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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북클럽 - 자기만의 방에서 그녀를 읽는 시간
이택광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3월
평점 :
그러니까 나는 올해 버지니아 울프를 읽기로 했어.
좀 어렵기는 했지만 그녀의 소설 <등대로>가 너무 좋았거든.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는 좀 어려운 것 같아.
글을 따라가는데 숨이 좀 가빴어.
이 장면인가 하면 저 장면이고, 배경도 휙휙 바뀌고, 인물도 예고 없이 휙휙 바뀌고, 생각은 더 휙휙 바뀌고....
심지어 배경이란게 인물과 거의 혼연일체의 경지에 이른 것 같아서, 아 뭔가 이 바람에는 의미심장한 것이 들어있지 않나? 이 햇살은? 아니야 마당에 꽃들도 뭔가 있는 것 같아.... 아 정말 머리 터져 죽는줄 알았어.
의식의 흐름이란 기법이 이런거야? 하면서 보지만 친절하지 않은 버지니아 울프는 이 책을 읽는 독자를 배려하지 않았지뭐야?
아 내가 제대로 읽고 있긴 한거야?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했으니까....
그래 이럴 때 선생님이 필요한거야.
누군가 좀 친절하게 알려주면 난 버지니아 울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거야
좋아하게 된 사람을 더 알고 싶은건 너무나 당연한 연애의 대전제잖아?
역시 책에 정답이 있을거라니까.
이왕이면 우리나라 사람이 쓴 소개서가 좋겠지. 아무래도 알아듣기가 좀 편할테니까.
거기다 이 책의 목차를 봐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들을 친절하게 소제목에 넣어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게 해뒀잖아.
어떻게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읽어야 하는지, 그의 책에서 뭘 중점적으로 봐야하는지 친절하게 내게 알려주실거야.
그래 이게 이 책을 읽기전 내 생각이었어.
그런데 첫 챕터를 읽자마자 이게 뭐야? 아니 난 이런걸 원한게 아니었다고 하면서 비명을 지르게 되었어.
<제이콥의 방>이 챕터 제목이고, 삶을 표현하는 글쓰기라는 부제가 붙었으면 이 소설에서 삶이 어떻게 표현되고 독자가 그걸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구구절절히 친절하게 알려줘야 하는거 아닌가?
그런데 책 이야기는 거의 없고, 온갖 철학자들의 이론이 막 쏟아져 나오다니...
이분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책을 쓰는건가?
내 예상과 너무도 다른 책이잖아.
아 읽어 말어?
하지만 일단 잡은 책은 왠만하면 다 읽고야 끝내는(왜냐하면 읽은 부분이 아까워서) 나의 책에 대한 집념이 계속 책을 붙들고 있게 했어.
아 그런 나를 칭찬하고 싶어.
3장쯤 가면 이분이 뭘 말하고 싶어하는지 알것 같은 느낌이 오거든.
뒤로 갈수록 그건 더 확실해지지.
이분은 버지니아 울프를 작품 하나하나가 아니라, 그의 삶과 작품을 전체로 얘기하고 싶었던 거였어.
따라서 제목만 분리되어 있을 뿐, 아무데서나 버지니아씨의 일기, 에세이, 소설 그리고 삶의 장면들을 막막 꺼내.
그래야만 온전히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 위대한 작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이야.
근대의 도래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한 작가. 무엇이 새로운 것이고 무엇이 낡은 것인지 날카롭게 갈라친 비평가. 존재의 의미를 끊임없이 묻고 시대의 질문에 사력을 다해 답한 사상가. 글쓰기 이외에 삶의 다른 가치를 찾아내지 못한 생활인. 응접실에 인쇄기를 설치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책을 찍어낸 독립 출판인.
이 책의 저자로 하여금 이런 헌사를 남기게 한 버지니아 울프!
작가-비평가-사상가로서의 글쓰기 전체를 그녀의 삶과 연결해야만 제대로 버지니아 울프를 이해 할 수 있다는 거 맞죠?
자 이제 작가님의 의도는 알겠어.
그럼 우리 하나하나 따져보자구.
첫번째로 중요한 것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이 근대소설의 한계를 뚫고 현대 소설의 새로운 장을 여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는거죠?
근대 리얼리즘 소설들이 가지고 있던 '소설 구조의 견고함'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서 급변하는 근대의 디테일을 잡아내기 위해 소설이 형식을 허물고 유연해져야 했다는 것(23쪽)
그 실험적 시도가 바로 의식의 흐름 기법이고, 이것은 자크 데리다의 '대체보충'개념과 잇닿아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쓰는 글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버려야 한다는 것으로 글이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는 그렇게 정확한 정보전달의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 같군.
따라서 글쓰기라는 것이 기억을 전달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아니므로 견고한 소설구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취사 선택되어진 인간 의식을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고, 더 정확하게는 '자기의 재구성'을 시도하는 것이 바로 버지니아씨의 소설의 핵심과제였다고 나는 이해했어.
그런데 이 '자기의 재구성'이라는 것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강제되어지는 사회적 규율과 규범 자체를 재구성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는, 예를 들면 버지니아 울프가 맞닥뜨린 여성을 여성이게 강제하는 사회적 규범 자체를 재구성(38쪽)하는 것 역시 우리가 한 인간으로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설 수 있게 하는 과정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등대로>에서 보았던 등장인물들의 현란한 생각의 흐름이 이해 될 것도 같아.
인간이 하나의 신념을 가지게 되는 과정은 겉으로 볼 때는 아주 단순한 결과로만 던져지지만 실제 인간의 내면에서는 폭풍이 몰아치고 온갖 이율배반적인 생각들이 소용돌이 치고 난 이후에야 제대로 된 인식에 이르는 거잖아.
그건 과정에서 만들어진 의식이야말로 나를 둘러싼 세계의 본질을 더 정확하게 인지하게 하고, 그속에서 나와 세계의 관계를 더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
만약에 내가 제대로 이해한게 아니라면?
나는 앞으로 계속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읽을거고, 그러면 또 다르게 생각하는 계기들이 생길테니까 상관없어.
지금의 내 생각은 여기까지고 앞으로 나는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테니......
두번째로 나아가서는 주체의 재구성을 고민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결코 당대의 현실문제에 무관심할 수 없다는 당연한 결론을 가져오는 것 같아.
여기에 당대의 문제에 대해 지극히 현실적으로 대응한 진정한 모더니스트로서의 버지니아 울프가 자리매김하게 되는 거지.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씀으로써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고(185쪽) 기존의 남성중심의 세계가 강조한 참된 여성의 자아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개념이며, 들뢰즈와 가타리(악!!!!!)가 말한 여성-되기로 남성의 세계 자체를 빠져나가는 '소수자성'의 영역으로 자신의 자리를 매김하게 돼. (나에게 들뢰즈와 가타리는 내가 무식하다는걸 너무나도 절절하게 깨닫게 해준 철학자이므로 난 이 사람들 이름이 나올 때마다 어쩔줄을 모르고 공포에 질리게 돼)
소수자는 항상 배제된 사람이야.
굳이 들뢰즈와 가타리를 말하지 않아도 소수자성 자체에서 저항은 예정된 운명일 수밖에 없어.
버지니아 울프가 그토록 글쓰기를 통한 여성 자신의 재구성과 여성들간의 연대를 강조하고, <보통의 독자>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독서 교육과 글쓰기 교육을 강조한 것은 저 소수자들에 대한 배제를 확 깨트려버릴 수 있는 본질적인 부분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거지.
그것은 말년의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으로서 나에게 조국은 없다'라는 진짜 멋진 말을 하며 평화주의자와 반제국주의자로서의 모습을 보이는데로까지 나아가.
우와 완전 멋있어.
오늘의 명언이야.
'여성으로서 나에게 조국은 없다'라니 밑줄 쫙쫙 그어가며 내 인생의 명문과 가르침으로 기억해야지.
이 책은 또 버지니아 울프를 제대로 읽는 방법도 가르쳐줘. 좀 불친절하긴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동안 일기를 쓴 작가였대.
버지니아 울프 전집에 일기가 따로 한권으로 있는 걸 봤으니 맞는 말이겠지.
하지만 난 이 일기는 안 읽을 생각이었거든.
항상 일기는 좀 지나치게 내밀하달까 그래서인지 그 형식 자체가 가진 한계로 인해 항상 공감하기가 힘들더라고.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는 그녀의 삶과 소설과 에세이를 이끄는 지도서 같은거래.
그녀의 일기를 같이 볼때 그녀의 작품이 온전히 이해된다는 거지.
아 정말 이런 말을 하면 진짜 일기도 읽을 수밖에 없잖아.
사실 이 책은 별 다섯 개를 줄 수 밖에 없지만 그건 유보적인 거야.
내가 버지니아 울프를 다 읽고 나면 이 책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달라질지 알수 없는거니까.
하지만 앞으로 읽을 책들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는데서 선생님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는 책이었어.
이 책을 먼저 선택한 나를 또 한번 칭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