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손 가정도 아니었고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아이를 학대하지도 않았던 엄마는 여느 날처럼 안녕이라고 말하며 학교에 보냈던 아이가 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의 용의자라는 전화를 받고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기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이 더 다치기 전에 자신의 아이가 차라리 자살하게 해 달라고.

 

 

 

 

 

 

 

 

 

 

 

 

 

 

 

 

결국 아이는 그렇게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에야 건장한 체구의 아들이 학교에서는 치욕적인 왕따와 굴욕적인 폭력을 당하고 있었고 졸업파티에 파트너를 대동하고 미소짓던 동영상을 남겼던 아이가 뒤에서는 이미 무서운 범죄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는 숱한 가정법과 만난다. 만약 그 때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그곳으로 이사를 갔다라면, 아이는 이렇게 무차별 총격으로 친구들을 희생시키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하지만 그러한 모든 가정법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서 어머니는 그러한 아이를 낳고 기른 자신의 지난 시간들을 부정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아들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이야기는 이제 끝났어요. 우리는 그 아이가 다른 일을 하기를, 보다 나은 일을 하기를 바랄 수 없어요. 결말을 알고 있으면 이야기를 훨씬 잘 들려줄 수 있죠.

<중략>

 

나는 다른 누군가의 아픔이 아니라 나 자신의 아픔에 대해서 말하는 거예요. 나는 아픔을 받아들여요. 인생은 아픔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것이 내 인생이에요. 딜런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세상엔 더 나았겠죠. 하지만 내게는 더 나은 일이 아니었을 거라 생각해요.

- 앤드루 솔로몬 <부모와 다른 아이들 2>

 

자식을 가지는 일은 어쩌면 자신의 삶으로 끝날 서사를 더 길고 거대한 것으로 만드는 길에 서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한 기대를 배반하고 자신보다 더 빨리 끝나게 될 아이의 이야기를 껴안아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참혹한 고뇌와 고통을 안겨다 줄 것인가. 그 아픔 앞에 선 모정은 그러나 담담하게 저자 앞에서 이미 끝나버린 아이의 이야기를 술회한다. 이제 미래로 나아가는 가정법은 과거로 향한 가정법에 뭉그러지고 응시해야만 하는 그 처절한 비애 앞에서 나온 어머니의 이야기, 아픔을 받아들인다는 이야기, 이것이 내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다시 읽게 된다.

 

1권에서는 사회적으로 도와주고 지원해줘야 한다는 합의가 전제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2권은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 범죄를 저지른 아이, 타고난 생물학적 성정체성을 부정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는 어른들의 잘못된, 강요된 선택이 있었다는 사회적 시선이 더욱 가혹하게 작용한다. 그러니까 적어도 그러한 아이들을 낳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가정에서 비롯된 비난이다. 아이들은 탄생 자체부터가 상처로 작용하는 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슬프고 비참한 이야기로 끝맺음하는 것은 아니었다. 강간으로 가지게 된 아이로부터가 손주까지 보게 된 여인의 이야기는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불행을 이겨내고 삶의 이야기로 통합하며 화해하게 되는지에 대한 가장 슬프면서도 처절한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내게 그들이 절대로 모를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만 생각해요. 그들은 그들에게 아름다운 딸이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모를 거예요. 귀여운 손주들이 있다는 사실도 절대로 알 수 없죠. 영원히 모를 거예요. 나만 아는 거예요.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었다지만 아직도 이 지구의 곳곳에서는 남자들의 전쟁으로 폭력으로 수많은 여자들이 신음하고 있다. 르완다의 종족학살로 약 50만의 여성들이 강간당하고 5천 명의 아이들의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야기는 충격이라는 말로 다 담아낼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자신을 낳은 엄마에게서도 부정당하고 버림받아 떠돌고 있다고 한다. 강간에 의해 태어난 아이들은 그들 자신이 상처가 된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너무 슬프다.

 

"자기 구원을 위한 안내서로서 이 책은 수용에 관한 설명서다."라는 저자의 첨언은 그러나 그러한 수용이 반드시 사회적 지지와 구성원들의 강력한 감정적 공명이 있어야 가능한 것임을 예증하는 사례집이기도 하다. 자식을, 그리고 그 아이가 더군다나 다른 여느 아이들과 다른 이례적인 아이일 때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게까지 양육하는 긴 여정은 참으로 고독하고 힘겨운 과정일 것이다. 또한 그 종착점이 그러함에도 끝까지 그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결론이 될 수도 있다. 해피엔딩은 삶의 의미도 결론도 아니다. 아프지만 이야기하고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주어지는 그러한 곳에 대한 기대가 오늘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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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1-16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캐빈에 대하여, 그을린 사랑이 떠오릅니다. ㅠ

blanca 2016-01-16 16:37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님이다!! 아, 저 그 영화 본다 본다 하면서 못 봤어요. 조만간 봐야겠어요. `그을린 사랑`이라는 이야기에 가슴이 서늘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