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우스님의 <서민적 글쓰기>를 읽다가 알라딘 서재 다락방님이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란 책을 내신 걸 알게 되었다. 다락방님의 서평은 나도 참 좋아하는데 책으로 나온 줄은 몰랐기에 오늘 도서관에 간 김에 찾아보았다.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부터 역시나 다락방님의 장점인 글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부럽^^
`소설이면 충분하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용기에 감동받으며 어릴 적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1정도 되었던 여름이었을 것이다. 당시 집안의 상황이 좀 안 좋을 때였는데 늦둥이 막내인 나는 둔해서 눈치를 못채고 있었다. 엄마는 그 즈음 대하소설 읽기에 빠져서 당시 유행하던 도서대여점에서 책을 빌려다가 하염없이 읽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려운 상황을 잊어버리기 위한 방편으로 독서를 택한 것 같은데 그냥 혼자 조용히 읽으면 좋을 것을 `요즘 책을 많이 읽고 있는데 참 좋아. 너희들도 책 좀 읽어봐~`하고 남들이 보면 눈꼴사납게 (?) 동네방네 얘기하고 다니셨다. 당시는 여름방학이었고 집에는 엄마랑 나만 거의 하루종일 시원한 평상에 누워서 책을 읽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곤 했다. (그 때의 그림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런데 가뜩이나 집안 상황도 좋지 않은데 당시 가장 노릇을 하던 열두살 터울의 언니가 보기엔 두 모녀가 시답잖은 신선놀음이나 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책읽는 모습이 그다지 좋아보였을 리가 없다. 하루는 집안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할 엄마가 생활에 대한 고민은 안하고 책만 읽어대는 것에 (사실은 책 읽으니 너무 좋다고 자랑하는 것에 열받은 것 같아 보였는데) 화가 난 언니가 엄마에게 쏘아붙였다. (엄마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나도 들으란 듯이)
˝그깟 시답잖은 소설쪼가리나 읽으면서 책 읽는다고 티 좀 내지 말라고. 현실을 걱정해야지 소설 읽는 다고 답이 나오냐고. 무슨 대단한 책도 아니고 겨우 소설이나 읽으면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왠지 소설을 읽을 때면 이상한 죄책감이 생긴다. 게다가 학교 다니는 동안 자연스레 소설을 읽을 시간은 부족했고, 대학에 다니면서는 술이나 마시고 싸돌아다니느라 전공서적도 겨우 읽었고, 결혼하고 아이 키우면서는 더더욱 책과 멀어져갔다. 남편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지만 소설이랑은 거리가 멀다. ˝소설은 왜 읽는 거지??˝하고 늘 나에게 묻는 사람이니까.

소설을 읽을 때면 당당하지 못한 건 아줌마들과의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사실 우리 동네 아줌마들은 정말 정말 책을 안읽어서 내가 책 얘기를 거의 꺼내지 못하는데 어~쩌다 어~~쩌다 한번씩 책 얘기가 나오면 나는 몹시 흥분해서 말이 빨라지곤한다. 그럴때 누군가 결정적으로 ˝그래서 요즘은 뭐읽어??˝ 하고 물으면 인문학 책을 읽을때면 당당히 책 제목을 말하지만 소설을 읽고 있을 땐 ˝ 응~ 그냥 소설...˝하고 말끝을 흐리게 된다.

그런데 다락방님의 책을 읽으며 나는 비로소 소설에 대한 마음의 짐을 벗어놓는다. 이렇게 멋진 문장이 많은데, 이렇게 멋진 사람이 많은데, 그동안 왜 나는 소설을 읽는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지? 소설만으로 충분하다고, 이 힘든 세상 소설이라도 읽지 않으면 어떻게 버티겠냐고 말해주어서 고맙다. 다락방님은 소설을 사랑하니까 이렇게 맛있게 꼼꼼히 읽는 것같다.
나는 한해의 독서 기록을 쭈욱 정리해 놓고 가끔 들여다보는 습관이 있는데 그것도 어쩌면 그런 장치라도 마련해두지 않으면 책을 골고루 읽지 못하고 소설책만 읽게 될 것 같아서 한 일같다. 자주 점검해서 인문 사회 과학분야의 책도 읽으려고... 나름 고른 독서를 위한 방편이라고 위장해 왔지만 그것도 어쩌면 소설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 같은 트라우마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왜 자신있게 나는 너를 사랑한다!! 하고 외치지 못한 거지?? 이 책을 읽다보면 항상 소설에게 미안해진다.

그동안 떳떳하지 못해 미안해 ㅠㅠ 실은 나도 너를 많이 사랑하는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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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5-10-01 09: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아...아름다운 서평이네요. 책이 죄책감을 없앨 수 있다니, 책의 힘을 이렇게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서평이 또 어디 있겠어요. 님같은 독자가 한분만 있어도 책은 낼 만한 가치가 있을 듯 싶어요.

살리미 2015-10-01 10:10   좋아요 0 | URL
우앗!! 영광이에요. 마태우스님이 여기에 왕림하시다니!! 서평이랄 것도 없는 글을 아름답다 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다락방님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거든요. 그동안 제가 소설을 읽는 것에 대해 어떤 죄책감같은게 있었구나...하는걸요. 정말 보고 싶은 책이어도 인문 과학 서적은 기꺼이 사지만 소설책은 돈주고 사기 아까워 되도록이면 빌려 읽자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나를 돌아보니 그런게 한두가지가 아니더라고요. 다락방님 책을 읽으며 저의 죄책감을 씻어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이것도 따지고보면 마태우스님의 <서민적 글쓰기>를 읽은 덕분이네요^^

마태우스 2015-10-01 19:21   좋아요 1 | URL
그리 좋게 생각해주시다니 감사드립니다. 님이 제가 댓글 남긴 것에 대해 `영광`이라고 하시는 걸 보면서 십년 전 생각을 했어요. 그때 제가 서재 초기였는데, 서재지수 높은 분들이 댓글 달아주실 때마다 영광이다, 이런 말을 했더랬지요. 님의 필력으로 보아 몇년쯤 후 오로라님이 댓글 남겨주실 때 누군가가 ˝와앗 영광입니다˝라고 할 것 같은데요^^

살리미 2015-10-01 20:13   좋아요 0 | URL
덕담을 해주시니 너무 기분이 좋아요^^ 글쓴다는게 너무 부담스럽고 어려워서 십년 전엔 감히 서재를 운영할 생각도 못했거든요. 몇 년 후에도 계속 ˝영광입니다˝를 외치며 서재에 남아 있을 수 있도록 더~ 더~ 노력할게요~~

2015-10-01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리미 2015-10-01 11:2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영광이에요~

해피북 2015-10-02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한 공감을 하게되네요 오로라님^~^
저도 책을 구입하게될때 `소설책은 빌려보고 말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구입목록에보면 소설만뺀 다양한 책들이 있곤했죠. 그런데 몇달전에 이보영씨의 `사랑의 시간들`을 읽으며 소설이야 말로 꼭 소장해야하는 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소설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갈등을 겪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공감과 위로를 받게 되는데, 그때의 내 상황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부분들이 다른데. 소설은 그 과정이 참 매력적인거 같더라구요.

결혼전 이십대때 통용되지 못해 불쾌했던 사건들이 삼십이넘고 결혼을 하고보니 이해가되고 받아들여지게 되는 과정들은 어떤 책보다도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이라는걸 느꼈어요^^ 소설이야 말로 정말 다양한 맛을내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ㅎㅎ 그리고 주변에 책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말이 정말 격하게 공감을 하게되네요 ㅎㅎㅎ 아참 다락방님 책 소식은 정말 놀랐어요! 책을 내셨군요 ㅎㅎㅎ 저도 찾아읽어봐야겠어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살리미 2015-10-02 11:2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늘 소설에서 위로와 위안을 받았으면서 소설에 대해 쿨하지 못한 내 모습을 다락방님 책을 읽으며 돌아보게 됐어요. 함께 소설 속 인물들의 삶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수다떨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그런 복은 없는 편인지 주변에도, 독서 모임을 찾아가봐도 내 맘에 딱 맞는 모임을 만들긴 어렵더라고요. 그덕에 그 한을 알라딘 서재에서 풀어내고 있나봐요 ㅎㅎ

비로그인 2016-02-12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리 이글턴은 문학은 인간의 삶을 목적에 휘둘리지 않게 해주고, 우리가 삶을 더 즐기도록 도와준다고 합니다. 오로라님이 소설을 좋아하고 읽는 것도 이러한 이유겠죠. 그리고 님은 감성이 풍부하고 아직은 서툴지만 표현력이 좋아 앞으로 서재에서 글을 자주 쓰다보면 언젠가는 훌륭한 아마추어 작가가 되어 있을거예요. 힘내세요. 홧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