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책은 첫 페이지부터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한 장, 두 장 넘길 때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도저히 책을 덮을 수 없는 날도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책은 조금처럼 속도가 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몇 장을 읽고 덮어두었다가 며칠 뒤 다시 펼치기도 하고
한참을 읽었는데도 아직 이야기의 방향조차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가끔 생각합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그런데도 어느 순간 다시 책을 펼칩니다.
그리고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다다라 있죠.
돌이켜보면 책을 완성한 것은 특별한 어느 하루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매일 조금씩 다음 페이지를 넘겼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어떤 시기에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눈에 보이는 결과는 없고
분명 어제보다 한 걸음 나아간 것 같은데 오늘 다시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빠르게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 같은데
나의 이야기는 같은 페이지에서 자꾸만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조급해집니다.
조금 더 빨리 가야 할 것 같고
조금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고
지금보다 훨씬 나은 내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모든 페이지를 같은 속도로 넘기지는 않듯이
삶도 언제나 빠르게 나아갈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페이지에서는 오래 머물러도 됩니다.
몇 번이고 다시 읽어도 되고 잠시 책을 덮어두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났다고 너무 일찍 결론 내리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의 모습이 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이 있고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 있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고
무엇보다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그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한 문장이 한 권의 책을 바꾸기도 하듯,
작은 선택 하나가 삶의 다음 장을 바꾸기도 합니다.
오늘 다시 시작한 일 하나가 몇 달 뒤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될 수도 있고
오늘 우연히 읽은 한 문장이 어느 날 중요한 순간에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아직 원하는 곳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실패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아직 원하는 곳에 도착하지 못했다면, 아직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가 남아 있다."
이번 한 주도 다음 페이지를 펼쳐봅니다.
크게 달라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책을 한 장 읽듯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하고
한 문장을 기록하듯 작은 마음 하나를 남기고
어제보다 조금 나은 방향으로 한 걸음만 더 걸어가면 됩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는 아직 모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지금까지의 페이지가 우리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는 아니라는 것.
그러니 조금 느려도 괜찮습니다.
잠시 멈춰도 괜찮습니다.
다시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이니까요.
그리고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문장은 아직 쓰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주,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과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책장을 펼치듯 우리의 하루를 펼쳐봅니다.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를 향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