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떨어졌다. 읽을 책이. 사실 지금 김현의 책을 읽고 있긴 한데 반에서 더 나아가 읽을 책을 쟁여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해진다. 김현의 일기는 정갈하고 대단히 직설적이다. 지금 생존해 있는 작가들이나 작품평이 때로 무척 뾰족하다. 모든 평에 공감하기는 어렵고 내가 읽지 않은 시나 작품에 대한 평은 아무래도 집중이 잘 안된다. 시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좋다. 군데 군데 직접 인용하며 칭찬하거나 지적한 대목은 형형하다. 우리나라 시인이 우리 말로 쓴 시집을 차곡 차곡 읽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러니 미루어 두었던 기형도 시집을 읽자. 수많은 시집들이 나오고 거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풍성하던, 약속 장소가 때로 거리의 서점이었던 그 말과 글이 난무하던 시대가 그립기도 하다. 서점에 가도 책을 봐도 이러한 시대가 저물어 가고 이 모든 것들이 화석화 되지나 않을까 때로 두렵다.

 

 

 

 

 

 

 

 

 

 

 

 

 

 

 

읽는 일을 한 템포 늦추려 한다. 무엇보다 눈이 침침해져 온다. 마구 혹사시켰더니 이제서야 반란이다. 대신 책 관련 팟캐스트에 집중하게 된다. 낭독이라는 것에 그리 큰 기대가 없었는데 사람 목소리로 활자를 불러내는 일에 또다른 매력을 느낀다. 작가가 하는 낭독회, 각종 책의 오디오 파일 등이 활발한 문화가 부럽기도 하다. 어떻게든 이야기에서 멀어지지 않으려 하는 어떤 가냘픈 노력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게 다감하니 매력적이다. 스마트폰이 잡아 먹어버린 그 수많은 대화, 시선맞춤, 고개 끄덕임, 읽기, 듣기가 어디로 간 것일까?

 

자꾸 허무하다. 이것도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원래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유독인 걸까? 자다가 깨거나 자기 직전이면 가장 허무하다.  한 팔십 먹은 노파처럼 추억이나 곱씹고 회한에 잠긴다. 자꾸 생이 유한하다,고 생각하면 이 모든 일상들이 이 모든 욕망, 꿈들이 초라하게 쪼그라든다. 자꾸 죽음, 상실에 관련된 책들을 읽게 되어 그런 건지, 필연적으로 이야기의 구조는 생의 유한함으로 수렴되는 것이라 그런 건지. 이것도 더 살고 나이가 들면 또다른 위안이나 깨달음으로 달래지는 일일까? 서른 초반만 해도 늙는다거나, 죽는다는 일에 그렇게 집중했던 것 같지 않은데 이건 모 자꾸 어차피 다 늙고 소멸하고 사라진다,는 전제로 접근하기 시작하니 가슴이 다 서늘하다. 그러니까 지금 나의 이 단계도 결국 어리석음이고 또 다른 차원의 성숙으로 가는 단계였으면 좋겠다. 이게 끝이라거나 별 거 없다,는 결론이 나올까 두렵다. 아주 늙은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실없고 엉뚱하고 때로는 가혹하다.

 

듣고 읽다보면 나아질까? 아니면 더 악화될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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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8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18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302moon 2016-01-28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오프라인 매장에서 사려다 알라딘에서 사야지, 하고 나왔거든요. blanca님 리뷰를 읽으니, 당장 사고 싶어졌어요. 다음 달에 주문해야 하는데 T_T

blanca 2016-01-28 20:05   좋아요 0 | URL
다음 달이면 얼마 안 남았으니 조금 참으셨다가 주문하시면 받아보시는 기쁨이 더 크지 않을런지요. 저도 사실 이런 말 할 자격은 없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