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스완 - 위험 가득한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 최신 개정증보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차익종.김현구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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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상품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 직원의 권유로 가입한 상품은 공격형 투자에 적합한 파생투자상품 위탁 판매를 통한 것이었다. 소액이라면 소액이라지만 최근 독일 국채 관련 파생 상품이 급격한 원금 손실을 보면서 은퇴자금 전부를 그 관련 상품에 넣은 노년층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들으면서 어안이 벙벙했다. 아직 손실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찬찬히 상품 설명서를 들여다 보면 원금 손실이 나기 쉬운 설계였다. 다섯 장도 넘는 상품 설명서를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전문가의 설명에 건성으로 응수하며 힘들게 번 돈을 공격적인 투자 상품에 넣은 것이다. 헛똑똑이는 '블랙 스완'에 먹혔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나는 결단코 그 상품에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자신이 월가의 파생상품 투자 전문가로 일한 경력이 있다. 1987년 '블랙 먼데이'는 그가 '블랙 스완'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이 세계의 불확실성과 비예측성을 얘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백조라면 응당 흰색일 거라고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나타난 까만 백조는 이 세계에 대한 이론의 틀, 플라톤적 관념 체계 자체를 전복시키는 혁명이었다. 나심은 이 '예측 불가능성'과 '우리가 모르는 것'에 집중한다. 


이야기 짓기의 오류


나심은 인간의 본성으로서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하는 특성을 지적한다. 우리는 그럴듯한 스토리에 쉽게 현혹된다. 낱개의 사실들은 연결 고리로 뭉클한 이야기로 거듭난다. 그 행간에는 거짓과 과장, 온갖 곡해가 개입한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한 오류다. 그럼에도 환원주의는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우리는 모두 두서없는 날것의 진실보다 매끈한 거짓 이야기를 더 믿으려 한다. 그리고 이것은 지적 세계에서 소수의 엘리트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기반이 된다. 


이야기 짓기의 세계를 벗어나야 한다. 텔레비전을 끄고, 신문 읽는 시간을 줄이고, 인터넷을 무시하라. 결정을 내리는 이성적 능력을 훈련하라. 감각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을 구분하도록 스스로를 훈련하라.

p,233

상당히 도발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선정적인 뒷이야기, 감동적인 스토리로 왜곡된 진실이 뒤늦게 드러나는 경우를 우리는 이미 충분히 봐 온 점을 감안한다면 나심의 도발은 타당하다. 건조한 진실의 입에 기꺼이 손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세계화, 지구화에 대한 우려


세계화가 취약성이 서로 얽혀 오히려 파괴적인 검은 백조를 양산한다는 나심의 의견은 예리하다. 금융 전문가 및 경제학자 등을 대놓고 저격하고 그들의 통계 수치를 허무한 것으로 전락시킨 이 책은  수많은 논쟁에 불을 지피고 적을 양산했다. 하지만 그의 책은 뒤이어 일어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하나의 예언서로 격상되는 이변을 맞는다. 그는 이미 금융기관들이 합병되어 비대화되고 현실과 맞지 않는 확률에 기댄 예측치로 복합 상품을 설계하여 대중들을 끌어들이는 일이 엄청난 파국을 맞을 것이라 예고한 바 있다. 작금의 현실을 예감한 듯 나라 간 이동이 용이해지며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급속하게 확산될 위험이 크다는 우려도 있다. 이 세계의 복잡성은 그 실체를 도저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상호 의존적으로 얽혀 예측 자체가 무의미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레바논인인 그는 자신의 고향에서 처음 전쟁이 발발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낙관적 희망을 가졌던 것이 어떻게 좌절되었는지 목도하게 되며 회의주의적 경험론자로 거듭난다. 우리의 인식론적 한계는 낙관에서도 비관에서도 여지없이 노출된다. 이러한 인간의 불완전성과 비정형성, 비선형성을 이제는 감내해야 할 시간이 왔다.



그래서 그렇다면 어떻게


나심은 자신의 책이 경제서가 아니라고 계속해서 주장한다. 실제 확률에 관련된 장은 일반 독자들은 건너 뛰어도 좋다고 덧붙인다. 몽테뉴와 세네카에 대한 경의는 시종일관 그의 아름다운 문장과 만난다. 이 책은 그의 주장처럼 경제서가 아닌 것도 아아니고 그가 어쩌면 기대했을 철학서라고 보기에도 그 모든 요소를 건너지르고 아우르는 방대함이 있다. 세계에 대한 사람들이 흔히 주목했던 전문가 집단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 뒤에 그는 쉽게 허무주의로 전락하지 않는다. 마지막 장은 세네카에 대한 얘기다. 철학자 세네카의 서한집에 나오는 아이들과 부인을 잃은 스틸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고전의 마지막 장을 장식해도 좋을 정도로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스틸보의 대답은 '니힐 페르디티, 옴니아 메아 메쿰 숨트' 였다.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나의 재산은 모두 내 안에 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회의주의는 삶 자체를 방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진지한 비판 의식을 가져야 하고 누군가 지나치게 그럴 듯한 논리를 펼 때 의심의 촉수를 뻗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가졌다고 자만할 때 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음을, 그럼에도 나는 무너지지 않을 것임을 믿어야 한다. 


마지막 인사는 세네카의 'vale'라는 인사로 갈음했다. '강인하기를'  우리 모두가 극한 확률을 뚫고 태어난 거대한 검은 백조라는 그의 시어 같은 이야기에 맞춤한 작별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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