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마지막 수업 - 91세 엄마와 아들이 주고받은 인생 편지
앤더슨 쿠퍼.글로리아 밴더빌트 지음, 이경식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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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멘토와 멘티의 수업을 표방한 책은 어느새 진부해져 버린 감이 있다. 죽음을 앞두고 각자의 개별성은 확 트인 일반성의 시야 앞에서 해체된다. 우리는 매일 전투를 치르며 삶을 견뎌내며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이라 그들의 고견은 때로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이 책의 리뷰를 쓰려고 마음먹게 된 것은 지금까지의 그런 비슷한 류의 책들과 확실히 다른 차별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92살의 어머니와 오십이 다 된 아들이 일년 여 동안 주고받은 편지 안에는 죽음의 이야기보다는 삶의 이야기가 더 많이 담겨 있다. 게다가 그 주인공 둘은 세속적 의미에서 특별하다. 어머니의 이름은 글로리아 밴더빌트(록펠러, 카네기와 어깨를 겨루던 철도왕 밴더빌트의 후손), 아들은 CNN의 대표 앵커 앤더슨 쿠퍼다. 글로리아의 삶은 겉으로는 화려하게 반짝였지만 수많은 슬픈 체험들을 안고 있었고 이 편지 왕래가 있기 전까지 아들과 진정으로 교감하지도 못했다. 스포트라이트, 언론의 집요한 관심에 가족의 상실과 치부는 거의 생중계되었다. 글로리아는 담담히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아들에게 들려준다. 변호하지도 미화하지도 비하하지도 않는 자신의 삶의 재구성은 그녀 자신이 이미 지난 온 자신의 과거를 제대로 다시 소화해내는 것이기도 하고 그녀의 삶의 대부분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한 인간의 삶을 다시  들려주고 공감을 받는 과정이기도 하다.

 

글로리아의 아버지는 어마어마한 재산을 소유한 밴더빌트가였지만 그녀가 십오개월 때 죽고 스무 살도 되기 전에 글로리아를 낳은 친정 엄마는 딸을 외면하고 화려한 사교계의 파티의 유명 인사들과의 자극적인 관계에만 탐닉한다. 그녀를 키운 팔할은 유모와 외할머니였다. 그러나 글로리아를 둘러싸고 그녀의 어머니와 밴더빌트가의 고모가 벌인 긴 시간에 걸친 양육권 다툼은 소녀를 공포에 몰아넣게 된다. 그녀에게 어머니 역할을 했던 내니와는 이 과정에서 강제로 헤어져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다.  글로리아는 어른들에 의하여 때로 전략적으로 이용되었고 정작 조언이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나쁜 남자들과 사랑에 빠졌고 학대당했고 아이를 낳고 또 결혼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었다. 당행스럽게도 마침내 앤더슨 쿠퍼의 아버지가 될 성실하고 정서가 안정된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되어 카터와 앤더슨 형제를 낳게 된다. 그러나 남편과는 앤더슨이 열살 때 사별하게 되고 큰 아들 카터는 스물세 살에 그녀가 보는 앞에서 자살하는 참상을 겪게 된다. 결국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둘을 제외한다면 이 가족은 모자 글로리아와 앤더슨만 남게 된 것이다. 앤더슨 쿠퍼는 이 상실을 단 하루도 상기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한다. 자상하고 따뜻한 아버지를 유년기에 잃고 두 살 차이의 형마저 자살로 잃게 된 앤더슨은 이 세상에 안전한 곳은 아무곳도 없다는 자각 속에서 항상 주도면밀하게 자신의 주변을 살피고 통제하고 비관적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데에 익숙해져 버리고 만다. 한없는 낙천성과 순수함으로 쉽게 사랑에 빠지고 사람을 믿고 배신당하고 대책없이 미래를 낙관하는 그럼에도 그 결과로 얻은 그 수많은 상흔마저 긍정하는 구십이 넘은 어머니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셈이지만 이렇게 다른 둘의 대화는 진솔하고 담백하고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교차하는 지점에서 빛나는 영롱함들이 있다. 기본적으로 모자는 서로를 믿고 사랑했다. 글로리아는 자신이 과거 양육과정에서 저지른 실수를 용기 있게 인정하고 사과한다. 아들은 아팠던 두려웠던 슬펐던 느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고백한다. 듣기 좋은 말만 하지 않고 하기 쉬운 이야기만 지껄이지 않는 대화가 부럽다.

 

 

누군가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 네가 지닌 생각이나 감정 혹은 가치관을 재단하지 마라. 항상 진심을 말해야 한다.

-P.347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는 않아. 우리의 삶도 덧없이 흘러가고 말지. 그런데도 우리는 온갖 것들을 모으려고 하고, 자기 주변에 쌓아 두려 하고, 사람에 돈에 지위에 집착한단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오래 가지 않아.

늘 행복할 수는 없어. 그걸 바라는 사람도 없지. 행복이 영원하다면 이 행복의 의미는 사라지고 만단다. 이 진리를 받아들인다면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난대도 당황하거나 놀랄 일은 없어. '하필이면 왜 나에게 이 고약한 일이 일어난단 말이야?'면서 번뇌에 시달릴 일도 없단다. 어떤 일이 너에게 일어났다면 그것은 자연의 섭리란다. -P. 355            

 

 

워즈워스의 <송시>에서 따온 "무지개는 피었다 지고"는 이 책의 원제가 된다. 그것은 삶의 파고의 은유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글로리아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지금 이 모퉁이를 도는 그 수많은 사람들도 각자의 삶의 전투를 치르고 있기 때문에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저 위의 사람들도 알았다면 좋겠다. 그래도 아직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의와 신의와 상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믿음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요즈음 한 세기에 이를 자신의 삶의 치부까지도 가감없이 노출하며 후손에게 마음이 울리는 조언을 남기고자 한 글로리아와 그것을 경청하며 자신의 한계와 단점을 고백하며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위해 노력한 앤더슨 쿠퍼의 대화가 유난히 큰 울림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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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04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이런 시절 에 무지개가 천국으로 향하는 다리로 생각했었습니다. 워즈워스의 시구가 인상적입니다. 무지개 한 번 보기 힘들고, 운 좋게 본다고 해도 오랫동안 감상하기 힘들어요. ^^;;

blanca 2016-11-06 09: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무지개 참 보기 힘들죠. 저도 손으로 꼽을 정도로만 기억이 나요. 인생에서 좋은 일도 그럴까요. 빨리 우리 나라에 무지개가 떴으면 좋겠어요.

나와같다면 2016-11-04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상실을 단 하루도 상기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한다....

blanca 2016-11-06 09:18   좋아요 1 | URL
저도 이 문장이 참 뼈아프더라고요. 상실은 잊는 게 아니고 안고 가야 하는 것 같아요.
 
너는 특별하지 않아 - 어느 교사의 맵고 따뜻한 한마디
데이비드 매컬로 지음, 박중서 옮김 / 민음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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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보스턴 교외의 웰즐리의 한 공립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졸업식 축하 연설은 특별했다. 연설자인 데이비드 매컬로는 이 학교에서 실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였고 졸업생들과 비슷한 연령의 청소년을 포함한 아이 넷의 아버지였다. 이제 더욱 커다란 성취, 좌절의 장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에게 흔히 장밋빛 전망을 그럴듯하게 보여주며 더 많이 욕망하고 성취하라고 독려하는 여느 졸업 연설들과는 달리 데이비드의 연설은 각자가 지나치게 특별하다는 인식에 사로잡히지 않기를, 위대한 업적이나 성과 위주의 사회적 평가 체계에 함몰되지 않기를, 단 진짜 삶을 살게 되기를 기원했다. 이러한 그의 연설은 큰 화제가 되었고 이후 이 책을 집필하게 된다.

 

이 책은 기대를 뛰어넘는다. 무엇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 유한한 삶을 다시 한번 제대로 고쳐 사는 것이 되기를 은연중에 바라는 부모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아이들의 좌절 경험까지 통제하려는 것이 얼마나 그 아이들의 삶에 무익하고 심지어 위해를 가하게 되는지를 깨닫게 한다. 아이들에게 했던 졸업 연설은 기실 그 아이들을 통해 성취의 트로피를 착복하려 했던 수많은 부모들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오직 대학에 가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로서 학교 수업을 심드렁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에게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통해 선문답을 하는 식으로 학문의 정수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깨워주는 정경의 주인공의 이야기는 매혹적이고 유머러스하다. 진지할 것 같지 않은 장난꾸러기들은 하나씩 호기심을 가지고 졸던 고개를 들어 데이비드 매컬로 선생을 쳐다보며 수업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성적이 우수한 아이도 중간인 아이도 느린 아이도 모두 그에게는 하나 하나의 개별적인 아이들이었다. 교육계에 점차적으로 만연하는 그 수많은 불평등을 출발선부터 배치하는 입시 제도에 대한 일갈은 우리나라에도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이 책이 그의 명연설의 늘어지는 버전으로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기본은 그것에서 출발하지만 이미 고등학교 교실을 떠난지 한참 되어 이제 우리의 녀석들을 거기에 들여놓아야 되는 나이의 사람들까지도 이 노교사의 위트 있는 수업 광경에 대한 묘사와 삶, 성장, 교육에 대한 직설적인 이야기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가 마지막으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학적 진격 명령으로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소환한 것은 이 이야기의 마무리로 맞춤하다.

 

온전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곧 기대로부터, 금지로부터, 부러움으로부터,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배움은 끝이 없다. 끝이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부터 인간의 나이듦이 성숙이 아니라 아집과 독선과 망령과 뒤섞이기 쉽다. 실제 작금 벌어지는 상황들도 그렇지 않은가. 기대와 금지와 부러움과 두려움에 꽁꽁 묶여 학교 교실에서 영희와 영수로부터 출발했던 그 단순하고 쉬웠던 기본적인 도덕률마저 망각하고 벌이는 작태들이 역겹다.

 

사는 것은 준엄하고 어렵다. 항상 이런 교사의 조언과 질책을 둘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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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0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1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참담한 빛
백수린 지음 / 창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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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는 아련하게 찬란하다. 해가 저무는 중일 수도 있고 해가 뜨기 전일 수도 있다. 레이스 커튼의 아랫단은 자기 그림자와 만날 듯 말 듯하다. 표지가 제목인 <참담한 빛>과 더불어 이야기에 진입한다. 이 역설은 언제나 그래왔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슬며시 반대편에 서 있어야 할 감정, 기억, 언어는 오곤 한다. 그게 논리적으로 자연스럽지 않으니까 숨을 쉰다. 정합과 논리는 이론의 지지대지 현실의 완충 지대에 있는 것은 아니다. 백수린 작가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부터 읽지 않았다. <중국인 할머니>부터 시작했다. 중국인 새할머니의 죽음에서 역주행한다. 가족은 핏줄로만 맺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애초의 출발이 그런 것이 아닐 때 조금씩 서걱거린다. '나'는 거기에서 출발했고 거기에서 좀더 나아가 끝낸다. 머뭇 머뭇 과하지 않게 딱 좋은 곳에서 더 나아가고 싶은 욕구를 기민하게 조절한다. 새할머니, 새외삼촌, 새사촌. 그들과 감동적으로 교감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랬으면,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중국인 새할머니와 교감한 '나'만의 비밀이 진실이든 왜곡이든 그것을 밝히며 그녀를 애도한다. 빛나는 달을 보며 아직 다 크지 않은 '나'를 두고 중국인 할머니가 중국 민요를 불렀던 장면, '덧없이 짧은 한 순간' 이었지만 중국인 새할머니와 당신이 데리고 온 아들이 낳은 사촌 진운이와 그렇게 셋은 잠시 '가족'을 느꼈었던 기억은 그녀 안에 쌓여 기억을 이루고 그게 삶의 과거를 만든다. 서늘하고 찬란한 이야기였다.

 

만난다. 낯선 이를. 그것은 우연한 조우지만 공유되는 시간의 충실성은 그 누구도 단정지을 수 없다. 충만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기대는 있었지만 과하지 않았고 실망이 뒤따르기도 했지만 압도적이지는 않다. <시차>에서 외국으로 입양 간 사촌과의 조우도 그러했고, 아버지의 몰래 한 사랑이 낳은 딸과의 만남을 그린 <북서쪽 항구>도 그러했다. 표제작인 <참담한 빛>에서 남자와 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이 함께 한 잠깐의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소통은 많은 것을 함유하고 있지 않지만 양자를 변화시킨다. 작가의 문장은 몹시 담담하다.

 

영원할 듯 빛나던 순간은 사라지고 모두 종국에는 늙고 병들어 종료되는 것이 삶임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사람들은 피로한 얼굴로 묵묵히 집에 차오른 물을 양동이 가득 퍼서 창밖으로 버렸다.

-<높은 물때> 중

 

환상은 없다. 러시아 문학 스터디를 주관했던 근사했던 첫사랑 선배도 생업에 찌들어 영업을 하고 <첫사랑> 촉망 받던 미술학도는 머나먼 타국에서 불법 민박을 운영하며 늙어간다.<높은 물때> 그러나 종국에 이 모두를 훓고 지나가도 남는 것에 대한 응시가 작가의 이야기다. "어렴풋한 빛"이 떨어지고 살아남는 이야기에 다시 표지로 돌아온다.

 

바람이 불고 커튼은 흔들리며 자기를 투영해 내고 자기를 응시하고 그 공간 안에 우리 시선은 떨어진다. 찰나에 아련한 과거와 두려운 미래가 중첩되며 남기는 어딘가의 현재에 발을 담근다. '참담한 빛'은 그래서 언제나 우리를 통과한다. 참담해도 빛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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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10-09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키님, 참 글 잘 쓰시죠.

블랑카님, 작가시죠??

blanca 2016-10-09 20:54   좋아요 0 | URL
음... 사람 참 기분 좋게 만드시는 재주가... 고마워용^^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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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의 관계의 틈에는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사랑에 빠질 때에도 헤어질 때에도 왜 그랬는지 누군가에게 설득력 있게 혹은 알아들을 수 있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어제까지 손잡고 걸었던 길을 오늘 혼자 걷게 될 때 "너는 왜 그랬어? 너희들 좋았잖아."라는 말에 대답할 수 없다.

 

어색하게 헤어지고 연락이 끊길 때 우리의 서사는 나름의 이야기로 왜곡되고 종결된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 하나는 분명히 다른 식으로 윤색된 연애 이야기를 갖게 된다. 현실?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연애는 삶을 닮는다. 시작하고 변하고 마친다.

 

권여선의 이야기 속 연애는 슬프다. 만나고 헤어지고 각자가 간직하는 서사가 다르다. 서로를 철저히 오해해 버리고 만다.

<카메라>에서 여자는 직장 동료의 남동생을 그녀 몰래 만나게 된다. 그러다 어처구니 없이 헤어지게 된다. 재회한 것은 그 남녀가 아니라 그 여자와 남자의 누나다. 남자의 누나는 여자와 남자의 사랑을 알고 있었지만 끝까지 모른 척해 준다. 하지만 여자가 미처 알지 못한 남자의 서사를 완성해 준다. 그것은 사려깊고 애달프다. 남동생의 삶과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준 누나의 이야기는 미처 남자의 전부를 알지 못한 여자를 울린다. 두 여자는 손을 잡는다. 끝났다,고 생각한 사랑은 그의 가족으로 인해 영원히 흐른다. 남자는 미처 그 사랑을 완성하지 못하고 마침표를 누나에게 맡겼으므로.

 

<층>에는 남녀 간의 사랑 안에 흐르는 현실의 묘한 위계를 감지한다. 백 퍼센트 순수한 사랑은 힘들다. 끊임없이 사회적 경제적 위계는 남녀 사이를 침투한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도 묵인하는 것도 무시하는 것도 결국은 그것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남자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공부도 많이 한 여자에게 아픈 가정사를 숨기려고 안간힘을 쓴다. 여자가 떠나자 남자는 자신의 그러한 처지가 여자를 떠나게 했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여자가 떠난 것은 그런 남자의 처지보다 자신의 가족을 부정하려는 그 거친 폭력에 진저리를 느낀 것이었다. 그러한 계기가 아니더라도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완성될 수 없었다. 작가는 그 미묘한 지점을 예리하게 간파한다. 그러한 것들이 모두 지나가고 난 자리에서 여자와 남자는 자신들을 처음부터 다시 정립하고 나아간다.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

 

권여선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 누군가가 시작한 이야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보이는 것 아래의 뒤의 속살을 담담하게 관조하며 그녀는 애써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관계도 사건도 살아나가는 일도 다 그런 것이라는 그녀의 기본적인 어조가 때로 냉정하지만 그 명징한 맛에서 그녀의 이야기는 울린다. 끔찍한 삶 속에서 일어나는 유일한 위안인 사랑조차도 결국은 그 안에서 회자되는 것임을 기억하는 작가의 이야기는 결국 읽는 이들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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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6-09-2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무척 와닿았어요. 주정뱅이 1인으로서..ㅠㅠ;;

blanca 2016-09-29 14:06   좋아요 0 | URL
주정뱅이라는 말이 되게 뭐랄까, 귀엽게 느껴졌어요. 그런 의미에서 달밤님도 ㅋ 귀여워요...
 
한낮의 우울 -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의 모든 것
앤드류 솔로몬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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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실을 겪고 해거름이 지면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심장이 따갑고 쓰렸다. 둘숨마다 날숨마다 알알이 아팠다. 여지없이 해가 지면 그렇게 아팠다. 물속에 빠져 영원히 허우적댈 거라 생각했는데 삶이란 놀라웠다. 1년의 시간이 흐른뒤 나는 박차고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는 그때 겨우 아홉 살이었다.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나는 지금도 그때를 돌이켜 보면 그 어떤 영웅적인 행위보다 그러한 상실을 이겨낸 조그만 내가 대견하다. 그대로 가라앉을 수도 있었다. 회복기제나 계기가 어떤 것이었을까? 정확히 답할 수 없다. 거기엔 어떤 신비한 요소가 분명 있었다. 삶의 골목마다 많은 사람들이 앓았다. 잘 해낼 것 같은 사람도 그렇게 보이지 않던 이들도 다 외부적인 계기든 내면적인 것이든 상실에는 주춤했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잘 해내는 사람도 많았다. 분명한 것은 누구나 삶의 지축을 흔드는 일을 경험하고 때로는 그것에 송두리째 무릎꿇기도 한다는 것. 그러한 일은 살아가는 일 자체에 내재되어 있었다. 유한한 삶 자체가 이미 상실을 전제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이미 어떤 형태로든 상실을 경험하게 하는 모험일 것이다. 사랑하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게 두려워서 시작도 안 한다면 그것 또한 삶 자체를 살지 않기로 결심하는 모순을 예고하는 것일 거다.

 

이 책은 사람을 아프게 하는 책이다. 동시에 성장시키는 책이다. 생명과 삶에 필연적으로 내재된 어두운 요소를 응시하고 파헤치고 해석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야기다. 지금 아픈 사람도 그것을 통과한 사람도 혹은 그런 사람 곁에 있는 사람도 아니 차라리 이러한 고통 자체에 대한 경험과 이해와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책은 반드시 읽을 가치가 있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우울증을 통과하고 그 우울증에서 걸어나온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울증 자체에 대한 의학적, 사회심리학적, 정치적, 역사적 이해를 도모하는 개괄서이기도 하고 삶 그 자체에 대한 심오하고 철학적 이해에 대한 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사례집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살면서 겪게 되는 숱한 상실, 해체, 붕괴를 균형감 있게 관조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과 어떻게 통합하여 걸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안내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의 역치는 개인마다 다르지만 누구나 저마다 보이지 않는 고통을 품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한 각자의 삶의 서사의 주인공이자 영웅이다. 이러한 단순한 깨달음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고통을 딛고 일어서면 타인의 고통이 보인다. 눈물은 안 흘리고 가면 편하지만 흘리면 그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 빛나는 것이 남는다.

 

 

 

당신이 우울증을 겪으며 보내는 순간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간들이다. 그러니 아무리 기분이 저조하다 해도 삶을 지속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겨우 숨만 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참을성 있게 견뎌 내면서 그 견딤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우울증 환자들에게 주는 중요한 조언이다. 시간을 꽉 붙들어라. 삶을 피하려 하지 마라. 금세 폭발할 것만 같은 순간들도 당신의 삶의 일부이며 그 순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p.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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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9-27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블랑카님. 블랑카님의 리뷰도 너무나 좋은데 인용문도 참 좋네요.

blanca 2016-09-27 18:1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 책에서 좋은 대목이 너무 많아서 그 부분만 다 체크해서 다시 읽기를 해도 한 권의 읽기가 될 정도였어요.

세실 2016-09-27 2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들숨마다 날숨마다 알알이 아프다는 표현이 제 가슴에 콕 박힙니다...전 제 상처를 애써 외면하는 편이거든요. 아닌척, 괜찮은척...
각자 삶의 영웅이란 표현 굿!

blanca 2016-09-28 12:36   좋아요 0 | URL
길을 걸어다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면 예전과는 좀 다르게 보여요. 그 많은 상실, 결핍을 다 견뎌내고 저 나이까지 이른다는 게 그저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

Conan 2016-09-27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작에 사놓고 아직 못읽은 책입니다. 빨리 읽어봐야겠습니다.

blanca 2016-09-28 12:38   좋아요 0 | URL
Conan님, 여러 다른 책과 함께 조금씩 천천히 읽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중간 이론적인 부분은 조금 지루한 대목도 있지만 다 읽고 나면 책을 읽는 일이란 이런 거구나, 하는 묵직한 느낌이 오더라고요...

clavis 2016-09-29 0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친구가 해 준 말..어두울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줄 알았는데 어둠안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서서히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래요 그러면서 그 사람의 아픔을 함께 느낄 수 있게 되더라고..blanca님의 글을 읽으니까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