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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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의 관계의 틈에는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사랑에 빠질 때에도 헤어질 때에도 왜 그랬는지 누군가에게 설득력 있게 혹은 알아들을 수 있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어제까지 손잡고 걸었던 길을 오늘 혼자 걷게 될 때 "너는 왜 그랬어? 너희들 좋았잖아."라는 말에 대답할 수 없다.

 

어색하게 헤어지고 연락이 끊길 때 우리의 서사는 나름의 이야기로 왜곡되고 종결된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 하나는 분명히 다른 식으로 윤색된 연애 이야기를 갖게 된다. 현실?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연애는 삶을 닮는다. 시작하고 변하고 마친다.

 

권여선의 이야기 속 연애는 슬프다. 만나고 헤어지고 각자가 간직하는 서사가 다르다. 서로를 철저히 오해해 버리고 만다.

<카메라>에서 여자는 직장 동료의 남동생을 그녀 몰래 만나게 된다. 그러다 어처구니 없이 헤어지게 된다. 재회한 것은 그 남녀가 아니라 그 여자와 남자의 누나다. 남자의 누나는 여자와 남자의 사랑을 알고 있었지만 끝까지 모른 척해 준다. 하지만 여자가 미처 알지 못한 남자의 서사를 완성해 준다. 그것은 사려깊고 애달프다. 남동생의 삶과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준 누나의 이야기는 미처 남자의 전부를 알지 못한 여자를 울린다. 두 여자는 손을 잡는다. 끝났다,고 생각한 사랑은 그의 가족으로 인해 영원히 흐른다. 남자는 미처 그 사랑을 완성하지 못하고 마침표를 누나에게 맡겼으므로.

 

<층>에는 남녀 간의 사랑 안에 흐르는 현실의 묘한 위계를 감지한다. 백 퍼센트 순수한 사랑은 힘들다. 끊임없이 사회적 경제적 위계는 남녀 사이를 침투한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도 묵인하는 것도 무시하는 것도 결국은 그것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남자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공부도 많이 한 여자에게 아픈 가정사를 숨기려고 안간힘을 쓴다. 여자가 떠나자 남자는 자신의 그러한 처지가 여자를 떠나게 했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여자가 떠난 것은 그런 남자의 처지보다 자신의 가족을 부정하려는 그 거친 폭력에 진저리를 느낀 것이었다. 그러한 계기가 아니더라도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완성될 수 없었다. 작가는 그 미묘한 지점을 예리하게 간파한다. 그러한 것들이 모두 지나가고 난 자리에서 여자와 남자는 자신들을 처음부터 다시 정립하고 나아간다.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

 

권여선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 누군가가 시작한 이야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보이는 것 아래의 뒤의 속살을 담담하게 관조하며 그녀는 애써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관계도 사건도 살아나가는 일도 다 그런 것이라는 그녀의 기본적인 어조가 때로 냉정하지만 그 명징한 맛에서 그녀의 이야기는 울린다. 끔찍한 삶 속에서 일어나는 유일한 위안인 사랑조차도 결국은 그 안에서 회자되는 것임을 기억하는 작가의 이야기는 결국 읽는 이들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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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6-09-2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무척 와닿았어요. 주정뱅이 1인으로서..ㅠㅠ;;

blanca 2016-09-29 14:06   좋아요 0 | URL
주정뱅이라는 말이 되게 뭐랄까, 귀엽게 느껴졌어요. 그런 의미에서 달밤님도 ㅋ 귀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