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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보바리 부인 - 문예 세계문학선 052 ㅣ 문예 세계문학선 52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민희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4월
평점 :
크리스마스에 벼르던 이북리더기를 나에게 선물했다. 워낙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라 종이책이 아니면 집중이 잘 안되긴 하지만 책장에 책을 더이상 쌓아두기도 미안하고 태블릿으로 책을 읽으면 눈이 너무 피로해짐을 느끼는 탓에 눈이 편안하다는 장점 때문에 검색할 때 보았던 그 모든 불만사항들을 감안하고 지른거다.
크레마를 지르고 세계문학전집 세트를 지르고 기분좋게 읽어보려는 순간..
불편함이 너무 커...터치와 화면전환이 느리다는 것 쯤 참아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눈은 편하다만 너무 불편해 ㅠㅠ 내가 생각보다 조급한 사람임을 뼈저리게 느끼면서...특히.. 서점들을 등록하느라 터치패드 입력해야 할 땐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최신 기종이라면서 너는 왜 이모양인거니...
책을 읽다가 하일라이트를 하려고 하는데 터치가 느리고 이상해서 잘 안돼...범위설정하기도 힘들어... 하일라이트 메모가 안되니 다시 노트에 받아적어...이 천지개명한 시대에 무슨짓이냐....
게다가!! 리디북스에서는 엄청나게 싼 가격의 전집구성을 사면 리더기를 그냥 준다....
뭐지.. 이 바보가 된 기분은...불편함을 감수하는 바보라니... 어차피 너는 알라딘 호갱이니까 감당하렴...하지만 불쑥 불쑥 욱하고 치민다.
답답함에 쓰던 태블릿으로 읽기도 했다. 그럴거면....왜 굳이 크레마를 선물한거야?...선물?... 좋아...어차피 선물이잖아...선물이 항상 맘에 들란 법은 없으니...
이렇게 정신분열상태를 겪다보니 더욱더 소설에 빠져들기는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보바리 부인>이기에 크레마로 읽은 첫 소설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그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고 싶던 소설!
원래 읽지 않아도 읽은 것만 같은 것이 고전이라, <보바리 부인>을 읽지 않아도 나는 대강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 영화로도 보았고 여기 저기서 들은 풍월이 있으니...
그러나 훌륭한 소설을 읽고나면 늘 그런 생각이 들듯이 내가 이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어떡할 뻔 했나...읽지 않고도 안다고 생각했다는게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나를 느끼게 되었다.
#사람에게도 인도산 식물처럼 그것을 위해 준비된 땅과 특수한 기온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엠마는 확실히 시골과는 어울리지 않는 여자였다. 마치 잘못 심어진 식물처럼... 의지에 상관없이 잘 자랄 수 없는 식물처럼... 현실이 비루하다고 느껴지면 모든것이 안좋게 느껴지고 삶에 애정을 갖기가 힘이 든다. 그럴수록 애착을 가질 대상이 필요해지는데 그런 대상을 갈구할 수록 권태로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플로베르는 어떻게 이렇게 결혼 생활에 권태로운 여자의 마음을 잘 아는 걸까? 그것도 그 옛날에..
주르 드 고티에가 '보바리즘'이라고 불렸던 이 테마는 인류보편의 정서인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야기속에 녹아있다.
나는 읽으면서 미셀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의 여자 주인공 마고가 자주 떠올랐는데 그녀 또한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마고도 너무 좋았지만 사실 남편 루의 매력에도 흠뻑 빠졌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샤를도 루 못지 않게 훌륭한 남편이다. 다만 엠마나 마고는 너무 예민한 사람들이라 작은 감정의 소용돌이에도 핵폭발의 위력을 느끼는 사람들이고 샤를이나 루는 자기 생활에 우직한 사람이라 변화에 대해 둔감한 편이다.
엠마의 감수성은 수도원 시절 읽었던 낭만주의 문학에서 온 것이다. 따뜻하고 먹을 것만 충분하면 행복이라는 사람들의 사고와 그것만으로는 행복하지 않아서 괴로운 엠마의 사고는 늘 충돌되어서 삶이 공허하고 그것을 메울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그런 강박에 시달리니 엠마의 시선은 점점 좁아지고 마침내는 남들은 다 알아볼 만한 사기꾼 같은 사람에게 마음을 홀랑 주어버리기도 하고 현실을 점점 잊어버리고 싶어 한다.
번번이 좌절하는 그녀의 사랑을 보상이라도 하듯 또 다른 사랑에 빠지고 사치를 일삼는 엠마를 보면 <종이달>의 리카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녀들 모두 '네 잘못이야'하고 돌을 던지기엔 너무 안타까운 사람들이다.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는 바로 나다"라고 했듯이, 엠마는 꿈도 희망도 없이 평범하고 지루하고 무능하면서 진보라는 자만심에 빠져있는 당시 부르주아에 대한 작가의 혐오를 그래도 보여주는 듯하다. 소설을 읽지 않았으면 잘 몰랐을 약제사 오메나 상인 뤼르에 대한 작가의 묘사가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새삼 놀랐다. 보수 세력을 대변하는 신부들과 대비되면서 이야기 후반부를 거의 이끌어가다시피하는 진보주의자 오메의 이중성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엠마의 장례식에서까지 본질보다는 허위와 위선에 쌓여 쓸데없는 논쟁을 일삼는 그들을 보며 역시 정치란 것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란 걸 느낀다.
철저히 궁지에 몰린 마지막 순간에 엠마가 끝까지 당당했던 점이 마음에 든다. 역시 엠마는 손가락질이나 받을 만한 여자는 절대 아니었다. 그녀가 남자들에게 원했던 건 값싼 사랑 따위가 아니었는데, 그것을 싸구려로 만들어버린 건 남자들의 이기심이었다. 엠마가 어려워졌을 때 도움을 청하러 찾은 남자들이 끝내 이기적인 모습들을 들켜버릴 때 엠마는 시원하게 내지른다.
# 그럴수록 그녀는 자신 속에서 강한 자존감과 긍지를 느꼈다. 그리고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심정으로 모든 사람에게 경멸감을 느꼈다. 그녀는 호전적인 기분에 한껏 흥분했다. 남자란 남자는 모두 갈겨주고 얼굴에 침을 뱉어주고 하나 남기지 않고 몽땅 유린하고 싶었다.
돈이 없어서 못 주겠다는 로돌프에게도
#그렇게 가난하다면 총 손잡이에 은장식따위는 하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이 가난뱅이에게는 무엇이든지 다 있군요...저였으면 무엇이든지 다 당신에게 드렸을거예요.... 이 두 팔로 노동을 하겠어요.... 당신이 안계셨으면 나는 행복하게 지낼수도 있었던 거예요..
속 시원하게 내뱉어주는 엠마. 자살은 이렇게 당당한 그녀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최후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반면 그녀의 불륜을 은밀하게 비웃던 고귀하신 사람들은 샤를이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하자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뺏어 먹으려고' 덤벼든다. 엠마가 자살을 선택했다면 샤를의 죽음은 타살처럼 보인다. 이 모든 상황에서 최후의 승리자, 영웅이 되는 것은 그의 꿈이었던 레지옹도뇌르 명예훈장을 받는 오메.
플로베르는 염세주의적인 시선으로 이런 기막힌 현실을 풍자하고 있었다.
반면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주연으로 나온 <마담 보바리>에서는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잘 살리지 못함으로써 엠마가 너무 충동적이고 나약하게만 그려졌다. 그녀 내면의 공허함과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결핍감같은 것들이 충분히 그려지지 않으니 그저 그런 불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케빈에 대하여>에서 너무 강렬한 인상이었던 탓인지 남주 에즈라 밀러 역할도 어쩐지 몰입이 안되었다.
영화적인 한계가 분명히 있었겠지만 나는 영화를 보고 나니 더욱 더 플로베르가 칭송받는 이유를 분명히 알 것 같다. 권태- 불륜-파멸로 이어지는 식상한 모티브를 갖고 낭만주의가 쇠퇴하고 자본주의가 정착하는 시기를 제대로 포착해내는 힘. 이래서 모든 작가들이 플로베르 플로베르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