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이용덕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

 

 

 

 

『책에서 마주친 한 줄』

 

"그게 아니라 도쿠야마의 순수함이 더럽혀질 거 같아서 그래."

 

하지만 어떻게 말해봐도 뜬구름을 잡는 것처럼 뭔가 미진한 답답함이 있었다. 말이 서툴고 설명도 잘 못한다는 건 도쿠야마 스스로도 짜증스럽기

짝이 없는 결점이었지만, 이번 일은 더더욱 얘기하기가 힘들었다.

 

계속 어렴풋한 위화감을 풍기는 그 책장 앞에 가서 섰다. 저절로 흠칫했다. 줄줄이 꽂힌 책의 제목에 '살인', '잔혹', '지옥', '엽기', '고문', '학살' 같은 오싹한 단어가 빽빽이 채워져 있었다. …… 다시 말하자면 그곳에 빽빽이 채워진 책등에는 분명 장난같은 선정적인 제목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것, 도쿠야마도 이름만 겨우 알고 있을 뿐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프로이트'와 '융', '니체', '마르크스'같은 이름이 저자명이나 제목으로 여러 권이 확인되었고,

그 이외에도 들어본 적조차 없는 난해하고도 근엄한 이름이 새겨진 서적이 좀 더 많이 그 철제 책장에 강고한 성벽처럼 촘촘히 박혀 있었다.

 

세계의 노예제도, 스탈린, 문화대혁명, 베트남전쟁, 폴 포트, 벵골 대학살, 르완다 대학살과 콩고 전쟁.

도쿠야마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하쓰미는 많이 알고 있었고, 한쪽으로 치우친 그 방대한 지식량과 기억력에 대해 도쿠야마는 "너, 변태구나."라고 평했다.

…… 현대의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하쓰미는 말했다. 다만 그것도 오로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기분이 암울해지는 것들만 골라서.

 

"솔직히 말할게요. 나도 그 덫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건 실감하고 있어요. 옷이며 향수 구입할 때의 브랜드 경향, 대화에서 사용하는 말이나 몸짓, 최대한

거기서 벗어나려고 의식은 하는데, 아무래도 정해진 틀에 맞추게 되더라고요. 이러다 최악, 뭉실뭉실한 밍크코트 같은 걸 태연히 입고 돌아다닐지도

모르죠."

 

간노와의 관계를 파탄으로 이끈 것이 무의식의 폭주였다면 히우라를 비롯한 이자카야 동료들과의 절연은 그가 분명하게 의식한 역작이었다.

 

그러면서 떠오른 것이 '다양한 욕구가 사라져 없어지는 게 이상'이라는 말이었다. 그녀는 식욕도 성욕도 말라버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과연 진심으로 그런 이상을 품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애초에 그런 지점에 서 있었던 것인가.

 

 

 

『하나, 책과 마주하다』

제목과 표지부터 주는 으스스함과 강렬함이 내용에 들어가기 전부터​ 지레 겁을 먹게 만들었다.

그런데 처음 읽는 순간 단순히 도쿠야마와 하쓰미의 사랑이야기인가 싶었다. 그러나 사랑이야기가 아닌 운명이야기였다.

작품 속에서의 표현이 다소 거칠고 야한 부분이 많아 ​개인적으로 어린 친구들은 나중에 보기를! 다소 자세하게 표현된 부분에 가끔씩 놀래기도했다.​

주인공인 도쿠야마는 일류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삼수생이다.
가족들은 도쿠야마와는 다르게 일류대학을 다니며 그야말로 술술 풀리는데 도쿠야마는 그야말로 가족의 흠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집을 나와 혼자 살면서 이자카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된다.

이자카야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가게 된 단란주점에서 만나게 된 미니짱, 즉 하쓰미.

명함이다. 핑크색 형광펜으로 '미미'라고 인쇄되어 있는 명함 뒷면에 검정 볼펜으로 급히 써넣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야마나카 하쓰미'라는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그리고 '힘들거나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주세요. 언제든지'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언제든지'라는 글씨에는 밑줄 죽죽.

자신을 보며 부담스러울만큼 웃어대는 하쓰미는 도쿠야마에게 '우리는 서로 맞는다'라는 말을 강조한다.

하쓰미가 주는 명함에 어이없고 화가 나는 도쿠야마는 아이러니하게도 하쓰미와 깊은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도쿠야마는 결국 대학교에 합격하지만 이미 사회와는 단절되어있고 하쓰미와 함께 침대와 한 몸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원래 도쿠야마 히사시는 키가 크고 잘생긴 얼굴에, 눈빛이 촉촉하고 맑아 큼직하게 보이는 게 특징이라서 첫인상만으로도 여자들의 호의적인 시선을

받는 일이 많았다. …… 뾰족한 살인기계 얼굴의 히우라, 얼굴이 큼직해서 항상 여유만만해 보이는 우치바, 막내인 멍텅구리 사이토, 그리고 도쿠야마.

​우유부단하다못해 상대방에게 쉽게 흡수되는 도쿠야마, 하쓰미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세계관 등 책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보면

지금 우리들의 다양한 성격들을 마치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하쓰미가 내내 말하는 죽음은 오히려 끝으로 가면 갈수록 죽음이 무섭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도쿠야마와 하쓰미는 오랜만에 만난 이들이 보면 놀랄 정도로, 가면 갈수록 수척해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을 정도이다.

잔혹하고 무서울만큼 견디기 힘든 이 현실 속에서의 희망은 결코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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