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증거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런 이익을 측정할 객관적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문화에 따라 무엇이 선인지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는데, 어느 쪽이 옳은지를 판단할 객관적인 척도는 우리에게 없다. 물론 늘 승자는 자기네 정의가 옳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왜 승자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마니교에게 승리한 것이 인류에게 유익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기독교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과 의견을 같이할 이유가 없다. 무슬림들은 사산 왕조 제국이 무슬림의 손에 무너진 것이 인류에게 이익이 되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이익이 명백한 것은 우리가 무슬림 세계관을 받아들였을 때뿐이다. 어쩌면 기독교나 이슬람교가 사라지고 패배했더라면 우리는 더욱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 하나의 사유


우리는 때때로 역사를 진보의 기록으로 오해합니다.

이전보다 더 나아졌고 더 풍요로워졌고 더 문명화되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죠.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묻습니다.


그 더 나은 기준은 과연 누구의 것이었을까?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쉽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문화마다, 시대마다, 종교마다 선의 정의는 다르며 역사의 승자들은 언제나 자신의 세계관을 보편적인 진실로 포장해왔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승리, 이슬람의 확산, 서구 제국의 팽창, 현대 자본주의의 득세.

과연 그것은 보편적으로 옳은 길이었을까요?

아니면 단지 힘을 가진 자의 목소리가 더 크게 남았을 뿐일까요?


하라리는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객관적인 잣대 없이, 때때로 가장 큰 목소리에 끌려가며 그걸 곧 진리라 착각해왔다고요.




이 문장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이 글을 조용히 건네주세요.

말 한 줄, 문장 하나가 누군가의 오늘을 다르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다음 주엔 조금 더 따뜻하고 단단한 한 문장으로 다시 찾아올게요.

당신의 일요일에 이 조용한 사유가 잔잔히 머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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