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불의 딸들
야 지야시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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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가나에서 미국으로 이어지는 3백년, 그리고 7대에 걸친 가족의 역사. 그리고 여성.

소설을 규정짓는 단어들만으로도 비극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아프리카 부족들간의 대립과 전쟁, 제국주의자들과 결탁한 노예사냥, 노예로 전락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인종차별..... 

떠올릴 수 있는 단어들은 모두 그렇게 비극적인 단어들이다.

과연 444페이지라는 분량은 저 비극의 무게를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저 정도의 시간과 등장인물이라면 10권짜리 대하소설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지점에서 작가는 독특한 서술방식을 선택한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결정적 순간들이 있다.

그것이 삶의 평화를 인도하게 되거나, 희망찬 미래를 여는 것일 수도 있지만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순간일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은 몰랐지만 다른 이에게 치명적인 순간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 삶이다. 

작가는 바로 그 순간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되살리고, 가족과 삶들이 끊어진 지점들을 이어보고자 한다.


「이 문은 그들을 실어 갈 배들이 기다리는 해변으로 통합니다.」그들, 그들 항상 그들이었다.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았다. 투어 그룹은 아무도 말이 없었다.- P442


300년간 그저 그들로 뭉뜽거려져 불리었던 사람들, 그럼으로 해서 숫자로만, 막연한 불행으로만, 옛 역사의 한 장면으로만 기억되는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들 각자의 삶이 어디에서 뒤틀리고 나락으로 떨어졌는지를 복원하는 것, 그럼에도 그들이라고 통칭되는 이들이 어떻게 삶을 이어나갈 힘을 얻고, 강인한 의지를 발휘했는지....

14명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그들에게 바로 그 이름을 부여해주고 싶었나보다.


소설의 제목 <밤불의 딸들>은 이 이야기의 시작 에피아와 에시의 어머니 마메에서 연유한다.

에피아의 아버지에게 강간당하고 딸 에피아를 낳은 마메는 에피아를 낳은 그 밤 그의 땅에 불을 지르고 도망간다. 그리고 에시의 아버지를 만나 그의 3번째 부인이 되고 에시를 낳는다. 

이부자매인 두 여성은 자신을 강간한 남성의 땅에 밤에 불을 질러버린 강인한 어머니 마메에게서 태어난 것이다.

아프리카 가나 지역을 지배하는 영국인 제임스와 결혼하여 그의 아내가 아니라 여자가 되는 에피아.

아프리카 부족의 대인의 딸에서 부족간 전쟁 포로가 되어 노예로 팔려나가는 에시,

이 두 자매는 잠시 가나의 영국인 성채 케이프 코스트에서 교차한다.

한 사람은 하얗게 눈부시게 빛나는 건물의 지상에서 총독의 아내가 아니라 그냥 여자로, 또 한 사람은 그 건물에 보관된 - 그야말로 팔려가기까지 보관된 노예로.(

이 건물의 상황은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영국인들은 이곳에서 아프리카에서 벌어들인 부를 한껏 만끽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프리카 여자를 사들여 가족을 이루고, 교회를 만들어 신을 찾고 신의 자비와 용서를 노래한다.

유럽인의 여자로 팔려온 이들은 "내 남편은 죽어가는 짐승 냄새 같은 악취가 나는 지하 감옥에서 올라와"(47쪽)라며 그 악취를 견뎌야 하지만 그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는 알수가 없다.

건물 지하에 보관된 아프리카인들은 그야말로 쌓여있다. 자신이 누울 한뼘의 공간도 없이 내위에 사람이 겹쳐있는.... 그 상태에서 배설을 하면 그냥 사람들은 똥 오줌속에 방치되어 있는것이다. 이런 상황은 아메리카로 건너가는 배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실제로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배에 탄 아프리카인의 3분의 2는 죽었다고 한다. 설사, 탈수증 등 오염에 견딜 수 없었던 사람들이....

유럽인들은 더 많은 부의 축적을 기원하며 신을 부르고, 지하 아프리카인들은 죽음의 공포와 극한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고파 신을 부른다.


에피아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계모에게서 "넌 아무것도 아니고 근본도 없어. 어미도 없고 이제 아비도 없어. 아무것도 아닌 데서 뭐가 자랄 수 있겠어?"라는 저주를 듣는데 이 말은 아프리카인과 유럽인 사이에서 태어날 자신의 아이들의 운명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어서 언제까지나 정체성의 혼란을 격어야만 하는 아이들의 운명을....

에피아의 아들 퀘이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같은 아프리카인 부족들과 전쟁을 하고, 그들을 잡아들여 노예로 팔아먹는 삶,

그래서 더 부자가 되고, 백인들보다 더 강해질거라는 꿈을 꾸는 친척 부족민들과 타협하며 약탈해온 부족장의 딸과 결혼해 그들의 꿈을 더 키워주어야 하는 삶이다. 

아버지를 증오하는 어머니아래에서 자라는 퀘이의 아들 제임스는 자신을 둘러싼 노예무역을 하는 부족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첫눈에 반한 소녀를 찾아 모든 것을 버리는 삶을 택한다.

사랑을 택하고 그를 속박하던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그는 자유로워지지만 대신 짊어지는 것은 생계의 무게고, 그 무게를 그는 쉽게 벗어던지지 못한다.

그의 딸 아비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못하므로 꿈을 꿀 수 없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꿈을 찾아 다른 삶을 찾아 도시로 떠나지만 그녀에게 온것은 그녀를 강제로 회개시키려는 선교사에 의한  죽음이었고, 자신과 결혼하리라 믿었지만 끊임없이 배신을 하던 남자의 아이 하나뿐이다.

선교사의 손에서 자란 그녀의 딸 아쿠아는 그녀가 자란 기독교적 환경과 그녀의 원래의 뿌리 아프리카인의 영혼사이에서 방황하고 분열하는 이다. 

아프리카의 영혼은 그녀의 영혼을 잠식하고 일종의 환각 상태에서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만다.

그녀의 어린 두 딸이 불에 타죽는 장면은 왜 필요했을까?

노예무역을 발판으로 수많은 아프리카인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죽였던 그들 선조의 삶에 대한 속죄였을까?

그것이 자기 자식을 스스로 불에 태워 죽이는 것으로 갚아야 하는 것이어야만 햇을까?

에피아의 후손 중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 바로 이 아쿠아이다.

그녀는 딸들을 잃고 오래도록 살아남아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어줄 미래 세대를 보고, 그녀의 손녀에게 아프리카의 마음을 전해주는 인물이다. 

그녀의 손녀 역시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지만 아프리카에서 이제 막 이주해온지라 기존의 흑인사회에는 소속되지 못하는 떠도는 영혼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백인사회에 소속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에피아의 후손들은 모두 자신이 소속되고 안정감을 찾을 공간을 갖지 못한 떠도는 영혼들이다. 

그것이 에피아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에피아의 다른 자매 에시의 삶은 더 잔혹하다.

고향을 뿌리채 빼앗겨버린, 심지어 노예의 삶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순간 그녀는 어머니의 유품인 검은 돌을 잃어버린다. 

그것과 한짝인 에피아의 돌이 그녀의 후손들에게 그대로 대를 이어 전해진 것과 다르게말이다.

이건 결국 에시와 그녀의 후손들의 삶이 각각의 삶과 이어지지 못하고 계속 단절되리라는 암시와도 같다.

에시의 딸 네스는 노예로 태어난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지옥같은 미국 남부의 농장에서 네스는 도망치지만 다시 지옥으로 끌려가고 그 과정에서 굴복하지 않는 영혼이었던 남편 샘은 죽음을 맞는다. 

다만 아들 조가 붙잡히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 밖에 없지만 그녀는 평생 아들의 소식을 들을 수 없다.

그저 어디에 있든 신이 아들을 보호해주기를 빌뿐....

조는 다행히도 자유민 노동자로 살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옛 노예를 옛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라는 미국 법원의 판결은 그의 삶을 뒤흔들어 버린다.

이 법은 그저 신분증명서가 없는 흑인이라면 누구라도 납치해서 노예로 팔아버리는 악행을 만들어버리고그 과정에서 임신한 그의 아내가 행방불명되어 버린다. 

그녀는 아이를 낳고 자살해버리고 아들에게 자신의 아이들에게 붙인 태명이었떤 알파벳 순서 H라는 이름만 남겨준다.

성실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그저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삶이 왜 하룻밤새에 산산히 조각나버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는지, 노예제도의 야만을 이토록 적나라한 한순간에 절절히 표현하고 있다.

H는 노예제도가 사라진 미국에서 살게 되지만, 인종차별은 여전하다,

얼토당토 않은 죄목 - 백인 여자에게 눈독을 들였다는... 심지어 사실도 아니다-으로 H는 죄수가 되어야했고, 탄광에서 오랜 시간을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 무장하지 않은 흑인에 대한 가혹한 체포, 총격 등 현실은 H가 살던 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듯 보인다.

H의 딸 윌리는 탄광촌을 벗어나고 싶어 뉴욕으로 가지만 그녀가 갈만한 곳은 할렘가일뿐이다.

윌리는 단지 노래를 부르고 싶었을 뿐이지만 그녀가 노래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녀는 흑인이고 심지어 여자이므로.

남편이었던 로버트는 흑인이지만 그 먼 언젠가의 혼혈로 인해 하얀 피부색깔로 백인으로 오해 받고 뉴욕에서 그들은 같이 외출조차 할 수 없는 신세가 된다. 

심지어 로버트는 취직과 돈벌이를 위해서는 아내인 윌리를 부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맞는다.

사랑으로 부부관계가 유지 되는게 아니다.

자신을 부정하는 남편을 누가 사랑할 수 있을까? 

사회적 편견과 차별 정책이 사랑보다 훨씬 강하다. 

윌리의 아들은 할렘의 삶과 흑인에게 차별적인 사회에 온 힘을 다해 저항하지만, 그 안간힘은 결국 그를 마약중독자로 만들어버리고, 그들의 희망은 윌리의 아들인 마커스에 가서야 희미하게 피어오른다.

에시의 가족은 그녀가 고향을 강탈당한 이후 단절의 연속이다.

어디에서든 살아가지만 그 삶의 터전이 이어지지 못하고 끊임없이 가족은 해체되어버린다.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미국에서 일상적으로 강제되어진 삶이라는 측면에서 에피아 가족의 삶보다 더 비극적이다.


그들은 7대에 이르러 에피아의 후손 마조리와 에시의 후손 마커스의 만남에서 하나로 만나진다.

물론 그들은 서로의 조상들의 삶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아마도 그 수많은 단절들은 영원히 알 수 없게 할 것이다.

그러나 신의 뜻이든 아니면 전적인 우연이든 아프리카의 떠돌던 영혼과 단절된 미국의 흑인들의 삶이 하나로 이어지는 그 어디쯤에 이들의 삶의 진정한 복구가 있지 않을까?


소설은 각자의 삶의 결정적인 순간들만을 묘사하고 있지만,

독자는 자꾸 그 사이 막간의 기나긴 삶의 고통들을 자꾸 상상하게 된다.

그 상상 역시 고통스럽다. 

대하소설이 아니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사이의 막간을 계속 상상함으로써 이 소설은 대하소설같은 무거움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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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18 17: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배경지식이 없는데도 리뷰만 읽어도 뭔가 고통이 느껴지네요. 아프리카 쪽 소설은 거의 본적이 없는데,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이미 보관함에 있다는..언제 담았는지ㅎㅎ)

바람돌이 2021-04-18 22:21   좋아요 4 | URL
가나출신 미국인이래요. 그래서 소설의 국적분류는 현대미국소설로 들어가더군요. 이 소설이 데뷔작이라는데 와우 광장해요. ^^

붕붕툐툐 2021-04-19 0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더 다양한 나라 사람들의 책을 읽고 싶어요. 작가 이름 보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했는데, 그냥 가나 사람이었으면 더 좋았겠다 싶은 맘이 살짝 들기도 했어요~ 그래도 읽고 싶은 책장에 고이 담아갑니다~~

바람돌이 2021-04-19 00:32   좋아요 1 | URL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니 반은 가나인 맞죠. ^^ 사실 가나와 미국 흑인사회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던 경험이 이 소설을 쓰는 기반이 되었다고 하네요.

단발머리 2021-04-19 13: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대로 이런 거대하고 장엄한 서사가 한 권으로 묶였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하네요. 전 처음 보는 책이고 처음 듣는 작가인데 바람돌이님 리뷰를 읽으면서 바로 직감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마치 내가 이 세상에서 이 책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처럼 리뷰를 쓰게 될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꼭 찾아서 읽어보려고요. 읽다가 헤매는 부분에서는 바람돌이님 리뷰 읽으면서 따라가도 좋을 것 같고요.
좋은 리뷰 너무 감사해요!!!

바람돌이 2021-04-20 00:49   좋아요 0 | URL
저는 레삭매냐님의 뽐뿌에 의해서 읽었고요. 저도 처음 듣는 작가에요. 다 그럴걸요. 왜냐하면 이 책이 이 작가의 첫 책이래요. ^^
이 책에 아직 리뷰가 별로 없어서 이번에는 내용 소개에 치중해서 리뷰를 썼는데 단발머리님의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처럼 쓰는 리뷰 꼭 보고싶네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희선 2021-04-21 0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긴 시간과 많은 사람을 한권에 담았군요 모든 시간을 다 알지 못해도 한순간만 봐도 뭔가를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이 책이 그럴 듯합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1-04-22 10:09   좋아요 0 | URL
어쩌면요. 하나하나의 단편이 모인 형식과도 같아서 따로 봐도 괜찮을듯하긴 해요. 그리고 14명이나 되는 주인공들이 있는데 유난히 안타깝고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기도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