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스탈린 두 사람이 받아들였던 것은 19세기 후반의 수정된 다원주의로, 이에 따르면 진보는 가능하지만 그것은 오직 인종 혹은 계급 사이의 폭력적 투쟁의 결과로만 나타날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폴란드의 상층 계급을 말살한다거나(스탈린주의) 원래 폴란드인들은인간 이하의 존재인데 감히 그에 맞지 않게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계층을 파괴하는 것(국가사회주의)은 정당한 일이었다. 그리고 바로이 지점에서 서로 꽤 딴판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나치 독일과 소련 사이에는 모종의 타협이 가능했고, 그것이 이내 폴란드 정복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두 동맹국은 서로 어마어마한 수의 이른바 잘 교육받은폴란드인 계급을 말살함으로써 폴란드에 피었던 유럽 계몽주의의 과실을 없애버렸다.  - P279

바로 현대 세계에서 거대한 대륙 제국이 세계 시장으로의 안정된 연결 통로 없이, 그리고 막강한 해군력 없이, 어떻게 번영을 누리며 자신의 지배력을 확보해낼 수 있을까라는 문제였다.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스탈린과 히틀러가 내놓은 기본 답안은똑같았다. 즉 그런 국가는 반드시 넓은 땅을 보유하고 경제적 자급자족을 일궈낼 수 있어야 하며, 체제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따라서 스탈린주의의 내부적 산업화 혹은 나치의 식민지 토지개혁과 같은 이른바 자신들의 역사적 과업을 달성할 수 있는 시민들을 보유해야만 한다. 히틀러와 스탈린 두 사람은 풍부한 식량, 원자재, 광물자원으로뒷받침되는 거대 규모의 제국주의적 경제 자립 국가를 지향했다.  - P283

그 시절 레닌그라드의 참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기장은 당시 열한 살 소녀였던 타냐 사비체바가 적은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41년 12월 28일 새벽 12시 30분, 제나가 죽었다.
1942년 1월 25일 오후 3시, 할머니가 죽었다.
1942년 3월 5일 새벽 5시, 레카가 죽었다.
1942년 4월 13일 새벽 2시, 바샤 삼촌이 죽었다.
1942년 5월 10일 오후 4시, 레샤 삼촌이 죽었다.
1942년 5월 13일 아침 7시 30분, 엄마가 죽었다.
사비체프 집안 사람들이 죽었다.
모두 다 죽었다.
타냐 혼자만 남았다.

타냐 사비체바는 1944년 세상을 떠났다.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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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4-19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에 젖은 땅 읽으심미꽈? 저는 이제 그만 알라딘을 들어와야 할 것 같아요,,, 넘 뒤쳐져서,,ㅎㅎㅎㅎㅎㅎㅎㅎ

바람돌이 2021-04-20 00:45   좋아요 1 | URL
라로님 글을 보고 희망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씀을 하셔요. ㅠ.ㅠ 이제 막 일 시작하셔서 그것도 생활리듬이 왔다갔다 하는 일을 하시면서 라로님만큼 책을 읽어내는 사람도 진짜 없어요. 저는 좀 바쁘다 싶으면 한달에 한권도 제대로 못읽을 때 많았는걸요. 우리 오래 오래 봐야 하니까 이런 말은 아니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