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책을 펼칠 수가 없었다.

무슨 문장을 읽어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고 평소처럼 글을 쓰는 일도 어려웠다.


며칠 전 사랑하는 할머니를 떠나보냈다.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고 장례를 치르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나서야 비로소 이별이 현실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모든 절차가 끝났는데도 마음은 아직 그날에 머물러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눈물이 나고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풍경에서 문득 할머니가 생각난다.


사람이 떠난다는 것은

그 사람과 함께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일이 아닌가 보다.

오히려 떠난 뒤에야 함께했던 순간들이 더 선명해지는 것 같다.

말투 하나, 손길 하나, 함께했던 평범한 하루 하나.

그때는 너무 당연해서 몰랐던 것들이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 되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사랑과 이별에 관한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예전에는 그 문장들이 그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문장은 내가 직접 지나온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아, 이래서 이런 문장을 썼구나.

이래서 어떤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는구나.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도

그와 비슷한 것인지 모른다.

함께했던 시간을 마음이라는 책장에 한 페이지씩 남겨두는 것.

더 이상 곁에 있지는 않지만

내가 살아가는 동안 문득 펼쳐볼 수 있도록.


그래서 오늘은 떠난 사람을 잊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슬프면 슬픈 대로,

그립다면 그리운 대로.

눈물이 나면 잠시 울어도 괜찮다.

그만큼 사랑했다는 뜻일 테니까.


"사랑했던 사람은 떠나도 함께했던 시간까지 떠나는 것은 아니다."


오늘도 하늘을 올려다보다 떨어지는 눈물을 자연스레 훔쳤다.

그냥 잠시 바라보려고 한다.

어쩌면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내 마음속에서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일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언젠가 지금의 슬픔보다 따뜻한 기억이 더 많이 남는 날이 오기를.

그날까지 천천히 할머니를 기억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책장을 펼쳐보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도 어쩌면 아주 천천히 시작하면 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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