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의미는 결국 2021년이 되어야 비로소 드러날 것 같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거대한 팬데믹과 봉쇄, 거리두기로 전무후무한 상황을 지금도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백신과 치료제로 인간이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바이러스의 사멸의 과정을 겪을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감염자의 일상이 동선으로 집약되고 그것은 심지어 윤리적 판단의 준거가 된다. 서로 체온을 나누고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 자체가 소통이 아니라 위험한 행위로 비친다. 일상적이던 행위들이 불온한 것으로 변주된다.
그럼에도 읽기는 계속되었다. 내 맘대로 분야별로 기억하고 싶은 책들을 기록한다.
2020년의 소설
팀 오브라이언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팀 오브라이언의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은 작가가 실제 베트남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쓴 단편 연작 소설들의 축적이다. 폭죽 같은 청춘이 마주하는 폭력의 집약, 그것은 삶과 상실, 죽음의 가장 밀도 깊은 향연이다.
이야기의 힘과 이야기의 진실은 우리 모두가 고유명사에서 일반명사로 추락해 가더라도 남는 것들에 대한 하나의 애도의 작업이다. 차마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이 팀 오브라이언의 언어와 만나 비로소 이름을 얻는다. 그 이름들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대프니 듀 모리에 <레베카>
통속 문학과 고전 문학의 경계를 기가 막히게 허물어뜨린 작품. 책장이 쉽게 넘어가면서도 절대 가볍지 않은 그 묘한 매력은 대프니 듀 모리에니 가능한 것이 아닐까? 책장을 넘기는 내내 괴괴하고 축축하고 으슬으슬한 느낌에 결말을 향해 내달리고 싶어지지만 감각적인 언어의 묘사의 힘에 그것을 또 함부로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까지 함께 가지게 하는 대단한 이야기다. 서사력과 문장력을 모두 겸비한 보기 드문 작가가 아닐까 싶다.
맨덜리 저택으로 걸어들어가는 순간 당신은 중간에 절대 못 나온다. 장담한다.
샐리 루니 <노멀피플>
젊은 작가가 사회의 계층차를 의식한 쓰기를 하는 것은 자칫 작위적이기 쉽다. 그런데 <노멀 피플>은 그 어려운 과업을 무리없이 성취했다. 지극히 내밀하고 사적인 연애사를 이야기하며 그것에 얽혀 있는 미묘한 사회 구조적인 모순과 한계를 대단히 명민하게 그려냈다.
잘 읽히고 남녀 주인공들의 마음에 저도 모르게 스며들게 만드는 힘이 있는 이야기다. 여전히 이야기의 힘은 사라지지 않겠구나 안도하게 만드는 책. 양지에서 음지를 응시하는 힘이 압도적이다. 사랑과 현실은 언제나 충돌하지만 그 충돌의 지점에서 무엇을 더 바라고 꿈꿀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돋보인다.
무라카미 하루키 <렉싱턴의 유령>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가지는 의미를 하루키 만큼 명료하게 설득력 있게 묘사할 수 있는 작가가 있을까? 그는 함부로 단정하거나 설교하는 대신 인물의 경험 그 자체에 독자가 함께 빨려들어가기를 원한다.
하루키의 인물들이 겪었던 일들은 우리의 그것과도 겹친다. 사랑, 이별, 소외, 폭력. 우리는 다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하지만 치유되지 않은 그 심연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하루키는 그곳으로 우리를 슬며시 데려간다. 그 어떤 어른도 해주지 못한 일을 이 작가가 이야기를 통해 해낸다. 더불어 그는 함부로 치유를 시도하지도 않는다. 그냥 거기에 다시 감으로써 현재에 가지는 의미를 발견하는 일, 그것은 평범한 것이 아니다.
어떤 아픈 과거가 부지불식간에 떠올라 당신을 괴롭힐 때 읽기를 권한다. 당신의 그것과 같진 않더라도 그의 해법은 유효하다.
김원일 <마당 깊은 집>
1954년에 열네 살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일상이 허기와 그 허기를 해결하는 과제로 채워진다는 건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을 하고 소통을 하며 손을 잡고 견딘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일까.
우리말로 우리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건 언제나 본능적인 즐거움과 무장해제된 공감을 자아낸다.
조지 기싱 <뉴 스럽 스트리트>
19세기 말 영국에서 배고픈 문필업자가 되어 싸구려 통속 소설을 생산해 내는 작가들이 모여 살았던 곳에 대한 이야기는 먹고 살기 위해 지고의 이상을 현실 차원으로 추락시키는 것에 대한 그 무기력한 타협의 기시감을 자아낸다.
아이러니 같은 결말은 한동안 마음을 시리게 한다. 쓰다 죽는 작가들. 현실에서 그들의 이름은 가혹하게 잊혀지고 뻔뻔하고 가식적인 속물들이 결국 승리하는 결말에 작가의 조소가 들리는 듯하다.
2020년의 소설은 무미건조한 일상에 가상의 탄력을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