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래
저자 천명관
문학동네
2004-12-24
소설 > 한국소설
세상은 어쩌면, 이야기로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책 속 밑줄
훗날, 대극장을 설계한 건축가에 의해 처음 그 존재가 알려져 세상에 흔히 '붉은 벽돌의 여왕'으로 소개된 그 여자 벽돌공의 이름은 춘희이다.
팔백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화재 이후, 그녀는 방화범으로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영어의 시간은 참혹했으며 그녀는 오랜 교도소 생활 끝에 벽돌공장으로 돌아왔다. 당시 그녀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그녀는 공장으로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그리웠던 풍경들을 허겁지겁 눈으로 좇으며 사람의 흔적을 찾으려 애를 썼지만 그것은 이미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기고 지워져 공장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춘희야, 너의 이 굵은 다리로는 누구보다도 단단하게 진흙을 이길 수 있고 이 두꺼운 팔로는 누구보다도 벽돌을 많이 들어옮길 수 있으니 그게 다 너의 복이란다.
이 긴 이야기의 시작은 평대에서 국박집을 하던 한 노파로부터 비롯된다. 그녀는 춘희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으며 두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찌 알랴, 이 모든 이야기가 한 편의 복수극일 수도 있음을. 과연 노파는 자신의 뜻대로 복수에 성공한 걸까? 거기에 대해 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끌림의 이유
『고래』는 한 명의 여성, 또 한 명의 여성 그리고 또 다른 여성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이야기로 세상과 맞서 자신들의 서사를 만들어 갑니다.
금복, 춘희, 노파 - 그들은 마치 한 마리 고래처럼 거대한 바다 한복판에서 유영하며 아무도 대신 써주지 않는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갑니다.
이야기를 다 읽었지만 마치 읽지 않은 것처럼 잔상이 오래 남습니다.
읽고 나서야 진짜 시작되는 소설입니다.
■ 간밤의 단상
『고래』를 읽는 일은 파도치는 이야기의 몸짓에 감정을 맡기는 일이었습니다.
그 물결은 거칠고 불편했으며 읽는 내내 여러 감정들이 교차했습니다.
금복이 [고래를 봤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고래』는 언제나 고래가 있다는 쪽에 서 있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사실 줄거리를 구구절절 쓰려고 애쓰면 금세 이야기의 물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뭐랄까, 이 책은 설명보다 경험하는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복잡하고 뒤엉킨 인물들 속에서 어느 한 사람도, 어느 한 감정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 건넴의 대상
거대한 여성 서사에 빠져보고 싶은 분
진실과 허구 사이의 문학적 상상력을 경험하고 싶은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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