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으로 분란이 많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위아랫집 다 비슷한 또래들을 키우는데 멋쩍은지 서로들 도망질이다(사실 내가 항상 도망간다). 이유는 층간소음때문이다. 정말 들어서는 안될 소리들을 너무나 많이 듣게 된다. 아랫집에서도 인터폰을 한 번 받았고 윗집에도 인터폰을 한 번 했다. 아랫집은 또 그 아랫집에서 난리라고 한다. 우리 아파트는 아침 저녁으로 조회방송을 한다. 내용은 같다. 조용히 하라는. 층간소음으로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 서로 배려해서 살기 좋은 아파트로 만들자, 모 그런. 그런데 오늘은 윗집이 정말 국지전을 치르는 강도의 층간소음을 종일토록 가열차게 내는 것이었다. 둔감한 편인 내가 이렇게 사람이 층간소음으로 병원으로 갈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 밖에 내다보니 사다리차의 사다리가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이는 것이 이사가는 정황이었다. 올레! 드뎌 해방되는 구나 싶었는데 웬걸. 이사가는 소음이라면 오후 세네 시 경이면 그쳐야 할 소리가 밤 아홉 시까지 주구창장인 것이다.  

온갖 의혹이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이사가는 것이 아닌 이사오는 것인가. 아니면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절정의 층간소음을 만들어 내는 묘기를 부리는 것인가. 참다가 쓰윽 한번 올라가 볼까도 고민하다 그럼 너무 괴기스러울 것 같아서 관두고 경비실에 인터폰을 했다. 이사간건 맞단다, 이사오는지는 모르겠다고. 

두려움이 엄습한다. 더한 강호가 출현한 듯한. 그럼 나는 떠날테다. 결혼당시부터 오 년이 경과한 지금 다 무지막지한 소음 방출 묘기를 부리는 윗집들을 꾸준히 감내하며 보낸 인고의 시간들이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밖에. 윗집을 이고 아랫집을 밟으며 사는 게 정말 삶이라는 건지. 회의가 든다. 누군가가 몇 시에 잠자리에 들고 부부싸움을 며칠에 한 번씩 하는지까지 챙겨듣게 되는 이 의도하지 않은 엿보기가 견디기 힘들다. 

모옴이 거품을 물고 욕해 댄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있다. 힘들다. 인내가 필요한 독서다. 고등학교 때 우리가(우린 여고생들이 아니라 사내들과 흡사했다) 열심히 변태라고 놀려댄 문학샘이 줄쳐가며 읽은 소설이라고 극찬한 이 소설을 언제가는 맞닦뜨리리라고 결심한 터에 접하게 된 책. 다 읽고 감동에 머리가 멍해졌으면 좋겠는데. 심장이 잠시 멈춘 듯했으면 좋겠는데. (안나 카레니나! 정말 그랬다.) 안 넘어간다. 흑흑. 2권부터가 진짜라고 하니 1권 말미에 왔으니 조금만 더 힘내려고 한다. 정말 기똥차게 재미있고 감동 팍팍인 고전은 없는 것인지.  

아이가 자꾸 방문을 닫고 혼자 논다고 눙쳐서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을 거라고 짐작은 했었는데 역시나 아빠가 담배끊는다고 한갑씩 원샷하는 목캔디 한 갑을 다 먹고 있었다. 암담했다. 냉장고에는 몇 모금씩만 먹고 넣어둔 맥주 캔 잔뜩. 흔적을 항상 이곳저곳 흘리고 다니는 아빠 덕택이다. 잔소리 하려고 벼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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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8-18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층간소음, 정말 두렵죠. 저흰 아래층에 수험생이 있어서 쥐죽은 듯 살아야하는데 아이들이 그럴 수 있나요? 아래에서 올라오면 정말 무서워요. 이사가고 싶다니까요.ㅜㅜ

blanca 2010-08-19 14:16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정말 힘드시겠어요. 저도 인터폰 한 번 받았는데 아이들은 한다고 해도 참 통제가 안되잖아요. 알면서도 윗집에서 밤 열시에 우다다다 소리 나면 저도 참 힘들더라구요. 요새는 그냥 아랫집 할머니 만나면 한 소리 하실까봐 아이 데리고 딴데 가는 척 ㅋㅋㅋ 한다니가요. 괜히 찔려서. 저흰 강화마루라 뭐 하나 떨어뜨리면 완전 천둥이 친다고 하더라구요.--;;

프레이야 2010-08-19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로 다투는 사람들 봤지만 전 한번도 이런 경험이 없어서 행운인가요? ^^
잔소리 벼르고 계신 블랑카님^^
아이가 목캔디 한 통을 다 먹고 괜찮은지요? ㅠ

blanca 2010-08-19 14:1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정말 부럽습니다. 목캔디요. 아무렇지도 않고 아침부터 또 사탕을 요구합니다. 중독됐나봐요--;;

비로그인 2010-08-19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카라마조프는 잡힐듯 말듯, 보일듯 말듯. 새벽 세시 억지로 선배들하고 술마시는 기분같기도 하고.. 첨에는 꼭 그러했는데 언제 다시 보니. 둥근 탁자에서 서너명 모여 불밝히며 좀 편히 술마시며 얘기하는 기분도 들고 하더라고요.

그나저나 층간소음. 저의 생활패턴이라면 민원으로 당장 쫒겨날듯 하네요. ^^

blanca 2010-08-19 14:18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ㅋㅋㅋ 정말 예리한 표현이에요. 아파트에서 음악 듣는것 참 힘들죠. 전 단독으로 이사가고 싶어요. 어쩌다 컴으로 음악듣다 문열려 있었다는 것 깨닫고 혼자 괜히 막 떨고 그래요--;;

마녀고양이 2010-08-19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랫집에서 의자다리에 붙이는 스티커 가지고 부탁한게 한번.
제가 윗집에 쫒아간게 한번.
서로서로 그렇죠. ^^ 아랫집의 아이들이 뛰어다닐 나이가 되자, 울 집으로 한번도 안 옵니다. 동병상련이랄까. ㅋ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읽으시는군요? 나두 읽어야하는뎅~

blanca 2010-08-19 14:19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ㅋㅋ 위아래로 가해자도 되보고 피해자도 되보고 하니 참 ㅋㅋㅋ 서로 괜히 좀 그렇고. 카라마조프는 정말 좋은 책임은 분명한데 재미는--;; 숙제하듯 읽고 있어요.

stella.K 2010-08-19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우리 윗집이 오랜만에 친척들이 왔다고 대놓고 참아 달라는데 어이가 없더만요.
그래놓고 새벽1,2시까지 난리를 뽀개는데, 나 같으면 안 된다고 했을텐데
울엄마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그걸 꾸역꾸역 참아내는데 그런 페이소스가 없죠. 흐~
저도 기똥차게 재밌는 고전 좀 나와 줬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10년 전에 죄와 벌 읽고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군요.
저 책은 사 놓고 몇년째 못 읽고 있어요.ㅜ

blanca 2010-08-19 14:20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ㅋㅋ 요새는 미리 선수치더라구요. 좀 시끄러울테니 참아달라고. 카라마조프는 음 저도 사실 1권 조금 읽다 꽂아두려고 하다 참고 또 참아 종반부에 가니 속도가 좀 나더라구요. 그래도 3권의 두께보니 참 한숨나옵니다.

穀雨(곡우) 2010-08-19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때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읽겠노라고 턱 사들고 어찌 이리 지리하게 나아가는지 그래서 아직도 읽는 중...^^
층간소음은 정말 소름돋을 만큼 힘들어요. 아이들이 어리다보니 콩콩 뛰는 그 소리가 밑에 집에 고스란히
전달될까 노이로제 걸릴정도라는....다행히도 윗집은 조용한데, 아랫집 눈치보고 사는 건...쩝
늘 뛰지마라를 달고 산다는....ㅠ.ㅠ 그나마 다른 집을 타고 넘는 소리는 잘 안들려요.
하지만 욕실에서 문 닫고 있으면 어디선가 들리는 노랫소리는 그렇더군요. 우와, 노래 디따 못한다...ㅋㅋㅋ

blanca 2010-08-19 22:14   좋아요 0 | URL
곡우님도 그러셨군요. 그래도 2권부터는 좀 진도가 나가네요. 저도 두 돌도 안됐을 때부터 조금만 뛰려고 하면 네가 뛰면 아랫집 할머니 머리가 아프다고 하도 주입시켜 놔서 ㅋㅋㅋ 누구는 아예 항의 오기 전에 아랫집에 인사갔다고 하더라구요. 애 데리고 인사시키고 너때문에 힘드신 분들이라고.^^;;

굿바이 2010-08-19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처음 신혼살림을 차렸던 빌라의 2층에.....일명 깍두기 머리를 하고 온몸에 동물원을 차리신 분이 살았습니다.
새벽에 들려오는 집단적인 소음을 다 참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했습니다.
아~ 다행이다. 내가 위층에 살았더라면, 나는 숨소리도 못냈겠구나. 까치발로 살았겠구나.... 엉엉

미치도록 재미있고, 파도처럼 감동이 밀려오는 고전은 저도 찾고 있습니다^^ 찾으면 바로 신고하겠습니다 :D

blanca 2010-08-19 22:15   좋아요 0 | URL
하하하...저도 그럼 절대 항의 못할 것 같아요. 그런데 또 그런 분들이 의외로 순박한 분들도 있더라구요. 고전이란....저는 레마르크의 개선문이랑 몸의 달과 6펜스는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은데 대체로 다 상당히 지루하더라구요 ^^;;

따라쟁이 2010-08-20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는 움베르트 에코가 그래요. 그 분 책은 일권도 아니고 백페이지만 넘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좋다고 하던데, 백페이지가 이렇게 쉽지 않군요 ㅠㅠ

blanca 2010-08-21 15:03   좋아요 0 | URL
따라쟁이님, 그래서 저는 접근조차 안합니다.^^;; 사실 처음이 힘든 책은 대체로 다 읽어도 아주 흡족하진 않더라구요...

yamoo 2010-09-02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면 좀 더 강력한 무기가 생기잖아요..우아함이라는..ㅎ 젊은 처자가 절~대 가질 수 없는 아우라..ㅎㅎ
물론 젊음이 좋긴 하지만..그래도 앞으로 그렇게 우울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1인 입니다요^^

거미여인의 키스..네요..읽지는 않고 갖고만 있는 책입니다~ㅎㅎ

blanca 2010-09-02 14:47   좋아요 0 | URL
yamoo님 지르셨나요? 거미여인의 키스 당장 읽어 보셔요! 이건 정말 천재가 쓴 것임에 분명하다고 감탄하는 중이에요. 우아함, 가능할 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