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플의 많은 장점에 공감하지만 이 점 하나는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책표지가 전면에 나타나다보니 절로 손가락이 스치며 읽지도 않은 책에 떡하니 별점 하나가 매겨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중에 발견하고 삭제하며 때로 가슴을 쓸어 내린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책을 정말 읽고 이러한 최악의 별점을 매겼다면 그럴 수도 있었다, 싶겠지만(그래도 별 하나 나올 책을 완독할 만한 에너지가 이제는 없다) 읽지도 않은 책에 내가 준 적도 없는 별점이 갑자기 확 나타나는 경우는 그야말로 식겁한다. 그래서 책표지가 선명하고 아름답게 나타나는 북플을 이용해서 이웃들 글을 읽는 게 좋지만 책표지를 터치할까봐 신경이 쓰이다 보니 이것도 이제 피곤한 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비단 북플만의 한계는 아니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각종 인터넷 서비스에 미스터치로 일어나는 일들이 종종 있다. 너무 쉽게 반응하고 접근할 수 있다는 게 때로는 치명적인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도 이어진다. 포털서비스의 댓글신고 터치도 종종 그렇다. 재미있게 읽은 댓글을 살짝 잘못 스치면 댓글신고가 된다. 즉각적인 반응성은 쉽지만 아주 민감하고 어려운 길이기도 하다. 쉽게 반응하고 표현하는 세계에서 망각과 용서와 배려는 더 대단한 것이 되어버렸다.
스마트폰은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상이 되었다. 특히 나는 팟캐스트로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정은임 아나운서의 영화음악도 듣고 김중혁과 이동진의 소탈하고 끊이지 않는 주거니 받거니 만담스러운 책 이야기와 김영하의 절로 평화스러운 수면을 부르는 그 단조로운 낭독도 듣고 스트레칭 동영상 보며 운동도 하니 도저히 2G폰으로 돌아가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할 호기는 부릴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편리한 풍요로움 안에 어떤 대면관계나 직접적인 체험들은 뒤로 밀려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이제 사람을 직접 만나 소통하는 대신 내가 골라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모든 간접체험으로 직접 체험의 효용을 대체하려 하려는 경향이 빈번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이제 세상에 직접 나가 부딪히고 깨어지고 해야 하는 성장이나 성숙의 불편함은 상당 부분 이러한 기기들로 해소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장으로 삶으로 소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무언가 풍요로운 것 같으면서도 빈곤하고 고독한, 말로 설명하기 힘든 스마트폰 안에서의 삶이다.
나쁜 손가락에 대한 짧은 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