류시인은 재빠르게 채어 놀랍도록 명징하고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되돌려 준다. 그녀는 시인은 인생이 마치 고갈되지 않는 재고품이라도 되는 듯 함부로 낭비되는 것에 일종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쓰지 않은 시에 대한 검열 중> 

EBS에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위에서 메릴 스트립의 수줍게 웃는 모습을 찍어 대던 그 나이든 사진작가는 <평원의 무법자>에서 황량한 모래 바람을 가르며 총질을 해대는 젊고 매력적인 이방인으로 분하고 있었다. 무릎 위에는 쉼보르스카의 껍질에서부터 뿌리 구석구석까지 양파스럽고 겉과 속이 항상 일치하는 성공적인 피조물이라는 양파의 미덕에 대한 찬사를 들으며 끊임없이 죽여대고 복수하고 폼을 잡는 서부의 총잡이의 얘기를 슬쩍슬쩍 눈안에 퍼담았다. 육체로 말하고 호소하고 사랑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제 눈빛으로 호소하고 당면한 욕망을 억누르고 뒤안길로 빠지는 미덕을 목하 보여 주는 노인으로 분하게 되었다. 시간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우리는 모두 죽음이라는 그 종결점에 결론적으로 동의하고 만 무력한 존재들이다. 모든 미소한 것들이 옴쭉달싹 할 수 없게 우리를 옭아 매는 그 순간에 이런 시를 읽고 이따금 삶이라는 것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찰나에 스며든 존재의 그 무력하지만 신비한 속성을 응시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인 것 같다. 

힘들 때마다 이 시집을 읽으려고 한다. 완전히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었던 그 가능성을 떠올리며 하필 내가 이 지점에서 나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에 대한 신비로운 존귀함을 기억하고 나의 시간들이 얼마나 찰나적인 것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잊지 않도록.  삶의 비의를 살짝 훔쳐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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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8-15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이 철학적인 리뷰를 쓰셨으니... 나둥~

"지금 하필 이 순간이, 나, 여기" 이게 필연일까 우연일까 이런 생각들,, 이것이 전생의 업일까 아님 다만 이번 생의 찰나일까 이런 생각들............ 끝도 없고 결론도 없는 많은 생각들.

예전에는 결론 없고 에너지 소모인 듯 하여 승질났는데, 요즘은 여유가 좀 있는지.. 재미있습니다. ㅎㅎ

blanca 2010-08-16 17:03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은 찾아 가시는 중이잖아요. 부러워요....지금 하필 이 순간 내가 무얼 원하는지 몰라 답답해요. 내가 뭘 해야 하는지...하여튼 머리 아프답니다.^^;;

비로그인 2010-08-16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인이여, 그대 이름은 무엇이냐?-몰라요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디 출신인가?-몰라요

왜 땅굴을 팠느냐?-몰라요

언제부터 여기에 숨어 있었느냐?-몰라요

왜 내 약지를 물어뜯었느냐?-몰라요

우리가 당신에게 절대로 해로운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아는가?-몰라요

당신은 누구 편이지?-몰라요

지금은 전쟁 중이므로 어느 편인지 선택해야만 한다-몰라요

당신의 마을은 존재하는가?-몰라요

이 아이들이 당신 아이들인가?-맞아요





쉼보르스카, 베트남.



제가 오래 전부터 좋아하던 시인입니다. 블랑카님의 서재에서 쉼보르스카 이야기를 듣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blanca 2010-08-16 17:03   좋아요 0 | URL
쉼보르스카를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첨 알았어요. 시가 이렇게 잘 읽히고 좋은지...위에 시도 한참을 정지할 정도로 좋아요....쥬드님

비로그인 2010-08-17 15:03   좋아요 0 | URL
물음보다 `몰라요' '맞아요', 이 두 마디가 더더욱 오랜 시간 남아있는 시입니다.

pjy 2010-08-17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멈추게 만드는 시.. 온통 달려야만 보이는건 아니죠~ 멈추면 더 잘 보이는거죠^^

blanca 2010-08-17 21:32   좋아요 0 | URL
예, 그래서 이따금 이런 시집을 읽어줘야 하나 봅니다.^^

비로그인 2010-08-17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 보면.. blanca님 읽고 대면하시는 책과 제가 읽는 책이 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올려지는 몇 권의 책만 가지고 판단하기는 또 어려울수도 있겠지만요. ^^

이른 밤. 삶을 "정지" 하게 만드는 시들. "정지" 한 삶에서 중요한 무엇들을 불러 일으키는 시들. 중요한 무엇들이 다시 삶을 바로 잡아 주게 만드는 시들.. 쉼보르스카 와 비슷한 느낌의 다른 시인들의 시를 생각하며 이런것들을 떠올려봅니다.

대체 뭐가 뭔지 허옇게, 나의 시선과 타인의 시선이 너무나 차이가 나는 것을 또 느끼는 밤. 들려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blanca님..

blanca 2010-08-17 22:34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비슷한 건 언제나 기분이 좋아요^^;; 외국 시인들의 시는 번역을 거쳐 아무래도 직접 소통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쉼보르스카의 시는 워낙 좋으니 그런 우려도 부끄럽게 만들더라구요. 저는 소통에 큰 기대를 안 건답니다. 그것도 나이듦의 장점이자 서글픈 대목이기도 하고요. 바람결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