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 - 의학의 새로운 도약을 불러온 질병 관점의 대전환과 인류의 미래 묻고 답하다 7
전주홍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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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

저자 전주홍

지상의책(갈매나무)

2025-08-30

과학 > 의학

과학 > 생명과학





■ 책 소개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는 역사를 비추는 거울로서 질병을 바라보고 전염병이 사회를 어떻게 흔들고 재편했는지를 살펴봅니다.

흑사병이 중세 유럽의 질서를 뒤흔들었고 천연두가 아메리카 대륙의 운명을 갈라놓았으며 최근의 코로나19가 전 지구적 패러다임을 바꿔버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요.

저자는 이런 역사적 순간들을 통해 의학이 단순한 치료 기술을 넘어 정치, 경제, 문화 전반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 문장으로 건네는 사유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회조직을 잘 유지하려면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규율과 신념을 공유해야 합니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일이고 여러 방식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이 중요하겠지요. 인류는 뇌가 발달했고 음성 언어를 사용했기에 머릿속 상상이나 추상적인 주제도 어렵지 않게 개념화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스토리텔링 능력까지 갖추었기에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공유할 수도 있었지요. 언어와 스토리텔링이라는 도구가 인류의 생존과 번식에 아주 큰 기여를 한 것입니다.



과학이 발전하더라도 개인이 과학적 세계관을 내면화하기란 상당한 인지적 노력이 필요한 어려운 과정입니다. 대부분의 과학 지식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질병의 의미를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과학적 사고방식을 습득하고 체화하려면 지속적인 학습과 훈련이 필수입니다. 더욱이 과학적 설명은 객관적 사실만 제공할 뿐, 개인의 주관적 고통이나 불안을 해소해주지는 못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신화적 혹은 종교적 질병관은 과학의 발전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지속합니다. 따라서 질병에 대한 과학적 접근 못지않게 환자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는 정서적 접근이 굉장히 중요해 보입니다.



질병을 뜻하는 영어 단어 ‘disease’에 체액의 균형이 깨진 상태를 질병으로 본 관점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disease’는 균형의 뜻을 담은 ‘ease’와 부정 접두어 ‘dis’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편안함을 느끼고 유지할 수 있다는 관점이 엿보이지요. 히포크라테스 의학 체계에서는 체액의 흐름이 곧 생명이고, 체액은 신체의 각 부위를 연결할 뿐만 아니라 인체와 세계를 연결하기 때문에 체액의 질서와 균형을 갖추는 일이 건강 유지에 매우 중요합니다.



17세기에 접어들면서 해부학은 인체 기능 연구에 도움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1628년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는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하여》에서 1,500년 동안 의심의 여지가 없던 갈레노스의 이론을 반박했습니다. 갈레노스는 마치 대지가 빗물을 받아들여 생명을 싹틔우고 유지하듯, 혈액은 순환하지 않고 동맥과 정맥을 따라 말초조직으로 이동한 뒤 소모된다고 여겼습니다. 하비는 혈관 구조에 관한 해부학 지식을 바탕으로 혈액량을 수학적으로 추산하고 여러 실험을 동원하여 인체의 혈액이 말초 부위로 이동해서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측정은 의학에 두 가지 중요한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첫째, 수량적 방법의 도입으로 숫자가 진단 기준을 설정하고 치료 효과를 평가하는 핵심 도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둘째, 측정의 범위가 분자 수준까지 확장되면서 질병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일이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현실로 정착했습니다. 이로써 질병을 치료하는 것과 치료하지 않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큰 해악인지를 계량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되었고, 약물의 효과 역시 정교하게 분석할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유전자를 암호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식은 유전자가 생명과 질병현상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과학에서 은유가 단순히 이해를 돕는 수단을 넘어 과학 이론을 구성하고 개념을 확장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가 느껴지지요. 더욱 흥미로운 점은 유전자의 기능을 설명하는 데 암호라는 용어를 처음 도입한 인물이 의학인 생명과학이 아닌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유전 정보의 개인별 차이와 질병 발생의 위험성 사이의 관계를 토대로 개인맞춤의학(personalized medicine)을 구현하고 구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HGP로 인해 개인의 유전 정보, 즉 DNA 염기서열을 싸고 빠르게 분석하게 되자 질병을 정보 관리나 처리, 제어의 결함이나 오류로 인식하는 틀이 자리 잡았고, 이러한 정보적 관점은 질병을 예측·치료·예방하는 데 이론적 틀을 제공했습니다. 나아가 질병 발생 위험에 대한 개인별 차이를 분석할 기술적 토대도 마련되었습니다.





■ 책 속 메시지


이 책은 인류가 질병 앞에서 늘 같은 질문을 던져왔음을 알려줍니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어떻게 더 오래 살 것인가?

역사는 이 질문에 과학적 답을 찾아온 과정이자 정치, 사회적 해석의 산물이었습니다.

저자는 질병과 의학을 역사와 나란히 읽어야 인간 사회의 선택과 한계를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의학은 단순한 과학이 아닌 인간의 삶과 공동체 전체를 비추는 렌즈가 됩니다.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는 의학의 역사를 다섯 가지 관점으로 대전환시켜 바라봅니다.

과거 인류는 전염병이 돌면 마을 하나가 초토화되었을 정도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수혈은 물론이고 마취도 몰라 환자의 팔, 다리를 꽉 묶어놓고 외과적인 수술을 강행하기도 했습니다.

즉, 이런 상황이었는데 관점의 전환을 통해 의학이 크게 발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책은 신의 노여움으로서의 질병, 자연적 원인에 따른 질병, 특정 장소에 놓이게 된 질병, 분자가 좌우하는 질병, 정보가 말해주는 질병으로 크게 나누어 바라봅니다.

신의 노여움으로서의 질병만 잠깐 살펴볼까요?


토템은 고대 사회에서 사회적 결속을 다지는 가장 좋은 방식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계절의 변화, 천재지변의 원인 그리고 몸이 왜 아픈 것인지 상상력에 스토리텔링을 더해 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현상이나 질병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초자연적 존재를 창조해냅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신화나 종교에 모든 것을 기대게 됩니다.

물론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습니다.

그러나 비합리적인 관점이라 해도 사회 구성원들이 윤리적 규범을 따르고 공동체의 결속력을 다지는 선한 기능이 있었으며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아폴론은 의학의 신이기도 하지만 질병의 신이기도 합니다. 즉, 양면적이죠.



■ 하나의 감상


책을 덮고 나니 질병이 단순히 개인의 고통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질병은 사회의 균열을 드러내는 가장 민감한 징후입니다.

사회의 약한 고리를 드러내고 불평등을 확대하기도 하며 때로는 역사적 변화를 가속화합니다.

의학은 늘 인간을 구하기 위해 존재했지만 동시에 권력과 이익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떠올렸습니다.

코로나19를 지나온 지금, 우리는 질병을 단지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볼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질문과도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는 질병을 단순한 위기나 사건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병을 통해 한 사회가 어디까지 준비되어 있었는지, 어떤 균열을 안고 있었는지를 드러내는 거울로 보여줍니다.

개인의 경험으로도 겹쳐서 생각해보세요.

병원에 드나들며 느끼는 불안과 막막함이 결코 나 자신만의 일이 아니었음을, 인류 전체가 오래도록 마주해온 공통의 문제임을 자연스레 깨닫게 될 것입니다.


과거를 돌아보게 하지만 동시에 오늘을 성찰하게 만드는 거울같은 책입니다.

역사적 사건과 의학적 사례가 교차하며 마치 이야기처럼 술술 읽히는 매력이 있으니 꼭 읽어보세요.



참고로 역사와 과학의 만남을 다룬 이 책이 시리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간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어서 출간 알림까지 신청해놓은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 ▶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3186427810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 ▶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3592518977

『역사가 묻고 화학이 답하다』 ▶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2770334352



■ 건넴의 대상


역사를 의학의 눈으로 새롭게 읽고 싶은 분

질병과 사회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고 싶은 분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사유하고 싶은 분



KEYWORD ▶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 리뷰 | 전주홍 책 독후감 | 질병과 사회 | 의학 역사 인문학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는 질병이 단순한 의학적 사건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를 비추는 렌즈임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역사와 의학의 교차점에서 인간과 공동체를 깊이 이해하고 싶은 분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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