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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평점 :
삶의 단계마다 필요한 열네 명의 철학자의 지혜의 기차는 언뜻 가벼워 보일 수 있는 구성이다. 이런 유의 책은 지금까지 충분히 많았고 철학 측면에서도 삶 쪽에서도 그리 깊이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 경우는 많지 않았으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충분히 시간을 내어 탑승할 만한 가치를 지닌 열차다. 저자 에릭 와이너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스스로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반향은 우리 모두에게로 향해 있다. 동승인인 그가 입양한 열세 살의 딸 소냐의 지극히 십대다운 발언들은 자칫 사변적으로 흐를 수 있는 철학을 현실로 끌어오는 효과와 이야기 자체의 재미에도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진지하고 통찰력 있는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드디어 지상으로 내려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의 괴로움에 대한 이야기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한다. 맨발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지저분한 거리에서 던진 질문들은 답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질문 자체를 경험하고 사는 삶의 여정으로 확대된다. 은둔의 성자처럼 미화된 소로가 얼마나 삶에 열정과 에너지를 가지고 제대로 모든 것을 경험하고 보는 것에 열중했는지 간디가 겉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과정에 집중하여 마침내 이루어 낸 성과가 무엇인지 공자가 실용적인 친절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타인에 대한 사랑을 통해 추구한 바가 무엇이었는지와 더불어 우리가 늙어가며 결국 건설적으로 물어남을 어떻게 체득해야 하는지를 거쳐 마침내 몽테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의 종착점으로 향햐는 저자의 여정은 삶 그 자체의 패러디처럼 보인다. 저자 자신의 에피소드들과 철학자들의 삶 속의 은근히 숙성된 그것들이 어우러져 지금까지 멀리서 모호하게만 보였던 철학이 우리의 삶 속에서 제기되는 수많은 문제들의 답을 찾아나가는데 하나의 안내서이자 지도로 치환되는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역시 에릭 와이너의 성취는 대미의 몽테뉴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서 빛을 발한다. 그가 가장 실제로 만나 맥주 한 잔을 나누고 싶은 철학자인 16세기의 철학자 몽테뉴가 이야기하는 죽음은 결국 우리가 이 열차에 올라탄 가장 근본적인 두려움의 연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에릭 와이너와 함께 한 것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추구하는 이 모든 것이 결국 무로 돌아갈 것임에도 우리의 노력은 우리의 삶은 여전히 유의미한가. 이 질문의 답을 구하기 위한 여정이었던 것이다. 물론 딱 떨어지는 답은 있을 수 없다. 모두에게 만족을 주는 거창한 진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릭 와이너가 생테밀리옹의 몽테뉴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가로질러 읽는 이들에게 꽂히는 불의 화살이다.
그에게 죽음은 마치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처럼 "재앙이 아닌 아름답고 불가피한 것"이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모른다 해도 걱정하지 마라. 때가 되면 자연이 전부 다 제대로 알려줄 것이다. 자연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놓을 것이다. 괜히 걱정하지 마라."
-p.495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로 도착한 순간부터 그것이 비존재로 다시 돌아가는 그날까지 기꺼이 기억해 둘만한 이야기들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