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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미지의 빨간약 - 단편소설로 시작하는 열여덟 살의 인문학
김병섭.박창현 지음 / 양철북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나는 과연 이 아이들만큼 소설을 이해하고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독서토론 방과후 수업을 듣고 있는 여고생들에게 든 생각이다.
내가 경험한 문학 수업은 대부분 시험에 나올만한 작품을 선생님 혼자 강의하는 것이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이런 수업을 받는다는 게 부럽기도 하고, 요즘 애들은 책 안 읽는다고 타박만 했던 나의 편견을 반성하기도 했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한 권의 책이라도 이렇게 함께 질문하고 토론해가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는게 절실히 느껴진다.
다섯명의 개성 강하고 각자 사연도 있는 여고생들이 리상 선생님의 방과후 문학수업을 듣는다. 단편소설을 읽는 수업인데 선생님의 수업은 뭔가 다르다. 마치 직무유기를 하시는 것처럼 질문조차 던져주지 않고 아이들에게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게 한다. 책 내용을 제각각 자기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다 보면 ˝으..응? 선생님 어디가셨지? 벌써 수업이 끝났어? ˝ 할 정도니...
그런데 선생님이 가끔씩 툭툭 정리해 주시는 이야기나 아이들 스스로 찾아내는 소설의 의미들이 놀라울 정도다. 내가 읽지 않은 단편에 대한 얘기들을 할 때는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나 자신도 생각 못했던 내용들을 끄집어 내곤 한다. 읽다가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닐정도로. 소설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은지 많이 배우게 되었다. 오~~ 이게 진정 문학 수업이구나! ( 예를 들면 길지도 않은 단편소설에서 작가가 반복적으로 말하는 단어나 문장에는 뭔가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 반복적인 단어나 문장을 찾고 의미를 생각해보는 활동을 많이 한다.)
책을 읽다가 김현 평론가의 말이 생각났다. 문학은 무용하니까 유용한것이라고.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고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다보니 이 말이 참 절실해졌다. 모든것이 효율적이고 쓸모있는 것들로만 가득찬 세상이라면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누군가에 의해서 쓸모없는 건 정리되어 사라진 것이니까. 쓸데없는게 사라지면 좋은 거 아닌가 싶다면 사람을 생각해보자. 모든게 완벽하다면 그것은 기계고, 완벽하지 못하고 실수투성이인게 인간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만큼 비효율적인게 있나? 그런 효율성의 세상에서 문학의 무용성이야말로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소설을 읽는다고 밥이 나오는건 아니지만 소설을 읽으면 사람을 잘 이해 할수는 있는 것처럼.
그래서 마지막 선생님이 미지에게 해주는 말이 와닿는다. 자기는 친구들처럼 아픈 상처가 없어서 애들한테 미안하다고 다른 사람들 마음 아픈거 잘 이해해야 하는 인문학 같은거 안배우겠다는 미지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미지는 상처가 없다고?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미지야. 그래서 미지 같은 사람이 더 필요한거야. 미지는 튼튼하니까 누군가 아파서 쓰러졌을 때 도움을 줄 수 있잖아? 우리는 그걸 연습하는거야. 언젠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을 정말 잘 사랑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