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저자 장류진

오리지널스

20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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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3일 오후 5시, 나는 새로 장만한 새하얀 캐리어를 끌고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인천공항 출국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내가 핀란드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두 편이나 쓴 이유는, 당연히 핀란드를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저 좋아한다는 말로는 조금 부족하다. 내게 있어 핀란드는 '완벽한 휴양지'라고 말해보고 싶다.

현실의 어려운 문제들로 지쳐 있을 때.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 잔뜩 풀 죽어 있을 때. 누군가 내게 주어진 시간 외에 덤으로 일주일의 여가시간을 선물해주겠다고 한다면,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 없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비행기 티켓을 끊어주겠다고 한다면, 나는 분명 핀란드에 가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다소 의아한 대답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휴양지'와 '핀란드'는 서로 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니까.



뾰족한 침엽수 위로 소복이 쌓인 새하얀 눈, 대낮에도 해가 뜨지 않는 하늘, 어슴푸레한 달빛만 은은하게 빛나는 극야의 풍경, 설산을 달리는 순록과 두툼하고 빨간 털모자를 쓴 산타 할아버지, 순백의 설원과 가파른 슬로프 위를 누비는 스키어들 같은 추운 북쪽 나라의 감각이 핀란드를 대표하는 이미지이고, 사실 그마저도 일상에서는 잘 떠올릴 일이 없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핀란드는 존재감이 미미한 나라다.



떨림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한 편으로는 설레서, 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어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내년에 난생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 살게 될지도 모르는데, 심지어 전 세계가 후보인데 그중 어느 대륙으로 갈지조차 짐작도 못한 채로 '배정확인' 버튼을 누르는 순간, 거의 랜덤으로 정해지는 상황인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주인공 미도리는 일본에서 핀란드에 갑자기 오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심적으로 힘든 일이 생겨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졌고, 세계지도를 무작정 펼치고 손가락을 아무렇게나 짚었더니 그게 핀란드였다고 말이다.



함께 여행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들을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었던 예진이와의 여행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가 하고 싶어 하고, 하기로 다짐했던 그 수많은 것들을 과연 다 하고 올 수 있을까? 우리가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열흘이었다.



얼마나 '소유'한 상태로 태어났는지에는 관계없이 이 세상에 나온 순간, 누구나 '기본'적인 것들은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나는 이 '박스'들 역시 누구나 자연을 마땅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만인의 권리’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 같다고 이 숲길을 오르내릴 때마다 어렴풋이 생각했다. 뒤이어 이 숲을 나도 반년이나마 누릴 권리가 있다는 사실에 공연한 행복을 느끼곤 했다. 그건 마치 손바닥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 같은 행복이었다. 살갗에 닿아 금방 녹아내릴 테지만 내려오는 동안만큼은 너무나 아름답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잡고 싶어지는 그런 눈송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무형의 작은 공동체가 어느 대륙이든, 어느 나라든, 마치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비밀 요원들처럼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도서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기지 삼아 ‘헤쳐 모여’ 하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어찌 됐든 나는 이 작지만 사라지지 않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기쁘게 받아들였다.



오랜 친구는 마치 기억의 외장하드 같다. 분명 내게 일어났던 일이지만 자주 꺼내지 않아 그곳에 있었는지도 잊은 일들을 친구의 입에서 들을 때, 왜인지 부끄러우면서도 든든하다. 내가 잊어도 예진이가 알고 있겠구나. 나의 일부분을 이 친구가 지켜주고 있겠구나.



우리는 뒤돌아 우리가 걸어온 눈밭 위 발자국들을 바라보았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았고, 아마도 그래서 호수를 건너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지금이 아니면 바로 여기 이곳에, 이 드넓은 지구 위에서도 바로 이 특정한 위치에 존재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저곳은 녹아버리고 말 거라는 사실을. 그래서 지금만이 이곳에 이렇게 발을 디디고 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사실을.



그때 그 돗자리에 누워 잠들기 전, 그 시절의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내 인생의 가장 빛나고 좋은 시절, 내 인생의 황금기가 끝나가고 있다고. 앞으로는, 이토록 소소하지만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을 기대할 수는 없을 거라고. 나는 그때의 내게 말하고 싶어졌다. 네 인생의 황금기는 지금이 아니야. 훨씬 더 좋은 날이 많이 펼쳐질 거야. 15년 뒤에는 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반짝이는 장면들을 품은 어른이 되어 있을 거야.



여행지로서의 도시를 친구에 비유한다면, 파리, 런던, 뉴욕은 누구나 좋아해 마지않는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봐도 화려하고, 아름답고, 오로지 자신만이 뿜어낼 수 있는 고유한 분위기까지 가지고 있어 매력적인 친구. 늘 주변에 친구들이 넘쳐나고, 나 역시 자꾸 힐끔힐끔 올려다보게 되는 그런 친구. 하지만 동시에 저 친구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자꾸만 신경 쓰고 의식하게 만드는 친구. 과연 그 친구는 나를 ‘친구’라고 생각해줄지, 문득 의심 들게 만드는 친구.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친구. 헬싱키는 그와 반대로 긴장을 풀게 만들어주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매력적이지만 누구에게나 그 매력이 다 알려지지는 않은 친구. 다만 소리 없이 내 곁에 있어주는 친구. 그렇게 옆에서 가만가만 오래오래 들여다보면 비로소 반짝이는 친구. 내가 이 친구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써본 적 없는 친구. 친구라는 걸 의심하게 만들지 않는 친구. 언제 만나도 편하게, 자연스럽게 서로를 대하게 되는 그런 친구.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항상 있어줄 거라는 안정감과 신뢰를 주는, 그야말로 ‘진정한 내 친구’ 같은 느낌을 주는 도시가, 내게는 바로 헬싱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밝히는 내 소설 쓰기의 비밀 하나. 이른바 '조금씩 나가는 상상' 방법론이다. 평소의 나는 MBTI 'N형'답게 쓸데없거나, 쓸데없어 보이는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인데 때로는 이런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인 상상으로부터 소설의 발상을 얻기도 한다. 이 대화에서 다른 대답을 했다면, 이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들어와 참여한다면, 상황이 어떻게 다르게 흘러갔을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의 마음의 모양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떻게 변해갈까? 엄청나게 참신한 설정이나 대단한 세계관이 아니라 현실의 상황에서 아주 조금, 딱 한 발짝 나아가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그 한 발짝, 한 발짝이 계속 모이면 처음 발상과는 아주 멀어지게 되고 또 달라지게 된다.



나는 ‘그때 참 행복했었지’ 하고 내 행복에 과거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않는다. ‘이러면 행복해질 거야’ 하고 내 행복에 뒤돌아 등을 보이지도 않는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충만한 행복을 느끼지만 타인에게 내보이지 않는다. 우리 가족이 행복하다는 말을 들은 누군가가 갑자기 적대감을 비치며 화내는 걸 보는 게 속상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기 이렇게 적어본다. 알바 알토의 집 처마 밑에서 똑…… 똑…… 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내가 느꼈던 행복에 대해서. 짧은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내가 선택한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느꼈던 벅찬 온기와 무한한 신뢰에 대해서.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스러움'은 '자연'이 아니야. ‘자연’은 그냥 놔두면 되잖아. 거기 이미 존재하니까. 하지만 ‘자연스러움’은 다른 얘기지. ‘자연스러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뾰족한 고민이 필요하겠지. 건물 전체가 곡선으로 구부러져 정원을 감싸는 형태의 알토 오피스는 무척 자연스럽고 아름다웠지만, 그런 형태의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벽돌 하나부터 딱 원하는 각도로 구부러진 형태로 만들어야 하는 거잖아. 그 생각이 ‘리얼한 소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더라 ‘리얼’은 그냥 현실 자체잖아. 그냥 어디에나 존재할 뿐인. 하지만 ‘리얼함’은 다른 일이잖아. ‘리얼한 소설’ 그리고 ‘리얼한 문장’을 위해 인물을, 설정을, 대사를, 심지어는 단어 하나의 글자 수나 조사를…… 수많은 요소들을 수도 없이 갈아 끼우고 그만큼 셀 수 없이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또 돌려야 하잖아. 스르륵, 거침없이 읽히는 문장을 쓸 때는 그렇게 스르륵, 쓸 수가 없으니까. 맨질맨질한 표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거친 원재료에 수없이 사포질을 해야 하듯이. 나 같은 애송이를 알토처럼 위대한 예술가에 비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 독자분들이 재밌게 읽어주신 그 이야기는 나 자신조차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내 성격이 해낸 일이겠지. 그러니 그걸 내세우진 못할망정 최소한 미워하지는 말자. 사람의 성격은 그 성격의 주인이 최대한 더 나은 방식으로 생존하게끔 발달한 거겠지. 마치 자연의 섭리처럼. 그래서 나도 내 성격을 더는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보려고.



엄청난 ‘비밀’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버린 기분. 언젠가 몇 번의 눈이 녹고 난 뒤, 어떤 이유로든 핀란드를 다시 방문한다면, 그래서 헬싱키에 그리고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는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묻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가 이곳에 입장하면 이곳의 와이파이가 내 휴대폰과 자연스레 연결될 것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곳과 내가 소리 없이 연결될 것이다. 착, 붙을 것이다. 너무나 닮고 또 다른,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즐긴 열흘간의 차분한 휴식이 따스하고 청량하게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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