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무엇인가 - 진정한 나를 깨우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철학 에세이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나란 무엇인가

 

 

 

 

 

 

『책에서 마주친 한 줄』

 

단 하나뿐인 '진정한 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대인 관계마다 드러나는 여러 얼굴이 모두 '진정한 나'다.

 

이렇듯 '진정한 나/거짓된 나'라는 모델은 간편하고 알기 쉽다.
이 모델에서는 '진정한 나'와 '거짓된 나'사이에 명학한 서열이 있으며, 가치가 있는 쪽은 '진정한 나'다.

 

커뮤니케이션은 타자와의 공동 작업이다. 대화 내용이나 말투, 기분 등등 모든 것이 상호작용 속에서 결정된다.
이유가 뭘까? 커뮤니케이션의 성공은 그것 자체로 기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이 내 본질을 규정하고, 나를 왜소화시키는 게 불안한 것이다.

 

인간에게는 몇 가지 얼굴이 있다. …… 상대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양한 내가 된다. …… 첫 번째 이유. …… 그것은 타자와 자기 모두를 부당하게 폄하하는 착각이며 실제와도 거리가 멀다. …… 두 번째 이유. 분인은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고 연기하는 게 아니고, 어디까지나 상대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생겨난다. …… 이것은 고정적이라기보다는 가변적이다. …… 세 번째 이유. …… '진정한 나'에는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 분인은 모두 '진정한 나'다. …… 그것이 바로 '나'란 무엇인가라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다.

 

정체성의 동요는 시대를 불문하고 성장 과정에서 누구나 경험한다.

 

꿈을 가져라.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라.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한 나'를 알아야 한다.
그런 자기를 사회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직업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역설적이지만, 인격은 여러 개 있어도 얼굴은 단 하나뿐이다.

 

모든 인격을 최종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단 하나뿐인 얼굴이다.


자상행위는 자기 자체를 죽이고 싶은 게 아니다. 단지 '자기 이미지'를 죽이려 하는 것이다.

 

한 명의 인간은 '나눌 수 없는individual' 존재가 아니라 복수로 '나눌 수 있는dividual'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하나의 '진정한 나', 수미일관된 '흔들리지 않는' 본래의 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여러 인격으로 본심을 이야기하고, 상대의 언동에 감동받아서 깊은 생각에 잠기거나 인생을 바꿀 결단을 내리기도 한다.

 

사회적인 분인이 특정한 사람에게 맞춰서 형성되는 정도가 서로 알게 된 시간의 길이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분인의 모델에는 자아니 '진정한 나'니 하는 중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그때 큰 비율을 차지하는 분인은 있다.
…… 우리는 발판이 될 만한 중요한 분인을 일시적인 중심으로 삼아서 그 밖의 분인 구성을 정리할 수도 있다.

 

 

 

『하나, 책과 마주하다』


읽는 순간, 철학인가? 에세이인가? 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란 무엇인가>는 철학에세이다.

인문·철학 분야는 한번에 이해하기 쉽지는 않다. 나도 보통 철학분야의 책을 접하면 한번에 이해하기 어려워 나는 2-3번을 읽곤 한다.

이 책은 '나'라는 개념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지만 내용이 딱딱하지 않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나란 무엇인가'의 물음을 통해 자아정체성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하고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 안에 분인이라는 개념이 들어있다.

분인이라는 말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1이라고 치면 분인은 1/N이라 할 수 있다.

즉, 분인이란 대인 관계마다 드러나는 다양한 자신을 의미하고 있으며 본인의 됨됨이는 여러 분인의 구성비율에 따라 결정짓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여기서 분인에 대해 집중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나'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과정을 거친 '나'의 결과물을 볼 수 있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움이 가져다주는 성격, 그것이 진정 내가 가진 모습일까? 아니면 내가 닦고 닦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성격, 그것이 진정 내가 가진 모습일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습의 전제조건은 '진정한 나/거짓된 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인간이 갖는 분인, 그 분인들은 합치는 게 좋은 것일까? 덜어내는 게 좋은 것일까? 그 물음이 곧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의미하는 것 같다.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남에게는 관대하지만 스스로에게는 혹독한 나는 자기애가 강한 편은 아니다.

물론, 내 자신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큰 편은 아니다.

그런데 요즘 느낀 게 하나있다. 주변 지인들을 보면 자기애가 강한 이들이 자아정체성에 대해 빠른 답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반면, 자기애가 강하지 않은 이들은 오늘도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왜 자기애가 강한 이들이 자아정체성에 대해 빠른 답을 내릴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자신을 사랑하고, 내 자신에게 귀 기울이고, 그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니 시간은 걸리더라도 그들보다 빠르게 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어떤 철학자이던간에 완벽하게, 정확명료하게 '나'에 대해 정의내리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나'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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