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 <온더무브>를 아껴 읽고 있다. 유년 시절의 이야기는 이미 <이상하거나 멍청하거나 천재이거나>에서 다루어서 그런지 비중이 높지 않고 대신 모토사이클을 타고 스쿼트로 몸을 키우던 청년기를 지나 본격적으로 의료 현장에서 환자들과 교감을 나누며 드디어 로빈 윌리엄스가 그로 분했던 영화 <사랑의 기적>을 태어나게 하는 서사를 만들어 나가는 대목까지 왔다. 모험이라고는 모르고 살아 온 인생이라 그런지 본인은 계속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잭 케루악을 방불케 하는 그의 모토사이클 질주 이야기가 왠지 짜릿했다. 근엄한 할아버지상이 갑자기 가죽재킷을 입은 건장하고 활달한 청년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젊은 시절 올리버 색스는 뚜렷한 이목구비에 탄탄한 근육을 가진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의 전도유망한 젊은이다.

 

 

 

 

 

 

 

 

 

 

 

 

 

 

 

 

 

올리버 색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심리학을 전공한 가수 호란의 어느 인터뷰에서였다. 그녀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강력 추천하여 우연히 그것을 찻아 읽게 되었고 의료 현장에서의 환자들과의 교감과 자신의 전문 분야를 접목시킨 그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에 흠뻑 빠졌다. 삶에서 뜻하지 않게 겪게 되는 그 모든 고난, 병마, 장애 앞에서 또다른 형태로 삶을 재건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고 명징하게 잘 그려져 있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그가 낸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식물학, 음악, 운동에도 조예가 깊은 올리버 색스의 삶은 어렴풋이 독신 생활을 누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어떤 흔한 로맨스에 대한 암시도 보이지 않아 어쩌면 조금 다른 형태의 성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들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모호하고 흐릿한 가정이었다.

 

그런 그가 거의 여든에 이르러서야 소위 커밍아웃을 했다. 여기에도 그에 관련된 이야기가 언급된다. 청소년기 아버지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그는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이어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한테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되는 말을 듣는다.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 아들 넷 중 막내로 태어나 집안의 귀염둥이이자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아들은 정신분열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또 다른 아들과 함께 어머니에게 극심한 충격과 고통을 안겨준다. 그는 아주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이 상처를 극복할 수 있었고 또 다른 형태의 관계이자 사랑으로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지 못한 시간들 속에서 많은 죄책감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의 어머니는 원래 완고하거나 냉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올리버 색스에게 수많은 책들을 읽어주고 아들의 원고를 하나 하나 경청해가며 듣고 함께 이야기하는 다감한 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평범하지 않은 아들의 성적 정체성에는 그렇게 반응했다. 그건 누구나에게 있는 이중성일 것이다. 한없이 너그럽고 융통성 있고 자신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수많은 다양성에는 관대하게 반응하더라도 막상 그 일이 직접 나에게 닥치거나 가족, 친구의 것이 되면 반응은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보편성에 쉽게 동화되고 또 그래야 살아나가는 일에 큰 무리가 없기에 깊은 곳에는 누구나 완고하고 단단한 구석이 있는 것같다. 특히 자식을 낳고 키우는 부모가 되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여기에 또 역설이 있는 것같다. 자식은 나와는 전혀 다른 정체성이나 다른 생각, 행동을 하며 나의 그 완고한 틀을 압박해 오기 마련이다. 사춘기에 든 자녀와의 격한 갈등은 어쩌면 이 다름에 대한 가장 처절한 수련 과정일런지도 모르겠다. 얼마전에 읽었던 <부모와 다른 아이들>이 연상되는 대목이었다. 그 책의 저자 또한 동성애자임을 밝혔고 이 과정에서 부모님과 오랜 시간 대치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을 쓰면서 그의 분노는 잦아들었다. 여러 다른 형태의 '다름'을 둘러 싼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투쟁, 화해의 서사들과 만나면서 그는 부모의 입장에서도 또 자식 당사자의 입장에서도 여러 갈등, 상처 들을 통합할 수 있게 된다. 솔직히 나도 두렵다. 아이들이 커나가며 나와는 또 어떻게 다른 모습들, 가치관으로 나를 압박해 오고 또 때로 다투고 불화하고 이것에 난 또 얼마나 유연하게 잘 대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하지만 여기에 이렇게 적어 놓은 글들이 나중에 적어도 기억하고 감안할 수 있는 지침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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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6-01-09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오랜만이죠.^^
저도 찜해둬야겠어요.^^

blanca 2016-01-10 13:02   좋아요 0 | URL
꿈섬님 자주 오세요. 이제 반 정도 읽었는데 책장이 줄어가는 게 참 아쉽네요.

희선 2016-01-11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나온 거 보고 블랑카 님이 좋아하겠구나 했습니다 올리버 색스를 좋아한다고 하고 이 책이 나오기를 바랐잖아요 벌써 만나고 있군요 예전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이 책 이야기를 어디선가 보거나 듣고 한번 볼까 한 적이 있는데 못 봤네요 들었다기보다 저 책을 도서관에서 보고 볼까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그때 봤다면 좋았을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부모는 아이를 한 사람으로 못 보기도 하죠(그렇다는 말을 보고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책을 보면...) 아이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는데,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네요


희선

blanca 2016-01-11 14:48   좋아요 0 | URL
아, 번역을 정말 기다렸던 책이에요. 그래도 역시 올리버 색스 인생 전체를 조망하기엔 뭐랄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더라고요. 사람이 사람을 키운다는 게 어쩌면 너무 큰 꿈일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엄연히 객체인데 때로 자신이 낳아 자신이 소유하고 있고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망상에 흔들릴 때가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