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따르면, 게토 봉기는 단순히 유대인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투쟁이었다. 이것은 폴란드 낭만주의의 언어로 받아들여졌다. 즉 누군가의 행동은 그것이 가져온 결과보다는 의도로 판단해야 하고, 희생은 고결한 것이며,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은 영원히 존경받을 고결함의 극치라는 것이었다. 때로는 과장되거나 때로는 망각되는 빌네드의 메시지의 핵심은 바로 바르샤바 유대인 레지스탕스 문제는 유대인의 존엄성뿐만 아니라 누군가는 더 애를 썼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렇지 않았던 폴란드인, 영국인, 미국인을 포함한 인류의 전체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었다. - P526

독일군의 패배가 눈앞에 있다는 것은 분명 반길 만한 소식이었지만, 마찬가지로이내 소련군이 바르샤바를 접수할 것이라는 예상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폴란드 국내군이 독일군과 공개적으로 싸워 승리한다.
면, 그들은 붉은 군대가 자신들의 집을 차지하는 상황을 맞이할 것이었다. 반대로 그들이 독일군과 싸워 패배한다면, 곧 들이닥칠 소비에트에게 자신들은 손쉬운 상대이자 무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꼴밖에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소비에트와(혹은 서방 동맹국들과) 협상할 자리조차 얻지 못할 것이었다. - P536

이런 점에서보면, 폴란드는 소련뿐만 아니라 서방 동맹국들에게도 배신당한 것이었다. 이들은 폴란드인들에게 타협할 것을 요구하며, 폴란드인들의 손에 기대 이하의 결과물만을 쥐여주었다. 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미 국토의 절반이 적국에 양보된 것이었다.
- P538

독일에 맞선 합동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스스로 정체를 밝힌 폴란드인들은 훗날 소련 지배에 저항할지 모를 위험인물들로 다뤄졌다. 소련은 폴란드 독립을 주장하거나 대변하는 조직 따위를 지원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소비에트 지도부 및 내무인민위원회의 눈에 폴란드인들의 정치 조직은 (공산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반소비에트 책동의일부일 뿐이었다.
- P539

 소련의 관점에서 보면,
바르샤바 봉기는 독일인들, 그리고 독립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폴란드인들을 줄인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것이었다. 독일은 상당수가 겹치는 폴란드 지식인 및 폴란드 국내군 병사 제거라는,
소련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을 대신 해줄 것이었다.  - P550

미코와이치크가 모스크바에 도착한 1944년 7월 말, 영국대사는 그에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는 말을 건넸다. 즉 폴란드 영토의 절반인 동쪽 땅을 포기하고, (학살의 책임은 소비에트가 아닌 독일에 있다는 소련 버전의 카틴 대학살을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미코와이치크가 알고 있던 것처럼, 루스벨트 역시 카틴에 대한 소비에트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쪽을 선호했다.  - P551

 다 죽어가던 수감자들을 해방시킨 미군과 영국군은 자신들이 나치즘의 공포를 목격했다고 믿었다. 그들의 사진작가와 촬영기사들이 베르겐벨젠과 부헨발트 등지에서 찍은 사체 및 시체나 다름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히틀러가 저지른 최악의 범죄를 나타내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바르샤바 유대인 및 폴란드인들이, 그리고 바실리 그로스만과붉은 군대의 병사들이 인지하고 있었듯이, 이는 진실과는 거리가 먼이야기였다. 오히려 최악은 바로 바르샤바 폐허 속에, 트레블린카 벌판에, 벨라루스 습지대에, 바비야르 구덩이들 사이에 있었다.
- P561

스탈린은 자신이 구상한 동유럽 제국에서 대량학살 정책만큼은 구상하고 있지 않았지만, 폴란드는 인종적 순수성이 지켜지는 지역의중심이 되어야 했다. 독일은 독일인들만의 나라가 되고, 폴란드는 폴란드인들만의 나라가, 그리고 소련령 우크라이나의 서쪽 지역은 우크라이나인들만 사는 땅이 될 것이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소수 인종을 대표하기도 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폴란드 공산주의자들에게 그나라의 소수 인종들을 청소하도록 시킬 작정이었다.  - P565

신생 폴란드는 피란이 추방으로 바뀔 때쯤 수립되었다. 휴전과 함께공식적으로 수복 지구로 불리던, 폴란드의 새로운 서쪽 영토에서는조직적인 인종 청소가 시작되었다. 1945년 5월 26일, 폴란드 공산당중앙위는 폴란드 영토 내의 모든 독일인을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 P5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41년 여름까지의 유토피아는 다름의 네 가지였다. 바로 소련을 몇 주 만에 무너뜨릴 전격적 승리가 그 첫번째 였고, 두 번째 유토피아는 3000만명을 굶겨 죽일 굶주림 계획이었으며, 전쟁 뒤 유럽의 유대인들을 완전히 쓸어버릴 마지막 해결책이 그 세 번째, 소련의 서쪽 땅들을 독일의 식민지로 만들이른바 동유럽 종합 계획이 그 네 번째 유토피아였다. 바르바로사 작전이 시행된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이 되자, 히틀러는 유대인 말살에우선순위를 배정하는 쪽으로 전쟁 목표를 수정하기에 이른다. 그때까지 그의 심복들은 그러한 바람들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이데올로기적, 행정적 책임과 재량권을 지니고 있었다. - P337

정치적 계산과 그간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받았던 고통들이 이들의그 같은 집단학살에의 참여를 온전히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은 독일인들과 해당 지역 비유대인들을 한데뭉치게 만들었다. 분노는 독일이 바랐던 대로 소련에 협력한 자들보다는 유대인들을 향하게 되었다. 독일의 주장에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실제로 자신들이 겪은 아픔의 원흉이 유대인들이라 믿었건 믿지않았건 이제 스스로가 새 주인에게 꼬리를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행동을 통해 나치의 세계관을 좀더 분명히 해주고있었다.  - P353

하지만 이 같은 심리적 나치화는 너무나 명백했던 소련의 잔혹 행위들이 없었다면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집단학살은 소비에트가 갓 들어와 그들의 시스템을 최근까지 안착시켰던 곳, 지난 몇달 동안 소련의 강압적 기관들이 체포와 처형 및 강제이주를 집행했던 지역에서 벌어졌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소비에트와 나치의 공동작품, 즉 소비에트 텍스트의 나치 버전이었다. - P354

힘러는 이미 1941년 7월에 여성 및 어린이 학살을 대놓고 지지해오.
고 있었고, 따라서 1941년 8월에 벌어진 유대인 공동체 몰살은 앞으로 다가올 히틀러의 에덴동산이라는 낙원을 위한 일종의 맛보기 작업이었다. 그것은 파멸적 전쟁 뒤에 있을 환희에 대한 그림, 죽음 뒤에찾아올 새로운 삶, 다른 인종의 절멸 뒤에 나타날 한 인종의 부활에대한 청사진이었다. 나치 친위대 대원들은 그러한 꿈과 인종주의를공유하고 있었다. 보안경찰들도 이따금씩 그것을 공유했으며, 여기에참여하는 것을 통해 타락의 길을 함께 걸었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독일 국방군 장교 및 사병들이 나치 친위대와 본질적으로 똑같은관점을 가졌던 것은 흔한 일이었다.  - P372

감시하던 독일인들은 이들에게 앞으로 그곳에서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 숨기려들기는커녕 구덩이를 잘 파라. 내일 네놈들 아내와 엄마가 묻힐 거니까"라고 했다. 이튿날인 8월21일, 우츠크에 있던 여자와 아이들이 그곳으로 끌려왔다. 즐겁게 웃으면서 먹고 마시던 독일인들은 여인들에게 "나는 유대인입니다. 그러므로 살 권리가 없습니다"라고 외도록 했다. 그러고는 한 번에 다섯명씩 옷을 벗고 구덩이 앞에 나체로 무릎을 꿇으라고 명령했다. 다음차례인 여인들은 앞서 사망한 시체들 위에 나체로 누운 채 총을 맞았다. 같은 날, 유대인 남성들은 우츠크성 뜰로 끌려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 P399

스탈린은 스스로 유대인 집단학살에 대해 언급한 지 불과 하루 만에 이렇듯 자기 자신과 인민을 옛 제정 러시아와 연결 짓고 있었다.
소련 서기장으로서, 다른 이들도 아닌 혁명 이전 러시아 역사 속 영웅들을 끌어들이면서 그는 이 유령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은 러시아인을 여사의 중심에 두는 방식을 통해, 독일의 침략으로러시아인들보다 더 큰 고통에 시달린 사람들을 비롯한 여타 소련 인민들의 역할을 암암리에 축소시기버리고 있었다.  - P407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벨라루스 땅에서 대략 총 200만 명의 인명 손실이 있었다고 보는 것은 적당하면서도 오히려 수치를 비교적적게 잡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밖에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독일을 피해 달아났고, 또 다른 200만 명이 강제노동을 위해 끌려가거나 여타 이유로 원래 살던 곳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1944년에 시작된 소련의 강제이주로 25만 명이 넘는 사람이 폴란드로 추방당했으며, 수만 명 이상이 수용소로 끌려갔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벨라루스 전체 인구의 절반이 죽거나 사라졌다. 이것은 유럽의 그 어떤 나라도 겪지 못한 비극이었다.
- P451

돼 숨을 거두게 된다. 앞선 1939년에서 1941년 사이, 독일에서는 이미 여섯 곳의 학살 시설이 장애인, 정신병자를 비롯해 이른바 ‘살려둘 가치가 없는 인간들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가동되고 있었다. 히틀러의 총통부는 바르테란트 내 폴란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가스 실험 뒤, 독일 국민을 학살하기 위한 비밀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이 프로그램은 의사, 간호사, 경찰 간부들을 중심으로 운영되었으며, 핵심 기획자는 히틀러의 주치의였다.  - P460

그라이저 휘하의 제국대관구 수도 포즈난 보안방첩대SD의 수장은앞선 1941년 7월 16일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다가올 겨울에는 모든 유대인을 먹여 살리기에 식량이 부족하다는 위험 요소가 있습니다. 노역에 쓸 수 없는 유대인들을 일종의 신속한 대비 작업을 통해 먼저 없애버리는 것이 오히려 가장 자비롭고 인간적인 해결책은 아닌가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입니다.  - P462

동방 총독부에 있던 폴란드 유대인들을 완전히 쓸어버리리던 나치의 정책은 이제 죽은 하이드리히를 기리는 뜻에서 "라인하르트 작전"
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암살에 대한 언급은 독일인들의 화풀이 대상이 될 만한 희생양들을 만들어냈고, 유대인 대량학살은 그의 죽음에대한 보복으로 등장했다. 나치의 세계관에서, 1942년 5월에 벌어진하이드리히 암살은 1941년 12월 미국의 선전포고와 마찬가지 역할을 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공격받은 나치들 사이에 올곧은, 또 정당한 연대의 감정이 생기게끔 했고, 독일이 처한 곤경과 정책의 진짜 원인에 대한 관심을 흐트러뜨렸다. 하이드리히는 이 전쟁의 원흉인 이른바 전 세계적 규모로 펼쳐지는 유대인 음모에 희생된 매우 유명한 희생양이 되었다.
- P471

폴란드 유대인 학살이라는 단일 목적을 위해 지었던 트레블린카, 소비부르, 베우제츠의 학살 공장들과 달리, 아우슈비츠의 시설들은 독일의 유대인 및 기타 사람들에 대한 정책 변화에 따라 서서히바뀌는 모습을 보였다. 아우슈비츠 시설의 발달 과정은 동부 거대 식민지의 꿈이 유대인 멸족 프로그램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여실히드러내준다.
- P4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히틀러와 스탈린 두 사람이 받아들였던 것은 19세기 후반의 수정된 다원주의로, 이에 따르면 진보는 가능하지만 그것은 오직 인종 혹은 계급 사이의 폭력적 투쟁의 결과로만 나타날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폴란드의 상층 계급을 말살한다거나(스탈린주의) 원래 폴란드인들은인간 이하의 존재인데 감히 그에 맞지 않게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계층을 파괴하는 것(국가사회주의)은 정당한 일이었다. 그리고 바로이 지점에서 서로 꽤 딴판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나치 독일과 소련 사이에는 모종의 타협이 가능했고, 그것이 이내 폴란드 정복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두 동맹국은 서로 어마어마한 수의 이른바 잘 교육받은폴란드인 계급을 말살함으로써 폴란드에 피었던 유럽 계몽주의의 과실을 없애버렸다.  - P279

바로 현대 세계에서 거대한 대륙 제국이 세계 시장으로의 안정된 연결 통로 없이, 그리고 막강한 해군력 없이, 어떻게 번영을 누리며 자신의 지배력을 확보해낼 수 있을까라는 문제였다.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스탈린과 히틀러가 내놓은 기본 답안은똑같았다. 즉 그런 국가는 반드시 넓은 땅을 보유하고 경제적 자급자족을 일궈낼 수 있어야 하며, 체제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따라서 스탈린주의의 내부적 산업화 혹은 나치의 식민지 토지개혁과 같은 이른바 자신들의 역사적 과업을 달성할 수 있는 시민들을 보유해야만 한다. 히틀러와 스탈린 두 사람은 풍부한 식량, 원자재, 광물자원으로뒷받침되는 거대 규모의 제국주의적 경제 자립 국가를 지향했다.  - P283

그 시절 레닌그라드의 참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기장은 당시 열한 살 소녀였던 타냐 사비체바가 적은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41년 12월 28일 새벽 12시 30분, 제나가 죽었다.
1942년 1월 25일 오후 3시, 할머니가 죽었다.
1942년 3월 5일 새벽 5시, 레카가 죽었다.
1942년 4월 13일 새벽 2시, 바샤 삼촌이 죽었다.
1942년 5월 10일 오후 4시, 레샤 삼촌이 죽었다.
1942년 5월 13일 아침 7시 30분, 엄마가 죽었다.
사비체프 집안 사람들이 죽었다.
모두 다 죽었다.
타냐 혼자만 남았다.

타냐 사비체바는 1944년 세상을 떠났다.
- P31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21-04-19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에 젖은 땅 읽으심미꽈? 저는 이제 그만 알라딘을 들어와야 할 것 같아요,,, 넘 뒤쳐져서,,ㅎㅎㅎㅎㅎㅎㅎㅎ

바람돌이 2021-04-20 00:45   좋아요 1 | URL
라로님 글을 보고 희망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씀을 하셔요. ㅠ.ㅠ 이제 막 일 시작하셔서 그것도 생활리듬이 왔다갔다 하는 일을 하시면서 라로님만큼 책을 읽어내는 사람도 진짜 없어요. 저는 좀 바쁘다 싶으면 한달에 한권도 제대로 못읽을 때 많았는걸요. 우리 오래 오래 봐야 하니까 이런 말은 아니되어요. ^^
 
밤불의 딸들
야 지야시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프리카 가나에서 미국으로 이어지는 3백년, 그리고 7대에 걸친 가족의 역사. 그리고 여성.

소설을 규정짓는 단어들만으로도 비극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아프리카 부족들간의 대립과 전쟁, 제국주의자들과 결탁한 노예사냥, 노예로 전락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인종차별..... 

떠올릴 수 있는 단어들은 모두 그렇게 비극적인 단어들이다.

과연 444페이지라는 분량은 저 비극의 무게를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저 정도의 시간과 등장인물이라면 10권짜리 대하소설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지점에서 작가는 독특한 서술방식을 선택한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결정적 순간들이 있다.

그것이 삶의 평화를 인도하게 되거나, 희망찬 미래를 여는 것일 수도 있지만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순간일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은 몰랐지만 다른 이에게 치명적인 순간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 삶이다. 

작가는 바로 그 순간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되살리고, 가족과 삶들이 끊어진 지점들을 이어보고자 한다.


「이 문은 그들을 실어 갈 배들이 기다리는 해변으로 통합니다.」그들, 그들 항상 그들이었다.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았다. 투어 그룹은 아무도 말이 없었다.- P442


300년간 그저 그들로 뭉뜽거려져 불리었던 사람들, 그럼으로 해서 숫자로만, 막연한 불행으로만, 옛 역사의 한 장면으로만 기억되는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들 각자의 삶이 어디에서 뒤틀리고 나락으로 떨어졌는지를 복원하는 것, 그럼에도 그들이라고 통칭되는 이들이 어떻게 삶을 이어나갈 힘을 얻고, 강인한 의지를 발휘했는지....

14명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그들에게 바로 그 이름을 부여해주고 싶었나보다.


소설의 제목 <밤불의 딸들>은 이 이야기의 시작 에피아와 에시의 어머니 마메에서 연유한다.

에피아의 아버지에게 강간당하고 딸 에피아를 낳은 마메는 에피아를 낳은 그 밤 그의 땅에 불을 지르고 도망간다. 그리고 에시의 아버지를 만나 그의 3번째 부인이 되고 에시를 낳는다. 

이부자매인 두 여성은 자신을 강간한 남성의 땅에 밤에 불을 질러버린 강인한 어머니 마메에게서 태어난 것이다.

아프리카 가나 지역을 지배하는 영국인 제임스와 결혼하여 그의 아내가 아니라 여자가 되는 에피아.

아프리카 부족의 대인의 딸에서 부족간 전쟁 포로가 되어 노예로 팔려나가는 에시,

이 두 자매는 잠시 가나의 영국인 성채 케이프 코스트에서 교차한다.

한 사람은 하얗게 눈부시게 빛나는 건물의 지상에서 총독의 아내가 아니라 그냥 여자로, 또 한 사람은 그 건물에 보관된 - 그야말로 팔려가기까지 보관된 노예로.(

이 건물의 상황은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영국인들은 이곳에서 아프리카에서 벌어들인 부를 한껏 만끽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프리카 여자를 사들여 가족을 이루고, 교회를 만들어 신을 찾고 신의 자비와 용서를 노래한다.

유럽인의 여자로 팔려온 이들은 "내 남편은 죽어가는 짐승 냄새 같은 악취가 나는 지하 감옥에서 올라와"(47쪽)라며 그 악취를 견뎌야 하지만 그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는 알수가 없다.

건물 지하에 보관된 아프리카인들은 그야말로 쌓여있다. 자신이 누울 한뼘의 공간도 없이 내위에 사람이 겹쳐있는.... 그 상태에서 배설을 하면 그냥 사람들은 똥 오줌속에 방치되어 있는것이다. 이런 상황은 아메리카로 건너가는 배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실제로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배에 탄 아프리카인의 3분의 2는 죽었다고 한다. 설사, 탈수증 등 오염에 견딜 수 없었던 사람들이....

유럽인들은 더 많은 부의 축적을 기원하며 신을 부르고, 지하 아프리카인들은 죽음의 공포와 극한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고파 신을 부른다.


에피아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계모에게서 "넌 아무것도 아니고 근본도 없어. 어미도 없고 이제 아비도 없어. 아무것도 아닌 데서 뭐가 자랄 수 있겠어?"라는 저주를 듣는데 이 말은 아프리카인과 유럽인 사이에서 태어날 자신의 아이들의 운명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어서 언제까지나 정체성의 혼란을 격어야만 하는 아이들의 운명을....

에피아의 아들 퀘이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같은 아프리카인 부족들과 전쟁을 하고, 그들을 잡아들여 노예로 팔아먹는 삶,

그래서 더 부자가 되고, 백인들보다 더 강해질거라는 꿈을 꾸는 친척 부족민들과 타협하며 약탈해온 부족장의 딸과 결혼해 그들의 꿈을 더 키워주어야 하는 삶이다. 

아버지를 증오하는 어머니아래에서 자라는 퀘이의 아들 제임스는 자신을 둘러싼 노예무역을 하는 부족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첫눈에 반한 소녀를 찾아 모든 것을 버리는 삶을 택한다.

사랑을 택하고 그를 속박하던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그는 자유로워지지만 대신 짊어지는 것은 생계의 무게고, 그 무게를 그는 쉽게 벗어던지지 못한다.

그의 딸 아비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못하므로 꿈을 꿀 수 없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꿈을 찾아 다른 삶을 찾아 도시로 떠나지만 그녀에게 온것은 그녀를 강제로 회개시키려는 선교사에 의한  죽음이었고, 자신과 결혼하리라 믿었지만 끊임없이 배신을 하던 남자의 아이 하나뿐이다.

선교사의 손에서 자란 그녀의 딸 아쿠아는 그녀가 자란 기독교적 환경과 그녀의 원래의 뿌리 아프리카인의 영혼사이에서 방황하고 분열하는 이다. 

아프리카의 영혼은 그녀의 영혼을 잠식하고 일종의 환각 상태에서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만다.

그녀의 어린 두 딸이 불에 타죽는 장면은 왜 필요했을까?

노예무역을 발판으로 수많은 아프리카인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죽였던 그들 선조의 삶에 대한 속죄였을까?

그것이 자기 자식을 스스로 불에 태워 죽이는 것으로 갚아야 하는 것이어야만 햇을까?

에피아의 후손 중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 바로 이 아쿠아이다.

그녀는 딸들을 잃고 오래도록 살아남아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어줄 미래 세대를 보고, 그녀의 손녀에게 아프리카의 마음을 전해주는 인물이다. 

그녀의 손녀 역시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지만 아프리카에서 이제 막 이주해온지라 기존의 흑인사회에는 소속되지 못하는 떠도는 영혼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백인사회에 소속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에피아의 후손들은 모두 자신이 소속되고 안정감을 찾을 공간을 갖지 못한 떠도는 영혼들이다. 

그것이 에피아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에피아의 다른 자매 에시의 삶은 더 잔혹하다.

고향을 뿌리채 빼앗겨버린, 심지어 노예의 삶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순간 그녀는 어머니의 유품인 검은 돌을 잃어버린다. 

그것과 한짝인 에피아의 돌이 그녀의 후손들에게 그대로 대를 이어 전해진 것과 다르게말이다.

이건 결국 에시와 그녀의 후손들의 삶이 각각의 삶과 이어지지 못하고 계속 단절되리라는 암시와도 같다.

에시의 딸 네스는 노예로 태어난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지옥같은 미국 남부의 농장에서 네스는 도망치지만 다시 지옥으로 끌려가고 그 과정에서 굴복하지 않는 영혼이었던 남편 샘은 죽음을 맞는다. 

다만 아들 조가 붙잡히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 밖에 없지만 그녀는 평생 아들의 소식을 들을 수 없다.

그저 어디에 있든 신이 아들을 보호해주기를 빌뿐....

조는 다행히도 자유민 노동자로 살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옛 노예를 옛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라는 미국 법원의 판결은 그의 삶을 뒤흔들어 버린다.

이 법은 그저 신분증명서가 없는 흑인이라면 누구라도 납치해서 노예로 팔아버리는 악행을 만들어버리고그 과정에서 임신한 그의 아내가 행방불명되어 버린다. 

그녀는 아이를 낳고 자살해버리고 아들에게 자신의 아이들에게 붙인 태명이었떤 알파벳 순서 H라는 이름만 남겨준다.

성실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그저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삶이 왜 하룻밤새에 산산히 조각나버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는지, 노예제도의 야만을 이토록 적나라한 한순간에 절절히 표현하고 있다.

H는 노예제도가 사라진 미국에서 살게 되지만, 인종차별은 여전하다,

얼토당토 않은 죄목 - 백인 여자에게 눈독을 들였다는... 심지어 사실도 아니다-으로 H는 죄수가 되어야했고, 탄광에서 오랜 시간을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 무장하지 않은 흑인에 대한 가혹한 체포, 총격 등 현실은 H가 살던 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듯 보인다.

H의 딸 윌리는 탄광촌을 벗어나고 싶어 뉴욕으로 가지만 그녀가 갈만한 곳은 할렘가일뿐이다.

윌리는 단지 노래를 부르고 싶었을 뿐이지만 그녀가 노래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녀는 흑인이고 심지어 여자이므로.

남편이었던 로버트는 흑인이지만 그 먼 언젠가의 혼혈로 인해 하얀 피부색깔로 백인으로 오해 받고 뉴욕에서 그들은 같이 외출조차 할 수 없는 신세가 된다. 

심지어 로버트는 취직과 돈벌이를 위해서는 아내인 윌리를 부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맞는다.

사랑으로 부부관계가 유지 되는게 아니다.

자신을 부정하는 남편을 누가 사랑할 수 있을까? 

사회적 편견과 차별 정책이 사랑보다 훨씬 강하다. 

윌리의 아들은 할렘의 삶과 흑인에게 차별적인 사회에 온 힘을 다해 저항하지만, 그 안간힘은 결국 그를 마약중독자로 만들어버리고, 그들의 희망은 윌리의 아들인 마커스에 가서야 희미하게 피어오른다.

에시의 가족은 그녀가 고향을 강탈당한 이후 단절의 연속이다.

어디에서든 살아가지만 그 삶의 터전이 이어지지 못하고 끊임없이 가족은 해체되어버린다.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미국에서 일상적으로 강제되어진 삶이라는 측면에서 에피아 가족의 삶보다 더 비극적이다.


그들은 7대에 이르러 에피아의 후손 마조리와 에시의 후손 마커스의 만남에서 하나로 만나진다.

물론 그들은 서로의 조상들의 삶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아마도 그 수많은 단절들은 영원히 알 수 없게 할 것이다.

그러나 신의 뜻이든 아니면 전적인 우연이든 아프리카의 떠돌던 영혼과 단절된 미국의 흑인들의 삶이 하나로 이어지는 그 어디쯤에 이들의 삶의 진정한 복구가 있지 않을까?


소설은 각자의 삶의 결정적인 순간들만을 묘사하고 있지만,

독자는 자꾸 그 사이 막간의 기나긴 삶의 고통들을 자꾸 상상하게 된다.

그 상상 역시 고통스럽다. 

대하소설이 아니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사이의 막간을 계속 상상함으로써 이 소설은 대하소설같은 무거움을 안겨준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4-18 17: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배경지식이 없는데도 리뷰만 읽어도 뭔가 고통이 느껴지네요. 아프리카 쪽 소설은 거의 본적이 없는데,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이미 보관함에 있다는..언제 담았는지ㅎㅎ)

바람돌이 2021-04-18 22:21   좋아요 4 | URL
가나출신 미국인이래요. 그래서 소설의 국적분류는 현대미국소설로 들어가더군요. 이 소설이 데뷔작이라는데 와우 광장해요. ^^

붕붕툐툐 2021-04-19 0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더 다양한 나라 사람들의 책을 읽고 싶어요. 작가 이름 보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했는데, 그냥 가나 사람이었으면 더 좋았겠다 싶은 맘이 살짝 들기도 했어요~ 그래도 읽고 싶은 책장에 고이 담아갑니다~~

바람돌이 2021-04-19 00:32   좋아요 1 | URL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니 반은 가나인 맞죠. ^^ 사실 가나와 미국 흑인사회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던 경험이 이 소설을 쓰는 기반이 되었다고 하네요.

단발머리 2021-04-19 13: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대로 이런 거대하고 장엄한 서사가 한 권으로 묶였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하네요. 전 처음 보는 책이고 처음 듣는 작가인데 바람돌이님 리뷰를 읽으면서 바로 직감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마치 내가 이 세상에서 이 책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처럼 리뷰를 쓰게 될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꼭 찾아서 읽어보려고요. 읽다가 헤매는 부분에서는 바람돌이님 리뷰 읽으면서 따라가도 좋을 것 같고요.
좋은 리뷰 너무 감사해요!!!

바람돌이 2021-04-20 00:49   좋아요 0 | URL
저는 레삭매냐님의 뽐뿌에 의해서 읽었고요. 저도 처음 듣는 작가에요. 다 그럴걸요. 왜냐하면 이 책이 이 작가의 첫 책이래요. ^^
이 책에 아직 리뷰가 별로 없어서 이번에는 내용 소개에 치중해서 리뷰를 썼는데 단발머리님의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처럼 쓰는 리뷰 꼭 보고싶네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희선 2021-04-21 0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긴 시간과 많은 사람을 한권에 담았군요 모든 시간을 다 알지 못해도 한순간만 봐도 뭔가를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이 책이 그럴 듯합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1-04-22 10:09   좋아요 0 | URL
어쩌면요. 하나하나의 단편이 모인 형식과도 같아서 따로 봐도 괜찮을듯하긴 해요. 그리고 14명이나 되는 주인공들이 있는데 유난히 안타깝고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기도 해요. ^^
 
니카라과 라 라구나 - 200g, 에스프레소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10월
평점 :
품절


단맛이 먼저 확 느껴지네요. 오렌지의 산미는 잘 모르겠습니다. 커피 본연의 쌉싸름함과 단맛이 잘 어우러져 다른 맛을 압도합니다. 에티오피아의 산미나 게이샤같은 강한 향을 싫어하시는 분께는 단맛덕분에 부드러우면서도 쌉쌀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커피인 것 같아요.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이 2021-04-18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평이 다 좋네요!!! 궁금해서 마셔봐야겠습니다!!

바람돌이 2021-04-18 11:21   좋아요 1 | URL
달달 달달합니다. 제가 썼듯이 산미 싫어하시는 분들에게 최적화된 커피. 저는 약간의 산미가 섞인걸 좋아하므로 베스트는 아니지만 단 맛 덕분에 괜찮았습니다. ^^

수이 2021-04-18 11:23   좋아요 1 | URL
땡투 드리고 주문중입니다. 바람돌이님 평 읽고 다른 분들 평도 좋아서 아이스로 마셔도 좋을 거 같다 싶어요. 오늘도 화이팅! :)

바람돌이 2021-04-18 12:04   좋아요 1 | URL
아 저는 드립으로만 먹었는데 아이스로 먹으면 더 좋을듯하네요. 집에 들어가면 바로 아이스로 내려봐야겠습니다. ^^

mini74 2021-04-19 21: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맛있는 커피도 권유하고 좋은 책도 소개하고. 정말 다 사는 곳은 다르지만 사이좋은 이웃사촌같아 참 좋습니다 *^^*

바람돌이 2021-04-20 00:43   좋아요 1 | URL
책에 관한 이야기를 잘난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좋은 친구들이 있는 곳이죠. 여기만큼 책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에도 없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