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플에서 매일 알려주는 " 00년전 오늘 남긴 독서기록....." 을 보면 3월의 나는 매일 바쁘다 바빠를 연발하고 사는 인간이다.

똑같은 일을 매년 반복하면서 왜 요령조차 안 생기는지 매년 똑같이 바쁘다 바빠일세.

결국 올해도 역시 마찬가지.... ㅠ.ㅠ


2월 말에 비비언 고닉 이벤트 알림이 잘 안보인다고 막 나대며 홍보를 하고 그리고 리뷰대회 1등할거라고 막 장담했었다.

아마도 나의 서재 지인 여러분들은 다 알고 계실터....
















나는 정말 잘 쓰고 싶었다. 

심지어 리뷰를 <사나운 애착>과 <짝없는 여자와 도시> 모두 다 읽고 다 쓸 생각이었다.

그래서 진짜로 1등 하려고 했다. 

그런데 결과는?

<사나운 애착> 1권 읽기만 했다.

바빠서 리뷰를 못 썼다고 말하고 싶다. 막 우기고 싶다. 3월은 원래 내가 가장 바쁜 달이라고 막 우기면서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ㅠ.ㅠ

<사나운 애착>은 다 읽었다. 그리고 술술 읽히기도 하고, 내용 역시 재밌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막 공감이 가는건 아니다.

비비언 고닉의 엄마는 나의 엄마나 내가 아는 주변의 엄마들과 너무 다르고, 이들 모녀의 애증관계도 내가 아는 모녀간의 애증관계와 너무 다르다. 그리고 그 관계에서 무언가 특별한 공감지점을 찾아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아 그래, 이런 모녀관계도 있구나, 애증의 관계라는 건 비슷하지만, 그 애증의 지점이 이렇게 다르구나'하는 정도.

차라리 나는 나의 엄마가 비비언 고닉의 엄마처럼 자기 주장을 하고, 딸에게 막 불평불만도 말하고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히려 하게 되었으니 이는 저자의 책을 쓴 의도와 완전히 다른 지점이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의 공략대상은 다음 책 <짝없는 여자와 도시>가 되었다.

이 책이야말로 나의 최고의 리뷰가 되리라! 우하하하 하며 야심차게 책을 들었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내가 짝이 있는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나에게 게이 친구가 없는 것이 문제인가? 

왜 이 책은 아예 읽히지를 않는 것인가?

앞 20여페이지를 3번째 읽다가 혹시 내가 난독증이 생긴건가 의심하면서 일단 슬그머니 책을 치우게 되어 버렸으니....

이로써 나의 리뷰대회 상금은 날아가 버리고....

나는 로또를 사지도 않으면서 로또 당첨을 바라는 그런 인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것이다. ㅠ.ㅠ



저기 저 <짝없는 여자와 도시>를 다시 책장에 쑤셔넣고 고른 책이 <여행하는 여성, 나혜석과 후미코>인데,

이 책은 또 비비언 고닉처럼 글을 잘 쓴 책은 아닌데 할 얘기는 또 엄청난 책인 것이다. 

리뷰를 쓰야 하는데..... 쓰야....



















아 그리고 3월은 또한 바쁘고 바쁘다.

그럼에도 놀거는 다 논다.

봄바람이 불어오니 토요일이 되면 오랫만의 출근 휴유증으로 널버러져 있다가 일요일이 되면 또 정신을 차리고 

"아 꽃놀이 꽃놀이...."이렇게 비명을 지르며 집을 나서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꽃놀이에 집착하는 이 증상도 뭔가 연구대상이다. 



지지난주에는 오륙도 앞바다에 수선화가 만발하다 하여 길을 나섰다가 엄청난 교통 체증을 만났다.

그래서 평소에는 안보이던 도로안내 표지판이 눈에 들어오네





나 - 해작사? 저 절은 참 이름이 특이하네. 무슨 뜻이지???

남편이 - (진짜 빵 터지면서) 응. 해군작전사령부

나 - 아씨! 그런걸 왜 줄임말 쓰는데.... 공공기관에서 저렇게 말 줄여도 돼?


하여튼 그렇게 간 오륙도앞 해변은 사람으로 넘쳐나고 수선화는 예쁘긴 한데 뭔가 좀 모자란 느낌.




집앞에 만발한 벚꽃잎은 우리 동네 놀러온 분들 보라하고, 평일에 많이 보는 우리는 지난 일요일에는 다시 울주 반구대암각화쪽으로 꽃나들이를 갔다.

천전리 각석쪽으로 가는 길과 반구대 암각화쪽으로 가는 길, 2개의 길이 있는데 모두 봄내음이 물씬하고,

특히 반구대 암각화쪽으로 가는 길은 뭔가 원시림같은 이국적인 풍경이 막 펼쳐지면서 입에서 절로 감탄사를 나오게 한다.

아주 오래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반구대 암각화앞까지 차를 타고 왔던거 같은데 지금 이렇게 박물관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들어오니 훨씬 더 좋은 거 같다. 



저기 저 절벽 위에 진달래꽃을 보니


나 : 여보 여보 나 저기 저 꽃 따주오, 그리고 헌화가도 불러주오.

남편이 : 맘은 꿀떡같은데 거북이가 없소

나 : 그러길래 내가 그놈의 거북이 구워먹지 말랬잖소....ㅠ.ㅠ 거북이 없어도 되니 꽃 따주오

남편이 : 거북이 없으면 안되오

나 : 매우 매우 짜증나오....ㅠ.ㅠ


음 헌화가와 수로왕 탄생설화가 짬뽕된 대화이긴 한데 말도 안되는 내맘대로 바보들의 대화랄까? ㅋㅋ




그러다가 이런 풍경도 나오고요.



꽃만큼이나 아름다운데 봄날 돋아나는 새순의 연두빛이잖아요. ^^


이렇게 휴일이면 꽃보러 다니느라 정신없는데, 오랫만에 출근했더니 평일에는 밥사주고 술사주는 인간도 많아요. ㅠ.ㅠ

요즘은 안주 비쥬얼이 진짜 장난 아니어서 술이 막 꿀떡꿀떡 넘어가는데 꿀떡꿀떡 못먹어서 너무 슬퍼....

하지만 그래도 참을 수 없어 쬐매만 마시면서 슬퍼하는 나날들입니다.

최근 먹은 최강 비쥬얼의 안주 - 한우 육회입니다요. 그리고 술은 역시 소주여야 하나 건강을 생각해서 쬐매 약한 하이볼로....






이렇게 사는 것의 문제는 역시 책을 읽을 시간과 서재에 글을 쓸 시간이 안난다는 것.

평일은 거의 뻗어서 밥먹고 나면 책장 몇장 뒤적이다가 잠드는 상태. 

그래서 약속했던 <제2의 성>은 그냥 포기, 언젠가 다시 시도할테다 하면서 주먹만 불끈.

오늘이 3월 31일인데 이달의 책인 <남성 특권>은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다.

결국 이번 주말이 되어야 될듯하긴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읽고 있다는 인증샷



직장에서 화병의 꽃이 예쁘길래 그냥 같이찍어봤다.

저 띠지 보이시죠들...

반쯤 읽었어요. ㅠ.ㅠ


그리고 저는 요즘 아침 저녁으로 이런 길로 걸어서 출퇴근 중입니다.

여러분 부러워하시라고 올리는 사진입니다. 




사실 가장 바쁜 일들이 오늘로 마무리 되었어요.

뭐 내일은 내일의 일이 있겠지만 진짜 정신없는 달은 지나갔으니 이제 4월부터는 열심히 출석도장글도 쓰고,

책도 다시 열심히 읽고 그런 바람돌이로 돌아오겠습니다. ^^

그래놓고 내일은 친구들과 진달래보러 산에 갑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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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31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3-03-31 14: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내가 짝이 있는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나에게 게이 친구가 없는 것이 문제인가? ㅋㅋㅋㅋ
네 그래서 그렇습니다. 거북이랑 꿀떡꿀떡 빵 터집니다.
그나저나 저 육회 정말 아름답네요?!

바람돌이 2023-03-31 15:01   좋아요 1 | URL
그래서 짝없는 여자는 저의 존재론적 한계로 인하여 읽어지지가 않는 것이라고 극구 주장하고 있습니다. ㅎㅎ
저 육회는 맛도 환상적이어서(소고기가 맛이 없을 수가 없는....ㅎㅎ) 심지어 술과 함께하나 더더욱 환상이었습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3-03-31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니까요!
뭡니까?
기다려도 리뷰 올리시지 않아서요~~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저도 요즘 꽃이 점점 좋아지더라고요^^
오륙도 오랜만이예요^^

바람돌이 2023-03-31 15:02   좋아요 2 | URL
리뷰대회는 이제 저에게 맞는 책이 나올 때까지 그저 기다리는 것으로....
리뷰 쓸려고 책 샀다가 어떤 이유로든 책이 안 맞아서 못쓰는 일의 반복이랄까요? 이렇게 말해놓고 나니 그건 그냥 나의 게으름이 아닌가? 나는 왜 쿨하지 못하고 이렇게 변명만 하는 것인가라고 또 반성하고 있습니다. ㅎㅎ

다락방 2023-03-31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맨 마지막 꽃 사진 보며 감탄하고 와, 저런 길로 출퇴근하신다니 정말 황홀하시겠어요, 하려고 하였으나!
그런데 육회사진이 진짜 너무 압권이네요? 저는 글 읽기 전에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고~ 했어요. ㅎㅎㅎㅎㅎ

남성특권 마저 힘내서 읽으시길 바랍니다.
제 여동생부부(둘다 교사) 3월이라 몸살 한번씩 앓고 학교 들어간 제 조카들도 한번씩 앓네요.
바람돌이 님, 건강 잘 챙기셔요!

바람돌이 2023-03-31 15:37   좋아요 0 | URL
저집은 사직야구장앞에 있는 술집으로 모든 안주의 비쥬얼이 장난 아닌.... 맛은 뭐 당연히 아름답습니다. ㅎㅎ
오늘도 내일도 그래서 일요일까지는 남성특권 꼭 다 읽고 4월의 책 빨리 읽어서 행복해질테야요. ㅎㅎ
4월은 책은 행복의 약속이니까.... ^^
저도 다락방님 가족분들도, 특히 귀여운 조카분들 모두 모두 건강 챙기며 화이팅해요. ^^

거리의화가 2023-03-31 16: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는 매달린 진달래 보며 나누는 두분 대화에 빵빵 터집니다!^^
여전히 재미나게 사시는 두분을 보며 흐뭇미소 짓고 갑니다ㅎㅎㅎ 저도 꽃 사진 찍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3월은 이제 지나갔으니 4월에 즐겁게 보내면 되겠죠^^

바람돌이 2023-03-31 16:22   좋아요 1 | URL
바보 부부의 대화라고.... 나이들수록 어떤 대화도 진지함이 불가능해집니다. ㅎㅎ
화가님 꽃사진도 보러가야겠네요.
내일이면 주말이면서 즐거운 4월입니다. 4월은 안 잔인하고 행복한 달입니다. 저에게는.... 3월이 끝났으니까요. ^^

건수하 2023-03-31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두 권 다 재미있게 읽었으나 리뷰는 못 쓰겠더라고요 ㅋㅋ

헌화가와 구지가의 짬뽕...
그래도 낭만적입니다. 문학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니 ^^


바람돌이님 저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오늘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응?) 이제야 여쭤보기로 했습니다.
프로필 사진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최병수님이 아시는 분이라던가... @_@
아니면 저 펭귄이 마음에 들어서 올리시고, 출처를 표기하신 걸까요?

바람돌이 2023-03-31 16:26   좋아요 1 | URL
앗 저처럼 리뷰 못쓰신분 좋아요 좋아... ㅎㅎ
하지만 그래도 수하님은 두권 다 읽으셨군요. 저는 한권만....ㅠ.ㅠ

저 헌화가와 구지가는 오로지 옛날옛적 고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배운 것이죠. 낭만이라니요. 그저 바보들의 대화일뿐이고 중요한 것은 남편이가 꽃을 따줄 생각이 일도 없다는 것이죠. ㅎㅎ

프로필 사진요? 아 진짜 저거 십몇년전에 저 작품보고 너무 좋아서 프로필 사진으로 했는데 그 뒤로 귀찮아서 안바꾸고 있는 것일뿐입니다. 대문 사진도 뱅크시 작품인데 아주 오래된 지붕인데 귀찮아서 안 바꾸고 있을 뿐이고요. 최병수씨는 아는 분도 아니고 저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ㅎㅎ

건수하 2023-03-31 16:34   좋아요 1 | URL
꽃 억지로 따다가 큰일나십니다…. ㅎㅎ


바람돌이 2023-03-31 17:39   좋아요 1 | URL
앗 그 그렇습니까? ㅋㅋ

blueyonder 2023-03-31 1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사시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 꽃길도 부럽습니다~ ㅎㅎ

바람돌이 2023-04-01 00:01   좋아요 1 | URL
세상 사는게 쉬운게 없는데 가족끼리라도 사이좋게 농담해가며 살아야지요. ㅎㅎ
꽃길은 정말 부러우라고 올린 사진인데 부러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난티나무 2023-03-31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꽃도 좋지만 저 연초록연초록 정말 좋아요.
해작사!!!!! 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4-01 00:02   좋아요 0 | URL
저는 세상에서 봄날 새잎이 날때의 저 연두빛과 가을 벼가 초록에서 노랑으로 바뀌어 갈때이 색깔이 제일 좋아요. ㅎㅎ 해작사 저만 웃긴거 아니죠? 진짜 빵 터졋다니까요? ㅎㅎ

coolcat329 2023-04-01 0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3월 바쁘셨군요.
저도 3월은 그냥 도둑맞은 기분입니다.
바람돌이님 리뷰대회 나가셨으면 분명 뽑히셨을 거에요. 늘 글 읽으며 부러웠거든요.

한우육회가 김부각위에 있는 거죠? 오 둘 다 좋아하는데 환상의 조합이네요.
육회는 정말 👍 의 안주죠.
즐겁게 바쁘셨네요~ 살랑살랑 봄답게 보내셨어요~^^

바람돌이 2023-04-01 22:26   좋아요 0 | URL
쿨캣님 이렇게 진지하게 뽑혔을거라고 얘기해주시면 좋으면서도 부끄럽사옵니다. ㅎㅎ
사실 이곳에는 쿨캣님을 비롯하여 글을 잘쓰는 분이 너무 많아서 항상 부러움의 한숨만 쉬는 것이 저인지라....

저 육회가 김부각위에 있고, 육회위에 있는 하얀건 배이고요. 이걸 찍어먹는 소스를 또 따로 주는데 진짜 맛있더라구요. 술안주 최고이지만 역시 비싼 관계로 자주 먹을 수는 없는..... ㅎㅎ
책은 못읽었지만 이정도면 봄날은 봄날답게 보냈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

희선 2023-04-03 0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월 바쁘게 지내시면서 꽃도 보셨군요 다니는 길에서 벚꽃을 보셔서 기분 좋으시겠습니다 저기 절벽에 핀 꽃을 보고 즐겁게 이야기 나누셨군요 나무 연둣빛도 예쁩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3-04-03 09:00   좋아요 0 | URL
삼월이 아니면 못보는 모습이니까요. 요즘은 이렇게 걸어다니면서 좋은 모습을 보는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또 막 느끼게 되는 그런 날이네요. 역시 사람이 뭔가 결핍을 느껴봐야 좋은게 좋은건지 아나봐요. ^^
 

1931년 11월 12일 밤, 창춘 도착. 입김이 하얗게 서릴 뿐 눈은 아직 내리지 않는다. 지난해 빈손으로 왔을 때와 달리 트렁크가 네 개나 있는 데다 역 안이 병사들로 가득했기에 한가로이 짐꾼을 부르고 자시고 할 형편이 아니었다. 나는 번쩍이는검을 꽂은 소총이 숲속 나무처럼 죽 늘어선 일본군 사이를 뚫고 가까스로 어스레한 대합실에 들어갔다.  - P149

창에 이마를 대고 자작나무가 눈보라에 부러질 듯 비틀비틀하는 숲을 바라보는 내게 페름 군이 탱고 한 구절을 불러준다. 어찌하여 러시아인은 이토록 노래를사랑하는 걸까. 차라리 이 사람의 아내가 되어 페름에서 내려버릴까 하는 자포자기 심정에 잠시 빠졌지만, 여하튼 말이 통하지 않는 데다 60센티미터 남짓 키 차이가 나서 단념했다.  - P160

자작나무 장작을 가득 실은 삼두마차가 달려가고 눈이 물보라처럼 사방으로 흩어진다. 유리를 포갠 듯 눈길이 반짝이고 기차 소리에 나무 위 눈 덩어리가 도깨비불인 양톡 떨어진다. 정말이지 차창 너머 설경은 일생 잊지 못할 추억이다. 일본에 돌아가 8 전짜리 가락국수를 먹는 것도 나쁘지는않지만 달려, 달려, 기차여! 눈물을 참을 길 없네, 어이, 아직도여긴 시베리아 한복판일세. 혼잣말을 해보며 이중창문 밖을싫증도 안 내고 바라봤다. - P171

언어가 통하지 않은 탓일까, 참으로 불가사의했다. 왜냐하면 내 눈에 들어온 러시아는 일본에서 알던 러시아와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일본의 무산자들이 연모하는 러시아가 이런곳이었던가! 일본의 노동자 농민은 도대체 러시아의 무엇을 동경하는 걸까? 그럼에도 러시아는, 프롤레타리아는 변함없이프롤레타리아다. 그리고 어느 나라든 죄다 특권자는 역시 특권자다. 3루블짜리 기차 식당에는 군인과 인텔리풍 사람이 대다수였다. 복도에 서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 중에 군인이나 인텔리는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이 노동자의 모습이었다. - P174

300 프랑은 가구를 포함한 가격으로, 그 가구란 것이 상당히 보잘것없다. 옷장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목재 품질을 뽐내고 두 개 있는 의자는 너무 높아 어떻게 앉아도 발이그네를 타고 만다. 때때로 배꼽 빠지도록 웃기에 딱 맞는 의자랄까. 이 의자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다면 어떠한 야심을 품지않아도 그만. 자지러지게 웃고 또 자지러지게 웃으며 죽음을 맞이할 때 제격이겠다. - P189

그녀가 조만간 에펠탑에 데려다준다길래 에펠탑에 올라가도 별로 재미있지 않을 것 같다고 했더니 "밑에서 바람이불어 올라와서 얼마나 기분이 좋은데"란다. 파리는 가벼운 곳이다. 그녀는 품위 없는 곳만 바라본다.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릴지 모르지만, 나는 불우하기에 품위 있는 곳과 인연이 없다. - P196

돈으로 당신의 나라에 가보는 거야." 이것이 열일곱 살의 꿈으로 내가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문명이 이토록 우리 젊은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는 없단다.
"남자 친구는 많이 있나요?"라고 묻자 "남자든 여자든 친구는많죠"라며 뽐냈다. - P214

사람에게는 아주 다양한 모습이 있나 보다. 피아노 뚜껑을 열고 일직선으로 손가락을 힘차게 달려보지만 지금의 내 마음과 닮은소리를 내주지 않는다. 우물 밑바닥으로 돌을 던지는 듯한 소리다. 가벼운, 바람 부는 소리는 이 세상에 없는 걸까? 나는 있는 힘껏 피아노를 경멸하기로 한다.  - P238

세계대전이후 대체 어디에 평화가 왔나? 각국의 인민은 녹초가 됐다.
유럽을 걸어보면 지금도 베르됭의 피비린내가 난다. 발 없는남자, 한 손 없는 남자, 한쪽 눈 없는 남자, 이런 베르됭의 유물이 무얼 하고 있냐면 대개 샌드위치맨이거나 걸인 또는 비올라켜는 광대다. 과거 인기가 높던 어느 인간의 말로, 그 모습의 사람들이 유럽 각국에서 우글거리며 배출구를 찾고 있다. - P240

삼등실도 이렇게 더운데 기계실 화부나 석탄 운반부, 요리사들은 오죽 숨 막힐까? 다행히도 우리 삼등실 손님들은 일등실 손님처럼 일일이 예의를 갖춰 식당에 갈 필요가 없다.  - P262

베르됭의 망막한 광야에 서 있는 전투 기념비를 본나는 동양의 베르됭, 만주 하늘이 떠올라 몸과 마음에 무언가스며드는 기분이었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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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대를 살았다고 모두 비슷한 삶을 살지 않는다. 제국에서 태어난 사람과 식민지에서 태어난 사람이 꼭 제국인다운 삶,
식민지인다운 삶을 살지 않는다. 이 책은 여행이란 남성만이 누리던 시절, 민족과 계급이 다른 두 여성의 여행 기록이다. ‘여성‘은한일 근대기에 형성된 하나의 계급이었다. 나혜석의 젠더로서의고민, 하야시 후미코의 프롤레타리아 여성이 처한 냉엄한 현실 고민은 여행기 곳곳에서 드러난다.  - P9

극장 경영을 하려면 근본 문제 즉 조선 부녀 생활을급선무로 개량할 필요가 있다고, 실로 여자 생활에 여유가 없는 사회에서 오락 시설은 번영할 수 없다. - P26

나는 언제든지 좋은 구경 많이 한 사람과 다니는 것보다 도무지 구경 못 한 사람과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그 사람이 좋아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퍽 유쾌하다. - P27

출발과 동시에 갑판 위에서 관현악곡이 울린다.
태양빛이 흐르는 호수 위에 둥실둥실 떠서 음악 소리에 몸이싸였을 때, 아! 행복스러운 운명에 감사를 아니 드릴 수 없었고 삶에 허덕이는 고국 동포가 불쌍했다. - P44

스위스는 어느 곳을 막론하고 경색이 좋지 않은 곳이 없다.
스위스 전체가 명승지이다. 그림으로 그릴 만한 곳이 무진장이었다. 스위스에 누구든지 구경을 가시거든 숙소를 정하지 말고배낭 하나 짊어지고 가시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것이 스위스를 알기에 제일 상책이다. - P50

 우리 것은 무엇이든지 부끄럽지 않은 것이 없으나 작은 나라 국민 정황을 비교 안 할 수 없다.  - P51

1907년원문은 1918년 헤이그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출석한 이준 씨가 당회 석상에서 분에 못 이겨 돌아가신 곳이다.
이상한 고동이 생기며 그의 외로운 넋이 우리를 만나 눈물을머금은 것 같았다. 그의 산소를 물었으나 아는 이가 없어 찾지못하고 다만 경성에 계신 그의 부인과 딸에게 그림엽서를 기념으로 보냈을뿐이다. - P80

원래 프랑스는 중앙 집권 나라로 온 나라의 번화한 문명이집중된 파리를 제외하고는 국내 변변한 도시가 없다. 파리에서한 발만 내놓으면 빈약하고 살풍경하니 건전한 문명, 건전한국가라고 말할 수 없다. 오직 물가가 싸고 인심이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시설이 화려해 모여드는 외국인의 향락장이다. - P87

다이요마루호 일등실 설비와 그 생활이다. 실내는 좌우 대립으로 침대가 두 개 놓여 있다. 여자승무원, 남자 승무원이있어 여자는 걸, 남자는 보이다. 목욕은 매일 아침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아침밥을 먹는다. 갑판에서 놀고있으면 차를 들고 온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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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있을 때는세심하고도 온전하게 나에게만 집중해주었기에 그가옆에 없을 때도 박탈감이나 소유욕을 느끼지 않았다.
난생처음으로 연인이 나와 함께 있지 않을 때 무엇을하는지가 관심 밖의 일이 되었다. 실로 그가 어디서 무얼하건 내 알 바 아니었다. 그건 해볼 만한 경험이었다. - P267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책상에 앉아선 일기와 책장을바라보았다. 내가 일하는 장소의 질서정연함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엄마는 사랑이라는 신전을 숭배했지만평생 돌려받은 건 권태였어. 사랑이 준 건 죽은경품이었어. - P273

"아, 그렇구나. 그럼 그렇지." 하지만 여전히 뭔가 할말이 있는 것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내팔에 손을 얹었다.
"결혼하지 마라." 그러더니 복도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 P284

엄마와 네티는 나를 느슨하게 안고 있다. 그렇다. 그들은웃음을 띤 채 나에게 팔을 감고 있다. 창백한 빛 속에서나에게 말한다. 사랑을 해야만 해 - P298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다. 우리는 끈끈하게 얽힌 혈육이아니다. 살면서 놓친 그 모든 것과 연기 같은 인생을 그저바라보는 두 여자다. 엄마는 젊어 보이지도 늙어 보이지도않고 그저 당신이 목도하고 있는 바, 그 혹독한 진실에깊이 침윤되어 있다. 엄마한테 내가 어떻게 보일지는 나도모른다. - P301

엄마는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엄마는 여든이다.
눈은 흐려졌고 머리는 하얗게 셌다. 몸은 마르고 허약하다.
엄마는 차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내려놓더니 조곤조곤말한다. "뭐라고 하긴 지옥으로 꺼지라고 했겠지." - P301

내 생각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상대에게무엇을 원하는지에만 골몰하는 대신 더도 덜도 말고 딱1분이라도 그저 이 세상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됐을 정도로 그 긴긴 세월을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우리 두 사람 다 감격하는 듯하다. - P311

그러다 조화를 잃어버릴 때면 사랑도 연대도 없이, 실패와박탈감에 산 채로 매장당한 기분에 빠진다. 우정은불완전하고, 고민은 나를 잠식하며, 일은 내 무능력의총체적 결과다. - P314

엄마는 애원하듯 말한다. "엄마한테는사랑밖에 없었잖아. 내가 뭘 가져봤겠니. 아무것도 없었어.
아무것도, 달리 뭘 가질 수 있었겠니? 네가 인생 얘기하는거 다 옳지 다 맞는 말이야. 너한테는 일이 있었잖아.
너만의 일이 있잖아. 너는 여행도 많이 했고, 세상에나,
여행이라니! 넌 지구 반 바퀴는 돌아봤지. 난 여행은 꿈도못 꿔봤는데! 나한테는 네 아빠 사랑밖에 없었어. 인생살면서 누릴 게 그것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그 사랑을사랑했다. 아니면 뭘 어쩔 수 있었겠니?"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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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또한 우리 사이에선그림자와 같았다. 관리인과 그의 아내도 말수가 적었다.
누구에게도 먼저 말 거는 법이 없었다. 아마도 이건 다수안에서 소수가 살아남는 방식일 것이다. 소수자는 저절로침묵하게 된다. - P18

엄마는 여기 아닌다른 세상, 진짜 세상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가끔은당신이 그 세상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아주 열렬하고절실하게. 엄마는 집안일에 열중하다가도 갑자기 모든동작을 일제히 멈추고, 한없이 길게 느껴지는 몇 분 동안싱크대를 바닥을, 스토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데그 세상이 어디 있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데? 그게 대체뭔데? - P25

엄마가 묻는다. "나한테 뭘 원하는 거냐고 말을 해." 승려가엄마에게 말한다. 엄만 그 사람 말을 듣는다. 그러더니어깨를 쫙 펴서 157센티 정도 되는 키를 최대한 키운 다음대꾸한다. "이봐요, 젊은 양반 난 유대인이고 사회주의자야. 사람이 한평생 그 두 가지 사상만 감당하기도 보거워. 무슨 말인지 알겠소?" - P49

우린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게 자기만의 세상에서고립된 채 살아온 사람들, 평생 서로의 생활 반경에서벗어나지 못해 닮아버린 두 여자다.
이런 순간엔 우리가모녀라는 게 마치 외계인이 전달한 메모처럼 충격적으로다가오기도 한다. 우리는 엄마와 딸이 맞고, 거울처럼서로를 반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혈연이니 효도니하는 단어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반대로가족이라는 개념,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 가족의삶이라는 것 모두 해석이 불가능한 세계처럼 느껴지기시작한다.  - P72

우리는 69번가에 도착해 골목을 돌아 헌터대학교 강당입구까지 걸어간다. 문은 열려 있다. 안에선 이삼백 명의유대인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참혹한 역사를 증언하는기념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역사의 증언은 그들을하나로 이어주는 끈과도 같다. 그들은 끊임없이 과거를되새기면서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치유받고 공감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와 인생을 어떻게든 이치에 맞게끼워 맞추면서 수긍하려고 한다.  - P73

"사람들은 각자 자기 삶을 살 권리가 있지." 엄마는나직하게 말한다. - P95

엄마의 물러섬 없는 악착스런 고통 전시에 비하면 모두지나가는 배경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 P103

 엄마는 아빠의 죽음에서회복되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부엌일하던 시절에는가져본 적 없던 당신의 타고난 진지함을 발견했다.  - P118

아빠를 애도하는 일은 엄마의 직분, 엄마의 정체성,
엄마의 페르소나가 되었다. 몇 년 후에 나는 우리 모두가깊이 몸담았던 정치사상(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의여러 국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데, 내가 만난 배관공제빵사 재봉사 들이 본인을 사상가 시인 학자로 여긴다는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과 다른사람들, 공산당원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도 당신의 과부처지를 그와 같은 방식으로 여긴 건 아닌가 생각한다.
엄마가 볼 때 당신은 남편을 잃었기에 더 차원 높은인간, 정신적으로 우월한 사람이 되었고 감정은 더욱심오해졌으며 수사는 더 풍부해졌다.  - P118

나는 엄마로 뒤덮여 있었다. 엄마는 어디에나있다. 내 위아래에 있고 내 바깥에 있고 나를 뒤집어봐도있다. 엄마의 영향력은 마치 피부조직의 막처럼 내콧구멍에, 내 눈꺼풀에, 내 입술에 들러붙어 있다. 숨을 쉴때마다 엄마를 내 안에 들였다.  - P123

"나도 모르지. 우리 딸이 똑똑하다는 것만 알지. 교육받을 자격 있다마다. 교육받을 거야. 여긴 미국이라고.
여자들이 들판에서 짝지을 수소나 기다리는 젖소가 아니라니까."  - P165

우리는 모두 생긴 대로, 자기 욕구에 따라살 뿐이다. 네티는 유혹하고 싶어했고 엄마는 고통받고싶어했다. 나는 책을 읽고 싶었다. 우리 셋 중 어느 누구도스스로를 잘 다스리고 절제하여 이상적이고 정상적인여자의 삶을 성공적으로 추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기실 우리 셋 중 어느 누구도 그 삶을 성취하지 못했다. - P176

엄마는 당신의 악착스러운불행이 어떤 면에서 상대방에 대한 비하이고 판단이라는사실을 읽지 못한다. 마치 한탄하며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너? 너로는 부족해. 너는 나한테 평안과 기쁨을 줄 수없고 이 상태를 개선해줄 수도 없어. 그래도 내가 가장사랑하는 사람이긴 해. 그러니까 너에게 주어진 의무는이해를 해야지. 내 이 모든 절망과 박탈감을 치료해주기에너는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매일 깨닫고 사는 게네 운명이야." - P195

한번은 무려 한 시간 반이나 걸려서 여성 잡지에 나온레시피를 따라 최악의 캐서롤(다양한 재료를 넓은 용기에 넣고오븐에 구워 내놓는 음식을 만들었다. 그걸 둘이서 10분만에대강 먹어치웠고, 난장판이 된 부엌을 한 시간 동안 치운건 나였다. 싱크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한순간을 기억한다. 앞으로 40년을 이렇게 살아야 되는건가?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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