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있을 때는세심하고도 온전하게 나에게만 집중해주었기에 그가옆에 없을 때도 박탈감이나 소유욕을 느끼지 않았다.
난생처음으로 연인이 나와 함께 있지 않을 때 무엇을하는지가 관심 밖의 일이 되었다. 실로 그가 어디서 무얼하건 내 알 바 아니었다. 그건 해볼 만한 경험이었다. - P267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책상에 앉아선 일기와 책장을바라보았다. 내가 일하는 장소의 질서정연함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엄마는 사랑이라는 신전을 숭배했지만평생 돌려받은 건 권태였어. 사랑이 준 건 죽은경품이었어. - P273

"아, 그렇구나. 그럼 그렇지." 하지만 여전히 뭔가 할말이 있는 것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내팔에 손을 얹었다.
"결혼하지 마라." 그러더니 복도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 P284

엄마와 네티는 나를 느슨하게 안고 있다. 그렇다. 그들은웃음을 띤 채 나에게 팔을 감고 있다. 창백한 빛 속에서나에게 말한다. 사랑을 해야만 해 - P298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다. 우리는 끈끈하게 얽힌 혈육이아니다. 살면서 놓친 그 모든 것과 연기 같은 인생을 그저바라보는 두 여자다. 엄마는 젊어 보이지도 늙어 보이지도않고 그저 당신이 목도하고 있는 바, 그 혹독한 진실에깊이 침윤되어 있다. 엄마한테 내가 어떻게 보일지는 나도모른다. - P301

엄마는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엄마는 여든이다.
눈은 흐려졌고 머리는 하얗게 셌다. 몸은 마르고 허약하다.
엄마는 차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내려놓더니 조곤조곤말한다. "뭐라고 하긴 지옥으로 꺼지라고 했겠지." - P301

내 생각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상대에게무엇을 원하는지에만 골몰하는 대신 더도 덜도 말고 딱1분이라도 그저 이 세상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됐을 정도로 그 긴긴 세월을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우리 두 사람 다 감격하는 듯하다. - P311

그러다 조화를 잃어버릴 때면 사랑도 연대도 없이, 실패와박탈감에 산 채로 매장당한 기분에 빠진다. 우정은불완전하고, 고민은 나를 잠식하며, 일은 내 무능력의총체적 결과다. - P314

엄마는 애원하듯 말한다. "엄마한테는사랑밖에 없었잖아. 내가 뭘 가져봤겠니. 아무것도 없었어.
아무것도, 달리 뭘 가질 수 있었겠니? 네가 인생 얘기하는거 다 옳지 다 맞는 말이야. 너한테는 일이 있었잖아.
너만의 일이 있잖아. 너는 여행도 많이 했고, 세상에나,
여행이라니! 넌 지구 반 바퀴는 돌아봤지. 난 여행은 꿈도못 꿔봤는데! 나한테는 네 아빠 사랑밖에 없었어. 인생살면서 누릴 게 그것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그 사랑을사랑했다. 아니면 뭘 어쩔 수 있었겠니?"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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