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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ㅣ 펭귄클래식 38
진 리스 지음, 윤정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제인 에어>를 처음 만난 건 어렸을 때 청소년용으로 나온 세계문학전집을 통해서였다.
사고가 다 자라지 못했던 때에 읽은 책에서 나는 그저 불행하게 자란 제인 에어가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는 스토리라고만 생각했다.
그 후 몇편의 영화를 통해 제인 에어를 다시 만났고,
완역본으로 한번 다시 읽어보기도 했는데 그 때는 또 제인 에어와 함께 로체스터경에게서 나쁜 남자같은 매력을 느꼈다. 미쳐버린 아내를 끝까지 보살피는... 그 운명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만나도 불행해질 수 밖에 없는 그를 연민하면서......
지금 생각해보니 영화로 제인 에어를 만났던 것의 단점인 듯 한데 제인과 로체스터사이의 서사에만 관심을 가져서 주변 인물들이나 배경으로 처리되어버린 역사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책을 읽다가 우연히 진 리스라는 작가가 <제인 에어>에서 묘사된 버사의 이미지에 열받아서 그녀의 입장에서 쓴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때서야 왜 나는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책을 구입해놓긴 했는데 읽지는 못하고 있을 때
난 막연히 그 내용을 버사와 로체스터는 원래는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어떤 계기로 인해 (이를테면 영국으로 이사를 해야 했고 영국의 문화에 적응을 못하고 점점 미쳐갔기 때문에 로체스터로서도 어쩔수없이 그녀를 가두어야만 했다는...) 비극적인 상황이 되었다고 상상해보곤 했다.
마담 보바리를 읽고 당시 진보적인 여성의 운명은 다른 소설들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나가 궁금해서 다음 읽을 책으로 이 책을 펼쳐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나는 식스센스급의 반전에 가까운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나에게 아직도 씌워져있는 선입견의 굴레에 비관했다. (아.. 나는 아직도 이정도밖에 안되는 인간이다....반성하고... 가볍게 입놀리지 말고...더 많이 읽고 생각해라... )
우선 펭귄클래식 코리아의 세계문학은 처음 읽어보는 것 같은데 소설을 읽기도 전에 서문으로 해설이 실린 것을 보고는 실망스러웠다. 선입견을 줄 것 같았고 그 소설을 모르는 상황에서는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조금 읽어보다가 서문을 건너뛰고 본문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본문을 읽으며 본문의 주해를 참고하다보니 주해가 엄청 자세한 것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보니 이게 펭귄클래식의 특징이었는데 주해가 자세하니 그 시대의 배경을 이해하기 좋아서 소설을 더 깊이 알 수 있었고 그만큼 더 소설에 빠져들었다. 가끔은 이렇게까지? 싶은 해설도 있었지만 독자적으로 작품을 이해하고픈 사람에게는 거슬릴 수도 있겠으나 나처럼 초보 독자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고 다음에 고전을 읽을 때에는 펭귄클래식 판본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얼마전 문예출판사의 세계문학 ebook을 구입한 내게는 무척 슬픈 깨달음이었지만 그때 내가 사고 싶었던 펭귄클래식 세계문학 전집 세트가 품절이 되었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크레마는 반응이 느려서 그때 그때 책 뒤쪽의 주해를 읽어보는 걸 포기했을 것이므로...)
이 소설도 1830년대 영국의 제국주의과 식민들의 상황에 대해 알고 있어야 이해가 가능한 부분이 많았기에 배경에 대한 자세한 해설이 도움이 되었다. 당시 크리올이라 불렸던 식민지 태생의 영국인들에 대한 부분이라든가, 식민지에서 노예노동을 이용하여 대농장을 경영했던 노예주들, 그 밑에서 일했던 노예들, 노예해방령이 내려진 이후 몰락하는 식민지 노예주들과 그들의 대농장을 값싸게 인수하려고 식민지에 들어온 영국인들,그에 대항하는 원주민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아뭏든, 내 맘대로 상상했던 소설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로체스터에게 매번 실망했다. 그리고 태양을 담은 여자 버사가 아닌 앙투아네트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고, 자유로운 영혼 크리스토핀의 현명함에 새삼 놀랐다. (크리스토핀 만세!!)
내가 끝까지 책임 질 줄 아는 불행한 가장 로체스터라 생각했던 인물은 진 리스의 소설에서는 열등감에 사로잡힌 전형적인 찌질이로 그려졌다. 아버지와 형에 의해 팔려왔다고 생각하는 로체스터는 그 열등감 때문에 앙투아네트를 전혀 이해하려 들지 않았고 오히려 그도 제국주의와 가부장제의 사상에 철저히 길들여진 인물이라 결국 열등감을 가부장적 권력으로 해소하려고 한다. 자신을 크리올에게 팔려온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버지에게 그런 불만조차 내색할 수 없는 인간이었던 로체스터는 (그가 아버지에게 쓰는 불만의 편지는 끝내 부쳐지지 않는다) 자메이카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그 자연의 생생함이 싫고 앙투아네트의 생명력이 싫고 그들만의 문화가 싫다. 그것들이 자신의 열등감을 더욱 부추긴다고 생각한다. 혈통적으로도 못난 유색인종일 뿐인 그들이 그들만의 언어 파투아로 자신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고 그들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게 맘에 들지 않는다. 아내의 재력에 기대 살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크리올이라는 것이 불만스러운 그는 자메이카에서의 잠깐의 신혼생활에서 앙쿠아네트가 주도권을 가지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그녀의 존재를 없는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녀에게 앙투아네트가 아닌 '버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인형처럼 대한다. 단지 여자에 대한 호기심일 뿐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결정적으로 그녀를 모함하는 대니얼의 편지를 읽고는 그 사실여부를 파악하려고도 하지 않고 스스로 확신을 가진다. 앙투아네트를 조금이라도 사랑했다면 이제 그만 놓아주라는 크리스토핀의 말에 그는 격분하여 이렇게 다짐한다.
# 허영에 찬 어리석은 인간. 사랑하도록 만들어졌다고?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너는 어떤 연인도 갖지 못하게 돼. 나는 너를 원하지 않고, 어떤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될 기회는 없을 테니까.
# 그녀는 이 장소를 사랑한다고 말했지. 그래. 이것이 그녀가 이 장소를 마지막으로 보는 기회가 되게 해주지. 그녀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을 쳐다보겠어. 눈물 한 방울. 나는 그 텅 비어 증오만 남은 광녀의 얼굴은 보지 않을 거다.
아.... 찌질해. 나의 로체스터가 이렇게 찌질한 인간이었다니. 열등감에 사로잡혀 그 열등감을 비뚤어진 권력으로 보상하려는 인간만큼 찌질한 인간이 어디 있는가. 물론 그도 고분고분 감정을 숨겨가며 그 시대의 교육을 받고 자란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피해자일 수 있다. 그러나 약자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나는 그를 변호할 만한 한가지의 단서도 찾지 못했다.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가져야 하고, 가정의 천사가 되도록 길들여질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자아를 가질 것을 요구한 샬롯 브론테도 크리올이었던 앙투아네트에게까지 챙겨 줄 여력은 없었던 것일까? 샬롯 브론테가 그녀에게 보여준 관용이라면 <제인 에어>에서 그녀가 해친 인물들이 모두 남성이었다는 것, 제인에게는 그녀의 결혼식 베일을 찢어버리는 정도의 위해만 가했다는 정도다. 제인 에어조차도 소설에서 당당한 여성으로 우뚝 서기엔 너무 힘든 난관이 많았으므로 그걸 읽는 나도 앙투아네트에게는 관심을 줄 여력이 없었다. 저 여자는 왜 미쳤을까 생각해 보지 않았다. 여성이 해방되었다는 현대에 버젓이 살고 있으면서도!
그래서 진 리스가 소설속에서 앙투아네트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식민지 국민들을, 여성을 다시한번 이해 할 수 있게 해 준 것 뿐만아니라 이토록 생생하게 자메이카의 자연과 문화와 역사를 이해 할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 로체스터의 결혼의 실패가 어떤 이유에 의해 피치 못해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로체르터가 찌질한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설정에 공감한다. 진 리스는 이 소설에서 앙투아네트와 크리스토핀을 통해 관습과 제도에 물든 자아가 아닌 자연의 생명력을 그대로 품고 있는 생생한 존재로서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그 시선을 장착한 채 다시한번 <제인 에어>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아....나의 로체스터는 갔지만 ...나는 이제 어느 한쪽의 시각에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자제하는, 좀 더 신중한 독자가 될 것이다.
길게 찢어진, 검은 동자의 눈. 서글픈 이방인의 눈. 그녀가 아무리 영국 순수 혈통의 크리올이라지만, 크리올을 영국 사람이나 유럽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 (101쪽)
그 노래가 흰 바퀴벌레에 관한 거예요. 나를 말하는 거죠. 그게 이곳 사람들이 대농장을 경영하던 우리 백인 모두를 부르는 이름이에요. 그들 종족이 아프리카에서 그네들을 노예상인들에게 팔아먹기 훨씬 전부터 이곳에 살아온 우리들에게 붙여준 이름이라고요. 영국 여자들이 우리를 백색 검둥이라고 부르는 것도 들어왔어요. 그러니 당신들과 이곳 유색인종들 사이에서 나는 내가 누구며, 어디가 내 나라인지,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내가 왜 태어난 것인지 궁금할 때가 많아요. (149쪽)
모든 일에는 항상 다른 면이 있는 거예요, 항상. (183쪽)
"정의라고요? 나도 그 말을 흔히 들어왔어요. 그렇게 차디찬 단어가 존재하다니. 나도 그 단어를 믿어보려고 했지요." 아직도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글자를 종이에 적어보곤 했어요, 여러 번. 그러나 항상 그 단어는 아주 새빨간 거짓말을 담고 있더군요. 정의가 어디 있어요?" 그녀는 럼주를 한 모금 더 마시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네들이 입방아를 찧고 있는 나의 어머니, 어머니에게 정의가 무슨 역할을 했나요? 흔들의자에 앉아 죽은 말과 죽은 마부들에 대해 얘기하던 불쌍한 어머니, 그리고 악마같이 생긴 검둥이가 슬픈 어머니의 입술에 키스할 때, 어머니에게 정의가 어디 있었나요? 그 검둥이가 슬픈 어머니에게, 마치 당신이 내게 키스하듯 키스할 때, 정의가 어디에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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