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떨어졌다. 읽을 책이. 사실 지금 김현의 책을 읽고 있긴 한데 반에서 더 나아가 읽을 책을 쟁여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해진다. 김현의 일기는 정갈하고 대단히 직설적이다. 지금 생존해 있는 작가들이나 작품평이 때로 무척 뾰족하다. 모든 평에 공감하기는 어렵고 내가 읽지 않은 시나 작품에 대한 평은 아무래도 집중이 잘 안된다. 시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좋다. 군데 군데 직접 인용하며 칭찬하거나 지적한 대목은 형형하다. 우리나라 시인이 우리 말로 쓴 시집을 차곡 차곡 읽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러니 미루어 두었던 기형도 시집을 읽자. 수많은 시집들이 나오고 거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풍성하던, 약속 장소가 때로 거리의 서점이었던 그 말과 글이 난무하던 시대가 그립기도 하다. 서점에 가도 책을 봐도 이러한 시대가 저물어 가고 이 모든 것들이 화석화 되지나 않을까 때로 두렵다.

 

 

 

 

 

 

 

 

 

 

 

 

 

 

 

읽는 일을 한 템포 늦추려 한다. 무엇보다 눈이 침침해져 온다. 마구 혹사시켰더니 이제서야 반란이다. 대신 책 관련 팟캐스트에 집중하게 된다. 낭독이라는 것에 그리 큰 기대가 없었는데 사람 목소리로 활자를 불러내는 일에 또다른 매력을 느낀다. 작가가 하는 낭독회, 각종 책의 오디오 파일 등이 활발한 문화가 부럽기도 하다. 어떻게든 이야기에서 멀어지지 않으려 하는 어떤 가냘픈 노력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게 다감하니 매력적이다. 스마트폰이 잡아 먹어버린 그 수많은 대화, 시선맞춤, 고개 끄덕임, 읽기, 듣기가 어디로 간 것일까?

 

자꾸 허무하다. 이것도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원래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유독인 걸까? 자다가 깨거나 자기 직전이면 가장 허무하다.  한 팔십 먹은 노파처럼 추억이나 곱씹고 회한에 잠긴다. 자꾸 생이 유한하다,고 생각하면 이 모든 일상들이 이 모든 욕망, 꿈들이 초라하게 쪼그라든다. 자꾸 죽음, 상실에 관련된 책들을 읽게 되어 그런 건지, 필연적으로 이야기의 구조는 생의 유한함으로 수렴되는 것이라 그런 건지. 이것도 더 살고 나이가 들면 또다른 위안이나 깨달음으로 달래지는 일일까? 서른 초반만 해도 늙는다거나, 죽는다는 일에 그렇게 집중했던 것 같지 않은데 이건 모 자꾸 어차피 다 늙고 소멸하고 사라진다,는 전제로 접근하기 시작하니 가슴이 다 서늘하다. 그러니까 지금 나의 이 단계도 결국 어리석음이고 또 다른 차원의 성숙으로 가는 단계였으면 좋겠다. 이게 끝이라거나 별 거 없다,는 결론이 나올까 두렵다. 아주 늙은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실없고 엉뚱하고 때로는 가혹하다.

 

듣고 읽다보면 나아질까? 아니면 더 악화될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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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8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18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302moon 2016-01-28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오프라인 매장에서 사려다 알라딘에서 사야지, 하고 나왔거든요. blanca님 리뷰를 읽으니, 당장 사고 싶어졌어요. 다음 달에 주문해야 하는데 T_T

blanca 2016-01-28 20:05   좋아요 0 | URL
다음 달이면 얼마 안 남았으니 조금 참으셨다가 주문하시면 받아보시는 기쁨이 더 크지 않을런지요. 저도 사실 이런 말 할 자격은 없지만요.^^;;
 

결손 가정도 아니었고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아이를 학대하지도 않았던 엄마는 여느 날처럼 안녕이라고 말하며 학교에 보냈던 아이가 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의 용의자라는 전화를 받고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기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이 더 다치기 전에 자신의 아이가 차라리 자살하게 해 달라고.

 

 

 

 

 

 

 

 

 

 

 

 

 

 

 

 

결국 아이는 그렇게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에야 건장한 체구의 아들이 학교에서는 치욕적인 왕따와 굴욕적인 폭력을 당하고 있었고 졸업파티에 파트너를 대동하고 미소짓던 동영상을 남겼던 아이가 뒤에서는 이미 무서운 범죄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는 숱한 가정법과 만난다. 만약 그 때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그곳으로 이사를 갔다라면, 아이는 이렇게 무차별 총격으로 친구들을 희생시키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하지만 그러한 모든 가정법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서 어머니는 그러한 아이를 낳고 기른 자신의 지난 시간들을 부정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아들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이야기는 이제 끝났어요. 우리는 그 아이가 다른 일을 하기를, 보다 나은 일을 하기를 바랄 수 없어요. 결말을 알고 있으면 이야기를 훨씬 잘 들려줄 수 있죠.

<중략>

 

나는 다른 누군가의 아픔이 아니라 나 자신의 아픔에 대해서 말하는 거예요. 나는 아픔을 받아들여요. 인생은 아픔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것이 내 인생이에요. 딜런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세상엔 더 나았겠죠. 하지만 내게는 더 나은 일이 아니었을 거라 생각해요.

- 앤드루 솔로몬 <부모와 다른 아이들 2>

 

자식을 가지는 일은 어쩌면 자신의 삶으로 끝날 서사를 더 길고 거대한 것으로 만드는 길에 서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한 기대를 배반하고 자신보다 더 빨리 끝나게 될 아이의 이야기를 껴안아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참혹한 고뇌와 고통을 안겨다 줄 것인가. 그 아픔 앞에 선 모정은 그러나 담담하게 저자 앞에서 이미 끝나버린 아이의 이야기를 술회한다. 이제 미래로 나아가는 가정법은 과거로 향한 가정법에 뭉그러지고 응시해야만 하는 그 처절한 비애 앞에서 나온 어머니의 이야기, 아픔을 받아들인다는 이야기, 이것이 내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다시 읽게 된다.

 

1권에서는 사회적으로 도와주고 지원해줘야 한다는 합의가 전제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2권은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 범죄를 저지른 아이, 타고난 생물학적 성정체성을 부정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는 어른들의 잘못된, 강요된 선택이 있었다는 사회적 시선이 더욱 가혹하게 작용한다. 그러니까 적어도 그러한 아이들을 낳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가정에서 비롯된 비난이다. 아이들은 탄생 자체부터가 상처로 작용하는 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슬프고 비참한 이야기로 끝맺음하는 것은 아니었다. 강간으로 가지게 된 아이로부터가 손주까지 보게 된 여인의 이야기는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불행을 이겨내고 삶의 이야기로 통합하며 화해하게 되는지에 대한 가장 슬프면서도 처절한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내게 그들이 절대로 모를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만 생각해요. 그들은 그들에게 아름다운 딸이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모를 거예요. 귀여운 손주들이 있다는 사실도 절대로 알 수 없죠. 영원히 모를 거예요. 나만 아는 거예요.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었다지만 아직도 이 지구의 곳곳에서는 남자들의 전쟁으로 폭력으로 수많은 여자들이 신음하고 있다. 르완다의 종족학살로 약 50만의 여성들이 강간당하고 5천 명의 아이들의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야기는 충격이라는 말로 다 담아낼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자신을 낳은 엄마에게서도 부정당하고 버림받아 떠돌고 있다고 한다. 강간에 의해 태어난 아이들은 그들 자신이 상처가 된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너무 슬프다.

 

"자기 구원을 위한 안내서로서 이 책은 수용에 관한 설명서다."라는 저자의 첨언은 그러나 그러한 수용이 반드시 사회적 지지와 구성원들의 강력한 감정적 공명이 있어야 가능한 것임을 예증하는 사례집이기도 하다. 자식을, 그리고 그 아이가 더군다나 다른 여느 아이들과 다른 이례적인 아이일 때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게까지 양육하는 긴 여정은 참으로 고독하고 힘겨운 과정일 것이다. 또한 그 종착점이 그러함에도 끝까지 그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결론이 될 수도 있다. 해피엔딩은 삶의 의미도 결론도 아니다. 아프지만 이야기하고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주어지는 그러한 곳에 대한 기대가 오늘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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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1-16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캐빈에 대하여, 그을린 사랑이 떠오릅니다. ㅠ

blanca 2016-01-16 16:37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님이다!! 아, 저 그 영화 본다 본다 하면서 못 봤어요. 조만간 봐야겠어요. `그을린 사랑`이라는 이야기에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북플의 많은 장점에 공감하지만 이 점 하나는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책표지가 전면에 나타나다보니 절로 손가락이 스치며 읽지도 않은 책에 떡하니 별점 하나가 매겨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중에 발견하고 삭제하며 때로 가슴을 쓸어 내린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책을 정말 읽고 이러한 최악의 별점을 매겼다면 그럴 수도 있었다, 싶겠지만(그래도 별 하나 나올 책을 완독할 만한 에너지가 이제는 없다) 읽지도 않은 책에 내가 준 적도 없는 별점이 갑자기 확 나타나는 경우는 그야말로 식겁한다. 그래서 책표지가 선명하고 아름답게 나타나는 북플을 이용해서 이웃들 글을 읽는 게 좋지만 책표지를 터치할까봐 신경이 쓰이다 보니 이것도 이제 피곤한 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비단 북플만의 한계는 아니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각종 인터넷 서비스에 미스터치로 일어나는 일들이 종종 있다. 너무 쉽게 반응하고 접근할 수 있다는 게 때로는 치명적인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도 이어진다. 포털서비스의 댓글신고 터치도 종종 그렇다. 재미있게 읽은 댓글을 살짝 잘못 스치면 댓글신고가 된다. 즉각적인 반응성은 쉽지만 아주 민감하고 어려운 길이기도 하다. 쉽게 반응하고 표현하는 세계에서 망각과 용서와 배려는 더 대단한 것이 되어버렸다.

 

스마트폰은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상이 되었다. 특히 나는 팟캐스트로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정은임 아나운서의 영화음악도 듣고 김중혁과 이동진의 소탈하고 끊이지 않는 주거니 받거니 만담스러운 책 이야기와  김영하의 절로 평화스러운 수면을 부르는 그 단조로운 낭독도 듣고 스트레칭 동영상 보며 운동도 하니 도저히 2G폰으로 돌아가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할 호기는 부릴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편리한 풍요로움 안에 어떤 대면관계나 직접적인 체험들은 뒤로 밀려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이제 사람을 직접 만나 소통하는 대신 내가 골라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모든 간접체험으로 직접 체험의 효용을 대체하려 하려는 경향이 빈번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이제 세상에 직접 나가 부딪히고 깨어지고 해야 하는 성장이나 성숙의 불편함은 상당 부분 이러한 기기들로 해소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장으로 삶으로 소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무언가 풍요로운 것 같으면서도 빈곤하고 고독한, 말로 설명하기 힘든 스마트폰 안에서의 삶이다.

 

나쁜 손가락에 대한 짧은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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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1-11 1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늘 그 점이 불편하고 불만이었어요. 얘기해야지, 건의해야지 하고만 있었는데 이렇게 먼저 말씀해주셨네요. 공감합니다!!

blanca 2016-01-12 08:32   좋아요 1 | URL
저도 계속 생각만 하고 있다 이제서야 말하게 됐어요. 자꾸 별점 둘, 셋도 아닌 하나가 매겨져 있더라고요.

무독서 2016-01-11 1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감합니다.
별점과 책읽는 상태들이 너무 쉽게 터치됩니다.

blanca 2016-01-12 08:32   좋아요 1 | URL
저만 그런 건 아니었군요. 저는 유독 나만 이러나, 이런 생각 한 적도 있어서요.

yureka01 2016-01-11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류터치..공감됩니다..ㄷㄷㄷ서너번 발생했어요 ㄷ

blanca 2016-01-12 08:33   좋아요 1 | URL
심지어 모르고 있다 어떤 분이 왜 별점 하나인지 좀 궁금해하시는 댓글을 달아주셔서 화들짝 놀란 적도 있었답니다.

cyrus 2016-01-11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정면으로 보는 모습이 있는 책표지를 볼 때 깜짝 놀랍니다. 북플에서는 책표지가 너무 크게 나옵니다.

blanca 2016-01-12 08:33   좋아요 1 | URL
아, ㅋㅋ 그런 적도 있어요. 공포소설이었어요.

chika 2016-01-11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는 정말 훌륭한 책인데 제가 별 하나를 준적도 있더라고요. 화들짝 놀라 삭제했던 기억이... ㅠㅠ

blanca 2016-01-12 08:34   좋아요 1 | URL
치카님도 그러셨군요! 열심히 작업한 관계자나 저자가 보면 사기가 떨어질 듯해서 저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장소] 2016-01-11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한번씩 느끼는 군요..그래서 그 덕에 한번 더 보나봐요.^^

blanca 2016-01-12 08:34   좋아요 1 | URL
묘한 위로가 되네요. 저는 몇 번이나 그래서 이거 내 손가락이나 주의력 문제인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도 있답니다.

[그장소] 2016-01-12 11:19   좋아요 0 | URL
해놓고 무신경한 경우도 있을텐데 ㅡ가끔 생각이 깊은 이런 면에 참 놀라곤 해요.
그러면서 한번 더 봐야겠구나..뭐 그런 생각도 들고요. 어느땐 앞의 별점을 수정하고 싶을 적도 있곤한데..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아지는 글 입니다.^^

오거서 2016-01-12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
가끔씩 내가 그 책에 별점을 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별점이 매겨져 있음을 보고는 놀라면서도 몹쓸 기억력을 탓하였는데 내 탓만은 아니었군요. 휴~

blanca 2016-01-12 08:35   좋아요 1 | URL
^^ 개선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자책하지 않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 <온더무브>를 아껴 읽고 있다. 유년 시절의 이야기는 이미 <이상하거나 멍청하거나 천재이거나>에서 다루어서 그런지 비중이 높지 않고 대신 모토사이클을 타고 스쿼트로 몸을 키우던 청년기를 지나 본격적으로 의료 현장에서 환자들과 교감을 나누며 드디어 로빈 윌리엄스가 그로 분했던 영화 <사랑의 기적>을 태어나게 하는 서사를 만들어 나가는 대목까지 왔다. 모험이라고는 모르고 살아 온 인생이라 그런지 본인은 계속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잭 케루악을 방불케 하는 그의 모토사이클 질주 이야기가 왠지 짜릿했다. 근엄한 할아버지상이 갑자기 가죽재킷을 입은 건장하고 활달한 청년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젊은 시절 올리버 색스는 뚜렷한 이목구비에 탄탄한 근육을 가진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의 전도유망한 젊은이다.

 

 

 

 

 

 

 

 

 

 

 

 

 

 

 

 

 

올리버 색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심리학을 전공한 가수 호란의 어느 인터뷰에서였다. 그녀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강력 추천하여 우연히 그것을 찻아 읽게 되었고 의료 현장에서의 환자들과의 교감과 자신의 전문 분야를 접목시킨 그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에 흠뻑 빠졌다. 삶에서 뜻하지 않게 겪게 되는 그 모든 고난, 병마, 장애 앞에서 또다른 형태로 삶을 재건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고 명징하게 잘 그려져 있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그가 낸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식물학, 음악, 운동에도 조예가 깊은 올리버 색스의 삶은 어렴풋이 독신 생활을 누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어떤 흔한 로맨스에 대한 암시도 보이지 않아 어쩌면 조금 다른 형태의 성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들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모호하고 흐릿한 가정이었다.

 

그런 그가 거의 여든에 이르러서야 소위 커밍아웃을 했다. 여기에도 그에 관련된 이야기가 언급된다. 청소년기 아버지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그는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이어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한테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되는 말을 듣는다.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 아들 넷 중 막내로 태어나 집안의 귀염둥이이자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아들은 정신분열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또 다른 아들과 함께 어머니에게 극심한 충격과 고통을 안겨준다. 그는 아주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이 상처를 극복할 수 있었고 또 다른 형태의 관계이자 사랑으로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지 못한 시간들 속에서 많은 죄책감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의 어머니는 원래 완고하거나 냉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올리버 색스에게 수많은 책들을 읽어주고 아들의 원고를 하나 하나 경청해가며 듣고 함께 이야기하는 다감한 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평범하지 않은 아들의 성적 정체성에는 그렇게 반응했다. 그건 누구나에게 있는 이중성일 것이다. 한없이 너그럽고 융통성 있고 자신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수많은 다양성에는 관대하게 반응하더라도 막상 그 일이 직접 나에게 닥치거나 가족, 친구의 것이 되면 반응은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보편성에 쉽게 동화되고 또 그래야 살아나가는 일에 큰 무리가 없기에 깊은 곳에는 누구나 완고하고 단단한 구석이 있는 것같다. 특히 자식을 낳고 키우는 부모가 되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여기에 또 역설이 있는 것같다. 자식은 나와는 전혀 다른 정체성이나 다른 생각, 행동을 하며 나의 그 완고한 틀을 압박해 오기 마련이다. 사춘기에 든 자녀와의 격한 갈등은 어쩌면 이 다름에 대한 가장 처절한 수련 과정일런지도 모르겠다. 얼마전에 읽었던 <부모와 다른 아이들>이 연상되는 대목이었다. 그 책의 저자 또한 동성애자임을 밝혔고 이 과정에서 부모님과 오랜 시간 대치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을 쓰면서 그의 분노는 잦아들었다. 여러 다른 형태의 '다름'을 둘러 싼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투쟁, 화해의 서사들과 만나면서 그는 부모의 입장에서도 또 자식 당사자의 입장에서도 여러 갈등, 상처 들을 통합할 수 있게 된다. 솔직히 나도 두렵다. 아이들이 커나가며 나와는 또 어떻게 다른 모습들, 가치관으로 나를 압박해 오고 또 때로 다투고 불화하고 이것에 난 또 얼마나 유연하게 잘 대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하지만 여기에 이렇게 적어 놓은 글들이 나중에 적어도 기억하고 감안할 수 있는 지침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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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6-01-09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오랜만이죠.^^
저도 찜해둬야겠어요.^^

blanca 2016-01-10 13:02   좋아요 0 | URL
꿈섬님 자주 오세요. 이제 반 정도 읽었는데 책장이 줄어가는 게 참 아쉽네요.

희선 2016-01-11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나온 거 보고 블랑카 님이 좋아하겠구나 했습니다 올리버 색스를 좋아한다고 하고 이 책이 나오기를 바랐잖아요 벌써 만나고 있군요 예전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이 책 이야기를 어디선가 보거나 듣고 한번 볼까 한 적이 있는데 못 봤네요 들었다기보다 저 책을 도서관에서 보고 볼까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그때 봤다면 좋았을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부모는 아이를 한 사람으로 못 보기도 하죠(그렇다는 말을 보고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책을 보면...) 아이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는데,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네요


희선

blanca 2016-01-11 14:48   좋아요 0 | URL
아, 번역을 정말 기다렸던 책이에요. 그래도 역시 올리버 색스 인생 전체를 조망하기엔 뭐랄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더라고요. 사람이 사람을 키운다는 게 어쩌면 너무 큰 꿈일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엄연히 객체인데 때로 자신이 낳아 자신이 소유하고 있고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망상에 흔들릴 때가 있으니까요.
 

아! 당신 나이에 생각하듯이 우리 삶에는 장미꽃만 있는 게 아니라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천천히 계속 읽고 있는데 역시 아주 책장이 잘 나가지는 않는다. 솔직히 사람들과의 대화의 그 세밀화를 연상시키는 촘촘한 묘사나 감상이 때로 질리기도 한다. 그런데 도저히 헤어나올 수가 없다. 분명 지독한데 매력적이다. 특히나 프루스트는 사람 하나 하나의 그 진저리나는 위선이나 기만, 가식, 속물근성을 어쩌면 그렇게 적확하게 집어내어 언어로 하나 하나 풀어 헤치는지 그 귀족 살롱에서 그들의 대화를 다 엿듣는 기분이다. 민주사회를 가장한 내부의 교묘한 위계를 예상한 그의 선견지명이 놀랍다. 화자인 젊은 '나'는 그러한 귀족 세계를 강렬하게 동경하면서도 환멸을 느끼는 그 지점에 걸터 앉아 신랄하게 게르망트 가의 살롱을 씹어대는 중이다. 모순, 모호함의 경계에 걸쳐 있는 그 모든 것들을 직시하며 언어화 하는 작업이 놀랍다. 이 책은 그래서 이렇게 길어지나 보다. 시간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복제할 수 있는 소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거의 근접해 가며 일어나는 모든 일, 말하여지고 듣게 되는 그 모든 말들을 최대한 다 복기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삶과 닮아가니까 그것을 읽다 보면 정말 그러한 정경 속의 삶을 사는 듯하다.

 

화자는 이제 소년에서 성년기로 넘어간다. 유년 시절의 버팀목이자 평생에 걸친 판단의 준거가 될 할머니는 이제 그의 곁을 떠난다. 동경해 마지 않았던 귀족 사회의 화려한 세밀화는 그러나 할머니의 죽음과 어린 시절 집을 드나들었던 유대인 스완의죽음의 전조와 지근 거리에 있다. 영원히 살 것처럼 누군가를 이기고 그럴듯해 보이는 허식에 얽매이는 모습은 사촌의 죽음과 방문객 스완의 죽음의 기운을 짐짓 못 보는 것처럼 거부하는 게르망트 공작의 허위 앞에서 절정을 달한다. 사실 이러한 죽음에의 거부와 향락, 소비에의 집착은 낯설지 않다. 소멸과 유한함에 대한 인식은 일상을 채우는 그 모든 사소한 것들에 끄달리지 않고는 때로 견딜 수 없는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 지금은 제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무엇보다도 저는 부인이 밖에서 하는 저녁 식사에 늦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하고 그는 남들에게는 그들 자신의 사교적 의무가 친구의 죽음보다 우선한다는 걸 알았으며, ...<중략>

-p.484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산 자들은 죽어가는 자를 옆에 눕히고도 오늘 저녁 약속, 만남의 즐거움을 떠올린다. 죽음은 자신에게 닥쳐오기 전까지는 언제나 추상적이고 타자화된다. 스완은 그러한 현실을 담담히 감내하고 받아들이고 심지어 표현한다. 그는 죽음으로 걸어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모든 적대감과 환멸을 무심히 포기해 버린 듯하다. 죽음을 망각하고 사는 일은 비겁하고 어리석지만 그게 또 삶의 속성이기도 하다.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항상 인식하고서야 어떻게 꿈꾸고 욕망하겠는가. 그러나 또 여기에 너무 깊이 발을 담그다 보면 추악해진다. 죽음을 기억하며 절절하게 사는 일은 영원한 화두다.

 

젊음이 난무하는 대학교 교정에 아이 유모차를 밀고 가야 했던 일은 묘한 경험이었다. 거의 모든 문을 밀어야 하고 경사로 대신 계단으로 연결된 지점들은 휠체어나 유모차 등을 이용해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교묘하게 적대적이었다. 영원히 건강하고 젊어 모든 것들을 비교적 잘 통제하고 누릴 수 있는 순간과 혜택이 전부인 것처럼 조장하는 사회에서 죽음과 노화, 약한 모습은 뒤안길로 밀려난다. 프루스트는 거의 한 세기가 지나도 게르망트 가의 살롱의 그 환멸이 여전히 죽지 않을 것임을 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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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6-01-11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이 넘어가지 않지만 매력이 있군요 여러 사람의 안 좋은 면을 보면 그만 보고 싶어질지도 모를 텐데... 그걸 보게 하는 힘이 있는가 보네요 그것뿐 아니라 죽음을 말하기도 하는군요 가끔 사람은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죽기 때문에 지금을 잘 살아야지 하기도 합니다 둘 다 맞겠죠 나이를 먹는 것이나 죽음은 누구한테나 찾아오죠 그걸 잊지 않고 살아야 할 텐데...


희선

blanca 2016-01-11 18:09   좋아요 0 | URL
어릴 때에는 지금,여기가 영원할 것만 같은 생각에 안심이 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했는데 이제 어떻게 해도 그런 느낌, 생각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되었어요. 그래도 세상에 태어난 이상 잘 살아가려고 노력은 해야겠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